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7일 인쇄
2018년 9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9월호 통권 511호 |2019년 3월 24일 일요일|
 

의학살롱

 

미스터선샤인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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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金元仲)(시너지정형외과 원장)

요새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 구한말 배경의 TV 드라마에 부지불식간 녹아있는 한국 의학의 역사가 흥미롭다. 드라마에서 미국 공사인 알렌은 흰 머리가 성성한 노인으로 나오지만 사실 그는 매우 이른 나이에 머리가 빠져 나이가 들어 보였고, 노인을 공경하던 한국 사회에서 그 덕을 톡톡히 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1858년생이니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1890년대에는 마흔 전후의 비교적 젊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36세이던 1884년 갑신정변 때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매던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을 수술해서 목숨을 구해준 계기로 황실의 고문 의사 겸 고종황제의 정치 고문이 되었다. 그는 다음 해 조선 왕실에서 설립한 첫 번째 근대식 의료기관인 ‘광혜원’이 세워지자 그곳의 교수를 겸하면서 운영까지 담당하게 되었다. 광혜원은 처음에는 갑신정변에 연루되었던 역신 홍영식의 집을 압류하여 설치하였다. 한 해 뒤에 광혜원은 이름을 ‘제중원’으로 바꾸었으며, 환자가 늘자 1886년에는 지금의 을지로 입구역 일대인 구리개로 이전하였다. 무슨 이유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병원의 운영 주체는 1897년, 국가에서 미국북장로회로 변경되었는데, 환자가 늘어 공간이 더 필요하자 1904년 북장로회를 통하여 미국 부호 세브란스가 기증한 서울역 앞의 건물로 이전하게 되었다. 나중에 이 병원은 세브란스병원으로 발전하여, 연희전문학교와 합쳐져 오늘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이 되었다. 국립의료기관 하나 없는 나라의 위상이 좀 창피하였는지, 이후 1907년 정부에서는 국립의료기관인 ‘대한의원’을 설립하는데, 이것은 지금의 혜화동 서울대학병원 자리에 있었으며, 한일합방 후 일본이 설립했던 경성제국대학에 합병되었다가 서울대학교병원의 뿌리가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근자 서울대학교병원과 연세의료원사이에서 누가 광혜원/제중원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는지 다툼이 발생했고,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옛날에 망해버린 조선시대 병원이 이리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아마도 한국의 현대의학의 발상지라는 타이틀이 걸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대학교 측에서는 제중원은 국립기관이었고, 당시 선교회는 위탁 운영만 했을 뿐으로 소유권은 가지지 않았으며, 그 이후 고종의 왕명으로 제중원의 운영권이 회수되어 그 전의 세브란스 병원은 사립병원으로 남았고, 국립의료기관은 대한의원으로 재개원하였기 때문에 자기들이 제중원, 즉 최초의 국립의료 기관의 적통을 가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연세대학교에서는 서울역 앞의 세브란스 병원이 제중원이었는데, 일제시대에 설립되었던 혜화동의 제국대학 건물에서 그대로 진료하던 서울대학교 병원이 제중원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반박하고 있다. 보고 있자면 소모적이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갑론을박이 국력을 약화시키고, 결국은 자기나라 국민을 치료할 병원 하나 짓고 운영하지 못하는 형편이 되도록 나라를 말아 먹은 것을 뼈아프게 반성하기는커녕 누가누가 큰 지 도토리 키 재기를 하는 것 같아 몹시 걱정스럽다. 한층 더 걱정스러운 것은 구한말에도 제대로 기능을 못하던 한의사들이 아직도 환자 치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런 사이비 의료가 가능하게 만들어진 의료시스템이다. 구한말 배경의 드라마들을 보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과 몹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