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7일 인쇄
2018년 8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8월호 통권 510호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춤 스크랩북

 

大韓民國 舞踊祭 운영에 대한 일들
- 時評/舞踊



趙 東 華
(월간「춤」발행인)

말하자면 名譽(명예)라든지 賞金(상금)이 있는 競合行事(경합행사)에는 뒷말이 따르는 모양이다. 제4회 大韓民國 舞踊祭가 끝난 후 역시 뒷이야기가 성했고, 그래서 賞(상)이 없는 舞踊祭(무용제)여야 한다는 무용계 일부의 종래의 주장들이 튀어나왔다. 나의 생각을 먼저 말한다면 우리 무용제가 ‘대한민국 음악제’처럼 海外(해외)에서도 참가할 수 있는 그런 규모의 것이라면 몰라도 우리끼리만의 것이면, 競合(경합)―施賞(시상)이 절대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상이 없이는 節度(절도)나 緊張(긴장)이 없어서 혼란을 막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賞(상)이 빠진다면 이 행사가 舞踊社會 속의 관심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없지 않다.
어떻든 무용제가 ‘뒷말’까지 나돌 수 있는 熱氣(열기)면 성공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 설령 審査者(심사자)들의 人格(인격), 意識(의식) 같은 것에 결함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나는 賞(상)이 있는 편이 없는 것보다 百倍(백배)나 낫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사실 그동안 몇 회 안 된 舞踊祭(무용제)였지만 이 행사가 韓國舞踊界의 索引的(색인적) 役割(역할)을 하였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신념을 갖는 이유는 對外的(대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무용賞(상)은 이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도는 뒷말에 귀를 기울여서 보다 발전된 舞踊祭(무용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선 그 첫째가 審査委員(심사위원)의 資格(자격)에 관한 일이다. 善惡(선악)을 가리는 判定者(판정자)는 어떻든 客觀性(객관성)이 인정돼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심사위원이 있다면 재고해야 할 일이다. 그런 사람이란 出演(출연)團體(단체)의 利害(이해)관계와 연관돼 있는 者(자)를 말할 것이다. 공교롭게 이번 舞踊祭(무용제)에서 그런 조건의 지목된 審査委員(심사위원)의 團體(단체)가 ‘賞(상)을 獨占(독점)했다’는 데 말의 발단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 團體(단체)가 賞(상)을 獨占(독점)한 것이 아니었다. ‘大賞(대상)’도, 두 개의 ‘演技賞(연기상)도 다른 단체였다. 그러나 이렇게 비약된 뒷말이 호응받고 있는 분위기라면 생각해볼만한 일인 것 같다. 물론 審査委(심사위)는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 左之右之(좌지우지) 될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어떻든 이런 말의 素地(소지)는 없애는 것이 좋다.
두 번째는 舞踊祭(무용제)에서 어떤 형태의 賞(상)이든 이미 賞을 탄 者로서 다시 참가하게 되는 경우인데 그런 팀에게는 賞의 競合者(경합자)가 아니라는 것을 관객에게 밝혀줄 필요가 있었다. 말하자면 그의 名譽(명예)에 대한 配慮(배려)가 있었으면 하는 말이다. 우리 舞踊界는 層(층)이 얕아서 한 번 수상한 팀이 다시 출연하지 못한다 하면 우리 舞踊祭 水準(수준)이 낮아질 염려가 있다. 그래서 前年(전년) 受賞者(수상자)들도 원하면 다시 출연의 기회를 주고 있다. 무용가의 입장에선 舞踊祭에 참가하면 公演費(공연비)도 얻고 無料(무료) 貸館(대관)이고 매스컴들이 손님을 모아주고 하여 우리 실정으로는 가장 좋은 조건의 공연일 수 있는 것이나, 다시 賞(상)이 받아질 確率(확률)이 적어서 참가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審査委(심사위)의 입장에서도 그럴 것이다. 춤 잘 춘다고 해서 전년 수상팀에게 또 준다는 것은 상당한 결단이 필요해진다. 그러니까 이런 팀에게는 呼稱(호칭)부터 따로 붙여서 주는 配慮(배려)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작년도 수상자가 금년엔 낙방이 된 것 같은 인상은 주지 않게 말이다.
또 舞踊祭에는 美術賞(미술상)이나 音樂賞(음악상)이 있다. 이런 것을 둔 것은 同伴藝術(동반예술)을 무용 쪽으로 유도하기 위한 것에서였다. 그런데 이번 音樂賞(음악상)이 무용과는 관계없이 이미 作品(작품)되어 발표된 음악을 무용에서 借用(차용)한 것인데 상을 주었다. 무용제 출품작은 발표되지 않은 처녀성의 것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런데 이 음악은 해외에서 이미 발표됐었다. 그런데 심사위원회는 국내에서 발표된 것이 아니면 된다는 것으로 判定(판정)지어져 상이 주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外國(외국)에서 잃은 處女性(처녀성)은 국내에서는 처녀로 인정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순결성에 대한 물음에 대한 변명으로는 별로 설득력을 가지기 힘들 것 같다.
또 大賞(대상)의 경우인데 이번 大賞(대상)을 받은 C무용단은 초상난 집처럼 우울하여 受賞(수상) 拒否(거부)한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었다. 이유인즉 大賞(대상)은 상다리만 높았을 뿐 안무상을 탄 T무용단보다 상의 내용이 형편없었다는 것이다. 더구난 T무용단은 안무상·음악상·미술상을 모두 차지했다. 그러면 그것이 大賞(대상)이 돼야지 어떻게 이유가 없는 C무용단이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에도 一理(일리)가 있어진다. 또 상의 序列(서열) 첫 번째인 大賞(대상)은 상금 1백50만 원으로 끝인데 序列(서열) 두 번째인 안무상은 상금 70만 원에 해외로 갈 수 있는 3천 불짜리 티켓까지 붙어 있고 무용단이 운 좋게 음악상·미술상까지 탔고 그 상금이 각각 50만 원씩이니까 티켓 제외하고 현금만으로도 大賞(대상)을 능가한다.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다. 어떻든 大賞(대상)이면 그것이 대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따를 수 있어야 될 성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運營(운영)의 妙(묘)라는 것을 생각케 한다. 운영의 妙(묘)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演技賞(연기상)의 경우에는 정말 운영의 그 안무상을 낸 妙(묘)가 필요했던 부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번 두 개의 演技賞(연기상)이 모두 職業(직업)무용수한테 간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논리상으로는 직업무용수한테 演技賞(연기상)이 주어진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는 말이다.
무용제 출연은 운영위원회가 초청한 팀만이 할 수 있으며 초청받았으면 당연히 수상의 자격이 있다. 그래서 직업무용수들이 상을 받았다. 그런데 뭐가 이상한가. 직업무용수라는 것이 이상하다면 무용제 출연자에 직업무용인이 아닌 사람이 있는가. 대학교수도 직업적 무용인이고 학원 경영자도 직업적 무용인이 아닌가. 일부 학생출연자를 제외하면 전부가 직업무용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舞踊祭의 本領(본령)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明文化(명문화)된 것은 아니더라도 무용제의 본령은 아마추어십에 기조를 둔 올림픽 룰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演技(연기)는 올림픽의 記錄(기록)과 같은 것이 될 테니까 직업선수는 안 될 것 같다. 교수나 강사는 그것이 직업이더라도 선수 그 자체는 아니다. 무용제 초기, 국립발레단이나 부산시립무용단을 참가시킬 때 ‘특별초청’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이런 정신의 확인이었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맞붙이는 게임은 세계 어디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더 잘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이미 결정돼 있기 때문이다. 만일 무용제가 프로에 연기상을 주게 되면 앞으로의 무용제 연기상은 모두 프로에게만 줘야 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프로로서의 설 땅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렇게 생각해보면 더 선명해진다. 대한민국 국립발레단 10년 경력을 가진 프리마 발레리나가 겨우 대학졸업 수준 연기의 무용제에 뛰어들어 연기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정말 그의 명예일 수 있겠는가 하는 일 말이다. 이것은 대학생이 중학교에 돌아와 일등상을 타는 것과 어디가 다른가. 이런 수상은 그 당사자에게 부끄러운 일일 수는 있어도 결코 자랑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문예진흥원 무용제 담당자의 원숙하지 못한 운영기술에도 문제가 있었다. 무용제에는 운영위원회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때그때 위촉되는 기관이어서 일관성 있는 일의 처리라든지가 유권적인 해석을 내릴 수 없게 돼 있다. 그래서 진흥원 담당자가 운영할 수밖에 없는데 바로 이 담당자가 매번 바뀌기 때문에 원숙한 운영이 되지 못한다.
예컨대 심사위원회에서 결정한 수상자 명단이 어느 한 번도 문예진흥원 당국에 의해 정식 발표된 적이 없이 뒷구멍으로 알려진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일단 정해진 심사결정은 어느 누구의 힘으로도 뒤집어엎을 수 없는 일인 것을 알아야 할 텐데 ‘위의 결제’에 충성심(?)을 거는 지나친 자기비하 내지 무비판적 겸양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런 담당자 때문에 매스컴의 협조를 얻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끝으로 무용제에 대한 나의 바람을 말하자면 앞에서도 말했듯, 음악제처럼 海外(해외)에서 활약하는 무용가나 적은 규모의 외국인 무용단이 참가하는 무용제였으면 하는 일이다. 그러면 상도 필요 없고 뒷말도 없어진다. 사실 매해 우리끼리의 경쟁만으로는 더 큰 발전을 가질 수가 없다.

- 예술평론 3호 198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