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7일 인쇄
2018년 8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8월호 통권 510호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연극살롱

 

아사리 게이타의 죽음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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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길(高勝吉)(연극평론)

일본의 극단 시키(四季) 창설자 아사라 게이타가 사망했다. 일본 언론들은 지난 13일 극단 시키를 세계적 규모로 성장시킨 아사리 게이타가 악성 림프종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그는 4년전 알츠하이머로 투병한다는 논란과 함께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에 극단 출입이 제한되었다는 미확인의 보도가 나돌았는데 극단 창설 당시의 예술주의적 정신으로 복귀하여 최근까지 주로 프랑스 희곡을 공연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아사리 게이타는 한국 뮤지컬과 인연을 갖고 있다. 1994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로 처음 한국무대에 진출한 후 2006년 「라이온 킹」으로 한국에서 상업적 터전을 마련해 보려고 시도하다가 1년의 장기공연 끝에 36억 원의 적자를 내고 철수한 바가 있다. 그는 “서울은 작은 시장이 아니다” 라고 말하면서 가족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일본식 뮤지컬 문화를 한국에 정착시키고자 했지만 한국 뮤지컬의 척박한 환경과 한국뮤지컬협회의 집단적 반대를 이겨내지 못했다.
철수한 후에도 한국 뮤지컬계의 요구를 의식한 것인지 몰라도 「꿈에서 깨어난 꿈」 같은 창작 뮤지컬로 재진출을 타진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포기했다.
아사리 게이타와 관련해서 한 가지 의문은 그가 단순히 한국 뮤지컬을 돕기 위해서 한국에 진출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히트작 「캣츠」(1983)가 야외 천막극장에서 미증유의 성공을 거두고 승승장구하면서 세계의 뮤지컬계에 군림하고자 하는 욕망을 키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동아시아의 뮤지컬을 예술적, 경제적으로 석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한국보다 먼저 진출한 곳은 중국이었다. 1988년 중일우호조약 체결 10주년을 경축한다는 명목으로 북경 민족문화궁에서 뮤지컬 「한스 안델센의 사랑」를 공연했는데 서양식 뮤지컬을 처음 대면해서인지 1200여명의 관객이 기립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1995년에는 서양연극을 교육하는 북경의 중앙희극학원이 뮤지컬학과를 신설하자 중국과 일본에서 자신의 극단원을 선발하여 중국학생을 교육하게 하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공연할 때는 연출, 춤, 노래 등을 직접 지도하는 성의를 보였다. 1992년 중일국교정상화 20주년을 맞아 극단 시키는 창작 뮤지컬 「이향란」을 북경에서 공연하는 것으로 대망의 동아시아 진출에 교두보를 구축한다.
여기에서 아사리 게이타가 동아시아 진출을 위해 중국에서는 「이향란」를 공연하고 한국에서는 「라이온 킹」을 공연한 사실은 여러 각도에서 분석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여겨지는데 분명한 것은 아사리 게이타의 극단 시키가 한국에 진출한 후에 한국 뮤지컬이 충격을 받고 나름대로 환경개선에 노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뮤지컬 전용극장의 건립과 정부의 경제적 지원 등 외형적인 변화가 그것이다. 하지만 한국 뮤지컬은 아사리 게이타가 죽은 현재에도 극단 시키가 성취한 대중화와 자기화에 근접하지 못하고 있다. 뮤지컬 인구의 확대에도 고가의 관람료로 인해 소수인의 애호물에 머무르고 있으며 라이선스 뮤지컬의 범람 속에 창작 뮤지컬의 지반이 갈수록 허물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