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7일 인쇄
2018년 8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8월호 통권 510호 |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관무기

 

초대받은 환상 속 세상
- 알렉세이 라트만스키




윤재상(尹在祥)(Art Management NYC LLC 대표)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알렉세이 라트만스키 안무 『휘핑크림(Whipped Cream)』(7월2~7일 Metropolitan Opera House)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이하 ABT)의 상주 안무가 알렉세이 라트만스키(Alexei Ratmansky)는 1924년 비엔나국립오페라에서 초연됐던 작품 『생크림(독일어 원제: Schlagobers)』을 2017년에 『휘핑크림』으로 재탄생시켜 무대에 올린다.
작년의 호평에 힘입어 올해에도 제프리 치리오(Jeffrey Cirio), 미스티 코플랜드(Misty Copeland), 서희, 코리 스턴스(Cory Stearns) 등 초호화 주역 무용수들로 구성해 다시 공연했다. 탄탄한 작품구성과 주연들의 열연을 바탕으로 ABT의 대표작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는데 모든 연령대의 발레 애호가를 위한 작품이라는 수식어를 뛰어넘어 클래식 발레사에 길이 남을 소중한 작품이 된다.

작년에 초연된 관계로 한국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작품내용을 자세히 소개하면, 주인공인 소년(제프리 치리오 분)과 그의 친구들은 첫 번째 성찬식을 한다. 성당의 큰 의식 중 하나인 이 행사를 축하받기 위해 이들은 제과점으로 초대되고 그들이 먹고 싶은 과자를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대접받는다. 휘핑크림을 특히 좋아하는 주인공 소년은 주체할 수 없게 많이 먹어 배탈에 걸리고, 아픈 소년을 치료하기 위해 모두 가게에서 퇴장한다.
아이들이 사라진 가게는 마법에 걸린 듯 모든 것이 살아난다. 티 플라워 공주(서희 분)가 잠에서 깨어 커피 왕자(코리 스턴스 분)와 서로 사랑에 빠지고 연이어 등장하는 다양한 과자들이 각자의 개성을 마음껏 뽐낸다. 이후 요리사가 휘핑크림을 만들며 등장하는데 온 세상이 그가 만들어내는 크림들로 뒤바뀌며 2막으로 연결된다.
너무 많은 휘핑크림을 먹은 탓에 아픈 소년은 어둡고 불길해 보이는 병원에 뉘어져 있다. 소년을 지키고 있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프랄린 공주(미스티 코플랜드 분)가 이끄는 행렬과 함께 도망간다.
한바탕 소동 후 소년은 다시 병원에 갇히는 신세가 되지만, 술병들과 프랄린 공주의 도움으로 의사와 간호사들을 술에 취하게 해 결국 소년은 병원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하고 공주의 왕국으로 간다. 소년은 왕국에서 성대한 환영과 축복을 받으며 그가 꿈꾼 것이 현실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휘핑크림』은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환상과 현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발레 『호두까기 인형』과 많이 닮아있다. 안무가도 이점이 의식됐을까? 안무하면서 곳곳에 주의를 기울인 모습이 읽힌다. 특히 초현실주의 예술가인 마크 라이든(Mark Ryden)이 무대 세트와 의상 디자인을 맡아 합쳐지며 기발하면서도 독특한 『휘핑크림』만의 무대가 만들어진다. 춤추지 않는 극 중 인물인 신부님, 요리사,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커다란 인형 가면을 씌워 연기하도록 하고, 분홍색 코끼리가 등장하는 행렬, 거대한 꿀벌, 얼굴을 가진 나무, 컵케익 의상을 입고 탄력 있게 춤추는 실제 어린이 발레리나들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기존에는 접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볼거리와 신비스러운 무대로 발레 『호두까기 인형』과는 차별화된다. 그만큼 『휘핑크림』에서는 안무 못지않게 마크 라이든의 무대미술이 작품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안무를 통해 춤으로 표현되지 못하는 영역을 다양한 무대 세트와 의상이 조화되면서 작품의 가치를 더욱 높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알렉세이 라트만스키 또한 인터뷰를 통해 무대 디자인과 의상이 본인의 창작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여러 명의 주인공을 포함하고 있는 작품의 특성상 무대에서 많은 수석무용수를 만날 수 있는 점은 덤으로 받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며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환상의 세계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이번 작품은 2016년에 신설된 ABT의 “라트만스키 프로젝트”에 의해 만들어졌다. “라트만스키 프로젝트”란 라트만스키의 신작 발표를 위해 5년간 1,500만 달러(한화 약 170억 원)를 모금해 조성하고 그 금액을 2020년까지 매년 나누어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휘핑크림』은 그 일환의 세 번째 작품이었다. 후문에 의하면 제작비로 300만 달러(한화 약 34억 원)가 쓰였다고 한다. 자금 확보와 실행을 위한 ABT의 제도가 부럽기 그지없다. 창작 발레를 위해 5년간 170억이라니….
작품의 관람도 관람이었지만 만들어지는데 지원받은 자금의 성격과 액수에 더 관심이 갔던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