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7일 인쇄
2018년 7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7월호 통권 509호 |2018년 11월 17일 토요일|
 

관무기

 

『봄의 제전』 이후의 제전
- 웨인 멕그리거




윤재상(尹在祥)(Art Management NYC LLC 대표)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웨인 멕그리거 안무 『제전 후(AFTERITE)』(5월21일~26일, Metropolitan Opera House)
안무가 웨인 맥그리거(Wayne McGregor)는 영국 출신의 현대무용 안무가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춤과 영상의 조화, 컴퓨터 기술과 생물 과학이 접목된 특별함을 보여주고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 심리학과에서 실험 연구원으로 일하며 운동과 뇌 과학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는 또 다른 그의 독특한 이력은 작품세계의 영역을 깊고 풍부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는 밑바탕이 되고 있다. 로열발레, 슈투트가르트발레, 뉴욕시티발레, 샌프란시스코발레, 그리고 파리오페라발레단 등과 함께 협업하며 현시대를 주도해나가고 있는 안무가로 평가받고 있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이하 ABT)와는 『제전 후』를 통해 이번에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ABT처럼 세계적인 발레단에 현대무용 안무가가 초대받아 만들어진 작품은 관람 이전부터 기대에 부풀게 한다. 최고의 발레 기량을 가지고 있는 무용수들이 현대무용 동작을 소화해내는 것(안주원의 현대무용 실력을 볼 수 있었다)도 작품을 즐기는 핵심이 되겠지만 그들을 활용해 시대를 넘나드는 거침없는 안무의 영역을 보게 될 때는 기대했던 것 이상의 감동을 하게 된다.
『제전 후』는 바츨라프 니진스키의 안무 『봄의 제전(Rite of Spring)』을 웨인 맥그리거만의 독특한 안무 스타일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창조했다. 당시 작품이 풍년을 기원하며 젊은 처녀를 뽑아 살아있는 제물로 바치면서 벌이는 원시적인 무질서와 종교적인 광란을 보여주었다면, 이 작품은 가상된 미래의 식민지를 배경으로 적자(嫡子)의 생존만이 요구되는 시대적 상황을 보여준다. 그 적자생존이라는 의례로 인해 두 아이를 가지고 있는 어머니가 자신의 자녀 중 하나는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는 숙명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다뤘다.

무대의 시간은 미래, 장소는 다른 행성에나 존재할 법한 전초 기지의 모습이다. 거대한 온실과 같은 투명 상자가 무대 전체크기의 4분의 1가량을 차지하며 놓여있다. 그 상자 안에는 식물들이 있고 광합성을 위한 인공조명이 식물을 비춘다. 이는 흡사 인간에게 강제적으로 영양을 공급해 사육하는 느낌으로 전달된다. 무대에 있는 온실로 인해 무대의 분위기는 불모지가 연상되며 황량하다.
음악의 시작과 함께 차례로 등장하는 무용수들의 조직적인 군무로 점차 무대는 균형을 이루어 가지만 엄마와 두 어린 소녀의 등장은 어렵게 맞추어 놓았던 균형을 단번에 무너트린다. 심지어 그들의 등장으로 인해 무용수들은 전통을 지키기 위한 무리와 아이들을 지키고자 하는 엄마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한 무리로 나뉘어 대립한다. 무대 벽면에 비추어지는 달의 이미지를 포함해 제시되는 조명 영상들은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순간적으로 내포해 보여준다.
갈등이 느껴졌던 군무가 끝날 무렵 온실 문이 열리며 엄마는 아이들을 온실에서 데리고 나온다. 이후 그들의 손을 붙잡고 무용수들 사이를 강인하게 헤집고 돌파해나가는 모습을 보이며 어떤 아이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엄마의 간절한 마음에도 아이 하나는 온실로 돌아가고 문이 잠긴다. 밖의 또 다른 아이는 식물이 가득 들어찬 온실의 투명한 벽을 응시하며 누군가는 미래의 제물이 되어야만 한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암시해 보여준다. 하얀 연기가 온실을 가득 채우고, 그 안에 있던 아이는 사라진다.

『봄의 제전』의 제물이 단지 젊은 처녀로 국한되어 있었다면 『제전 후』는 여자아이라는 제물과 함께 자신의 자녀 중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할지를 결정하도록 강요받은 어머니의 모성애가 더해지며 작품의 긴장감을 더하고 주체의 간절함이 객석에 전달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탁월하고 뛰어난 개념과 훌륭한 안무의 조화는 기존에 만들어졌던 『봄의 제전』 이상의 가치를 만들었다. 특히 세월이 흐른 지금 들어봐도 예측하기 힘든 강세와 불규칙한 리듬의 음악과 일치하도록 대담한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 경이로울 뿐이다. 아니 그러한 음악을 이용해 듣는 이들의 무의식적 본능을 자극하고 마음을 달아오르도록 해서 작품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고 보여진다. 웨인 맥그리거의 제전은 가상된 미래사회를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만 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사회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아름다운 발레리나, 발레리노들의 화려한 변신, 미래를 완벽하게 재현해놓은 듯한 무대장치, 비디오 디자인, 의상과 조명 등 작품을 구성한 요소를 쪼개어 즐겨보고자 준비하고 극장을 찾은 필자에게 『제전 후』는 전체적인 작품에만 집중하고 보도록 시선을 붙잡아 매어놓은 천재 안무가의 이기적인 작품이었다.
ABT에는 한국무용수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수석무용수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서희를 필두로 한성우(2013년~), 안주원(2014년~), 그리고 올해 봄 시즌에는 김기민까지 초대 무용수로 합세해 무려 4명의 자랑스러운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작품 『제전 후』를 통해 안주원의 현대무용 실력을 볼 수 있었는데 안주원은 기량과 움직임의 느낌, 신체조건까지 우위를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