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7일 인쇄
2018년 8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8월호 통권 510호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관무기

 

삶을 관통하는 18가지 인생 이야기
- 김보람




김호연(케이 코뮌 연구위원)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김보람 안무 『관통시팔』(7월13~15일 삼일로창고극장)
삼일로창고극장이 재개관하였다. 1970년대 이른바 소극장 연극운동의 중심이었던 삼일로창고극장은 그동안 여러 부침을 거듭하다가 최근 서울문화재단에서 위탁 운영되며 이번에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이곳에서 공연된 대표작인 추송옹의 모노 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을 새롭게 해석한 네 명의 퍼포머의 작품을 선보이며 추억과 새로운 출발을 함께 공유하였다. 이 중 김보람 안무연출출연의 『관통시팔』(7월13~15일 삼일로창고극장)은 공연된 네 작품 중 유일한 무용작품이지만 추송웅의 「빨간 피터의 고백」의 여러 상징적 의미체계를 잘 펼치면서도 김보람 안무가의 색깔을 응축한 작품으로 인식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은 『관통시팔』이다. 이는 ‘춤, 예술, 예술가, 패턴, 만남, 탄생, 선택, 덫, 탈출, 이상 그 이상, 환상, 실체, 영역, 넘어, 두려움, 후회, 확신, 그’라는 18개 시퀀스로 나누어 이야기를 구성한데서 비롯되겠지만 욕의 발음을 의도적으로 명시하여 힘겨운 인생을 관통하거나 찰나에 외칠 수 있는 외마디의 중의적 표현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그동안 김보람의 작품을 그대로 투영한다. 그는 서사구조를 여러 장으로 분절하면서도 굳이 뚜렷하게 이야기를 담아내려 하지 않는다. 여러 시퀀스가 어떤 경우는 의미가 있는 것 같지만 이건 무엇을 표현하는지 의문을 갖게 만드는데, 굳이 어떤 의미부여보다는 그 순간을 표현하고 관객도 그걸 그대로 느끼면 될 뿐이다. 그래서 움직임의 반복은 극명하게 그의 작품에서 표현되는 특질 중 하나다. 이는 무음악을 통한 허두가 같은 기본 동작의 몸풀기나 하루 하루 똑같은 일상의 반복 등을 표현하면서 춤이 갖는 지난한 구도(求道)의 과정과 일상적 삶의 영속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하나하나 성취하는 모습에서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고, 코미디와 같은 삶이지만 그래도 한 번은 살만한 인생이란 긍정적인 의미도 함축한다. 이러한 모습은 일상에 순응하면서도 나름의 개성을 분출하는 여러 모습에서 드러나며 공연의 그 순간이 베스트라는 목소리로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

김보람의 작품에서 음악은 또 다른 표현 방식의 출구이자 마중물이다. 이 작품에서는 여러 시퀀스로 나뉘다보니 중심 음악이 있기보다는 그 주제와 순간적 표현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음악이 적재적소에 사용된다. 무음악도 ‘무형식도 형식’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낯익은 음악의 선택은 관객에게 기대지평을 열면서도 지평의 전환을 이루는 장치로 사용된다. 특히 영국 록 그룹 퀸(Queen)의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통한 움직임의 흐름은 이 작품에서 가장 절정이며 압권인 순간이다. 그는 원곡이 가지는 격정을 함유하면서도 음악에 맞추어 표현한다기보다 리듬을 통한 세심한 내면의 표출과 상황 묘사로 카타르시스를 주기에 충분한 요소를 지닌다.
흔히 요즘 말하는 원형적 전형성, 즉 시그니쳐(signature)로 그의 작품에는 여러 기호가 등장하는데 음악 전곡을 통해 유동적 흐름의 표현도 그 중 하나이다. 이는 무의미한 듯 보이지만 관객에게 표현을 집중시키는 호흡을 주고 상반되게 짧은 서사구조 속에서 단순화된 재생산으로 소통 구조 속에서 심미적 통합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빈사의 백조’에 맞춘 동작을 통해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 요소가 함유된 동작에서 그대로 투영된다.
그런 의미에서 김보람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키워드 중 하나는 ‘그로테스크’일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의 주인공처럼 일어나 보니 벌레가 되어 있는 기괴하면서도 희극적 상황은 인간의 무기력함에 함몰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그 또한 현실이기에 딛고 일어서려는 골계적 상황으로 공포와 연민을 함께 전달해준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보인 그의 몸짓과 흐름은 두서없어 보이지만 인간의 삶 그 자체이고 춤꾼의 일상이다. 춤꾼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 그걸 관객은 그 좁은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고 춤꾼의 땀 내음까지 공유하며 지평을 함께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추송옹의 「빨간 피터의 고백」이 드러낸 소통 구조 그대로이다. 인간처럼 행동 할 수밖에 없는 원숭이 빨간 피터처럼 그는 춤꾼으로 살기위해 현실을 딛고 일어서려 노력하고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이다.
이 작품의 결(結)은 이렇게 웃으면서도 슬픈 장면을 응집하여 마무리하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담화를 통한 표현이다. 최순실농단사건의 사과문이 내레이션으로 나오면서 관객은 실소를 하지만 진지한 그의 몸짓은 웃음기나 직설적 묘사가 없다. 그러다가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 자괴감이 든다’라는 말로 마무리되고 그의 움직임은 극한으로 치달으며 내가 지금 이 순간 이렇게까지 하며 춤을 추어야 하는지 관객에게 그 화두를 상기시킨다. 이는 물구나무를 서거나 울면서 비보잉을 하는 모습에서 안쓰러움과 춤꾼의 일상에 대한 전형성을 드러낸다. 이는 빨간 피터처럼 우리 혹은 무대 안의 내가 나이지만 이를 훔쳐보는 관객들의 모습의 반영이라는 상호텍스트성의 관계성이다. 그래서 그의 그로테스크한 웃음과 선한 눈빛 속에서 빨간 피터가 투영되었고, 해체를 통한 새로운 의미가 관객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어찌 보면 이 작품은 김보람이 그동안 선보인 작품의 결집체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가 이끄는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여러 작품이 일인무 형식으로 정형화된 점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열정적 움직임이 좁디좁은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관객과 소통하며 분출하였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