2017년 6월 27일 인쇄
2018년 7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7월호 통권 509호 |2018년 11월 17일 토요일|
 

출판살롱

 

에드워드 윌슨, 생명의 본질을 말하다
-




장동석(張東碩)(출판평론·「뉴필로소퍼」 편집장)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본성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인간을 제외한 동식물도 생명의 본질과 현상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으로서 인간의 좌표를 가장 잘 설명한 사람은 아마도 과학저술가는 개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통섭(統攝)의 과학자로 유명한 에드워드 윌슨이다. 그의 연구는 늘 인간 존재 혹은 본성을 향해 있었다. 「바이오필리아」 「생명의 편지」는 물론 자서전인 「자연주의자」 역시 자연을 탐구한 끝에 만나게 된 인간의 모습에 대한 담대한 고찰을 담았다.
에드워드 윌슨이 인간의 존재와 본성을 탐구한 또 한 권의 책 「인간 존재의 의미」는 “지속 가능한 자유와 책임을 위하여”라는 부제에서 보듯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을 넘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았다. 윌슨은 인간 존재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단순할지로 모른다”면서 단지 “자수성가한 독립적이고 고독하고 허약한, 생물 세계에서 살아가도록 적응한 생물 종”이라고 규정한다. 윌슨은 “인간은 타고난 불안을 지닌 채 살아가고, 아마도 그것을 창의성의 주된 원천으로 여기면서 기쁨을 얻는 방법을 찾아”내는 존재라고 강조한다. 존재 자체, 즉 어떤 존재인가를 뛰어넘어 의미, 즉 왜 존재하는가를 고민하는 게 인간이다.
윌슨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의 문제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더 어려운 문제로 설정한다. 이어 “왜 존재하는가”를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지적한다. 앞선 문제들도 그렇지만 ‘왜’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인문학과 과학이 다시금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는 17∼18세기부터 지금까지의 계몽 운동 역사는 물론 시를 비롯한 다양한 창작 예술의 가치를 간략히 개관하면서 새로운 계몽 운동의 가능성을 예고한다. “자그마한 인지 상자”에 불과한 인문학만으로는 새로운 계몽 운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현재 인류의 위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만큼, 과학과 인문학의 조합이 있어야만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문학을 마냥 과학을 거드는 역할에만 그치지 않는다. 과학적 발견이나 기술 발전은 일종의 한살이를 거치게 된다. 발견 초기 엄청난 규모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복잡성에 이르지만, 이내 속도가 느려지고 안정화 단계에 이른다. 하지만 “무한정 진화하면서 다양해질 쪽”은 오히려 인문학이다. 인문학이 변화와 속도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을 “더 빨리 발전시키도록 하자”는 말끝에 윌슨은 이렇게 덧붙인다. “하지만 인문학도 장려하자. 인문학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고, 과학이 이 수원을, 즉 인류 미래의 절대적이면서 독특한 원천을 엉망으로 만드는 데 쓰이지 않게 막아 줄 수 있다.”
에드워드 윌슨의 주장에 대한 견해는 분분하지만 과학적 발견을 통해 오로지 인간의 삶을 탐구하는 열정만큼은 인정받을 만하다. ‘인간 본성의 근원을 찾아서’라는 부제가 붙은, 읽기에 따라 「인간 존재의 의미」의 전작이라 할만한 「우리는 지금도 야생을 산다」도 함께 읽어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