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7일 인쇄
2018년 8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8월호 통권 510호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춤 스크랩북

 

瀟灑園, 그 品格있고 襤褸한 李朝巨人?
- 조경수상



趙 東 華
(월간 춤 발행인)

여러 해를 두고 벼르기만 해온 소쇄원(瀟灑園) 구경에 나선 것은 그해 늦가을이었다. 그것도 친구 M군이 좀처럼 서울을 뜨지 못하는 병에 걸린 나에게 교통, 숙소편의를 제공하고, 부여(扶餘)를 들리고, 송강(松江)유적(遺蹟)을 돌고 해도, 1박2일이면 거뜬하다는 강권에 못이겨서였다.
어떻든 그와 나는 몇 군데를 들려서 광주(光州)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소쇄원까지 자동차로 30~40분 거리라서였다.
다음날 우리는 오래간만에 간 광주의 동창(同窓)도 찾아보고, 찻집도 들리고, 또 여기서 살면서도 담양(潭陽)의 소쇄원이란 말을 처음 들어본다는 친구들…. 그래서 따라나선다는 그들. 조퇴(早退)시간까지 기다려주다가 그만 오후 늦게야 출발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떠나려니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가을비 치고는 많이 적시는 비였다. 출발할 것인가 말 것인가― 따라나선 친구 몇이 망설이니까 친구 S군은 재빠르게 곁의 백화점으로 가서 꽤 괜찮은 우산 여섯을 사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소쇄원이 그렇게 굉장한 곳이라는데 예복(禮服)없이 갈 수 있겠어. 우산이래도 받쳐 들고 가야잖겠어―” 해서 모두들 우산 하나씩 나눠가지고 마치 어린애들 소풍 떠나는 기분으로 나서게 되었다.
소쇄원은 국도변(國道邊) 바로 곁 울창한 대나무 숲을 지나 계류(溪流)를 따라 올라가면 되는 그런 데 있었다.
원래 이 길은 오솔길이었다는데 ‘새마을’ 사업까지 치르는 세월동안 지금은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신작로(新作路)길이 돼버렸다.― 는 M군의 설명은 전날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향취가 흘러넘치는 호수(湖水)를 가지고도 송강호(松江湖)라 하지 않고, 광주호(光州湖)로 명명(命名)한 그런 몰정취(沒情趣)의 사고(思考)와 연결되면서 공연히 쓸쓸해지기만 했다.
소쇄원과 우리는 빗속에서 대면(對面)한다. 나는 이미 이 정원(庭園)을 사진에서 여러 번 본 것이지만 정작 빗속에서 그 현장(現場)을 목격하는 감회는 새삼스러웠다.
한마디로 소쇄원은 풍광(風光)이 좋은 계곡(溪谷)의 한 부분을 욕심 사납게 담으로 막고, 거기에 각루(閣樓)를 세우고 화단(花壇)을 쌓은 1천4백여 평의 그런 공간이다. 그러나 이런 횡포 아니었던들 이조(李朝)의 정원을 오늘에 전할 수는 없었을 터이니― 옳고 그름의 뜻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고풍(古風)하고 품격을 갖춘 거인(巨人) 같은 소쇄원. 그러나 그날 그 뜰은 낙엽에 덮이고 비에 젖어 마치 남루(襤褸)한 매무새를 하고, 쓸쓸히 서 있는 벙어리 같았다.
우산 여섯은 낙엽을 밟으며 그 정원 속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는 그 남루한 정원에서 따뜻한 체온을 느낀다. 이런 따스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래 그것은 담(垣)이었다. 별로 크지 않은 담 하나가 자연을 이처럼 완전히 차단(遮斷)하고 인위적(人爲的)인 섬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기만 하다.
때문에 소쇄원의 주인 양산보(梁山補)는 그 담벽에 애양단(愛陽壇)이니 오곡문(五曲門)이니, 소주처사양공지노(瀟酒處士梁公之盧)니 하는 패(牌)들을 마치 훈장처럼 써 붙여 담의 공로를 치하한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담은 계곡을 가로지르고 계류(溪流)를 담 밑으로 흘러들인다. 그는 이것을 원혈굴투류(垣穴屈透流)라 했다. 그러나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 담에 사이(間隔)을 내어 통로를 만들었다. 이름하여 오곡문(五曲門). 그러니까 소쇄원의 담은 사람을 막는 장애물이 아니고 자연의 맥(脈)만을 절단키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오곡문을 나서면 바로 곁에 우물이 있다. 양산보의 권능이면 이 우물도 능히 자기 정원 속에 넣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담 밖에 그대로 놓아두고 담까지 트게 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물가에서만 얻을 수 있는 세상의 동정을 알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현시(自己顯示)가 강한 양산보가 손(客)을 맞아 이 우물을 길어 차(茶)를 대리게 하며, 동자(童子)에게 객(客)의 이름을 우물가에 퍼뜨리게 했던 것이 분명하다.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소쇄원의 특징은 멋진 계곡의 흐름이고, 그 계곡의 경사(傾斜)를 돌로 쌓아 몇 겹의 단도 만들고, 길도 만든 것이었다. 특히 쌓은 돌(築石, 축석)의 고졸(古拙)한 아름다움은 두 군데의 연못으로 깊이를 더한다. 또 상단(上壇)과 하단(下壇)에 제월당(霽月堂), 광풍각(光風閣) 등. 세월을 짐작할 수 있는 각루(閣樓)가 여기에 어울리고.
우리는 우산을 거두고 광풍각 마루에 잠시 걸쳐앉아 조용한 음성의 계류를 내려다본다. 각자 백년 옛날 속에 돌아와 앉아 있는 것처럼, 모두들 말이 없다. 먼 훗날 객들도 그렇겠지. 여기에 무슨 말이 있을 것인가.
비는 가랑비가 되어 계속 내린다. 정원 이 구석 저 구석에 남아 있는 여름의 잔영(殘影)들은 붉은 빛이면 붉은 빛대로, 초록이면 초록인대로, 그렇게 선명할 수 없다. 간간히 산새소리도 들린다.

- 造景 1983년 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