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7일 인쇄
2018년 9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9월호 통권 511호 |2019년 3월 24일 일요일|
 

음식살롱

 

숨겨진, 홍제동의 맛난 국수집 - 찜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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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金鍾弼)(음식칼럼니스트·중앙고 교장)

오늘날의 밀가루는 우리에게 빵과 라면을 필두로 한 집 건너 하나인 칼국수집, 우동집, 짜장면집 등에서 보듯이 주식인 쌀을 능가할 정도로 보편화된 국민 먹거리의 식재료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우리 선조에게 밀가루는 양반들이나 별미로 먹을 수 있는 고급 식재료였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현재 전 세계의 농작물 중에 옥수수 다음으로 생산량이 많은 밀은 서역에서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는데, 예나 제나 소량밖에 산출되지 않는 곡물이다. 쌀을 주식으로 논농사 위주의 식량을 공급했던 우리 식단에 일제가 정책적으로 쌀을 대체할 요량으로 미국이나 러시아에서 밀을 수입하여 공급하고, 일제 당국이 개량한 일본종의 밀을 주로 이북 지역에 재배하도록 하면서 제분소가 생기기도 했지만 여전히 귀한 곡물이었다. 이런 밀이 다양한 먹거리로 개발되어 우리 입맛에 본격적으로 깃들게 된 것은 해방 후부터 6·25를 거치면서 미국의 잉여농산물인 밀의 무상 원조에 기인한다. 칼국수와 수제비 같은 빈한한 서민의 음식으로 밀가루의 소비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박정희 정권의 강력한 분식 장려정책도 한몫하여 오늘날처럼 밀가루의 대량소비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홍제천변 다리 옆 가건물에 식탁이 4개, 자리가 14개 정도의 정말 자그마한 음식점이지만, 주인장이 먹는 장사는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음식 조리에 내공이 깊다. 상호가 ‘찜우동’이라 무슨 우동 종류인가 했더니, 젊은 사람들의 시쳇말로 ‘우동을 찜한다’는 뜻이란다. 이 작은 집에 주인장 혼자서 조리하면서 국수 종류가 10여 가지가 넘고, 그것도 부족하여 심심찮게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거 보면, 음식 장사를 흥으로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이 집에 우동 종류 만해도 기본우동을 비롯하여 짜장우동, 카레우동, 김치해장우동, 베이컨숙주우동, 메생이우동, 까르보우동이 있고, 국수로는 잔치국수, 비빔국수, 냉모밀국수가 있고, 떡복이에 주먹밥, 김치전과 닭발 볶음까지 곁가지로 한다. 일견 너무 잡다해서 맛이 별로일 거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으나,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호가 갈릴 수는 있어도 그 어느 하나도 맛에는 결코 소홀함이 없다. 젊은 층에서는 까르보우동과 떡볶이를, 나이 든 이들은 우동과 비빔국수를 많이 선호하는 편이며, 계절에 따라 선택지가 달라진다. 주인장의 손님을 대하는 언행에 진심이 담겨 있어서 10대와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고, 음식을 넉넉히 내주며 음료 등을 잘 챙겨주기에 단골이 많아 줄서서 기다리는 적이 다반사다.
우리가 출출한 배를 꼭 호화롭고 비싼 음식점에서 위로받는 건 아니다. 격식을 갖추고 먹어야 하는 음식점의 불편함보다 오히려 허름하지만 정성이 담긴 곳에서 기쁘고 즐거운 포만을 누리는 적이 많다. 포장마차 같은 ‘찜우동’에서 주인장이 정성껏 만들어주는 우동과 국수를 밤늦은 시간에 먹는 즐거움이 있다. 벌써 10년이 돼가는 이 가게는 늘 오후4시에 열어서 새벽2시까지 한다. 술 한 잔 후 뭔가 속이 출출하다면 한 번 찾아봐도 좋다. 하지만 음식만 제공하지 주류는 팔지 않으니, 주당들은 다소 서운할 터이다. ☎ 010-4211-5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