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7일 인쇄
2018년 8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8월호 통권 510호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국악살롱

 

‘뿌리깊은나무 판소리감상회’와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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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尹重剛)(국악평론)

국립극장 앞을 지날 때마다, 외면하고픈 글자가 있다. “최초, 최장수, 최고의 완창판소리 무대 - 국립극장 완창판소리”라는 문구다. 최장수는 맞아도, 최초는 아니다.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는 1984년 말부터 시작했다. 12월18일부터 21일까지 네 분의 명창이 등장해서 나흘간 공연했다. ‘신재효 탄생 100주기 기념공연’으로, 변강쇠타령(박동진), 춘향가(성창순), 흥보가(조통달), 수궁가(오정숙)를 들을 수 있다. 최종민(당시 정신문화연구원 교수)의 해설이 함께 했다. 이렇게 시작된 완창판소리는 이듬해부터 거의 매달 이어져왔다. 이런 전통이 오늘날까지 쭉 계속되고 있으니 진실로 최장수는 맞다. 그간 국립극장 완창판소리를 위해 안팎으로 애쓴 분께 고마운 마음이다. 하지만 ‘국립극장 완창판소리’가 최초는 아니다.
1974년 1월18일에 시작된 ‘판소리감상회’로, 초창기엔 브리태니커사 벤튼홀(서울 중구 저동 2가 50-1. 영락빌딩 3층)에서 시작했다. 처음엔 ‘브리태니커 판소리감상회’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뿌리깊은 나무」란 월간지가 창간되면서, ‘뿌리깊은나무 판소리감상회’가 되었다. 무릇 판소리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이것을 모르거나 잊어서는 절대 안 된다. 첫 번째 시작은 박동진명창. 훗날의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형태의 시작이 박동진명창이었던 것과 같다. 그 이전의 판소리형태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대목을 소리하거나, 신문사 주최로 열린 판소리유파발표회였다. 전자는 ‘국악공연의 구색 맞추기’가 되기도 했고, 후자는 ‘연례행사’가 되기도 했다. 이런 방식에서 벗어난 것이 ‘뿌리 깊은 나무 판소리감상회’로, 명창과 고수의 2인이 등장하는 판소리로도, 충분히 ‘유료공연’이 가능함을 정착시킨 점도 기록할 필요가 있다.
‘판소리감상회’ 첫 번째 공연에선 강한영(1913- 2009)이 해설을 맡았다. 「적벽가」를 ‘인명(人命)과 인격(人格)의 존엄을 강조하는 전쟁문학’이란 시각으로 접근했다. 한국판소리학회와 브리태니커사의 공동주최로 한 ‘판소리감상회’는 우리나라 판소리 청중의 고급화와 대중화에 동시에 기여했다.
‘뿌리깊은 나무 판소리감상회’는 명창과 해설을 달리하면서, 판소리의 깊은 매력을 널리 알렸다. 성우향(2월) 박초선(4월) 조상현(6월) 김소희(9월) 성유향(10월) 박동진(11월) 정권진(12월)이 무대에 올랐다. 판소리 유파의 고유한 매력을 제대로 알린 시초가 되었다. 주요대목을 들려주면서 완창(完唱)을 지향한 점도, 국립극장 완창판소리와 맥을 같이 한다. 민간의 출판사가 이렇게 판소리에 관심을 두고 오래도록 지속했다는 건, 지금의 기업과 비교할 때 매우 특기해야 할 사항이다. 이렇게 판소리 감상회가 올곧게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한창기(1936~1997)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지면이 가능한 만큼 한창기의 ‘선구적 실천’을 채우고 싶은 심정이다.
현재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는 최고(最高)를 인정하지만, 최초(最初)는 아니니 바로 잡길 바란다. ‘뿌리깊은 나무 판소리감상회’는 한 때 매주 열리기도 했다. 공연을 기획해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더욱 알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