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7일 인쇄
2018년 7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7월호 통권 509호 |2018년 11월 17일 토요일|
 

관무기

 

가부키(歌舞伎)의 풍경(風景)들
- 가부키 「렌지시(連獅子)」




권경하(權炅河)(북쇼컴퍼니 대표)

* 가부키 「렌지시(連獅子)」(2018.6.9. 도쿄국립극장 대극장)
#착각
6월9일 도쿄국립극장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이 극장은 공연시작 30분 전에 공연장을 오픈한다. 건물 입구에서 티케팅을 하니 모두 건물 밖에서 대기 중. 티켓을 가진 사람만 로비에 입장가능하다는 얘기(옛날에도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택시 한 대가 근처에 정차했다. 예상했던 시간에 열리고 내리고 닫히지 않는다. 고개를 뻗어 살펴보았다. 택시에 탄 사람은 노부부. 도착 후 한참을 운전기사와 꾸벅꾸벅하며 인사를 나눈다. 문이 열렸다. 이젠 내려야 할 시간에 내리지 않는다. 예상 시간을 초과하면 신경 쓰인다. 천천히 막대기 하나가 나오고 구부정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내린다. 이윽고 할머니까지 내리고 두 사람은 매우 천천히 진입했다. 이런! 혹시 저것이 오늘 공연의 속도 인가. 당혹감이 든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 저 어르신의 목청은 극장을 흔들었고, 「렌지시」 사자춤 헤드뱅잉은 관객을 숨가쁘게 열광으로 몰고 가는 것이었다.

#시타마치 「후세,복」
「후세, 伏」라는 일본애니메이션이 있다. 에도시대 말의 도쿄 시타마치(下町) 서민들의 생활을 소재로 하는 것인데, 극단에서 홍보를 나오고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이 단체로 가부키를 관람하는 장면이 있다. 극장 안은 장터처럼 시끌벅적하고 전혀 고상하지 않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가 귀족이 아닌 서민들을 위한 오페라를 만들어 괴성을 지르며 떠들썩하게 관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과 비슷. 도쿄 외곽의 서민들에게 가부키란 한국 1970~80년대의 ‘주말의 명화’같은 것 아니었을까. 감히 서민들은 먼발치에서도 쳐다보지 못했을 화려한 옷과 화장으로 배우들이 성장(盛裝)하고, 상상도 못할 희한한 이야기를 노래하고 춤추며 보여주었던 오락물.

#풍기문란
가부키는 에도 시대에 접어들어 시작된 걸로 본다. 전쟁이 끝나면서 이런 오락물도 생겼다 할 수 있겠지만 전국(戰國)시대 말에는 무서운 춤바람도 있었던 모양.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藏八)의 장편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 한 마을에서 춤판이 벌어지면 다음에는 그 이웃 마을로 번져나갔다. 높은 무대를 만들어 모닥불을 피워 놓고 그 중앙에 큰북과 소리꾼이 자리잡았다. 춤꾼들은 그 밑에서 원을 그리면서 춤을 추었다. 어느 틈에 남녀노소 모두가 어우러진 큰 집단이 되고 화려한 능라비단으로 장식하고 이 마을 저 마을로 춤을 추고 다니는 광란의 무리로 변하고 말았다. 농부와 상인들이 일을 때려치우고 한밤부터 새벽이 되도록 취한듯이 날뛰고 소리지르는 바람에 어느덧 무사들까지 말려들고 있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남녀가 정을 통하거나… 봄의 꽃놀이 철이 되면서부터 그 기세는 더 심해졌다… 하룻밤의 춤을 위해 땅을 팔고 도망가는 자가 생기는가 하면, 무사의 아내가 나간 채 그대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상에 있었을 가부키는 에도막부가 자리 잡아가며 서민들의 오락거리에 대한 단속이 시작되고 풍기문란의 조짐을 보이자 철퇴를 맞는다. 여성배우의 출연이 금지되고 내용에 대한 검열도 들어갔을 것이다. 여성배우의 금지는 지금까지 이어져 남성배우가 여자분장(온나가타, 女形)을 하고 여성보다 더 여성 같이 연기를 한다. 내용은 「추신구라, 忠臣藏」같은 충성을 얘기하는 유교적인 것 또는 불교적인 것 등이 주(主)가 되어간다. 가부키를 대략 네 종류로 구분 할 때 「렌지시」는 무용극의 대표작품 중 하나. 무용이 특징이라는 말이다.

#나카무라 마다고로
관객은 다양하다. 중학생 단체, 기모노 곱게 차려입은 여성들, 대학생 동아리모임 등. 개인이 오는 경우보다 소규모 모임의 관람이 많아 보인다. 객석 뒤쪽에 앉은 노인분들 중에는 걸음 옮기는 게 아슬아슬한 분들도 있었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하리마야~!’ ‘하리마야’ 귀가 터지게 외친다. 아니, 아슬아슬한 발걸음은 컨셉이었나. 오늘 등장 주역의 야고(屋號, 집안의 이름)가 ‘하리마야’인 모양. 가부키에서 관객들은 배우의 야고를 외치며 응원을 한다. 「렌지시」의 하이라이트는 아빠사자와 아들사자의 사자춤. 흰 갈기를 휘날리며 아빠사자가 하나미치(花道)를 성큼성큼 걸어나오자 관객들은 열광하고 뒷통수에선 노인들이 발을 구르며 야고를 외친다. 무대의 절정은 붉은 털을 날리며 아들사자가 등장하여 아빠사자와 함께 사자춤을 추는 것. 멋진 포즈(미에,見え)를 보여주고 머리를 흔들고 빙글빙글 돌린다. 알고 보니 오늘 무대는 하리마야 집안의 나카무라 마다고로(中村又五郞), 나카무라 가쇼(中村家昇) 부자가 무대 위에서 아빠사자와 아들사자 역을 처음으로 동시에 맡은 무대. 먼저 알고 봤다면 더 재미있었을까. 아빠사자의 우뚝 선 모양새는 인상적이다. 박력있고 아름답다. 「렌지시」는 가부키의 명문 나카무라 집안의 대표 레퍼토리, 하지만 야고가 다르니 종가가 아니라 방계인 모양.

#교겐(狂言)
무대 중앙에는 이열의 단이 마련되어 있고 악단과 소리꾼이 앉아있다. 총 20명. 샤미센과 북 반주로 염불하듯 노래한다. ‘중국 청량산에 불가사의한 석교가 있고…’ 노래와 연주 이후 교겐(狂言)사가 등장하여 ‘아들사자를 천길 절벽에서 떨어뜨려 시련을 주며 단련시키는’ 사자의 고사를 이야기한다. 두 명의 교겐사는 손에 사자탈을 들고 나와 미묘하게 합을 맞추어 무대를 채운다. 움직임은 꽉 짜여있고 허튼동작, 계산되지 않은 움직임은 없다. 가부키에는 배우 외의 제3의 연출자는 없다. 대를 이어 연습하고 조금씩 개량해간다. 두 명의 교겐사는 법화종과 정토종의 승려가 분위기를 일신하는 코믹한 연기를 할 동안 사자 분장을 준비 한다. 같은 배우가 교겐과 사자를 연기한다. 플랫조명. 스포트라이트가 없다.

#리바이벌의 대마왕
NHK에서는 하이쿠(俳句) 전국대회를 소개하며 각종 모임이 번성하고 유행이라 보도한다. 일본의 대표 전통문화라 할 만한 하이쿠, 스모, 가부키는 기세등등하다는 느낌. 한국의 시조, 씨름, 판소리가 떠오른다. 일본에서 전통문화는 남녀노소가 달려들어 또 보고, 다시 듣고, 연구하고, 토론하는 모양새. 배우는 똑같은 걸 수백 년 대를 이어 반복하고, 관객들은 같은 걸 보고 또 본다. 일본인들은 리바이벌의 대마왕인가. 혹시 그러다 보면 도(道)의 경지에 오르는 걸까.
문득 옛날 메탈그룹 X재팬의 요시키와 토시가 하얗게 화장하고 흰머리 빨간머리 흔들던 공연장면이 생각난다. 가부키는 티비에서 애니에서 영화에서 무대에서 끝없이 리바이벌, 재해석 되고 있다. 그 인기는 계속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