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7일 인쇄
2018년 7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7월호 통권 509호 |2018년 11월 17일 토요일|
 

문화살롱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리처드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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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숙(梁惠淑)(문화평론)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어도 절대로 바뀌지않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투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투쟁과 쟁취의 방법이 치열하고 졸렬하며, 염치로는 그 척도를 헤아릴 수 없을만큼 극도로 교활하고 잔인하다.
나는 우리나라 사극, 특히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흔히 다루는 조선시대의 궁궐 속에서 일어나는 권력다툼의 양상을 보며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권력쟁취를 향해 치졸하고 극악하다고 믿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80년대 초반 영국전역을 여행하는 행운을 얻은 시기에 나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은 큰 수확을 거두었다.
그 첫째는 영국 각 지역의 서로 다른 멋진 문양의 문장과 깃발, 둘째는 그 멋진 깃발 뒤에 숨은 끝없는 권력쟁취를 위한 투쟁과 계략, 그 피비린내 나는 투쟁 끝에 얻어진 지혜가 오늘의 영국을 많은 면에서 선진국으로 앞서가는 자유민주주의 세계의 초석을 깔아 주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비극, 특히 피비린내나는 권력투쟁의 와중을 그려낸 3부작 「헨리 6세」 에 이어 탄생한 「리처드 3세」는 곱추라는 신체적 불구의 조건을 타고난 인물이 얼마나 교활하고 야비하게 주변의 정적을 물리치고 제거하며 자신의 권력에 대한 욕망을 키워가고 성취하는지, 또한 그 여정 속에서 한치의 양심도 못느끼는 냉혈한의 계략과 그 실천이 얼마나 치밀하고 가혹한지를 잘 보여주는 연출 오스터마이어(Thomas Ostermeier)는 곱추라는 불구의 인간성부재의 인물을 주인공배우 라르스 아이딩거(Lars Eidinger)를 통해 아주 여유롭게 그려내고 있다.
물론 우리속담에는 ‘병신 고운 데가 없다’ 라는 말이 있다. 외모의 불구는 그 약점이 겉으로 드러나있지만 실은 현대인의 내면의 상처는 보이지 않는 곳의 불구를 품고살며 사람다움을 잃은 포악한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나고 있음도 현실이다.
어찌되었건 권력을 지향하여 한치의 양보도 없는 욕망을 구사해나가는 주인공의 야비함과 그 실천의 과정을 연출은 ‘무대는 삶의 현상을 확대경을 통해 보여주는 곳’이라는 사실을 교묘히 풀어감으로 해서 주인공의 욕망의 궤적을 잘 따라가게 해줄 뿐 아니라 간간히 이어지는 주인공과 관객과의 대화를 이끌어 냄으로써 온 극장안을 무대화하는데도 성공하고 있다.
다시 말해 관객과 무대가 따로 노는 연극이 아님을 성공시키고 있다는 말이다. 달리 표현하면 관객도 연극 속에 함께 있음을 억지없이 성공시키고 있다는 말이 된다. 아마도 이러한 연출의지는 연극을 올리는데 있어서도 배우들과 함께 논의 하고 연극을 무대 위에 함께 풀어가고자하는 목표설정과 실천과정이 그를 독일 굴지의 무대 샤우뷔네(Theater Schaubuene)의 주도적 연출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독일연극의 미래를 이끌고 갈 미래세대로 기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이번 LG아트센터가 초청하여 온 공연장을 꽉 채웠을 뿐 아니라 한국의 연극학도들에게 학습의 장을 마려한데도 큰 성과를 이루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