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7일 인쇄
2018년 9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9월호 통권 511호 |2019년 1월 22일 화요일|
 

춤 스크랩북

 

영원한 현역·영원한 청년
- 송범 퇴임공연에 부쳐서



조 동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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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연치와 더불어 원숙한다. 따라서 예술가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정년퇴임과 같은 사회율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송범씨의 교수정년이며 국립무용단장 퇴임은 그래서 슬픈 생각이 앞선다.
허나 돌이켜 생각하면 송범씨처럼 실력과 시운을 함께 갖고 태어난 무용가는 없다. 장사나자 용마나는 격으로 조국 해방과 더불어 막 발돋움을 해야 할 청년무용가 송범의 바로 그 시기에 발발한 6·25전쟁은 무용의 구악과 보수들을 송두리째 쓸어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처녀지로의 무용영토를 그에게 제공한다.
어떻든 전후의 무용계는 이렇게 송범으로 해서 시작되고 그 후 40년을 그 한 사람으로 요약된다.
그는 주어진 영토에서 마음껏 날개를 펼쳐 현대무용―발레―한국춤을 번갈아 공연, 실험하며 끊임없이 자기변신을 거듭하여 극장예술로서의 무용의 틀을 만들었고, 많은 신인을 배출하였다. 특히, 한국무용의 진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국립무용단장 30년은 「한국무용」은 곧 「송범 춤」이라는 등식을 만들 정도로 명실공히 그는 무용계의 왕좌자리를 굳혔다. 그러니까 우리 현대의 무용사는 송범무용의 족적이며, 그의 무용작업의 고뇌·방황·공죄가 곧 그간의 우리 무용이 걸어온 표정이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송범무용은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고, 그 나눠진 순위가 바로 그의 변신의 단계로 볼 수 있다. 즉 『습작』 『출진』 『백색의 원무곡』 『라일락 피는 밤』의 발레, 『화관무』 『백의 환상』 『꿈·꿈·꿈』 『썰물』 『도미부인』 『은하수』 『그 하늘 그 북소리』의 한국무용 등 송범의 놀라움은 이런 다양한 무용들을 국내에 앉아 혼자의 노력으로 습득하여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꾸며낸 사실이다. 송범씨를 우리 무용세기의 유일한 인물로 말할 수 있는 사연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송범씨가 이 모든 종류의 무용의 씨를 뿌리지 않았던들 후일 해외에서 공부하고 온 전공자들이 정착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떻든 그는 모든 것을 정리하면서 처음부터 뜻을 두었던 ‘한국무용’으로 정착하여 퇴임하는 오늘까지 현역으로 살았다. 생각하면 우리 사회가 오늘날 정도로 여유만 있었던들 그의 천재적 재능을 세계의 하늘로 날게 할 수 있었을 텐데, 겨우 국내의 작은 영광에 멈추게 한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무용가에게 있어서의 사회적 정년퇴임은 곧 예술의 종결은 아니요 90세를 넘게 활약한 마사 그레이엄 여사를 우리는 보고 있다. 송범씨 역시 그럴 것을 우리는 믿고 있다. 지난 40년 전 그때 만일 내가 을지로 2가 큰길가에 있는 「국제보도」라는 잡지사로 찾아가 송범씨를 만나지 않았던들 무용과 연관 있는 오늘의 나의 인생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운명이란 이상한 것, 그때의 대학생의 호기심이 젊은 송범을 찾아가게 하였고 그에게 나는 춤의 첫걸음마를 떼었다. ‘국제보도사’는 송범씨의 형인 화가 송정훈씨가 경영하는 잡지사였다. 허나 춤을 배우면서 느낀 것은 나에게는 춤의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내 나는 춤추는 것을 그만두고 그의 곁에서 춤 구경만을 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그는 나의 앞에 큰 거인처럼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오늘까지 나는 그를 존경하고 있다. 그는 나보다 네 살 연하이나 같은 친구로 같은 동지로 그리고 스승으로….
그와 관계를 갖고 사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한다. 아직도 ‘송범’이란 이름에 이상한 향수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1992년 11월 26~29일 국립무용단 61회 정기공연-송범단장 퇴임 무용극 『도미부인』 팸플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