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7일 인쇄
2018년 8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8월호 통권 510호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동숭문화광장

 

지난 7월의 다섯 가지 상상
-




오진이(吳鎭異)(서울문화재단 전문위원)

지난해 6월에 발간된 서울문화재단 전 대표이사인 조선희 작가의 「세 여자」 란 역사소설로부터 이번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이 시작되었다. 100년 전 시베리아열차를 탔던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 세 여자는 어떤 시대적 소명으로 이리 멀고 험한 대륙까지 건너 간 걸까?
소설을 통해 처음 접했던 조선공산당 역사와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의 유형생활 이후 모스크바로 딸을 만나러 가던 중 병사한 독립운동가 주세죽에 대한 안타까움이 지난여름, 나를 시베리아횡단열차(TSR)에 오르게 했다.

첫 번째 상상, 고려인문화센터에서 국내 무용가와 공동 워크숍을
7월10일, 시베리아 기차에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 시간 여 떨어진 우스리스크에 들렀다. 그곳은 1863년 13가구의 이주를 시작으로 조선 말엽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굶주림과 억압,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의 망명이 이어진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다. 한 많은 고려인은 지난 2010년 고려인 강제이주 80년 기념으로 동북아재단과 국립박물관 지원으로 ‘고려인 문화센터’와 ‘고려인 역사관’을 마련하기까지 전통적인 문화와 역사를 지켜나가고 있었다. 특히, 아리랑무용단과 난타팀을 구성하여 고려인 3세~4세로 구성된 젊은이들이 힘있는 칼춤과 부채춤을 선보이고, 시베리아 소수민족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난타공연까지 한껏 실력을 뽐냈다. 현지에도 교사가 있었지만 우리나라 안무가와 무용가, 무용단체와 함께 워크숍을 하며 서로가 서로에 대해 몰랐던 것을 배우고 새로운 것을 창작해보면 좋겠다는 상상이 들었다.
이어, 발해 5경15부 중 말을 방목하여 기르던 솔빈부의 발해성터를 밟았다. 수이푼 강의 지형따라 드넓게 펼쳐진 평원에서 1,200년 전 발해인의 기상이 절로 느껴져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하고,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유허비를 비롯 항일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의 기념관에선 막막한 슬픔이 번져왔다. 특히 고려인 강제이주 첫 출발역인 라즈돌노예 역(驛)과 고려인들이 모여 살았다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에선 이런 아픔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부끄러움과 자책이 밀려들었다.
소설 「세 여자」 속엔 “1937년은 소련 내 조선인들에게 최악의 불운한 해였다. 극동지방 조선인 대략 17만 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고, 이주 직전에 당 간부와 지식인, 전문가 상당수가 즉결재판을 받고 처형됐는데 그 수가 2,500명이 넘었다. 김단야처럼 이들도 대개 일본밀정 혐의였다. 스탈린 정부로서는 소수민족 강제이주 정책이 일거양득이었으니 어느 쪽에 봉사하는지 의심스런 국경지대 소수민족들을 청소하고 중앙아시아 황무지도 개척하자는 것이었다. …(중략)… 유럽의 동쪽과 서쪽에서 코뮤니즘과 나치즘의 이름 아래 두 개의 팽창주의 파시즘이 학살을 밥 먹듯 하던 1930~40년대는 20세기에서 가장 참담한 시기였다. 아니, 인류 역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기 중 하나였다”고 나와 있건만 왜 내 기억은 흐릿하기만 한 건지?

두 번 째 상상, 발해터부터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까지 역사의 춤유랑
내년이면 대한민국의 뿌리가 되는 삼일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년의 해인데 우리는 과연 일제식민지 현실에 저항했던 무대중 하나인 연해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1914년 연해주에서 수립된 ‘대한광복군정부’며 1919년 들불처럼 번져간 연해주의 3.1만세 운동을 알고나 있는지 되물어본다.
몇 해 전 「서울댄스프로젝트」에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서대문형무소, 한강대교, 세운상가 등 장소 중심으로 되짚어 보는 ‘경성유랑’을 시민춤단과 함께 펼쳤듯이 대한민국 근대사를 스토리텔링하여 발해터부터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까지 연해주편을 이어보면 얼마나 감동적일까?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달리는 내내 야생화 가득한 대평원과 자작나무 숲, 이름 모를 강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환인의 한나라 - 환웅의 배달나라 - 단군왕검의 고조선 - 해모수의 부여 - 고주몽의 고구려 - 대조영의 발해와 통일신라 - 왕건의 고려 - 이성계의 조선 - 상해임시정부 - 대한민국으로 이어지고 있는 한민족의 역사.
발해터에서 보았듯 만주벌판과 동시베리아벌판이 삶의 터전이고 우리 민족의 시원이 바이칼이라는 설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해마다 8월이면 「아시아 샤먼 대회」가 열리는데 이미 김금화를 비롯한 우리나라 무당들이 멋진 내림굿을 선보인 적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2019년 삼일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즈음하여 국내에 임시정부기념관이나 독립운동 기반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왜곡된 역사교육으로 전혀 전달되지 않았던 연안과 연해주의 항일독립운동사를 복원해 나가는 일도 중요하지 않을지?
저항의 역사를 새롭게 깨우칠 방법은 직접적인 교육 말고도 공연이나 문학, 사진, 음악, 혹은 전시 등등 무궁무진 할 것이다.

세 번째 상상, 민족의 시원인 바이칼 호수에서 민족의 음악과 춤을
치타를 지나, 브랴티야자치공화국인 울란우데를 지나자 러시아의 갈라파고스, 시베리아의 진주라 일컬어지는 바이칼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이칼은 2,500만 년이라는 가장 오래된 담수 호수이자, 수심 1,637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기도 하다. 기다란 호수의 남북길이는 636km, 최장너비 79km, 최단너비 27km, 둘레길이 2,200km로 336개의 강이 바이칼로 흘러 들어오고, 반면 나가는 수로는 앙가라 강 하나뿐이다. 호수 안에는 22개의 섬이 있는데 가장 큰 섬이 제주도 절반 크기의 알혼섬이다. 바이칼의 명칭은 몽골어로 ‘자연’을 뜻하는 바이갈(Baigal)에서 연유했으며, 브랴트족은 샤머니즘의 샤먼을 뜻하는 ‘바이’와 호수를 뜻하는 ‘칼’을 붙여 바이칼로 부른다고 한다.
자료를 찾아보면 바이칼과 우리와의 연관성은 여러모로 확인된다. 지질학적 측면으로 빙하기 바이칼은 온천이 나오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었다. 구석기인들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바이칼 주변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고 해빙기가 되면 물이 불어나 많은 사람들이 남하했고, 더 따뜻한 곳을 찾아 만주와 한반도까지 와서 정착한 것이라는 설이다. 생태학적 관련성도 있다. 고구려나 고려는 순록을 뜻하는 ‘코리’(Khori 또는 Qori)나 ‘고올리’(Kholri)에서 유래된 말인데 바이칼 동쪽에서 순록을 기르면서 살아온 코리족(야쿠트족)을 비롯한 유목민들이 순록의 먹이인 이끼의 길을 따라 만주지역과 한반도로 이동했다는 설이다. 또 체질인류학적인 측면으로는 몽골, 만주, 한국, 브리야트를 비롯한 동시베리아인의 DNA가 몽골반점을 비롯 외양까지 거의 비슷하다는 설이다.
한편, 문화면에서는 성황당, 고시레, 곰방대, 씨름 등등 유사한 것이 무수히 많은데 유적들이 계속 발굴되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기대해볼만 하겠다.

네 번째 상상, 이르쿠츠크의 다양한 공연장에 올려지는 공동창작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일, 시베리아횡단열차 3박4일, 바이칼 호수에서 2일, 그리고 이르쿠츠크에서 2일을 보냈다. 이르쿠츠크는 1568년 모피가격이 급등하면서 사냥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정착과 개척을 통해 1661년 도시가 이뤄졌다고 한다. 이후 1825년 12월 14일 러시아 최초로 군주제와 농노제의 폐지를 주장한 혁명가들인 데카브리스트들이 유배 온 곳으로 비록 혁명에는 실패했지만 자유주의 이상향을 추구하는 데카브리스트가 중심이 되어 가꾼 도시답게 문화적인 아우라가 넘친다. 레닌, 마르크스, 고리키 등 인물명이 붙은 거리에는 동상이나 건물마다 러시아 혁명 시기(1905, 1917)나, 혹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1939~1945)등을 명시하여 누구라도 역사적 사실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시민들이 즐겨 찾는 앙가라 강변의 공원에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를 기리는 메모리얼 파크가 자리해 신랑신부들이 받은 부케며 축하 꽃들을 헌화하는 문화가 있을 정도이다.
마침, 드레스를 입은 한 커플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대구 가톨릭대학교 러시아어과 심용보 교수가 하라는 대로 “고리카! 고리카!”를 외쳤다.
‘고리카’란 마치 우리가 ‘뽀뽀해’라고 하는 주문이라는 것. 그런데 입맞춤을 소환한 “고리카 고리카”란 뜻이 남달랐다. 직접적인 행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맛이 쓰다’라는 뜻. 해석하자면 ‘우리네 인생이 쓰고 쓰니 청춘남녀의 입맞춤으로 삶을 달콤하게 하자~’는 취지다.
러시아에 호감이 느껴진 김에 사회시스템을 살펴보면 사회주의 국가답게 유치원 2년부터 초중고 11년, 대학에서 박사 과정까지 모두 무상교육이이고 무상의료에 집집마다 식구 수에 따라 무상으로 토지도 나눠줬단다. 교육복지에서 주거복지까지 해결되는 사회시스템을 보니 우리는 집부터 교육, 일자리 등등 치열한 경쟁 속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면 러시아는 국민 개개인이 기본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돌봐준다는 믿음이 든다.
심지어 저녁 6시 이후엔 가게 문을 연 곳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우리는 이제사 도입하기 시작한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워라벨’이라는 가치가 이 나라에서는 진작부터 실현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대체휴가제도도 진작에 도입했고 휴일도 쩨쩨하게 하루짜리는 없다는 러시아. 추운 날씨로 보드카를 즐겨 마시느라 하루 휴가를 줘서는 도저히 술이 깨지 않아 휴일은 2일이 기본이라고 하니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은가!
공연 또한 예약을 하지 않고는 당일에 볼 수 있는 공연을 거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매진사례였다. 문화예술을 사랑한 데카브리스트의 영향인지 이르쿠츠크 사람들은 먼저 보고 싶은 공연티켓을 사고 남은 돈으로 빵을 살 정도라나.
작은 도시 안에 서커스극장, 드라마극장, 인형극장, 필하모니극장, 음악극장과 박물관, 그리고 미술관에서 우리나라 아티스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또 상상해 본다

다섯 번째 상상, 삼일운동 100년, 임시정부 100년에 즈음하여 예술가와 시민이 되찾는 역사
고백컨대, 내게 극동아시아에 대한 정보는 「명자, 아키꼬, 쏘냐」로 기억되는 영화와 고려인 강제이주 몇십 년 기념으로 구성된 특별 기획 다큐멘터리를 슬쩍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직접 와서 보니 조선말 농민이주에서부터 일제 식민지시절 망명 이주에 이르기까지 아픔의 깊이와 넓이가 남다르게 다가왔다.
1920년대 극동지역의 조선족의 수가 무려 16만 명에 이르고, 학교도 176개나 설립되고 우리말과 글로 된 15개의 신문과 잡지가 발행됐다니 더더욱 놀랍다. 지금껏 독립운동의 거점은 상해, 하와이, 북미주중심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발원지와 핵심 활동지역이 러시아 연해주라니!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주세죽의 여정을 찾아 떠난 시베리아 여행이었지만 나는 여기서 한일합방을 거부하고, 식민지 현실을 뒤엎고 나라의 주인이고자 했던 수많은 영혼들을 만났다.
부디, 내가 이제사 잊혀진 역사, 숨겨진 사실들을 알기 시작한 것처럼 다가오는 삼일운동 백년, 임시정부수립 100년을 맞이하여 연해주의 독립투쟁과 고려인 강제이주의 역사를 춤으로, 문학으로, 전시로, 또 음악으로 다양하게 창작하여 온전한 해방의 역사와 평화의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ㅡㅡㅡㅡㅡㅡㅡ

※ 원고 안에는 안내를 해준 대구가톨릭대(구 효성여대) 러시아과 심용보 교수 및 동행한 여러 지인들의 이야기가 함께 섞여 있습니다.



*) 오진이: KBS, MBC 방송작가 활동 18년. 국립극장 홍보팀장을 시작으로 문화예술지원분야에 들어와 서울문화재단 창립멤버 사번 001로서 지난 15년간 네트워크팀장, 전략기획팀장, 창의예술센터장, 경영기획본부장, 문화사업 및 시민문화본부장을 거쳐 지금은 전문위원으로서 동료와 후배들을 응원하고 예술현장을 잘 듣고, 그들을 이롭게 하는 일을 자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