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7일 인쇄
2018년 8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8월호 통권 510호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영화살롱

 

오 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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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식(朴泰植)(영화평론)

내가 겪어본 바로 일본사람들은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몇 번 만나지 않아 바로 형·아우 삼는 다정다감한 우리네에겐 낯설어 보인다. 실제로 일본엔 외톨이들이 많아 나 홀로 게임, 나 홀로 여행상품, 심지어 좌우 막아놓고 혼자 밥을 먹는 일인식당마저 처음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을 ‘히토리一人’라고 하든가.
「오 루시!」(Oh Lucy!, 히라야나기 아츠코 감독, 극영화/코미디, 일본·미국, 2017년, 95분)의 주인공 세츠코(테라지마 시노부)는 전형적인 히토리다. 40대 중반의 미혼 직장인으로 회사에서 존재감이 없고 밤이면 혼자 맥주를 홀짝거리며 TV나 보는 게 유일한 낙이다. 그랬던 세츠코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조카 미키가 이모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하지만 미키의 속셈은 영어선생 존(조쉬 하트넷)과 이모 돈을 챙겨 미국으로 떠나는 데 있었고 보기 좋게 당한 세츠코는 혼잣말을 했을 법하다. ‘역시 나는 글러먹은 팔자야!’
영화에서 아야코(미나미 카호)를 빼 놓으면 절대 안 된다. 아야코와 세츠코 자매는 서로 부끄러울 것도 없고 단점마저 꿰뚫고 있어 하고 싶은 말 다하는 처지다. 둘은 어쩔 수 없이 함께 LA로 향하는데 아야코는 철없는 딸을 걱정해 비행기를 탔으나 세츠코의 목적은 달랐다. 이상적인 남자, 자신을 다정하게 안아주고 이름마저 ‘루시’라고 지어준 잘생기고 친절한 백인남자, 그녀는 어느새 존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영화의 백미는 아야코와 세츠코가 여행 중 나누는 대화에 있다. 예측 불허로 이어지는 상황에 끊임없이 활력소를 주는데 참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자매관계다.
「오 루시!」는 여성 감독 히라야나기 아츠코의 첫 장편영화고 자신이 제작한 동명의 단편영화에 여러 요소를 첨가해 확장한 작품이다. 오래 준비한 작품이어서인지 이야기 구성에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고 대사 하나 상황 하나도 허투룬 게 없었다. 특히,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져준 게 맘에 들었는데 서구와 일본의 문화적 차이점을 잘 표현한 점이다.
존은 입을 크게 벌려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과장된 제스처로 표현하고 상대를 꼭 껴안아 친밀함을 과시한다. 여성이라면 반할만도 하다. 그러나 이면에는 무책임과 거짓사랑이 숨어있다. 동료수강생인 다케시(야쿠쇼 코지)에게서 발견되는 진지함이 결여된 사람이다. 그렇다고 일본문화의 우위성을 강조한다는 평가도 내릴 수 없다. 한편에선 자신을 못 드러내고 철저히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 일본사회의 잔인성에 대해서도 감독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존의 실체에 직면한 순간 세츠코는 절망의 끝에 다다르고 이제 남은 선택은 하나밖에 없어 보인다. 그녀가 일본에 돌아온들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루시라는 이름, 금발 가발, 주황색 탁구공, 달콤한 일본과자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지하철 역사. 이 모든 것들은 세츠코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감독은 적재적소에 이들 요소를 배치했고 특히 두 차례의 ‘포옹’은 영화의 앞뒤를 묶어 이야기를 완성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영화를 만드는 솜씨와 세련되고 뛰어난 인물묘사가 첫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 느껴지지 않아서이다.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