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7일 인쇄
2018년 8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8월호 통권 510호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관무기

 

돈키호테의 후예들
- 유니버설발레단·김남진·고은령




권경하(權炅河)(북쇼컴퍼니 대표)

#맞불 놓다
『재난대비매뉴얼』에서 소개하는 산불 대처법 중 첫째는 ‘줄행랑’ 산불이 보이거나 타는 냄새가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튀는 거다. 상책 중 상책. 둘째는 ‘숨기’ 도망갈 시간과 힘이 없다면 지형지물을 이용해 불이 타넘어 갈 때까지 숨어 있는 거다(구덩이파기 추천). 차상책. 셋째는 ‘맞불놓기’ 자기 집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도전해 볼만하나 잘못하면 제 손으로 자기 집 태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핵심은 어디에도 산불과 싸우라는 말은 없다는 것. 올여름 폭염 대처법 역시 동일하다. 감히 싸우려 들지 말고, 멀리 도망가거나 숨을 것. 그러나 지난 달 꼭꼭 숨어 몸을 사려야 할 폭염 속에서도 뜨거운 테마로 무대 위에서 맞불 놓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이열치열의 묘미를 터득한 걸까.

#유니버설발레단 『돈키호테』(7월20일 충무아트센터)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언제부턴가 연말 겨울시즌의 최고 가족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경향각지에서 차이코프스키 음악이 흘러넘치는 것. 아이들을 무용에 친숙하게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발레단 운영에도 큰 도움이 되는 효자상품이다. 반면 여름 무용 시장은 전반적으로 비수기. 지난 수년 동안 여름이면 아이스 발레니 아이스 쇼니 해서 아이스 링크에서 발레작품을 어레인지한 무대가 성황을 보이기도 했으나 제대로 안착하는 데는 실패한 모양. 그럼 발레 역시 여름방학 시즌 내내 스토브 리그인걸까. 7월20일 충무아트센터에서 유니버설발레의 『돈키호테』를 보면서 스토브리그*가 아니라 정규시즌 개막전을 보는 느낌이었다. 발레의 연간 일정이 여름에 시작해서 봄에 끝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객석은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사흘간 5회 공연인데 티켓판매율이 80%선에 이른다는 극장측 주장. 작년 여름 『백조의 호수』 공연 때도 비슷한 성적을 냈다고 보면 여름 방학 시즌의 잠재된 발레 수요는 폭발직전이란 얘기. 게다가 『돈키호테』는 재밌는 작품이다. 화려하고 다채롭고 낙관적이고 유머러스하고 로맨틱한 작품. 한여름 더위를 뚫고 온 가족관객에겐 딱이다. 백조의 비극보단 훨씬 보기 편할 듯. 그래서 여름엔 『돈키호테』 겨울엔 『호두까기 인형』으로 정착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일본에서도 여름엔 『돈키호테』가 올라간다. 키요사토필드발레단이 야마나 시의 야외무대에서 7월말 8월초까지 『돈키호테』 6회 공연. 8월 중순에는 도쿄발레단이 『돈키호테』로 오사카 투어!

#유니버설판 『돈키호테』
지난 3월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서는 프티파 탄생 200주년 기념 행사가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기념식에 참석했고 마린스키발레단은 프티파 원래 안무를 복원해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공연했다. 마린스키가 하버드소장 무용보 및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복원해서 1999년부터 무대에 올린 프티파원전공연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지금의 상상을 초월하는,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전언. 현재 공연되는 『돈키호테』 역시 프티파가 1869년 초연한 작품이 아닌, 1900년 고르스키가 대폭 첨가 개작 한 것이 원전이니, 역시 『돈키호테』도 프티파 원전을 복원하여 공연한다면 상상초월의 다른 세계일 거라는 것. 그럼 원전을 복원하는게 좋을까. 재미있겠지만 불필요하다. 그 어떤 것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게 당연하니, 오히려 이쯤에서 유니버설판 돈키호테가 만들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발레단마다 신기술이 접목되고 변주되는 것이 당연하니 프티파 원전의 중심 뼈대를 놔두고는 한국 여름시즌용으로 재창조 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해설을 맡은 유지연이 반가웠다. 20년 전 쯤 갈라무대에서 본 이후로 처음. 자세 좋고 스타일 좋고 게다가 말씀도 잘하신다.

# 톨스토이
미식(美食)이 단지 맛난 음식물만을 섭취하는 걸 말하지 않는다. 레스토랑의 접근편의성, 인테리어, 종업원의 서비스, 테이블셋팅 등등을 포함한다. 음식은 마지막 화룡점정. 공연이라고 다를 것인가. 편리한 교통, 티켓박스의 신속과 친절, 공연장의 분위기 등등은 이미 관객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충무아트센터는 공연장 입구부터 ‘쟁의00일차’ ‘물러나라’등등의 플래카드. 격무에 시달린다, 쉬고싶다는 ‘성명서’ 등등이 빼곡하다. 이건 불편한 일이다. 무대에서 화룡점정이 되겠는가. 모처럼 어렵게 거금을 들여 구경온 관람객 입장에서 무대 뒤에서 누군가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건 불편한 거다. 이런 순간에는 톨스토이 생각이 난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가차없는 글을 옮기는 건 더 불편해지는 일이다. 조속하고 원만한 타결을 바란다. 아니라면 쟁의기간 중 공연장 문을 닫기 바란다. 정문에 그런 구호들이 걸려있다는건 이미 공연장 기능을 상실했다고 본다. 아닌가.

#솔리스트
프로그램북에 1막 거리의 무희 역에 최지원, 2막 요정여왕 역 한상이라 적혀있었는데, 이름이 바뀐 듯. 1막 출연이 ‘한상이’ 로 보인다. 좌우간 두 명의 솔리스트는 좋은 기량과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힘이 있고 자신감이 있다. 솔리스트들의 기량을 더 보고 싶지만 분량이 적은 아쉬움. 『돈키호테』는 키트리 역의 주역에게 많은 부담이 가는 작품이다. 3막 그랑 파드되를 위해선 체력 안배가 필요하다. 강미선의 경험과 연기력이 눈에 띈다.

#숙제
일본 매거진 7월호 표지엔 신국립발레단의 솔리스트 키무라 유리가 등장했다. 2015년 신국립극장발레단연수소를 수료하고 입단한 신예. 그러나 올해 입단 4년차에 『호두까기인형』 『백조의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세 작품에 주역으로 캐스팅.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지난 6월 K발레가 『클레오파트라』를 올릴 때 주연은 30대 중반을 넘긴 아사카와 시오리와 나카무라 쇼오코. 도쿄발레단의 우에노 미즈카 역시 비슷한 연배. 다른 곳들도 비슷한 처지. 일본의 팬들은 참신한 신예의 출현에 목말랐던 걸까. 한국은 어떤지 궁금하다. 신예의 파워와 참신함, 노장의 경험과 노련함 사이에서 경중을 가려야 한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숙제!

#김남진 『레드(RED)』 『또 다른 봄』(7월22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유럽 해안에서 지중해를 건너오다 물에 빠져 죽은 난민들의 시체를 건져 올리는 건 이제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올해 상반기에만 지중해에서 1000명 이상 익사 한 걸로 알려졌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일들이 유럽국가에 국한된 얘기도 아니다. 한국도 부딪힌 문제. 소위, 선진 문명세계에서 이들을 품어줄 정신적 경제적 지리적 여유는 없는 걸까. 만약 이들에게 베풀 아량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는 감히 위안부 문제나 그 어떤 차별과 불합리에 대해서 고발할 수 있는 윤리적 자격을 잃게 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므로 김남진의 문제제기는 타당한 것이다.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아픔을 얘기하는 것은 예술가의 사명중 하나. 『또 다른 봄』에서 지난날 위안부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나, 『레드(RED)』에서 지금의 권력관계에서 벌어지는 고통에 대해 고발하는 것은 가치있는 일이다. 이 문제제기는 일차적으로 가해자에 대한 고발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잠재되어 있는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경계인 것이다. 인간이 권력을 쥐었을 때 과연 폭력의 유혹에서 벗어 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게다가 개인간의 권력관계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누구나 가해자이며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점에서 더욱 주목 할 수밖에 없다. 『레드』의 김영채의 연기를 잘 보았다. 일반적인 관계에서 억압적인 관계로 넘어가는 변곡점을 볼 수 있었다. 『또 다른 봄』은 지난번 부산에서 본 것이었는데, 사뭇 느낌이 다르다. 부산에서의 것이 막 썰어낸 생선회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세련되게 요리된 느낌. 좀 거친 것이 남아 있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고은령, 스튜디오뮤지컬 「아빠가 사라졌다」(7월12일 부천종합장애인복지관)
부천장애인복지관에서 열린 공연은 오전 10시30분 시작이었다. 일치감치 7호선 까치울 역에 내려서 마을버스를 타고 이동. 부천장애인종합복지관 별관 4층 강당입구에서 흘러나오는 리허설 소리를 들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가에 서 있던 젊은 친구가 폴더폰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어이씨~” 한다. 잠시후 또 “어이씨~”. 여기는 장애인복지관. 슬쩍 다가가서 말을 걸어본다 - 전화 안돼요? - 안.. 받아요 - 친구? - 엄..마요 - 어디가셨는데? - 일 .. 나갔어요 - 혼자 보러 왔어요? - 친구들 올 거예요 - 혼자 마을버스 타고 왔어요? - 아뇨 걸어왔어요.. 겉모습은 청년인데 아이같다. 나는 이 친구의 사정을 알지 못하고, 게다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른다. 뒤로 물러섰다. 입장이 시작되었다. 준비된 접이식 의자는 총 120개. 공연시간이 다가오고 엘리베이터 열릴 때마다 가득가득 입장. 언뜻 살펴보기에도 장애의 유형과 정도가 너무 제각각… 한 선생님이 20여 명 데리고 단체 입장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이건 대학로 일반공연 보다 백배는 어려운 일이야!
오늘 공연된 「아빠가 사라졌다」는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개발된 작품. 그러나 막상 현장에서는 그들을 따로 분리해 공연할 수 여건이 되지 못한다. 공연팀은 10시반 공연을 맞추기 위해 새벽부터 음향설치와 리허설했고 공연 후에는 더운 날 골라가며(!) 대구, 진주, 강진, 여수로 지방투어를 간다. 어느 중진공연기획자가 자신은 문화운동가에 가깝다며 애로사항을 토로했었는데, 공연팀의 연출,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인 듯. 전국 어느 곳을 가더라도 특별히 여건이 좋은 곳이 있을리 없으니 자칫하면 매번 이상(理想)은 무너지고 공연 올리기에 허덕이게 되지 않을까. 공연 중간 배우가 트롯 가수 박상철의 「무조건」을 열창하며 분위기를 띄우는데 객석 곳곳에서 벌떡 벌떡 일어나 막춤을 추는 것이었다. 안은미의 공연을 보지 못했지만, 이런 느낌일까. 전국노래자랑 같으면서 또 다른 절절하고 기막히고 웃기는 것이었다. 어느새 빈자리는 없다. 의자를 더 깔고 뒤에도 가득. 약 160여명 관람. 모두 즐거워한다.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는 한 사회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중요한 지표.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것 같다. 작품은 가족사랑을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묶어낸 것이었는데, 소재개발, 난이도 등은 계속 연구, 발전해나갈 것이다.

#돈키호테의 후예
김남진은 현재와 과거의 아픔을 꺼내 문제를 제기했고, 고은령은 공연문화에서 소외된 장애인들을 찾아 눈과 귀를 해방시키려 노력했다. 유니버설은 돈키호테가 키트리를 도와주고 장도에 다시 오르는 모습을 멋지게 보여주었다. 당신들을 돈키호테의 후예라 불러도 되겠는가. 이들의 작업은 부조리를 타파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돈키호테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당장 그 아름다운 부인을 풀어주어라. 부인의 눈물과 슬픈 용모는 강제로 끌려간다는 확실한 증거이며, 이는 난폭하기로 이름난 자가 저지른 짓이리라. 나는 이 세상의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분이 바라는 자유를 드리지 않고서는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할 것이다.”(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