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7일 인쇄
2018년 8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8월호 통권 510호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꽃향시향

 

분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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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朴濟瑩)(시인, 달아실 편집장)

오후 네 시에 피는 꽃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네 시 꽃(Four o’clock flower)’이라 불리는 꽃이 있습니다. 네, 분꽃입니다. 유년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옆집 순이에게 분꽃 귀걸이 만들어 달아주던 기억을 가진 꽃이지요. 마당에 자리 깔고 모여 수다를 떨던 동네 아줌마들이 장독대 옆 분꽃들이 하나둘 피기 시작하면, “어머 분꽃이 핀다야, 저녁 지을 시간이 되었네” 하면서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곤 했던, 그 꽃이지요. 이를 두고 민영 시인은 「분꽃」이라는 시에서 “해질 무렵 / 장독대 옆 화단에 / 분꽃이 피면 / 이남박 들고 우물로 가던 / 그 여인이 보입니다”라고 했고, 윤석중 선생은 그런 네 시에 피는 분꽃을 가지고 「넉점 반」이라는 재미있는 동시도 지었더랬지요.

아기가 아기가
가겟집에 가서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시냐구요?”
“넉점 반이다.”
“넉점 반 넉점 반.”
아기는 오다가 물 먹는 닭
한참 서서 구경하고,
“넉점 반 넉점 반.”
아기는 오다가 개미거둥
한참 앉아 구경하고
“넉점 반 넉점 반.”
아기는 오다가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고
“넉점 반 넉점 반.”
아기는 오다가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해가 꼴딱 져 돌아왔다.
“엄마, 시방 넉점 반이래.”
― 윤석중 동시, 「넉점 반」 전문

엄마가 아기보고 가겟집 가서 시간 좀 알아보고 오랬더니, 딴에는 잊어버리지 않으려 “넉점 반 넉점 반” 소리내 외우지만, 가겟집에서 집까지 오는 데 아기를 홀리는 것들이 어디 하나둘이라야 말이지요. 닭도 봐야 하고 개미도 봐야 하고 잠자리도 봐야 하고, 분꽃도 따 물어야 하니 말입니다. 해가 꼴딱 져서야 집에 와서는 “엄마, 시방 넉점 반이래” 하는 것이니, 엄마로서는 이 아기 나무랄 수도 없고 그저 헛헛하니 웃고 말아야지요. 꼭 제 얘기 같기도 합니다.

분꽃이 피었다
내가 이 세상을
사랑한 바 없이
사랑을 받듯
전혀 심은 바 없는데 분꽃은 뜰에 나와서
저녁을 밝히고
나에게 저녁을 이해시키고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의 이 세상을
보여주는 건지,
이 세상에 올 때부터 가지고 왔다고 생각되는
그 비애(悲哀)보다도 화사히
분꽃은 피어서 꽃 속을 걸어 나오는 이 있다
저물면서 오는 이 있다
― 장석남, 「분꽃이 피었다」 전문

오후 네 시가 되면 어김없이 피었다가 다음날 새벽이 되면 피었던 꽃을 오므리는 분꽃. 다른 꽃들은 아침부터 이미 피어 절정에 달한 시간이 되어서야, 꽃도 저물고 날도 저물 무렵이 되어서야 분꽃은 피는 것이니, 장석남 시인은 저물 무렵 피는 분꽃을 보면서 “저물면서 오는 이” “꽃 속을 걸어 나오는 이”를 발견하기도 하지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아직도 그대 꽃 피울 수 있다고, 절망도 포기도 하지 말라고 그리 말하고 있지요. 분꽃은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아직 포기하지 말라고 오후 네 시에, 해가 저물 무렵에 기어이 꽃을 피우는 모양입니다.
분꽃을 생각하면 박완서의 소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사랑 때문에 비참하고, 그 비참한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슬픈 여자의 이야기. 거기에 보면 사랑의 본질을 분꽃에 빗댄 아래의 구절이 나오지요.

그 여자가 어렸을 적 저녁 나절이면 한꺼번에 피어나는 분꽃이 신기해서 어떻게 오므렸던 게 벌어지나 그 신비를 잡으려고 꽃봉오리 하나를 지목해서 지키고 있으면 딴 꽃은 다 피는데 지키고 있는 꽃만 안 필 적이 있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었다.

“그건 꽃을 예뻐하는 게 아니란다. 눈독이지. 꽃은 눈독 손독을 싫어하니까 네가 꽃을 정말 예뻐하려거든 잠시 눈을 떼고 딴 데를 보렴.”

어머니 말대로 했더니 신기하게도 그동안에 꽃이 활짝 벌어졌던 기억이 왜 그렇게 생생한지……
― 박완서 소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에서

6월부터 9월 초순까지 그야말로 한여름에 피는 분꽃의 분은 한자로 가루 ‘粉’을 쓰지요. 예전 화장품을 구하기 어렵던 시절, 분꽃을 화장품 대용으로 쓰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분꽃의 씨는 까맣지요. 그 정로환처럼 생긴 까만 씨앗에서 붉은 꽃, 노란 꽃, 분홍 꽃, 흰 꽃이 피는 것이니 신묘한 일이지요. 그런데 그 까만 씨앗을 어떻게 화장품으로 썼던 것일까요. 실은 그 까만 씨앗을 부수면 하얀 가루가 나오거든요. 그 흰 가루를 모아서 얼굴에 찍어 바른 것이지요. 옆집 순이가 분꽃을 귀걸이 해서 걸고 엄마 따라 그 하얀 가루를 찍어 바르던 모습,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아, 분꽃 귀걸이를 어떻게 만드냐고요? 분꽃의 아랫부분을 잡아당기면 기다란 수술이 달려 나오는데, 그걸 귀에 걸면 됩니다. 꽃으로 귀걸이를 하고 꽃으로 분을 바르던 그때 그 시절은 다시 오지 않겠지요.
분꽃 그 하얀 가루에 얽힌 절절한 이야기가 어디 한 둘이겠나 싶지만, 정낙추 시인의 「분꽃 이야기」는 그중에서도 가장 절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논둑머리 끝집 지날 때면 생각난다
까맣게 그을린 엄마 얼굴 하얗게 분칠해 준다며
철부지 외아들이 분꽃을 심었다고
자랑하던 형수

분꽃 한창 필 무렵
그 아들 방죽에서 영영 돌아오지 않은 뒤부터
방안에 틀어 박혀
벼포기가 새끼쳐도 나하곤 상관없다
콩꼬투리가 매달려도 나하곤 상관없다
까맣게 탄 얼굴 분단장에 정신 팔려
한여름 다 보내고
분꽃씨 영글 무렵
소슬바람 되어 사라지더니
미쳤다는 소문에 문짝 하나 덜렁
죽었다는 풍문에 담장이 와르르
술병 난 형마저 구름 되어 떠난
논둑머리 빈집 지날 때면 귀가 쟁쟁하다

장독대 깨진 항아리 곁에
올 여름도 만발한 분꽃
진분홍 꽃입술 달막이며
엄마 얼굴 밀떡같이 하얗게 분칠해 줄게요
까만 얼굴 밀떡같이 하얗게 분칠해 줄게요
― 정낙추, 「분꽃 이야기」 전문

정낙추 시인의 시 「분꽃 이야기」를 읽다보면 죽은 외할머니가 생각납니다. 막내 외삼촌이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정신병원에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을 때, 우리 외할머니도 그랬거든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던, 삼촌은 죽어서 못이 되었네
엄마야 누나야 가슴 속에서, 밤마다 출렁이는 시퍼런 못
녹이 슬고 있는 두 여자가 있었네

“엄마야 이제 그 못 뽑자 제발”

엄마는 이십 년을 보챘지만 외할머니는 죽을 때까지 심장에 못을 키웠네

“못 된 것 못 된 것”

외할머니 울음을 삼킬 때마다 못은 조금씩 깊어졌네
눈물샘이 다 마를 때까지 깊어진 못이 마침내 외할머니를 삼켰네
외할머니 봉분 올린 그 밤 엄마는 외할머니가 막내 삼촌 젖을 물리고 있는 꿈을 꾸었네

“엄마가 이제야 못을 뽑았구나”

엄마가 환하게 울고 있었네
― 박제영, 「못」 전문

생각하면 누구나 아픈 가족사를 가지고 있게 마련이지요. 가슴 깊은 곳에 다려지지 않는, 펴지지 않는 주름이 있겠지요. 그 주름을 멍이라 부르든 못이라 부르든 혹은 트라우마라 부르든, 그 주름 다리고 펴서 어떡하든 한 생을 살아내야겠지요. 어떤 상황에서든, 마른 사막에서조차 마침내 꽃을 피워내듯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