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7일 인쇄
2018년 8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8월호 통권 510호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이달의 좌담

  국립무용센터 건립을 위해 춤계가 하나로 뭉쳐야
   


 


장승헌 (張勝憲 /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상임이사)
조기숙 (趙起淑 / 이화여대 교수)
최해리 (崔亥利 / 한국춤문화자료원 이사장)
조은경 (曺恩慶 / 춤평론·본지 주간) /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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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센터건립추진단의 결성
조은경 _ 안녕하세요? 7월25일 프레스센터에서 「국립무용센터 건립을 위한 공청회」가 있었습니다. 오늘 좌담에서는 그 이야기를 더 나누기 위해 국립무용센터추진단 위원들을 모셨습니다. 공청회에서는 분야마다 진흥센터나 예술센터 같은 개별장르 중심으로 진흥정책수립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문학분야에서는 국립한국문학관, 미술분야 한국미술진흥원, 서예분야 한국서예진흥재단, 한국화분야 국립한국화진흥센터, 공예분야 한국공예문화진흥원 등의 건립을 모색하거나 추진하고 있는 사실을 적시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립무용센터가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왜 아직 없냐고 도리어 놀라기도 합니다. 우리 춤계의 규모나 기여도에 비해 참으로 서운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 조금 다른 측면에서는 국립무용센터라고 하니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뭔가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참가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춤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잠재해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오늘 참석하신 세 분은 각자 추진위원과 집행위원을 맡고 계시니 만큼 국립무용센터 건립이 어떻게 발안이 됐고, 현재 진행상황은 어떤지 잘 말씀해주실 걸로 생각합니다. 이 사안은 무용계 전체가 힘을 합쳐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범무용계가 힘을 모았던 적이 이전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1990년 초반 춤지를 중심으로 춤계가 5~6년에 걸쳐서 ‘조택원 춤비’ 건립을 위해 모금을 했었지요. 모금액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춤계 전체가 처음 뜻을 함께 모아 동참했던 기억이 나요. 모금 후에 춤비를 놓는 과정에서도 복잡한 일이 많이 발생했어요. 국립극장의 어디에 춤비를 놓을지, 사이즈는 어떻게 할지, 근본적으로 국립극장에 연극보다 먼저 무용가의 춤비를 세울 수 있나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쉬운 일이 없었어요. 결국 극장 안에는 흉상만 놓을 수 있다고 해서 조택원 춤비는 사이즈를 줄였지만 극장 앞마당에 세우게 됐죠. 그렇게 춤계의 뜻을 하나로 모은다는 게 어려운 일이었지만, 춤계의 저력을 확인하고 춤의 위상을 확인하게 되는 등 그래도 해내고 말았죠.
규모면에서나 이번 국립무용센터 건립과는 비교할 수 없고, 게다가 소위 ‘관’을 상대로 답답한 일도 많을 터이니, 더 많은 힘을 모아야 하겠죠. 먼저 오늘 참석하신 분들의 소개를 듣고, 국립무용센터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승헌 _ 저는 국립극장과 공연기획 MCT를 거치며 30여 년 넘게 공연 기획자로 활동해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2007년, 설립 준비 당시부터 ‘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으며, 아울러 2002년에 시작된 ‘춘천아트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17년간 맡으며 지금까지 나름 현장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국립무용센터에 대해서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 추이에 대해 들어왔습니다. 이런 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여론은 사실 2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있었습니다. 김현자 선생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초대 무용위원으로 있을 때 ‘춤공장’이라는 타이틀로 무용전용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셨고, 저도 그 회의에 몇 차례 참석했어요. 이후 시간이 많이 흘렀고, 지난 2007년,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재단법인으로 설립되면서 그쪽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창작여건 개선은 물론 복지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무용가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현실적 고민을 그동안 소소하게 걱정해왔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우리 춤계의 복지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전문무용수지원센터에서 열과 성을 다해 그동안 열심히 일하는 동안 실은 국립무용센터 설립에 관한 부분은 잊은 게 아니라 어쩌면 대체 기관에서 몸담고 일한다는 생각으로 활동해왔던 것 같습니다.
조기숙 _ 저는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에 재직하고 있고, 제가 10살 때부터 무용을 했으니까 벌써 50년이 됐어요. 50년 동안 한국에서도 무용 활동을 하고, 영국에서도 했어요. 또 여러 축제의 기획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용계뿐만 아니라 무용을 즐기는 다양한 사람들의 움직임도 파악할 수 있었는데, 현재 우리 무용계의 지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무용계 지형은 지금 교수 중심, 대학 중심이에요. 물론 현재 약화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런 경향이 강해요. 힘 센 몇 개 대학 중심으로 기득권을 갖고 있는데, 이제는 활동 중심, 연구 중심, 내용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용계는 무용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무언가 새롭고 전향적인 방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늘 해왔어요. 또 우리 무용계 환경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에 무용인들을 위한 공간과 새로운 컨텐츠가 필요하다고 보고, 국립무용센터의 건립을 아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의견들이 모아진 것이죠.

‘무용가의집’처럼 무용가들이 숨쉬고, 춤추고, 얘기하고, 한데 어울리게
최해리 _ 저는 무용연구자이고, ‘사단법인 한국춤문화자료원’ 이사장인데, 우리 자료원은 여러 중진 연구자들이 함께 운영하는 일종의 지식공동체입니다. 사실 제가 10년 전에 ‘한국춤문화자료원’을 만들게 된 계기가 국립무용센터와 같은 기구의 필요성 때문이에요. 문체부 쪽이나 예술행정 일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무용중심센터에 대한 의견을 개진해봤는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 관심이 많지 않았어요. 그때 연구 중심의 작은 아카이브를 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아서 자료원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 이전에 제가 첫 번째 석사 논문을 ‘무용표기법에 대한 연구’로 썼어요. 1988년에 대학원에 들어갔는데 그 당시 무용이론이라는 게 없었어요. 무용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싶었으나 이렇다 할 연구방법론이나 이론이라는 것이 없으니 어떻게 연구를 해야 하는지, 무엇을 연구해야 하는지 막막하더군요. 그래서 근본적으로 무용이라는 개념에서부터 무용의 역사까지 하나씩 짚어가다 보니 무용기록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되었어요. 공연되면 사라지고 마는 무용을 기록하고 연구할 수 있는 자료라는 게 얼마나 절실한지 깨닫게 된 것이죠. 무용에 대한 기록과 자료가 있어야만 무용이 살아남을 수 있고, 연구가 이뤄지고, 또 무용이 진흥될 수 있다는 생각을 30여 년 전부터 한 거죠. 그래서 무용 기록을 위해 꾸준히 연구해왔고 2008년에 ‘한국춤문화자료원’을 만들게 됐어요.
저는 실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외부자 관점에서 무용계를 지켜보게 되거든요. 많은 무용인이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한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가장 열악한 것 중 하나가 춤추는 공간의 부족입니다. 춤추는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춤추는 공간인데, 이 공간이 없는 거예요. 단지 공연을 하는 ‘극장’의 개념이 아니라 무용인들이 다 같이 모이고, 춤을 추고, 연구하고, 대화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무용인들을 위한 구심점이 되는 공간이 필요한데, 그런 구심점이 될 인프라가 없어요. 사실 잘 알다시피, 무용계에는 여러 현안이 있는데 거기에 대한 이해와 협조가 전혀 없고 분열이 심한 편이잖아요? 이제는 공간적인 구심점을 통해 합심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어제 공청회를 진행하며 놀랐던 것이, 국립무용센터를 건립하자고 제안하는 자리인데 참석하신 많은 무용가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열악한 처지에서 활동하고 있는가를 하소연 하시는 거예요. 당장 먹고 살 수 있는 생존의 문제, 그와 직결된 지원제도부터 개선해달라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결국 무용생태계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의견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문제에 대해서 무용인들이 다 같이 이야기할 기회나 공간조차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어제 열린 공청회는 국립무용센터 건립으로 가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건립을 제기하게 된 배경에 대해 말하자면 한국무용협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요. 서두에서 춤지가 조택원 춤비를 세우기 위해 많이 노력하였고, 무용가들도 많이 결집했다고 하셨는데요. 그때까지만 해도 조동화 선생님께서 무용계 ‘큰 어른’으로서 존재했고, ‘이런 목적이 있으니 무용가들이 모여서 추진을 해나갑시다’라고 제안하면 무용가들이 하나로 뭉쳐 강력한 추동체로 진행해갔잖아요. 그런데 조동화 선생님 이후 무용계가 마치 춘추전국시대처럼 권력 다툼, 이권 다툼으로 굉장히 어지러웠던 것 같아요. 이를 지켜보면서 무용계에서 중심을 잡고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무용계에서 가장 많은 지원금이 몰려 있고, 가장 많은 무용가들이 모이는 곳이 한국무용협회이니, 그 협회 수장의 태도나 지향점이 바뀐다면 무용계에 변화가 오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당시 후보였던 조남규 선생에게, 공약으로 무용중심센터를 넣어달라고 제안했어요. 분열된 무용가들을 모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무용중심센터이며, ‘무용가의 집’처럼 무용가들이 숨쉬고, 춤추고, 얘기하고, 같이 모여서 한데 어울리게 하다 보면 분명히 서로 이해하고 좀 더 발전적인 형태로 갈테니까요.
조남규 후보가 이사장으로 당선된 후 공약을 정말로 실천해줄 것이라고는 안 믿었어요. 그 전에 여러 번의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선거가 있었고, 그때마다 ‘춤박물관’이 공약으로 나왔었죠.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춤박물관’을 위한 부지를 희사하겠다는 공약은 유야무야되고, ‘춤박물관’을 곧 건립할 것처럼 자료수집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나기도 했지만 흐지부지되고 말더군요. 그래서 조남규 선생이 이사장이 되고 나서 얼마 후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어요. 선거가 한창일 때 조남규 이사장이 ‘무용가의 집’을 ‘국립무용센터’로 개념을 확장하고서 이런 것은 차기 정부의 문화정책으로 들어가야 한다면서 정책이 입안되도록 노력하는 등 정말 실천 의지를 보여주시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며 믿음을 갖게 되었고, 그러면 본격적으로 추진해봐야겠다 싶었어요. 우리는 정책이나 제도를 잘 모르기 때문에 문화체육관광부에 의사를 타진하고 정부와 무용계를 매개하는 역할은 이사장에게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렇다고 춤계 전체의, 공공성을 가져야 하는 사안을 한국무용협회에 의존해서는 안 되잖아요. 그전에 아르코예술극장의 무용 전용 극장화 추진이나 ‘춤공장’과 같은 무용센터 건립이 실패한 것은, 어느 한 단체에서 또는 몇몇 사람이 주도했기 때문으로 무용계 내외부의 반발에 쉽게 무너졌잖아요. 그래서 한국무용협회가 단독으로 주도해선 안 되고, 많은 무용단체들이 협의체를 구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어요. 이런 과정을 거쳐 ‘국립무용센터건립추진단’을 발족하게 된 것입니다. 추진단 발족 경위를 설명하려다 보니 말이 길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춤계 전반의 이해와 합의를 구할터
장승헌 _ 그런데 ‘한국무용협회’가 주도하는 것처럼 보여서 반발 기류가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어제가 출발하는 자리인데 사람들이 너무 예민하게 접근했다고 할까요. ‘도대체 이들이 뭘 하려고 그러나’ 하는 마음으로 많이들 오신 듯해요.(웃음) 물론 어제 35도 폭염에 오신 분들은 앞으로 어떻게 돌아갈지 조금은 이해하셨으리라 여겨집니다만. 그런데 공청회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분들은 미리 자신의 입장에서 예견하고 또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흘러 다니는 내용을 보면서 이런저런 부정적 시선으로 말들을 만들겠죠.
공청회가 끝나고 추진단 관계자 몇 분들과 차를 마시면서 한 얘기가 있어요. 지금 제일 불만이 많은 분들이 40~50대 독립무용가들인 듯하다고 말입니다. 본인들을 현장예술가라고 얘기하고, 외부에서는 외로운 늑대라고도 얘기를 하죠. ‘우리가 이렇게 지금까지 버티고 현장에서 나름 치열하게 작업을 하고 있는데, 기성세대들이 누릴 건 다 누리고, 자성과 반성도 없이 이 기관을 설립하겠다니 어불성설이다’라는 불만의 목소리를 전했다는군요. 이 얘기는 어쩔 수 없는 2018년 현재 우리네 비정상적 초상에 다름 아닙니다.
기성세대들이 중심이 된 대학 무용과가 그렇게 양적 팽창을 이루었다가, 이제는 줄줄이 폐과가 되는 시점인데요. 이런 예견된 문제점들을 국가가 너무 오랜 시간 방치해 놓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국립무용센터가 생긴다고 해서 무용계 문제가 완전히 해소될까요? 이 기관은 무용계의 하나의 대안 기관으로 기능하게 될 것인데, 이 또한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완전히 대한민국 무용계 판을 갈아엎겠다는 식의, 일종의 한풀이 마인드로 접근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현재 무용가들이 작업하는 현실이 너무 힘들고, 공적 지원금의 혜택을 제대로 못 받아 억울하다는 마인드로 접근하면 우리는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가는 거죠. 왜 자생력은 키우지 않으면서 자꾸만 지원금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예술가는 직업군에도 없는 직종이며, 자신이 좋아서 하는 예술활동인데 왜 국가가 보호하고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해 각계각층의 사회 구성원들을 설득시킬 논리나 타당성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어쨌든 지난 1980~90년대에는 대학 무용과를 졸업한 이후에 동문 무용단체들의 울타리가 있었기 때문에 아카데미즘을 통한 무용인들의 사회적 지위는 비교적 상당히 높아졌다고 봅니다. 아울러 우리나라 다수 국민들은 「88 서울올림픽」, 「2002 월드컵」, 이번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서 무용가들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지만, 춤계가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지는 전혀 모르는 거예요. 일반인들이 보면 ‘국립무용단’과 ‘국립발레단’ 그리고 ‘국립현대무용단’이 활동하고 있으며, 전국에 시도립 무용단이 존재하고 있으니까 무용학과 졸업생들이 졸업 이후 다들 직업무용단에 취직해서 무용활동을 안정적으로 하고 있다고 인식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또 생각해보면 연극인들처럼 우리 무용인들이 예술 활동만으로 생존하고 자립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가, 사실 그건 아니잖아요. 대학 무용과에서 춤기술을 중심으로 교육받고 지도교수의 작품에 무용수로 참여하면서 활동을 시작하고, 한참을 지도교수의 영역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예술에 대한 시야가 좁고, 사고의 폭도 넓지 않아요. 일반 사회로 진출할 기술은 없고, 예술 현장에 머물기는 하는데 독립심과 자존감이 낮아 휘둘리기 쉽고 불안정한 상태를 지속하는 거예요.
현재 연중 3천회 이상의 무용공연이 열리고, 200건 이상의 국제무용교류가 있고, 전국에서 천여 개가 넘는 축제들이 열린다는데, 이건 한마디로 외화내빈일 수도 있는 겁니다. 해서 국립무용센터 건립의 출발점에서 선 이즈음, 2018년 현재의 우리 무용계 현실을 다시 잘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이 처한 입장만 토로할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입장도 살펴보고, 타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나아가 무용계 전체와 미래를 내다보며 의견을 제시하고 소통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으로서 성장하는 계기로 인식하면 어떨까 싶어요.
최해리 _ 그분들 의견도 타당하고 이해가 됩니다. 이전에 20년 동안 국립무용센터와 유사한 ‘춤공장’이라든지, 무용전용극장 등을 추진해왔는데, 저 또한 ‘나’와는 상관없는 일부 세력이, 소수 권력자가 추진하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무관심하게 되고, 소외되는 것 같고, 부정적인 시각과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게 됩니다. 무용계 전반의 이해와 합의를 구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당연한 문제 제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끌어들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많은 무용가들이 국립무용센터라는 곳은 ‘내가 갈 곳이며, 내가 이용할 곳이다’라고 주체의식을 가지고, 어떤 형태로든 참여할 수 있도록 방안을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
조은경 _ 결국 필요성에 대한 얘기가 나올 것 같은데요. 그 전에 잠깐 어떻게 진행되는지 로드맵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죠. 제 기억으로는 지난해 연말에 국제세미나가 있었고, 어제 추진단이 결성되었죠?
최해리 _ 예. 작년 11월에 사전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그리고 해외 사례를 수집하기 위해서 「코리아댄스커넥션 2017 국제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장승헌 _ 추진위원단 발족을 위한 사전 모임을 한 번 가졌고, 실행위원들은 공청회 준비를 위해 따로 모임을 가진 바 있습니다.
최해리 _ 어제 공청회를 포함해서 내년까지 4번 정도로 공청회를 열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안민석 국회의원이 축사하면서 앞으로 10번은 필요하다고 말씀하셔서 이를 어쩌나 걱정하고 있습니다.
조기숙 _ 국회의원들 모아서도 하고, 현장에서도 하고, 젊은 사람들을 모아서 하고, 지방에서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번 공청회를 할 예정입니다.
최해리 _ 국립무용센터 건립이라는 것은 춤계 발전과 진흥을 위한 하나의 방안이지 춤계에 산적한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춤계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일 기회조차 없었으니 여러 차례 간담회와 공청회를 가지면서 춤계의 위기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춤계를 발전시킬 방안에 대해 의견을 모아야 합니다.
장승헌 _ 내년쯤 국립무용센터 설립에 대한 타당도 조사 사업이 예정되어있습니다.
최해리 _ 정부 기관으로 설립되기 위해서는 타당도 조사가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추진위원장께서 공청회를 개최하고 추진단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셨어요. 그러나 내년부터는 정부에 예산을 신청해서 타당도 조사도 대대적으로 하고, 전국 각지를 돌면서 공청회를 열고 싶습니다.
장승헌 _ 추진단 운영에 필요한 기금을 확보하는, 일련의 모금 운동도 해야 할 듯해요. 우리의 희생없이 외부 자금에만 기대할 수도 없어요. 어제 공청회에서 한 원로 무용가께서도 앞으로 필요한 자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그것부터 궁금해 하시더라고요.
최해리 _ 놀라운 것이 원로 선생님들이 모금 운동 얘기를 가장 많이 하세요. 사실 젊은 사람들은 정부가 알아서 건립해주고, 또 당연히 예산도 지원해줄 것이라고 막연하게들 생각하죠. 그러나 원로들은 국립무용센터는 춤계를 위해 정말 필요하며, 너무 정부에 기대지 말고 춤계 내부에서부터 기금을 모으고 자립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권유하시더군요.

활동가 중심의 춤예술 지형을 구상
조기숙 _ 이걸 조금 더 다른 차원에서 이야기해보면, 한국 사회가 진입장벽이 높다고 하잖아요. 문화예술계가 그 어느 곳보다도 높아요. 진입장벽이라 하면, 굉장히 소수의 기득권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딱 자신의 권력을 만드는 거죠.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들어가기 힘든 거예요. 무용계의 대학 교수들이 그렇게 해온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이 장벽을 허물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야 돼요. 물론 인구가 줄기 때문에 대학이 전반적으로 위기이고, 50년 후에는 대학 자체가 거의 없어질 거예요. 그래도 지금은 일단 아니니까요.
유럽의 예술계 지형을 보면 활동가 중심이지 교수 중심이 아니에요. 교수가 교육해서 내보내면 그 사람들이 활동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요. 예를 들면 무용대학을 졸업해도 일거리가 없어요. 그리고 한 서른 살 정도 되면 한 학년에서 한 명 정도 무용계에서 살아남아요. 나머지는 어떻게 되느냐, 다 동네학원에서 가르치고 레슨을 해요. 자기가 대학교 들어올 때까지 고액의 레슨을 받기 위해 돈을 썼고, 대학교 졸업하면 그 레슨시장으로 들어가서 레슨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퀄리티 높은 예술을 배우는 데에 한국처럼 돈이 많이 드는 나라가 없어요. 그러니까 결국 예술 활동을 안 하고 무용을 가르치는 쪽으로 가는 거예요. 무용예술을 배워서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작품을 할까 고민하는 게 아니라, 레슨 해서 돈 쓰고 대학교 들어와서 졸업하고 다시 레슨해서 돈을 받는 거예요. 그런 식의 구조가 이어지는 것은 안 되죠.
그리고 또 무용과를 졸업해도 너희들은 아직 안 되니까 석사, 박사를 하라고 해요. 실제로 학부 졸업한 것만으로는 할 일도 없고요. 그러다보니 석사 과정이나 박사 과정으로 가는 거예요. 그중에서 극소수가 교수한테 잘 보이면 강사 정도 되는 거예요. 강사 한다고 교수 되나요? 교수가 되는 것은 또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 이상으로 힘들어요. 이런 구조는 타파되어야 하고, 진입장벽이 허물어져야 되는 거예요. 그러려면 기성세대들이 다른 길을 제시해야 한다는 거죠.
대학에서 교수들이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쳐서 배출하면, 그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연구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또 무용과 출신 아니더라도 무용을 사랑하고 무용 활동을 오래 한 사람들까지 다 포용할 곳이 필요하죠. 그 공간이 바로 국립무용센터입니다. 문화예술계의 진입장벽을 허물기 위해서라도 국립무용센터 건립은 아주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거죠.
최해리 _ 제 생각에는 국립무용센터가 만들어지면 무용가들이 자신들이 정녕 ‘예술가’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가질 수 있습니다. 센터가 설립되면 무용인들은 그 공간을 정말 잘 활용해야 합니다. ‘국립’이라면 공공의 성격이 있어서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곳이 대국민과의 접점이 되는 것이죠. 국립무용센터라는 공간을 통해서 일반 대중을 많이 만나게 되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구나’라는 인식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스스로 직업을 창출해나갈 수 있게 됩니다. 대중이 선호하는 춤을 연구한다거나, 여러 계층의 사람을 대상으로 특별한 강좌를 만들거나, 다양한 예술가들과 만나 토론하고 협업하고 활동해가면서 스스로 정체성을 찾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까 로드맵을 말씀하셨는데, 최종의 목표가 ‘건축’은 아닙니다. 요즘 같이 유휴시설이 남아도는데 굳이 새로 지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건물 하나를 번듯하게 지으려면 한 500억 이상이 필요한데, 너무 소비적이며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그리고 요즘 도시재생이 유행이지 않습니까? 유휴시설을 춤에 적합한 시설로 전환하는 것이 정부에 부담을 덜 안기는 것이고, 여러모로 경제적일 것입니다. 그러면 3년 내에 건립할 수 있을 거예요. 만약에 정부가 우리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무용센터가 필요하다고 건물을 지어주겠다면 마다할 이유도 없지요. 다만, 부지선정에서부터 추진과정이 복잡하고 5년 이상은 걸리겠죠.
‘국립’이라는 단어를 붙이려면 이에 타당한 법과 제도가 필요하잖아요. 최근 국립한국문학관, 한국미술진흥원 등 예술 장르마다 중심센터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니 이들은 진흥법부터 제정하고서 건립추진단을 결성하더군요. 그런데 우리는 추진단을 먼저 결성하고서 공간을 요구하는 형태로 가고 있어요. 아무튼 ‘국립’이라는 걸 붙이려면 수많은 절차와 승인의 과정을 거쳐야 해요. 우선 무용가들의 염원이라는 걸 인정받기 위해서 많은 청원서들이 필요하겠지요. 타당도 조사도 그 전에 있어야 하고요. 이 조사에서 합당한 근거와 함께 필요한 기관이라는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후 국회에 가서 진흥법 제정을 건의하고 승인을 받아야 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으로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도 정해야 하고요. 또 행안부에 가서 승인을 받아야 하고, 가장 중요한 곳은 기획예산처예요. 여기서 설립 타당성을 인정받고 예산을 확보해야 하니까요. 갈 길이 파란만장하고 아주 멉니다.

석·박사가 직업이 되어버린 춤생태계
장승헌 _ 필요성 얘기를 하다 보면, 지금 현재 한국의 무용가들, 우리가 처한 환경들을 계속 얘기하게 되는데요. 제가 그동안에 수많은 무용계의 포럼에 참석해 보면, 결국 대학 무용과 문제로 귀착되는 웃지못할 일률적 결과로 마무리가 되더라고요. 그 연장선상에서 이야기하면 결국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교과 과정 개편은 물론이고 대학교수들부터 인식을 바꾸고 강한 실천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 무용사회가 이미 만들어놓은 기준과 틀, 이걸 기득권 장벽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동안 대학의 예술교육이 오랜 시간, 무책임하게 이루어 놓은 매우 심각한 병폐적 구조와 관행이 존재하는데, 이를 뛰어넘고 현실세계로 성큼 한 걸음 나갔으면 좋겠어요.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용가들, 대책 없이 나이만 들어가는 중견 무용수들, 아울러 생계가 우려되는 원로 무용가들이 앞으로 과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너무도 걱정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나마 한국춤 전공자들은 오래도록 전통춤을 출 수 있는 만큼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를 바라보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그렇다고 한국춤을 하는 모든 분이 예능보유자 지정을 바라볼 수는 없는 거잖아요. 요즘은 지역 무용가들이 지방무형문화재를 억지로 만들어내고 있다는데, 이런 비정상적 생태구조로 안 가게끔 서로 노력을 해야죠. 분명 무용생태계 구조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리 춤계에는 좋은 제도가 있어도 공적으로 활용하기보다는 ‘나’만을 위한 것으로 악용합니다. 나만 지원을 받고, 나만 공연장 대관을 받고, 나만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혹은 예술원 회원으로 선임받으면 된다는 생각들, 이런 이기적인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는 작금의 세태가 너무도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최해리 _ 그러니까 젊은 무용가들이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장승헌 _ 그렇죠. 직접 어려움을 겪어 보지도 않고, 실망한 채 무용계를 등 돌리고 떠나는 거죠. 우리 춤계를 살펴보면, 어쨌든 한 해에 천 명 이상의 무용전공자들이 졸업 후 사회로 진입하게 됩니다. 그중에서 한두 명 정도만 전문 무용가로 살아남아 활동한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무용계는 80~90%가 여성 인력이라는 특별한 생태계 구조가 있잖습니까. 대부분 결혼해서 전업주부로서 그리고 엄마가 돼서 잘 살아요. 그러다 보니 이른바 무용인이 직업화가 되기 힘들죠. 직업의식을 가지고 평생 직업, 즉 자신의 전업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사명감도 적고 포기도 빠른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비루한 창작 환경에 노출되면서 상처를 받고 포기도 빨라지고 무용계에 염증들을 느끼고 떠나는 사례를 그동안 숱하게 지켜봐 왔습니다. 젊은 무용인들에게는 사실 처절한 작업 환경과 현실이 어렵고, 절실함이 불편하고 싫은 것이겠지요.
저는 이러다가 전통춤이나 클래식 발레만 살아남고, 창작춤은 존재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듭니다. 대중은 여유가 생기면 뮤지컬관람을 하고,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춤과 노래를 언제든지 접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아울러 재즈나 살사, 그리고 탱고 등 춤을 추고 싶으면 집과 가까운 스튜디오에서 배우고 직접 추면 되는 것이고요. 지금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서울무용센터가 대중 코드로 워크숍이나 강좌를 진행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왜 춤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동시대의 명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사유하고 실천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안타까운 것이 정부와 대중 매체에서 자꾸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 스마트폰도 제대로 잘 못 쓰거든요.(웃음) 기능이 수없이 많아도 겨우 기차표 하나 예약하는 정도예요. 아마도 우리 세대가 대부분 그럴 거예요. 저는 춤이라는 게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발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공인 신문방송으로 사회진출하는 것을 포기하고 선뜻 춤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발을 담근 지가 벌써 30여 년, 정확히는 33년이란 시간이 흘렀거든요.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춤계가 그렇게 변한 것 같진 않지만, 애정이 어린 시선으로 살펴보니 그래도 조금씩 인식이 달라졌고 느리지만 진화하는 중이라 생각됩니다.
‘재단법인 전문무용수지원센터’만 하더라도 다른 장르에서는 많이 부러워하죠. 춤계에는 어떻게 이런 기구가 존재하는 것인지 궁금해 하더라고요. 춤계의 창작 환경이 너무도 처절하고 무용단 단원들이나 무용수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 보니 이러한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며 현장과 교육 일선에서 있는 대표적인 단체장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것이죠. 설립 당시에 모였던 분들은 그야말로 희생과 봉사 정신으로 임해주었고, 현재까지도 열과 성을 다해 봉사하고 있는 아름다운 기구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편, 지금 현장을 보면 안무가들은 분명 많아졌는데 무용수가 부족해지고 있어요. 좋은 춤꾼들이 정말 없다니까요. 전문 무용수들이 사라지고 없어지는 이 시대가 걱정입니다. 저는 무용예술은 근본적으로 무용수의 예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최고의 가치를 무용수에 근간을 두고, 그 다음에 안무가나 교육자가 활동하는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무용예술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 차원에서라도 무용수를 먼저 생각해야죠.
저는 대한민국이, 우리 국민이 춤 DNA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해요. 노래도 잘 하지만요. 그래서 박용구 선생이 예전에 동양의 3국을 비교해 ‘일본은 회화의 나라이고, 중국은 시문학의 나라이며 한국은 가무의 나라’라고 얘기하신 적이 있는데 매우 공감합니다. 조선조 후기, 유교가 성행하던 시절에는 가무라는 개념이 술 먹고 어울려 놀다가 춤추고 노래하는 유흥의 개념으로 인식되었고, 그런 인식이 일부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문화가 지배하는 21세기에 와서 전 세계가 무한경쟁시대를 맞았는데 오히려 가무의 나라라는 유전자를 인정하고 계발해서 국가경쟁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거든요. 그래서 좋은 안무가들, 무용수들이 세계무대에 진출하여 활동영역을 넓혀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발레장르를 보면 수년 전부터 우리 무용수들이 유수의 세계발레콩쿠르를 휩쓸고 있고, 세계 메이저급 발레단에 주역 무용수들로 포진해 있습니다. 최근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박세은 씨가 ‘브누아 드 라 당스 상’을 수상하고 프리마 발레리나로 승급하는 등 반가운 소식들이 줄을 잇고 있어서 무척이나 자랑스럽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과 정체성이 담겨있는 작품들이 ‘한국산(MADE IN KOREA)’이란 문화 상품으로 올림픽 개·폐막식이 아닌 세계적인 공연장에서 선보이고 싶다는 바램을 늘 갖고 있습니다. 아울러 최승희와 같은 대한민국 춤계를 대표하는 스타 무용가가 좀 나왔으면 좋겠어요.

많은 목소리를,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공청회에 공들일 것
조기숙 _ 무용을 실제로 안 하신 분이 이런 생각을 해주시는 게 너무 고마워요. 저 같은 경우는 춤추는 것 자체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해요. 여기 이론가도 계시지만, 춤을 춰봤기 때문에 이론을 연구해도 제대로 하는 거거든요.
본질적인 것을 다시 점검하자면, ‘춤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할 때 저는 그런 힘이 있다고 보는 거죠. 니체도 얘기했어요. ‘춤은 거대한 지성이다’, ‘나는 춤추지 않는 신은 믿지 않는다’. 이렇게 춤의 위대함을 얘기한 철학자도 있고, 저 역시 춤에 힘이 있다고 믿거든요. 우리가 정말 그렇게 무용 활동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봤을 때, 그런 측면에서의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용인들이 나 자신뿐만 아니라 무용계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어떻게 힘을 합쳐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 되었어요. 저는 이 과정에서 공청회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에 적극 동의해요. 이제껏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일을 저는 하나도 아는 게 없었어요.(웃음) 많은 사람들이 그래요. 자기가 참여를 하고 알게 되면 애정이 생겨요. 그런데 모르면 관심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기획을 잘 해서 골고루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야 돼요. 들어 보면 거의 비슷한 얘기긴 하지만, 자기들이 참여해서 발언하면 주인 의식이 생기게 되거든요.
장승헌 _ 저는 우리 무용 생태계의 비루함을 폭로하는 한풀이식 하소연들이 주를 이루는 포럼이나 공청회를 지금까지 너무 많이 경험해왔습니다.
조기숙 _ 들어주면 되죠.
장승헌 _ 이제부터라도 소규모로 대화하는 자리를 자주 만들고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공청회를 만들어가야겠지요. 그런데 제발 다 같이 모인 장소에서는 자기 처지를 하소연하고 상대방을 비방하고 현실비판만 하는 분위기는 지양되었으면 합니다. 작은 사안이라도 춤계의 공공성을 위한 것이라면 실천 방향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지혜를 모으는 공청회로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수많은 목소리를,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공청회가 되어야 하고요.
조은경 _ 국립무용센터라는 게 대안인 거죠. 기존의 대안 없는 한풀이가 아니라 비전을 제시한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의미가 더욱 큽니다. 국가 정책은 사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분야에만 투자를 하게 되어있어요. 순수예술은 관심을 끄는 분야는 아니었던 게 맞고요.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춤계에 많은 빚을 졌다고 봐요. 춤계 각각이 열심히 해서 국가의 위상도 올리고 문화수준도 높이는 등 이만큼 진행이 되어왔던 거니까요. 원래는 국가가 투자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10여회 이상의 공청회와 타당도 조사를 계획하고 있어
장승헌 _ 최근 해외무대에 진출해 세계적인 발레단에서 주역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는 무용가들을 보면 이른바 정부에서 국가장학금으로 진출시킨 것이 아니잖습니까? 다 본인의 열정으로 어렵사리 해외로 나가 치열한 오디션을 거치고 각자 나름 처절하게 살아남은 결과예요. 그런데 언론 매체들이 앞다투어 ‘한국이 낳은 무용가’라고 거창한 타이틀을 쓰고, 그들의 성공담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입니다. 참으로 민망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어쨌든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이 설립된 이후로 교육 환경과 시스템은 좋아졌지만, 재능있는 무용가들을 미리 발견하고, 그들의 열정을 어떻게 펼쳐줄지 범국가적으로 고민해야만 합니다. 미래에 국립무용센터가 그런 기능까지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현실로는 어렵겠지요. 지금도 어딘가 지하실 연습실에서 땀 흘리며 작업하고 있을 한 사람이라도 기억하고 찾아주는 것이 분명 필요하다고 봐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불만이 생기고 반감을 표출하고 싶겠지요. ‘나는 공적 지원을 못 받는다’라고 자학하고, 분노가 생기는 것이겠지요. 물론 처한 현실이 아주 힘들겠지만,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당당함, 그런 자존감이 생성됐으면 좋겠어요.
최해리 _ 무용가들은 주로 타인의 스튜디오를 빌려서 작업하고 연습하잖아요. 저렴한 곳을 찾다 보니 샤워시설이 없거나 난방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땀을 뻘뻘 흘리거나 추위에 떨며 연습하고, 또 시간당 계산을 하니 여러 스튜디오를 전전하고. 이런 모습이 가장 딱하지요. 국립무용센터가 만들어진다면 크고 작은 많은 스튜디오를 갖추게 하고, 무용가들이 저렴하게 또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국립이라는 신뢰성 때문에 많은 국민이 이곳으로 춤을 배우러 오겠지요. 무용가들이 일반인들에게 무용을 가르치고 돈을 벌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장승헌 _ 한 공간에 그 모든 것을 수용하려면 힘들죠. 국립무용센터 분원이 전국 곳곳에 들어서면 지역의 무용가들도 행복해지겠지요.
조기숙 _ 어떻게 하든지 무용가들이 많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돼요. 많은 시설을 만들고 많은 기능을 하게 해야죠.
장승헌 _ 최근 대학 무용과는 점차 폐과되는데, 스튜디오나 작업실은 계속 생기는 기형적인 현상은 왜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요?
조기숙 _ 대학에서 무용과가 없어지는 건 한국적인 추세에요. 그런데 춤계가 좁아지는 것에서는 우려를 하는 거죠. 춤계가 믿고 있는 한국춤, 발레, 현대춤뿐만 아니라 다른 형식을 포용할 필요가 있는 거죠. 파이를 키워야죠.
최해리 _ 국립무용센터가 무용을 위한 허브기관이 된다면 온갖 무용장르가 모일 수 있겠죠. 프랑스 CND(국립무용센터, 세엔데)나 캐나다 밴쿠버무용센터 같은 곳은 새로운 커뮤니티댄스의 발화지점이고, 지역 커뮤니티댄스의 저수지 역할을 하더군요.
장승헌 _ 저는 춤예술의 가치에 대해 다시 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무대에서 혹은 거리에서 공연한다고 해서 다 춤이고 무용예술인 건 아니잖아요. 예술에 대한 기본 가치가 확실히 확립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대학무용교육이 잘못된 건지, 아니면 이론이나 혹은 작품들이 너무도 현실 세계와 거리가 먼 얘기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실기를 해야만 무용예술가라고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이러다 보니 그야말로 무용예술에 대해 기본적인 개념이 없는 상태에서 이른바 정체성 없는 공연들이 버젓이 무대에서 관객들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겠지요.
조은경 _ 그동안의 지원 정책에도 문제가 있어요. 이를 테면 서울문화재단 같은 경우도 서울무용센터는 저 구석에 있고, 예술사회의 관심을 끄는 공연을 할 수 있는 레지던스 시설이라고 보기 어렵지요. 젊은 무용가들이 그런 데에 예민하게 반응해서 결국 자신의 예술성을 증진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그쪽 기획에 맞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들만 하는 거죠. 그런 면에서 보면 제대로 된 예술가를 키울 수 있는 정책을 만족스럽게 펼치지는 못했다고 봐요.
심정민 춤평론가가 허리세대 혹은 낀세대하고 정의하고 있는 현재 40~50대의 무용가들이 굉장히 힘들어 하는 것이 있어요. 어느 정도 레벨이 되는 무용가들이다 보니 예술성에 대한 스스로의 기대가 있고, 또 그러다보니 협업하는 다른 장르의 중견 예술가들도 몸값이 상당하기 마련이지요. 그런데도 지원금이나 지원형편을 보면 신진예술가나 중견예술가나 똑같거든요. 춤계가 급속도로 성장하던 시기에는 그래도 좋은 공연을 하면 인정도 받고 직장도 얻기 좋았는데, 지금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예술성만을 주장할 수는 없는 그런 지원 현실이라는 거죠. 그런 면에서 국립무용센터는 어떻게 가야 할지 많은 합의가 있어야 하고, 국가의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물론 일반인 얘기도 해야겠지만, 거기까지 아우르기는 당분간은 힘들겠지요?
조기숙 _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건데…(웃음)
조은경 _ 차츰 어떤 식으로 국민에게 수혜를 줄 것이냐에 대해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네학원이나 구민센터에서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서야 굳이 국립무용센터를 만들 의미가 없지요.
장승헌 _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이해할 수 있겠지만, 기획재정부 같은 곳에서는 국립무용단, 국립국악원무용단, 국립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 서울예술단이 존재하는데, 왜 국가 세금으로 무용 기관 하나를 더 만들어야 하냐고 반론할 수 있지요. 무용계의 또 다른 권력화, 파벌화가 우려된다는 그런 얘기들도 물론 하겠지요.

창작 유통 교육 복지가 한 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국립무용센터
조은경 _ 창작 유통 교육 복지가 한 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국립무용센터가 생긴다면 당연히 힘을 모아야죠.
저는 어제 공청회에서 무브의 대표인 현대무용가 김설진 씨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지금도 지원금이 뭐가 어디서 나오는지 잘 몰라서 못 받는데, 이제는 국립무용센터가 생기면 또 여기서 어떤 지원 정책을 하는지 제가 공부해서 지원해야 되느냐고…(웃음)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공청회도 하고 그러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야죠. 또 무용과 졸업후 할 수 있는게 없으니 석사과정 박사과정에 진학해서 석사 박사가 직업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그런 현실적인 얘기가 마음에 와닿았어요.
최해리 _ 국립무용센터의 목표, 비전, 계획, 운영체계 등 모든 것은 공청회를 통해서 무용가들과 함께 만들고 공유해가야 합니다. 추진단은 바탕을 깔아주고 정리해주고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추진단 위원들은 그런 일을 하려고 모인 거잖아요. 이권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조은경 _ 월급도 없죠?
최해리 _ 월급은 무슨요. 사무일을 돕는 임시 직원들에게 밥을 사 줘가면서 일하죠.
장승헌 _ 최해리 이사장은 국립무용센터에 아카이브와 연구부서가 필요하다는 신념 때문에 완전히 바닥에서부터 정말 희생적으로 많은 일을 다 하고 있습니다.
최해리 _ 왜 그런지 아세요? 창작 활동을 하는 곳이 아니라서 문화예술위원회의 기금을 못 받고, 등록 미술관 혹은 박물관 기관이 아니라서 정부 지원을 못 받고, 학교연구소가 아니라서 연구재단에 기금 신청도 못 하고, 지난 10년 동안 너무 힘들게 꾸려와서 어떻게 하면?(웃음)
장승헌 _ 그 천형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그러는 것 같아요. 국내에 무용전문기획자나 프로듀서가 없다고 푸념들을 자주 하시는데, 춤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현실도 아니고 수요와 공급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팔 물건이 없는데 어떻게 스스로 살아남겠어요? 기획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나마 제가 공연기획사(MCT) 설립 초기에 희망했던 것 하나는 오자 혹은 탈자 없는 인쇄물 제작이었어요. 연기처럼 찰나에 사라지는 춤공연의 실체를 포스터 한 장에라도 담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 하는 무용인들의 안타까운 맘을 헤아려 후배들을 끌어들이고 감히 ‘기획사’란 이름을 달고 겁 없이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인쇄비만 받고서도 일했는데, MCT&디자인필(Feel) 회사가 공연제작비 상승을 부추겼다는 불만들이 여기저기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어쩌면 그 같은 것들도 적폐의 산물이 된 것입니다. 돌아보면 저는 제 이름으로 공공 지원금을 받아본 적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기획자란 꼬리표를 달고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최소한의 빵은 해결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기적 같으니 말입니다.
교수들이 인식을 조금 바꾸셔야 할텐데요. 피해자 코스프레하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여전히 많은 젊은 무용인들이 대학교수직에 목을 매는 것도 문제입니다. 대학 무용과의 존립이 문제화된 것은 어떻게 보면 바람직합니다. 20~30대 무용가들 대부분이 석박사 재학 중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무용가들이 최후의 보루로 선택하는 것이 대학교수직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서글픈 현실입니다.
최해리 _ 맞아요. 무용가들이 자생력을 키워가면 좋겠어요. 저도 사실 춤계로부터 돈 버는 것은 없어요. 오히려 다른 곳에서 벌어 춤계에 쓰고 있지요. 지원금을 신청해 보았자 무용가 심사위원들은 번번이 탈락시킵니다. 몇날 몇일을 고심해서 쓴 사업계획서는 중요하지 않고 그 계획이 춤계에 파급효과를 갖고 온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내 편이 아니라서, 쓴소리한 것이 미워서, 인사도 제대로 안 하는 건방진 ‘최해리’가 이유일 때가 많 지요. 설령 운 좋게 선정되더라도 기관에 악의적으로 민원을 넣어 무산된 일도 있었고요. 저는 이런 일을 반면교사로 삼습니다. 심사나 평가로 돈을 받는 것이 너무 미안해서 예술가들에게 밥을 사주거나 후원을 해줍니다. 그리고 국가기관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돈을 벌고 자생력을 갖추니 정정당당하게 비판의 소리도 낼 수 있더라고요. 지원금이나 자리에 집착하면 할 수 있는 게 그리 없어요.
장승헌 _ 요즘 젊은 무용가들의 직업이 대부분 석·박사인, 웃지못할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일면에선 무용과 교수들이 유능한 제자들을 자신의 인적 자원으로 쓰려고 졸업 후에도 붙잡으니까 대책도 없이 석·박사에 응시하는 경우도 많아요. 고학력, 고학벌의 무용인들을 우리 사회의 건강한 인적 자원으로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박사 학위를 받고 춤판으로 복귀해 어떤 춤을 출 수 있겠습니까? 요즘 박사 댄서들이 참 많아요. 진정성 담긴 몸과 마음으로 춤을 잘 추는 무용수를 만나기가 너무 힘든,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모두가 대학강단에서 자신이 공부한 것을 가르치고, 안정된 직업을 가지려고 신기루 같은 꿈을 안고 기다리는 것이겠지요.
최해리 _ 무용생태계가 너무 열악하다는 얘기만 반복되네요. 앞으로 공청회를 할 때는 불합리한 구조에 대해 한탄만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지 구체적인 대안과 발전적인 의견을 받았으면 해요.
장승헌 _ 고학력 고급인력들을 국립무용센터 추진단에 강제로 영입시켜 재능기부부터 하라고 요구해야 할까요?
조기숙 _ 국립무용센터에서 무용과 졸업자들의 직업을 창출할 수 있는 그 어떤 구조나 내용도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최해리 _ 국립무용센터가 춤계의 모든 것을 다 해결해줄 수 있는 만능 기관은 아닌 것 같고요. 한정된 공간에 무용과를 졸업했다고 해서 모두 인력으로 고용할 순 없겠지요. 그렇지만 다양한 직업군은 창출될 것 같아요.
장승헌 _ 우리 무용계는 아직 단 한 번도 그런 공간을 가져보지 못했으니 많은 기대를 하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2018년 현재 우리 춤생태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부딪혔다면 지나친 표현인가요?.
최해리 _ 소용돌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조각배가 연상됩니다. 국립무용센터 건립은 녹녹치 않은 과정일 것이며, 만약 불발되더라도 그 자체가 역사적 사건이었고 여기에 의미를 두면 되겠지요.

모든 무용인들을 위한 공간
조은경 _ 어제 공청회에서 조기숙 교수께서 “세상은 춤에 열광하고 있는데 무용과와 무용인은 죽어가고 있다”고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인지 열악한 춤생태계 얘기가 더 부각이 되었지만 사실은 더 좋은 대안을 위해서 하고 있는 거잖아요.
장승헌 _ 저는 기획자로서 춤 대중화를 얘기할 때, 대학 무용과를 졸업한 일반 주부들만이라도 극장에 스스로 찾아올 수 있도록 유도한다면 객석을 채울 수 있지 않겠느냐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왜 춤계 소식을 듣지도 않으려 하고, 자신의 모교에 시선조차 주지 않으려는지 그 심리를 한 번쯤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돌릴 수 있을지, 그들이 바다의 연어들처럼 춤관객의 한 사람으로 귀환해 돌아온다면 춤 대중화 측면에서 탄력을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 봅니다. 백화점의 문화센터나 국공립 기관의 예술 강좌에 찾아오는 아주머님들은 너무도 열심히 춤을 추는데, 정작 대학 재학생들은 왜 열심히 춤을 추고 공부하지 않을까요?
조기숙 _ 우리 이화여대를 예로 들면, 보통 예고 등에서 10년 이상 무용을 한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지원해요. 합격한 학생들을 보면 무용을 얼마나 자발적으로 즐기면서 했는지 안 했는지가 드러나요. 대학 들어오면 다수의 학생들이 힘이 빠지고 지쳐서 고등학교 때 가졌던 춤에 대한 열정이 없어져요.
최해리 _ 제가 그 학교에 한 20년간 등록금을 내느라 비자발적 발전기금을 냈어요. 일을 병행하다 보니 박사과정만 10년 넘게 다녔는데, 휴학 신청을 하면 될 것을 모르고서 계속 등록금을 냈어요. 그러면 모교에 대해 큰 자부심이 있어야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동창회 명부에서 제 이름을 삭제하고 싶을 만큼 모교 무용과는 끔찍한 기억을 많이 주었습니다. 저도 이런데 다른 무용과 졸업생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아까 무용과 졸업생들은 왜 무용과를 졸업하면 뒤도 안 돌아보냐고 하셨지요? 교수님들이나 권력자들 때문이지요. 그들의 도를 넘는 갑질에 마음을 다치고, 그런 일이 반복되는데 나아질 기미는 없고, 상처는 쌓이는데 치유는 되지 않고, 계속 있으면 숨막히고 죽을 것 같으니 그 좋았던 춤을 포기하고 떠나는 거죠. 그러니 춤이 쳐다보기도 싫죠. 정말 춤이 좋아서 버티다가 결국은 인간관계 때문에 떠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조기숙 _ 춤이 세상을 구원하는 힘이 있다고 저는 믿는데, 과연 정말 그런지 회의를 할 때가 있어요. 춤을 춰서 나름 검증에 검증을 거쳐서 선택된 자들이 교수인데, 교수 중에는 간혹 인간성과 실력 그리고 교육의 내용에 있어서 부족하고 학생을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정말 춤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조은경 _ 여기까지 정리하고, 그렇다면 이제 국립무용센터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 센터의 비전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어 볼까요?
최해리 _ 비전이라는 것은 ‘건물’에 있지 않아요. SNS 상에서 자꾸 건물 얘기를 하는데, 국립무용센터의 비전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에 있다고 생각해요. 어제 공청회에서 춤생태계의 위기에 대해서 한탄과 비판이 많이 나왔어요. 비판의 이면을 살펴보면 심의가 잘못됐다, 지원금이 편파적으로 쏠렸다, 하는 식으로 제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운용하는 인간과 관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거든요. 그만큼 춤계에는 불신이 많다는 것이죠. 그리고 인간관계 때문에 공정하지 못하다는 의식이 지배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국립무용센터에는 모든 무용가들이 동일한 인격체이며, 모두가 정당하고 공정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비전으로 삼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즉, 모든 무용인들을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립무용센터 건립을 위해 헌신하려는 누구나 환영
장승헌 _ 저는 무용과 출신도 아니면서 춤이 좋아서 지금 여기까지 왔는데요. 삶의 희망이나 구원까지는 아니지만 무용가들에게 이 일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필요해요. 춤계에는 묘한 질투심들이 있고, 춤예술 자체는 대중의 호기심을 촉발시키게 하죠. 다양한 인간 심리들이 얽혀 있어서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건강한 예향을 뿜어내는 것이, 춤은 마치 가꾸기 힘든 ‘난’과 같은 존재란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또, 추상적인 예술장르이기 때문에 관점에 차이들이 있는데, 평가에 깊게 상처받고 좌절을 쉽게 하는 듯합니다. 사회의 변화에 대해, 자신의 주변에 대해 너무 돌아보지 않는 것 같고요. 세상이 현재 어떤 상황이고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잘 모르면서 창작을 한다는 것은 정말 기형적입니다.
그리고 자꾸만 인접한 연극생태계와 비교해서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만. 연극계는 정말 치열함을 넘어 목숨을 걸고 작업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 있기 때문인지 자주 뭉치고 단체행동에 나섭니다. 이를 통해 실제로 많은 것을 얻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무용예술은 출발부터가 연극과 매우 다릅니다. 희곡을 통해서, 배우를 통해서, 그리고 협업을 통해서 이뤄지는 예술이 연극이라면, 무용은 한순간에 보이고 사라지는 찰나의 예술이며, 몸이라는 너무나 정직한 도구로 활동을 합니다. 정말 가혹한 예술장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 춤의 귀중함과 소중함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타인의 가치도 인정하면 좋겠어요. 다른 무용가들의 춤, 창작, 업적을 진심으로 인정해줄 수 있는 풍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대학교수님들이 좋은 시절 다 갔다고 얘기하는 걸 자주 듣게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요즘 정년 퇴임하시는 1세대 무용과 교수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이에요. 그들 중에는 추진단에 위촉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분들이 많을 거로 생각합니다. 지난 1980~90년대를 무용계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하는데, 그게 1세대 무용과 교수들이 주도한 춤의 부흥기였어요. 무용과 교수들과 대학동인단체가 주목받던 시대는 지났고, 이제는 장인정신으로 작품을 창작해서 세계무대에 진출해야 합니다. 독립안무가들은 예술가적 야생정신을 잃지 말고 자신이 도전할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는 차원에서 작업해야 합니다. 투덜거림은 줄이고, 요구할 것은 명확한 목소리로 요구해야만 할 것입니다. 남의 것을 내 것인 걸로 착각하고, 남의 잘됨은 남의 못됨이라고 격하하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우매한 행동입니다. 춤계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의 사고가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자꾸 이상한 편견과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저울질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춤생태계는 스스로 건강함을 찾아가야만 합니다.
우리들이 민주적인 방법과 그 절차에 대해서 많이들 얘기하지만, 사실은 무엇이 민주적인지를 모르는 듯합니다. 그냥 모여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게 민주적인 건 아니죠. 민주적인 방법, 절차, 실행에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신들이 왜 그런 문제의식을 갖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상대편의 입장을 고려하고 존중하면서 ‘왜?’라는 질문에 먼저 대답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해리 _ 공청회를 계속 열다 보면, 무용가들이 사회적으로 발언하는 방법, 민주적으로 합의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기숙 _ 제가 생각하는 비전은, 일단 전문 무용가들이 자신에 대해서 존재감을 갖고, 춤을 즐기면서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래서 거기에서 정말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작품이 많이 나오길 바라고, 국제교류도 가능한 작품이 나오길 바라고 있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춤이 무용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거든요. 춤이 인간 모두를 위해 활동을 할 수 있게 근거도 마련하고, 구체적인 콘텐츠도 연구·개발해서 제시하는 새로운 활동을 해서 춤에 대한 개념, 영역이 확장됐으면 좋겠어요.
세 번째는 무용과 무용인들이 이 세상의 성장과 진화를 위해서 기여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되어서 비전,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국립무용센터가 살아있는 생명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그런 공간이 될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조은경 _ 추진단은 구성은 어떻게 되었나요?
장승헌 _ 언론 보도를 보니 모두 33인이던데, 마치 3·1절 독립선언자들과 같은 숫자의 조합이던데요?
최해리 _ 자칫 원로 무용가나 무용계 명망가를 추진위원장으로 내세우면 ‘아, 그 라인으로 구성되는구나’라고 오해받을 듯했어요. 그래서 무용가보다는 춤계를 위해 헌신해온 분을 찾았어요. 구자훈 LIG문화재단 이사장은 30년 이상을 무용계에 관여하셨더라고요. 작년 초에 그분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30년 전에 춤지 사무실에서 조동화 선생님, 김현자 선생님과 안무 진흥방안에 관해 얘기를 나누다가 김현자춤아카데미를 만들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미 30년 전부터 춤계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었고, 지난 30년간 여러 무용가들이 그분에게 혜택을 많이 받았으니 그분을 추진단장으로 모셔오면 많은 무용가들이 모이지 않을까 싶어서 모셔왔습니다. 흔쾌히 수락해주셨고, 명목상의 수장이 아니라 추진에 대해 적절한 조언을 주시고 뒷받침도 해주시는 든든한 어른이십니다.
추진단 위원으로는 정부산하기관의 무용단체장들에게 우선 컨택했고, 건립에 대해 많이 알려야 되니까 ‘한국춤협회’, ‘한국현대춤협회’, ‘한국발레협회’ 등 회원 수가 많은 협회의 장들에게 연락을 취했어요. 그리고 타당도 조사라든지 공청회를 위해서는 학술단체의 도움을 받아야 해서 한국연구재단의 등재지를 기준으로 학회를 선정했어요. 추진위원들은 그야말로 무용계를 대표하는 분들로 모셨습니다.
장승헌 _ 그리고 지역 무용가들을 설득하고 지역 분원 설립을 위해 지방의 시립무용단체장들에도 연락을 했죠. 장르별로 인천시립무용단, 광주시립발레단, 대구시립무용단을 우선 추천했습니다.
최해리 _ 실행위원들은 실무 경험이 많은 분들로 공청회나 조사사업 등을 계획하고 이끌 수 있는 분들입니다. 추진단은 지위를 갖고 권위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일꾼으로 뛰어야 하는 곳이에요. 의외로 기관을 설립했던 경험자들이 많더라고요. 김화숙 선생은 ‘무교추’를 조직해서 대대적으로 활동하셨고, 하정애 선생은 국립현대무용단을 만들기 위해 37년간 일을 하셨다고 해요. 이런 분들을 자문단으로 모셔와야 하고, 문화정책이나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무용계 외부에서 변호사, 회계사, 건축사, 문화공무원 등 전문가들도 모셔와야 해요. 무엇보다도 추진단은 열린 곳입니다. 실행위원이든, 추진위원이든, 행정지원팀으로든 국립무용센터 건립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분이 있다면 정말 환영합니다.
조은경 _ 문이 활짝 열려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장승헌 _ 추진단으로 참여해서 일하다가 맘에 들지 않으면 나가도 되는 것이고요.
조기숙 _ 그렇죠. 맞습니다. 제가 나갈 수도 있어요.

지역의 유휴시설을 지역무용센터로 전환할 수도
조은경 _ 기존 시설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하는데, 이를 테면 지역의 시도립무용단이 무용센터가 될 수도 있나요?
최해리 _ 우리 무용계와 풍토가 다른 나라의 기관을 롤모델로 삼는 것이 좀 그렇지만, 프랑스의 국립무용센터(CND)가 모범적인 사례라고 봅니다. 파리 근교에 중앙 CND가 있고, 리옹과 또 다른 한 군데에 분원이 있다고 합니다. 또 지방마다 국립안무센터가 있거든요. 지역마다 혹은 권역마다 분원을 설치하는 것도 지방 무용활성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장승헌 _ 시립무용단체들이 지역무용센터로 기능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릴 거라고 봅니다. 시립무용단체들은 지자체 시장들의 임기동안 많은 행사에 참여해야만 하고 예산 문제도 걸려있고요. 각 단체의 상황이나 노조 문제 등을 고려한다면 매우 힘들 듯 합니다.
최해리 _ 어쨌든 지방에는 반드시 분원이 있어야죠.
조은경 _ 올해 ‘모다페’에 출연했던 외국단체가 부산에 가서 공연하는 등 예전과 달리 조금씩 연계공연이 가능해지는 듯해요. 분원이 생긴다면 네트워킹이 더욱 좋아지겠군요.
장승헌 _ 지역마다 문화예술 관련 예산들이 책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지역에서는 해외 무용단들이 공연하지 않느냐고 항변하는 사례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서울세계무용축제도 그런 이유에서 여러 지자체에 연락하는데, 예산과 일정이 맞지 않아 포기하게 되더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난 6월 초 제주도에서 국제댄스포럼을 진행하며 이제 지자체 관계자들이 문화예술 행사나 페스티벌에 대해 상당히 열린 사고를 하고 있구나 라는 긍정적인 변화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국립무용센터의 분원을 경기 및 강원권, 충청권, 영남권, 호남권, 그리고 제주권역으로 나누어 설립할 필요는 있을 듯합니다. 그래야만 전국의 국회의원들도 설득할 수 있을 겁니다. 서울에만 건립해서 중앙과 수도권 무용가들만 위한 시설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해리 _ 지방에도 유휴시설 무척 많지요. 번듯하게 지어 놓고 활용도 못 하는 공공시설들이 많잖아요. 그런 시설물을 지방의 무용센터로 전환해주면 좋겠어요.
장승헌 _ 춤예술에 대해 조금이나마 관심 있는 지자체가 있다면 관계자들과 지인들로부터 현지 상황과 여건들을 파악해서 거점을 확보해가야 합니다.
최해리 _ 좋은 제안이 쌓일수록 기반은 탄탄해지고, 지혜가 모일수록 건립은 빨라진다고 생각해요. 많은 무용가들이 뭐든지 자꾸 건의해주시면 좋겠어요. 춤계에는 근거 없는 뒷담화가 무성한 곳이라 크게 신경 쓰지는 않습니다만, 어제 공청회 청중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오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오지도 않은 분들이 말들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추진단이 국립무용센터를 건립하려는 이유가 자기네끼리 자리를 나눠 먹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제가 아는 한 추진단 위원들은 하나 같이 건립을 반드시 성공시키도록 한마음으로 뭉치자고 말씀하시지, 내가 무엇을 하겠다고 나서는 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조은경 _ 추진단의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 한국의 예술적 수준을 더욱 높이기 위해 국가가 반드시 이 부분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봐요.
최해리 _ 투자를 해주지 않으면 춤계도 정부의 요구사항을 보이콧 해야지요. 올림픽게임 같은 곳에서 더 이상 공연하지 않겠다고…(웃음)
장승헌 _ 춤은 우리나라 예술장르 중에 세계적으로 가장 수준이 높고, 예술적 유전자도 우월해서 국제 경쟁률이 뛰어납니다. 통역이 필요치 않은, 인간 감성을 통한 인류애적 공감 채널로서 너무도 소중한 메신저가 바로 춤이 아닐까요? 모든 국민이 잘 할 수 있는, 그리고 오랜 역사 속에 다져온 가무의 나라다운 요소들이 산재해 있기도 하고요.
조기숙 _ 그런데 앞으로 분명한 건, 춤예술이 우리나라의 국격을 격상시키고 결국에는 많은 사람들을 먹고 살게 하고 이 나라를 살릴 거예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모두다 협력, 단결
조은경 _ 이제 시작이지만 그간 국립무용센터 건립을 추진하면서 즐거웠던 일, 안타까웠던 일 등 털어놓고 싶은 게 있다면요.
조기숙 _ 정말 무용인들이 단합하고 하나가 돼서, 국립무용센터는 될 때까지 했으면 좋겠어요.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이 비 오게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꼭 기도를 들어줬대요. 왜냐하면 비 올 때까지 기도했대요. 그러니까 기도를 들어주신 거죠. 될 때까지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단합해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장승헌 _ 언제 건립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기실 ‘국립’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있고, 일종의 권위가 느껴지잖아요. 어제 공청회에서 조흥동 선생도 그에 대해 지적하셨습니다. 그분이 국립무용단 예술감독도 역임하시고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부회장으로 계시니, 현역 원로 무용가로서도 많은 것을 이루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국립’은 아니라고 말씀하시니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춤예술이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를 촉구하고 정부 관계자들로부터 당당하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얘기로 이해했습니다.
조은경 _ 또 하나 관료 보직이 늘어나는 것은 아닌가라고도 말씀하시더군요.
저는 여기서 하나 제안하고 싶은데요. 춤자료관, 춤박물관이라고 하듯이, 굳이 춤이 아니고 무용센터라고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서울대학교도 국립서울대학교로 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국립’을 꼭 넣을 것이냐 이런 것에 대해서 나중에 이름공모도 한 번 했으면 좋겠어요. 이를 테면 한겨레신문도 창간 전에 설문조사를 했거든요. 그때 처음에 한겨레측에서 생각했던 신문이름은 그게 아니었다고 해요. 그런데 설문조사를 해보니까 ‘한겨레’가 압도적으로 많이 선택받아서 ‘한겨레신문’으로 이름을 지었고, 지금도 사랑 받는 이름이 됐죠. 개념은 그렇게 국립으로 간다는 거고, 다 포괄하는 센터가 된다면 거기에 맞는 이름을 걸었으면 좋겠어요.
조기숙 _ 그런데 저야말로 ‘국립’이라는 말을 싫어하는데요. 초기에 왜 ‘국립’이라는 말이 필요하냐면, ‘국립’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정부에서 예산을 짜고 모든 걸 집행하는 것이 가능한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 자칫 민간자원으로 시작하라고 해서 BTO, BTL 사업으로 갈 수도 있는 거예요.
장승헌 _ 재단법인화해서 돈도 벌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최해리 _ 문체부 관계자는 재단법인으로 설립하면 어떠냐고 제안했다는군요. 재단법인이면 쉽게 진행할 수 있어요.
장승헌 _ 부지도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서울=대한민국’이잖아요. 그러니까 국가가 뭘 하려고 해도 땅 한 자락도 없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공공유휴지도 서울시에서 제공해줘야지만 가능하답니다. 그래서 서울시장 및 지자체 관계자들과 협의하고 논의를 해야만 합니다. 사실 ‘국립’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성이 없는, 어쩌면 조금 속 빈 강정과 같다는 생각도 갖게 됩니다.
조기숙 _ 정부에서는 다 나눠주고 웬만해선 직접 관리를 안 하려 하지요. 그런 추세이긴 해요. 그래도 초기에 ‘국립’이라는 말을 써야 정부에서 관리해주고 예산을 편성 받을 수 있요.
장승헌 _ 보호장치를 세우지 않으면 우리 예술가들이 생테계 존립이 어려우니 기존 관련법을 고쳐 각계 의견을 수렴해 국립무용단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그런 절박함이라는 거죠. 춤예술이라는 존재자체가 공공성이나 국가의 보호가 없으면 자생할 수가 없는 장르에요. 저는 국립극장에서 8년 간 근무한 이력 때문에 천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거기서 돈 받고 다니면서 좋은 예술가들을 만나고, 좋은 공연을 관람하며 공부했고, 재직 당시 「88 서울올림픽 문화예술 축전」도 국립극장에서 마련되어 세계적 수준의 공연 행사를 체험했음은 물론, 한편으로는 연극, 국악, 춤의해를 거치면서 현장 체험과 학습을 그곳에서 다한 셈입니다. 그래서 퇴직을 하고서도 국립극장 시절, 만났던 여러 예술가 인맥을 바탕으로 스스로 만족하며 그 시절 배운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현장에서 버텨 온 것입니다 이를테면. 저는 실패한 기획자이고, 해서 돈 벌 줄 모르는 기획자란 평가의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조은경 _ 겸손한 말씀입니다.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국립무용센터의 최종 목적은 어떤 것입니까?
장승헌 _ 명실상부 대한민국 무용계의 인적, 물적, 모든 이상을, 그리고 진품 콘텐츠를 담아내는 빅텐트로 자리매김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무용인들이 더욱 성숙한 세계시민으로서 행복해지는 가운데 춤으로 아름다운 제도적 장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조기숙 _ 손에 손 잡고 다 함께 춤추는 세상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이 사회의 성장을 춤이 인도하고 진정 춤으로 진정한 사랑을 나누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남북의 사람이 몸으로 만나서 춤을 추며 통일을 준비하고 통일 후에도 그간의 큰 간격을 극복하는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최해리 _ 우리 무용계의 어제, 오늘, 내일이 있는 곳입니다
조은경 _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해리 _ 국립무용센터는 무용가 여러분의 쉼터, 일터, 놀이터, 창조의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국립무용센터를 통해 여러분의 소신을 주장하고 여러분의 소망을 실현하며 여러분의 미래를 창조해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소중히 가꾸어 온 춤을 위해, 꿈을 위해, 내일을 위해 국립무용센터 건립 추진에 적극 동참해주십시오. 이렇게 좌담으로 무용계에 널리 알릴 기회를 주신 편집장님께 감사드리고, 건립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춤지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십시오.
장승헌 _ 우선 무용인들이 마음을 함께 모으고 세대간, 장르별, 그리고 지역간 및 성차별 없이 진정성으로 서로를 이해해 가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소망한 것을 하나씩 이루어 가기 위해서는 지혜와 배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고 소통하는 예술가들이 되십시오. 기회의 공간으로서 국립무용센터가 반드시 설립되도록 다 함께 희망합시다.
조기숙 _ 이일이야 말로 무용계의 대승적인 협력과 단결이 필요합니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모두다 협력, 단결입니다. 무용계가 모두 힘을 합쳐서 경청하고 양보하고 단합해서 꼭 무용계의 숙원사업인 국립무용센터를 반드시 성취하기를 바랍니다.
조은경 _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