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7일 인쇄
2018년 8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8월호 통권 510호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춤 스크랩북

 

어느 토요일 오후의 그 암담함도
- 내가 겪은 시련



조 동 화
(무용평론가)

우리 집에서 중학교를 다닌 김응도라는 형은 학교를 마치자마자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상사병(相思病)으로 죽었다. 그때 시골서 올라온 그 형의 부모님들이 하나 아들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던 모습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그 형의 나이가 되었을 때 별 고통없이 그와 비슷한 상황을 넘겼다. 그러나 그때부터 늘 생각되는 일은 응도형의 그런 심각성(深刻性)― 말하자면 무엇에 집착하여 죽을 수 있는 그런 심지(心地)를 나는 조금도 지니지 못한 죄송함 같고 일종 뉘우침 같은 심정이 되곤 하는 일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신앙(信仰)문제에 있어서도 같은 하숙생에 민(閔)이란 학생이 있었다. 그는 신앙문제 때문에 그렇게 고민했는데 선배격인 나는 그것이 우습게만 보이고 이해되지 않아 개똥철학자라고 놀려주곤 했다. 결국 민(閔)은 시골로 불려 내려가 보약을 먹는다더니 갑자기 결혼하고 다시 복학했는데 그 때문에 나보다 2년 뒤지게 되었으나 어떻든 그는 장가든 것에 하나도 부끄럼없이 의젓하기만 하여 도대체 나는 그런 것이 싫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뿐 아니라 민(閔)은 중학2학년생인 주제에 술에 만취될 때도 있었고 무슨 일이 있었던지 무기정학을 당했을 때 그렇게 태연하였던 태도는 지각 한번 못한 나에겐 존경스럽게 보였던 기억도 있다.
어떻든 졸업 후 처음이고 마지막인 민(閔)의 소식은 해방이 되어 그가 자기 고향에서 청년동맹위원장인가 하는 그런 것을 했는데 반동으로 몰려 총살당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총살소식을 조금도 놀랍지 않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던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그렇게 내게 인식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원치않는 직장을 오래 다니면서도 객기 한번 부려보지 못한 것이라든지 또한, 쉰 살 초반에 나의 마지막 직장이기를 바란 오래 살아온 일터에서 갑자기 쫓겨나게 된 어느 토요일 오후의 그 암담함이 며칠 못가 이내 몸에 배어 자존심 없이도 사는 방법이 익혀지는 것 같아 내 자신이 모질지 못한 것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요즘 혼자 있으면 응도형이나 민(閔)의 일이 생각킨다. 40년이 지난 지금에야 겨우 그들의 심지(心地)가 알아지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아직도 나를 압도하는 경지일 뿐 나는 영원히 그들의 심지를 지니지 못할 위인임이 그저 슬프다.

- 건강의 벗 1981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