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7일 인쇄
2018년 8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8월호 통권 510호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세계의 춤기행

 

결국 난 순례자라기 보다 거리를 떠도는 관광객에 불과했다
- 산티아고 순례 기행 (2)




박호빈(朴豪彬)(현대춤·제로포인트모션 대표)

그리고 그 다음 아침….
아니, 새벽부터 알베르게에서 같이 묶었던 다른 순례자들의 조심스런 인기척들이 곧 분주한 소음으로 바뀌었다. ‘나’라고 더 이상 침상에 누워 있을 수 없었다. 옆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가누면서 일어났다. 실은 새벽 잠결에 무심코 옆으로 돌아눕다가 다리에 쥐가 다시 났다. 순간 입술을 꽉 문채, 다리를 조심스레 주무르면서 다리가 풀리길 기다렸다. 나로 인해 다른 이들의 수면을 방해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사람들이 순식간에 일사분란하게 사라졌다. 마치 입영한 첫 날 조교의 불호령에 연병장으로 사라진 텅 빈 내무반에 홀로 남은 기분 같았다.
젖은 옷가지들을 비닐에 싸서 배낭에 집어넣고 뒤늦게 홀로 남아 아침을 챙겨먹고 길을 나섰다.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에서 다음 행선지 쥬비리(zubiri)까지는 22~23km 정도의 하행코스였다. 발목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준비해온 테이핑으로 발목근육을 잡아 놨다. 은근히 효과가 있음을 무용하는 친구들은 잘 알고 있다. 론세스바예스의 아침은 너무 평화로웠다. 주변은 이미 깨끗하게 제설작업이 끝마친 상태였다. 어떤 사람들은 숲 속 길로 하행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도로를 따라 하행을 하기도 했다. 난 당연히 도로를 선택했다. 어제의 악몽이 사라지지 않았기에 눈 덮인 숲 속 길은 엄두가 안 났다. 하지만 그 길도 작은 마을을 지나가기도 전에 노란 화살표가 숲 속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하행 길은 생각지 않은 변수를 주었다. 눈길에 발목이 밀릴까 하는 두려움은 트레킹화 신발끈을 발끝부터 발목까지 꽉 묶는 우를 범하게 했다. 몸의 체중이 발 끝 쪽으로 쏠리고 더 나아가 15kg정도 되는 배낭이 더 가중되었다. 그 결과 발가락 사이에 공간이 없어 서로 부딪치며 나중에는 팅팅 붓고 다섯 개의 발톱이 시커멓게 죽었고 염증까지 생겨났다. 게다가 가끔은 축산 농장을 지날 땐 소떼들의 배설물과 진흙 위로 눈이 덮여있어 미끄러질까하는 두려움,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산에는 어김없이 크고 작은 돌들이 지뢰처럼 내 발목을 도사리고 있었다. 진퇴양난이었다. 그런 발을 위로해주는 것은 러브스토리에서 본 듯한 설원의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오솔길이 주는 작은 위안, 그리고 안정감 있는 고풍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한 작은 마을의 정감이었다.

4일째 도착한 팜프로냐(Pamplona)라는 큰 성곽 안의 도시는 짧은 기간 동안의 수고를 위로 해주고 있었다. 산 페르민 축제의 행사 중 하나인 엔시에로(Encierro)라고 하는 소몰이와 투우경기로도 유명한 이곳은 제법 도시의 구조와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주말 밤거리 또한 많은 사람들의 유흥과 관광객들로 붐볐다. 모처럼 도시의 밤풍경이 나를 자극시켰다. 호기심이 많은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바텐 위로 즐비하게 늘어선 스페인의 전통적인 생햄인 하몽들이 공중에서 춤을 추고 있는 광경이었다. 필사적으로 캉캉 군무 춤을 추기위해 다리를 들어 올린 것 같았다. 장관이었다. 돼지의 뒷다리가 저리도 클 수가 있을까. 난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이미 저녁을 챙겨먹은 터라, 가장 저렴한 단품 안주와 레몬향 맥주를 시켜 시식을 했다. 부드러운 내장 같았는데 입안에서 바로 사르르 녹아 들어갔다. 작지만 큰 위로였다.
순간, 종이컵을 든 집시같은 여걸인이 문을 열고 들어와 나에게 구걸을 했다. 난 잠시 당황해하며 무의식적으로 양어깨를 으쓱 올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서울에서 잘하던 방패막이었다. 바텐더의 저지로 그녀는 나갔지만 순간 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관용을 외면하는 나의 이런 관습적 행동이 결국 난 순례자라기보다는 거리를 배회하는 관광객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맛집을 찾아온 그런 먹방 관광객…
문득 론세스바예스의 알베르게에서 숙박부에 등록할 때의 설문내용이 생각났다. 순례여행의 목적이 종교적인 것, 정신적인 것 아니면 스포츠나 관광의 것인지를 물어보는. 난 당연히 정신적인 수행란에 체크를 했지만 오늘부터는 마음속으로 관광 쪽에도 체크를 살짝 했다. 대신 순례 중 편안함을 구하지는 않지만 맛을 탐미할 때에는 죄책감을 가지지 말고 나 자신을 충분히 위로해 주기로. 일종의 마음의 셀프 면죄부였다.

팜프로냐의 알베르게에서 우연히 산악중년아줌마를 다시 만났다. 난 무엇보다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팅팅 부어오른 발을 감싸 안고 물었다. “보시다시피, 제 발가락이 보통 난리가 아닌데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옆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들 바셀린 바르는 거 안보이나요!” 순간,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에서 아침에 식탁 위에 놓여있던 조그만 바셀린이 문득 떠올랐다. “웬 바셀린이 여기 있지?”하고 무심코 지나쳤는데. 그렇다! 누군가 쓰라고 놓고 간 배려였다.
그 이후론 바셀린 마사지는 순례 중 가장 중요한 일상이 되었다.
이로 인해, 지난 산티아고 순례 내내 나랑 가장 많은 정서적 교감을 가진 것은 다름 아닌 내 두 발이었다. 아래로는 진흙탕과 자갈 돌길… 때로는 무릎까지 빠지는 차가운 눈을 밟으며 인내하고, 위로는 70kg이 넘는 체구와 10kg이 넘는 배낭의 짓눌림을 감내하며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든 끝없는 평원을 걸어가든 하루에 최소 25km를 안 좋은 상황에서는 40km 가까이를 걸으며 33여일 800여km를 동고동락하며 버티어 왔다.
족궁이 내려앉는 느낌도 들었고 뒤꿈치가 으스러지는 아픔도 발가락이 퉁퉁 붓고 발톱에 피멍이 들고 3개의 발톱(귀국해서 2개 더 빠짐)이 빠지는 사례도 견디어야만 했다. 그러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아침, 저녁으로 바셀린 발마사지를 해주며 달래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때 그때마다 하는 입바른 감사가 아니라, 내 가슴에서 울리는 고마움을 위한 의식이자 기도였다. 지금도 간혹 아침마다 일어나면 두 발이 돌덩어리처럼 굳어져 있다. 내 나름 ‘카미노(Camino)증후군’이라 명명했지만 그때마다 다시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위안을 한다.
정말 잘 버티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너무 고마울 뿐입니다.
간혹 셀프 발마사지를 하다 문득 많은 무용가들의 발의 수난사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반사적으로 모든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게 된다. 어느 날은 발톱 빠진 내 발가락을 보면서 오래 전 예능 프로에 나온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 생각났다. 발가락 마디마디가 망가져있고 굳은살과 발톱들이 윤기를 잃은… 그녀의 발가락에 비하면 아직은 내 발이 더 이뻤다. 내 발가락이 트레킹화 속에서 사경을 헤맬 때 모든 발레리나의 발가락은 토슈즈 안에서 숨도 안 쉬고 그들의 원형이 틀어지는 것도 모른 채 기나 긴 여정을 보냈을… 맨발의 현대무용가들은 또 어떤가… 동물의 가죽을 벗겨내듯이 그들의 발바닥은 굳은살과 가죽갈이로 허구한 날 생살의 고통을 참아내야 했을 것이다. 엉거주춤 별 이상이 없을 것 같았던 한국전통무용가들은 물차 오른 무릎의 만성적 관절염에도 그들의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모두가 순례자의 모습이다. 그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어디서든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

8일째 되는 날엔 로그로뇨(Logrono)를, 13일째 되는 날엔 부르고스(Burgos)라는 중소도시를 지나오는 동안 유럽 특유의 밀밭이 있는 완만한 언덕과 포도밭, 겨울이지만 솔향나는 소나무 숲과 떡갈나무 오솔길들, 와인생산지와 해가 날 때는 멋진 길이지만 비가 오면 진흙탕 길로 변하는 비교적 다양한 색채를 느끼며 힐링의 순간들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런 축복은 알베르게에서 만나는 때론 낯설고 때론 익숙한 동행들이 주는 소소한 기쁨과 함께 배가 된다.

은연중 썸 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