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7일 인쇄
2018년 8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8월호 통권 510호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공연평

 

‘대한민국 발레’는 발전하고 있는가
- 「8회 대한민국발레축제」




박민경(朴玟京)(춤평론)

* 「8회 대한민국발레축제」(5월31일~6월 24일 예술의전당)
대한민국발레축제조직위원회와 예술의전당이 공동으로 주최한 「8회 대한민국발레축제」는 ‘기획공연’이라는 타이틀로 김용걸댄스씨어터와 김세연서울메이트의 공연으로 개막했다. 첫날(5월31일 토월극장) 연속 두 편의 공연을 보면서(인터미션 포함 110분), 갑자기 ‘우리 발레가 진보하고 있긴 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오래전에 무의식적으로 ‘한국발레’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이 곧바로 내게 ‘도대체 한국발레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발레면 발레지, 한국발레, 러시아발레, 미국발레… 이런 식의 명명이 가능한가? ‘한국발레’라고 하려면 러시아 프랑스 미국 등과 같은 국가의 발레와 근본적으로 다른 동작이라든지 규범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있느냐,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냐는 의미였다. 그것은 ‘한국발레란 무엇인가’라는 개념규정의 문제로 남았다.
나아가 ‘한국 창작발레’에 대해서 같은 질문을 받았다. 전통춤-창작춤 같은 용어에서처럼, 그것은 혹시 ‘한국 고전발레’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느냐고…. 외국에서는 클래식발레, 모던발레, 컨템포러리발레 등의 용어를 사용한다. ‘한국 창작발레’라고 할 때 그것이 지칭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현대무용사에서 ‘창작’이라는 용어는 낯설지 않지만, 그것은 일차적으로 한국의 발레를 서양의 클래식발레 작품과 구분짓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발레사는 본래 창작발레의 역사가 아닐까? 그래서 ‘발레의 활성화면 발레의 활성화이지 창작발레의 활성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이처럼 ‘한국발레’니 ‘창작발레’니 하는 용어의 정확한 의미가 요구된 것은, 8년 전인 2011년 「1회 대한민국발레축제」가 탄생했을 때였 다. 거기서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인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의 사용이 너무 거창한 것은 아닌가, 발레가 근본적으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나 다름없는데 거기에 국가의 이름을 덧붙이는 것이 오히려 한계를 명확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등, 이 축제는 몇 가지 의문과 함께 탄생했다. 그래서 이 축제의 발전은 곧 한국발레를 규정짓는 작업과도 연결되었다. 그러므로 올해 공연을 보면서 문뜩 생각난 의문 ‘우리 발레가 진보하고 있긴 한 것일까’에서 ‘한국발레의 발전’이라는 것은 어쩌면 ‘대한민국발레축제의 발전’을 가리키고 있는지 모른다.
타이틀에서 ‘대한민국’이 한국에서 개최되는 발레축제인지 아니면 한국에서 창작된 발레작품의 축제인지 등을 물었던 것은, 일단은 -당연하지만- 그 두 가지 모두를 포함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 축제는 창작을 격려 혹은 지원하여 한국발레를 발전시킨다는 목적을 기본으로 했는데,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여기서 발레가 발전한다는 것은 축제의 발전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축제는 또한 대중적인 관심 혹은 폭넓은 관객층의 확보라는 기본 성격을 무시할 수 없었다. 축제의 고민은 ‘과연 한국발레로 혹은 창작발레로 일반인들의 관심과 후원을 받을 수 있는가’였다. 어쩔 수 없이 마케팅의 메인 프로그램은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레퍼토리, 즉 대부분 외국작품이나 클래식작품이 차지했다. 그리고 관객의 확충 면에서 축제의 성공을 위해 매년 1편 정도는 외국 유명 발레단의 내한공연을 프로그램에 넣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방향성도 요구되었다. 발레 안무가를 육성하고 창작발레를 활성화한다는 기존의 목적을 훼손하지 않고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방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축제조직위가 그 정도의 네트워크가 있는가, 예산은 충분한가 등등, 기획의 확장성과 실행력은 약했다. 축제가 처음 출범할 때 가졌던 ‘10년 후쯤 되면 우리 발레의 모습이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라는 기대와 희망은, 8년이 지난 지금 어떨까? 물론 발레뿐만 아니라 우리의 동시대 춤이 8년 전보다 진보한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우리 발레가 발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대한민국발레축제가 발전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가리킨다.
「8회 대한민국발레축제」는 국립발레단의 정기공연(6월 22~24일 오페라극장) 삽입을 제외하면, 유니버설발레단을 포함한 5팀의 토월극장 공연과 4팀의 자유소극장 공연으로 이루어졌다. 언뜻 보면 축제 자체의 발전은 제자리걸음인 것 같다. 대중성을 겨냥한 이벤트도 없고 뭔가 대표 공연이나 인물을 내세워 눈길을 끄는 전략 같은 기획력 없이, 평범한 무용행사로 개최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중장기적 안목 없이 매년 행사 치르기에 급급한 것은 아닌지, 축제의 발전방향성을 짐작하기 어려운 실정이긴 하다. 올해 예술감독제가 도입되었다고 하나 아직은 형식적으로 보인다. 하나의 축제를 만든다는 것이 1년 내내 매달려도 항상 부족함이 있는데, 이름과 자리만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뭔가 계속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은 ‘완료된 무엇’이 아님을 증명하므로, 그것이 진행 중이며 그래서 조금이라도 나아가고 있는 증거일 수 있다. 무엇보다 공연의 질, 좋은 작품의 등장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을 것이다. 올해 행사에서는 정형일발레크리에이티브의 공연이 바로 그 가능성이었다. 정형일의 작품은 무엇이 발레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주었다. 차진엽과 정형일의 작품이 6월4~5일 토월극장에서 그리고 김용걸과 김세연의 작품이 5월31일~6월1일 토월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정형일의 안무작 『일곱 번째 자세(The Seventh Position)』(2016년 초연)는 제목이 암시하듯 발레의 기본 포지션을 소재로 하여 가상의 ‘7번자세’에 대한 상상을 실현한 공연이다. 작품은 초연 때보다 정교하게 구조화되었고 무용수들의 실연은 더 완벽해졌다. 어떤 소품이나 장치도 없이 무대는 빛과 음악으로 채워지고 또한 변주된다. 본래 발레의 기본 규범은 기하학의 원리를 함축하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바로크 음악의 사용은 기본 포지션의 활용을 통해 설계된 무대를 구조적으로 훨씬 더 풍부하게 했다. 발레의 기본동작을 확장하여 그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한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매 장면은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듯한 유기적 관계를 연출한다. 타이트한 검정 의상의 무용수들은 가장 심플한 형태의 선을 형상화하고, 그 움직임들은 정확한 속도와 규모로 매번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낸다. 그리하여 움직임이 있지 않은 공간은 또 하나의 가능성이다. 보이지 않은 채, 채워지고 비워지는 시간과 공간이 감각적으로 묘사된다. 또 안무자는 움직임에 있어 발레의 기본동작들을 확장한 네오클래식발레를 따르고, 이는 엄격함과 정밀함을 고수하면서 동시에 자유로움을 확대하기 때문에 공연은 역동적이면서도 절제된 미감을 극대화했다. 다만, 작품의 성격으로 볼 때 공연시간 50분은 다소 길었다. 끝이 분명해야 작품이 선명해질 텐데, 뒷부분의 늘어짐이 공연 내내 유지했던 팽팽한 긴장을 힘없이 풀어버린 느낌이다.
차진엽의 작품 『빨간 구두-영원한 춤』(2017년 초연)은 안데르센의 동화를 현대적 관점으로 해석했는데, 인간의 욕망 특히 ‘구두’로 상징되는 여성의 욕망을 주제화했다. 드라마적 구성을 통해 극을 전개하는 형식이었는데, 줄거리를 구체적으로 서술하기보다 춤의 상징성에 더 비중을 둠으로써 캐릭터를 완성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춤으로 명확해져야 할 등장인물들이 입체적이지 못했는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작품의 주제를 약화시켰다. 반면, 상승하는 컨테이너 벨트에 신발들이 실려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그 끝에서 수직으로 추락하는 장면은 다중적인 의미의 이미지였다. 주제적 면에서 그것은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과 그 끝을 상징하는 듯했다.
김용걸의 신작 『더 타입 비(The type B)』는 주로 발레동작의 미학을 살려 안무를 했던 기존 스타일과 달리 메시지가 들어 있었다. 직접 ‘말’을 사용한 셈인데, 무대에서는 소리 대신 글자를 이용해 키워드를 제시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장면들을 단편적으로 엮은 구성이었다. 대사가 구성요소로 중요한 춤작품도 있기는 하지만, 그럴수록 움직임만큼이나 정교하게 이용되어야 한다. 움직임과 말소리의 결합도 어려운데, 시각적인 요소 자체인 ‘글자’는 움직임과 충돌하거나 간섭하여 자주 득보다 실이 되곤 한다. 안무자는 영어알파벳이 새겨진 큐브를 소품으로 사용해 단어를 만들어가는 방식을 취한다. 단어를 만드는 움직임이 작품의 부분이지만 주의력을 분산하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작품의 밀도를 약화시킨다. 더구나 글자를 익히는 어린이들의 카드놀이를 연상시켜서 내용의 구체성을 상실하고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를 반감시켰다.
김세연의 작품 『트리플 바흐(Triple Bach)』는 지난 2월 스페인국립무용단에서 초연한 작품을 확장했는데, 고전음악인 바흐 곡을 배경으로 발레의 기본요소들을 이용해 구성했다. 클래식음악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 안무는 음악성을 근간으로 동작을 구성하는 방식을 취하기 마련인데, 특히 음악의 구조를 동작으로 형상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안무가 단순했고, 익숙한 패턴 구성과 무용수들의 부정확한 움직임이 형식미를 돋보이지 못하게 했다. 발레에 대한 쉬운 접근을 보여준 공연이었다.
축제 공모작의 빈약함은 자유소극장 공연 프로그램에서 짐작할 수 있는데, 임혜경의 「이야기가 있는 발레 파트(Part) 2」(6월9~10일)가 이를 반증한다. 이벤트 같은 형식의 공연이어서 공모작들이 많았더라면 선정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짐작되기 때문이다. 자유소극장은 발레공연을 하기에 무대가 작아서 아이디어 중심의 실험적 작품을 기대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주목할 만한 작품이 없었다. 김지안, 김성민, 윤전일의 안무작들이 지극히 평범해서 오히려 임혜경이 해설자로 등장해 진행한 옴니버스형 공연이 특색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