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7일 인쇄
2018년 8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8월호 통권 510호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춤 스크랩북

 

韓國춤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 취미교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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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춤은 그 種族(종족)의 心性(심성)이며 哀歡(애환)의 표현이며 作態(작태)이다. 한국 춤이 우리에게 있어서 멋이고 흥겹고 즐거움을 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해외를 다녀온 우리 민속무용 단원들까지 한국 춤이 세계에서 제일인 양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열렬히 박수갈채를 보내올 수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이것은 아주 잘못된 독선적인 판단이다. 중언부언이 되지만 우리 눈에는 그저 껑충껑충 뛰는 무의미한 아프리카인의 춤이나 궁둥이만 흔드는 훌라댄스일지라도 그들은 자기들의 춤의 형태를 세계 제일의 한국 춤과 절대로 대치하지 않는다는 사실로써 알 수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민속춤은 단순한 ‘예술’이기보다 ‘문화’라고 하는 표현이 옳은 것이며 우리 춤에 대한 열렬한 박수갈채 역시, 춤 그것에 있지 않고 그것을 감싸고 있는 의상, 음악, 기능적 분위기로 표현되는 우리 고유의 문화에 대한 禮遇(예우)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현대극장예술의 개념으로는 민속춤을 예술로 취급하지 않으며 上演(상연) 종목에서도 제외하고 있다. 헌데 우리나라 국립극장에서는 왜 그런지 『승무』나 『살풀이』 같은 것을 같이 올리고 있어 무대예술에 큰 혼란을 야기시킨다. 傳來(전래) 민속춤만 아니라 新(신)민속춤인 『부채춤』이나 『화관무』 같은 것도 이에 해당된다.
음악에서 「판소리」나 「가야금병창」 그리고 「노들강변」이나 「천안삼거리」가 제외되고 연극에서 「탈놀음」이 제외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처음부터 극장예술로서 만들어지고 발전해온 발레의 경우에 있어서도 ‘클래식발레’라는 움직일 수 없는 하나의 형태가 정해져버리니까 이것으로는 안 되겠다고 해서 美國(미국)의 ‘이사도라 덩컨’이란 여성은 몸의 움직임을 모두 춤으로 간주하는 ‘현대무용’을 시작했다. 이 현대무용의 출현으로 男性(남성)舞踊手(무용수)가 단지 발레리나의 세 번째 다리(脚) 役(역)밖에 안 돼 있던 당시 女性(여성) 중심의 발레에서 남자를 해방시켜 춤의 주역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도 낳았다. 어떻든 오늘의 고급한 무용관객들은 되도록 춤이 보수적이고 관습적인 原型(원형)에서 멀어질수록 더 신선감을 찾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니까 즐거워야 할 공연예술의 本領(본령)에서 무용이 멀어져가는 폐단도 생긴다. 예컨대 前衛(전위)舞踊(무용)이니 實驗(실험)舞踊(무용)은 이런 재미없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예술로서의 무용은 옛것이 다시 새롭게 느껴질 때까지, 말하자면 古典(고전)에의 回歸(회귀)까지 부단히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할 때만 그 時代(시대)의 사명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趙東華(월간춤발행인)

- 한독소식 1982년 5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