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7일 인쇄
2018년 7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7월호 통권 509호 |2018년 11월 17일 토요일|
 

춤 스크랩북

 

글 쓰는 일은 또 다음 휴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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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동 화()

‘연휴~’ ‘토요일~’ 하면서 계속 밀려오는 글을 쓰려고 막상 책상머리에 마주 앉으면 어느새 길어버린 손톱, 우선 그것을 자르고, 자르는 김에 양말도 벗어 발톱도 자르고, 화장실로 가 손을 씻고, 거울에 비친 귀 밑 긴 털, 이것을 그래도 둘 수 없어 작은 가위 찾느라 온 설합을 뒤지고… 하다가 정원용 가위를 찾게 되어 그것을 들고 정원으로 나가 보기 흉하게 말라버린 꽈리 덩굴잎새, 머위 줄기, 꼭 지금 자를 필요가 없는 앵두가지 등을 치며… 하다보면 결국 쓰는 일은 또 밀리게 된다.
그러니까 글 쓰는 일 같은 것은 원체 하기 싫으니까 이 핑계 저 핑계하며 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 옳다.
이런 버릇은 중학교 때에 생겨났던 것 같게도 생각된다.
한 달 전부터 발표되는 학기시험 시간표를 벽에 붙여놓고도 막상 내일부터 시험이 시작돼야만 공부를 시작하는 버릇. 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앉아선 연필부터 차례차례 모두 깎고 다듬고 설합을 뒤집어엎어 정리하고 거기서 나오는 편지며 메모를 일일이 펴보고… 하는 그런 ‘워밍업’ 시간이 내게는 필요했던 것에서 말이다.
일전 나는 이런 ‘워밍업’을 하다가 예기치 않게 한 봉투 속에서 누렇게 바랜 후배 Y군의 사진과 이력서를 발견하였다.
‘어떻게 이런 것이 여기에 들어 있었을까…’ 하는 순간, 그 이유가 기억되자 죄책감과 연결되는 이상한 감정의 그때 일이 떠오른다.
Y군과 결별. 그는 이미 죽어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 그가 나에게 보인 사소한 불쾌감이 끝내 용서되지 않아 선배한테 부탁했던 그의 일자리를 일부러 찾아가 취소하고는 이 사진과 이력서를 돌려받아 왔던 것.
나는 너그럽지도 용서도 하지 못하는 그런 좁은 마음의 소유자였다. 용서하기에는 나의 가진 것이나 처해 있는 자리가 불안했었는지 모른다. 아니 자신이 없었던 때라는 말이 옳다. 만일 내가 그 불쾌감을 수용했던들 그의 운명이 그렇게 되지 않았을지 모를 일이다. 키 크고 늘 외로와 하는 그는 항상 세상이 자기 그림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불만이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Y군은 너무 게을렀고 만사를 보는 눈이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주위 친구들에게 나 말고는 호감을 갖게 하지 못해, 늘 외톨이였다.
특히 그림에 관한한 주변의 모든 동료, 한국의 모든 미술을 통털어 경멸하고 매도하는 그런 버릇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대화의 상대자인 나는 어차피 반대편의 입장도 설명해줘야 했다. 어떻든 이러는 내가 그는 못 마땅하였다. 그의 논법에 의하면 ‘그런 자들까지 이해하는 조형을 경멸한다―’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내가 그와 결별하기로 한 대목은 이것이었다. 자기편에 서 있는 유일한 나에게까지 기총소사를 해대는 그. 나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늘 내가 지불하던 두 사람의 찻값에서 내 찻값만 내고 나와 버렸다.
그 후 물론 그는 다시 나를 찾아오지 못했다.
아니, 나는 그 후 다시 그가 사과하러 올지 모르는 그 찻집엘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와의 관계를 다시 맺기 싫어서였다.
세월은 많은 기억을 잊게 하지만 왜 그런지 아직도 그때 다친 감정은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왜 그럴까. 나는 이것이 괴롭다. 글은 또 다음 토요일이나 일요일로 미룬다. 지금 감정으로는 도저히 쓸 수 없지 않은가.

유한사보 「건강의벗」 1989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