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7일 인쇄
2018년 8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8월호 통권 510호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공연평

 

춤 창작을 고취시키는 중심극장으로서 아르코예술극장
- 류석훈·노정식·전미숙




심정민(沈廷玟)(춤평론)

아르코예술극장은 1981년 개관이래로 40년 가까이 무용계의 창작산실 역할을 해온 극장으로서 그 역사적 가치가 남다르다. 특히 극장 자체가 춤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데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무용가들의 선호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무용계에 미치는 영향력에 반하여 여러 해 전에 무용전용극장은커녕 무용중심극장에서도 멀어졌다는 점은 깊은 탄식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매년 상당수의 무용공연이 펼쳐지는 가운데 그 해를 대표할만한 창작의 다수가 여기서 나온다는 점은 여전히 탄탄한 역할을 확인시킨다. 올해에도 무용계를 실제적으로 이끌어가는 중견과 허리세대 무용가의 상당수가 표현의 장을 제공받았으며 비수기에 해당하는 7월만 하더라도 더 바디, 노정식, 전미숙, 김남진 등이 차례로 아르코예술극장을 수놓았다. 그 어느 극장보다 선호도가 높고 그러므로 경쟁이 치열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기회를 잡은 무용가라면 그에 합당한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7월4~5일 댄스컴퍼니더바디는 기획공연을 통해 두 개의 작품을 선보였다. 『시퀀스(Sequence)』는 2016년 초연된 이래로 몇 차례 재연되었으며 작년 말 <대한민국무용대상>에서 문화체육부장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별다른 세트 없이 비트와 빛만 제시하면서 신체 움직임을 통해 일련의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동작 자체의 특색은 강한 반면 전체적인 구성의 틀이 약한 기존의 한계를 딛고 후자에 대한 보강을 통해 보다 완성도 높은 작품을 실현하였다. 초연 이래로 매년 수정 및 보완을 거친 여러 『시퀀스』 중에서도 가장 짜임새를 갖춘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로드(The Road)』는 이윤경과 류석훈의 가장 큰 장점인 듀엣 춤으로 이루어졌다. 이윤경이 예리하게 떨어지는 선형으로 시선을 끈다면 류석훈은 부드럽고 유연하게 흡입하는 느낌을 지닌다. 따라서 처음에 두드러지는 것은 이윤경이지만 사실상 류석훈이 이를 받쳐주지 않는다면 완전한 하나의 이미지를 구축하지는 못할 것이다. 미적 가치가 높은 듀엣을 통해 관계와 감정, 몸과 마음, 춤과 예술이 한데 어우러지는 지점을 실제화한다. 서로를 채워주면서 하나의 완성을 이루어내는 듀엣은 최상의 협업의 예시다.

7월11~12일 노정식은 『RAVEN: 까마귀』를 통해 ‘까마귀가 되어버린 인간, 정화가 필요한 사회’라는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이를 나약한 인간, 검은 새, 어둠, 폭우 등의 네 장면으로 형상화한다. 작품에서는 현 사회에 만연한 시기, 분노, 거짓, 타락, 파괴 등 악에 물든 사람들을 흉조로 일컬어지는 까마귀로 상징한다. 그러한 검은 까마귀로 인해 혼탁해지는 사회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모든 어둠을 씻어내기 위한 정화의 의식을 치른다. 열세 명의 젊은 무용수들이 온몸으로 울부짖는 듯한 움직임은 그들 역시 이 사회의 피해자임을 항변한다. 특히 팔을 격렬하게 휘젓고 발을 세차게 구르는 몸짓은 주제 의미를 선명히 새기는 주요 동작이 되었다.
노정식은 최근 들어 이동하를 실제적인 조안무가로 등용하고 있다. 노정식 특유의 차분하게 절제된 안무는 서서히 이미지를 형성하는 한편, 이동하의 큰 규모로 발진하는 안무는 휘몰아치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작품 곳곳과 피날레에서 노정식의 은근하고 흡입적인 형상이 이동하의 너울이 큰 구성적 묘미로 변화하면서 전자보다 후자에 대한 존재감이 각인되기도 한다. 각각 다름을 인정하고 노정식 고유의 예술적 정체성을 좀 더 짙게 내비칠 필요는 있다.

7월14~15일 전미숙의 『Talk to Igor, 결혼 그에게 말하다』는 2012년 초연된 작품으로 이번에 수정 및 보완을 거쳐 단장된 버전을 선보인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결혼」은 10여 년의 걸친 과정 끝에 1923년 완성한 곡으로 결혼을 소재로 러시아 농민들의 민요, 농경, 의례, 생활 등을 망라해놓았다.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의 안무 버전과 지리 킬리안의 안무 버전이 역사적, 예술적 우위를 차지하는 가운데 상당수의 안무가들이 도전해온 곡이기도 하다. 하지만 독특하고 강렬한 선율을 춤으로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인지 니진스카와 킬리안의 마스터피스에 범접하기란 쉽지 않다.
전미숙은 스트라빈스키 음악을 배경으로 하여 결혼에 대한 현대적인 성찰을 시도한다. 그녀가 말하는 결혼이란, 각기 다른 감정과 가치관과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사랑이 가볍게 날아간 후 무겁게 짓누르는 책임감과 불편함은 각각의 존엄이나 자유의지까지 침범하기에 이른다. 이를 열한 명의 남녀 무용수들은 마이크를 잡거나 움직임을 통해 자기 항변을 해나간다.
일정 수준 이상의 체격과 기량을 갖춘 무용수들이 행하는 움직임 선형은 시각적인 쾌를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최수진은 여러 안무가가 선호하는 뮤즈답게 단순히 춤을 잘 춘다는 기량적인 평가를 넘어선다. 별 특징 없는 동작에서조차 무언가 의미를 담은 듯한 예술성을 함양하는 것이다. 현재 무용수로서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만큼 철저한 자기 관리로 오래도록 이를 유지해가기를 바란다. 김성훈 역시 진지한 예술적 탐구를 이어가는 무용가로서 자기만의 정체성을 담은 몸짓으로 흐름을 풍성하게 만든다. 특별한 기교적인 구사 없이 고유한 존재감을 풍길 수 있는 젊은 무용수는 흔치 않다. 정지윤의 경우 마이크를 통해 결혼에 대한 자신의 고찰을 토로하는데 있어 남다른 발성으로 주목받았다.
이와 같이 열한 명의 행위자들은 말과 움직임을 교차하면서 결혼에 대한 갖가지 단상과 상황에 대해 묘사한다. 다만 움직임보다는 말을 통해 주제 의미를 빈번하고 뚜렷하게 제시하였다는 점은 짚어봐야 할 것이다. 심오하고 창의적으로 주제를 표현하는 움직임에 대한 집중력을 높일 필요는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