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7일 인쇄
2018년 9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9월호 통권 511호 |2019년 5월 26일 일요일|
 

연극살롱

 

사라져 가는 한국연극의 선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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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길(高勝吉)(연극평론)

올해에는 유별나게 많은 수의 연극인들이 하나 둘 세상을 하직하고 있다. 원로배우들의 죽음도 그러하지만 하유상, 김흥우, 김문환, 심우성 선생처럼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한국연극의 큰 힘이 되어준 이들의 죽음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하유상 선생은 1950년대와 60년대 한국연극의 희망이었다. 유치진, 김영수, 차범석 선생과 함께 이분의 참신한 희곡이 없이 해방 후 한국연극의 재건은 불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희곡 「딸들 자유연애를 구가하다」 「미풍」은 신구세대의 갈등을 미묘한 필치로 그려낸 리얼리즘 희곡의 수작으로 이러한 희곡이 있었기에 국립극장이 번역극보다 창작극을 앞세워 공연하는 청신한 기풍을 진작할 수가 있었다고 본다.
김흥우 선생은 희곡작가와 연극학자로서보다 연극교육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1세대의 연극교육자들이 소홀히 했다고 보는 이론적 연구에 매진한 것도 알고 보면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자는 각오에서 나온 것이고 그 결과 동국대학교 연극학과가 인문학적 교육을 중시하는 전통을 갖게 되었다. 또한 그가 평생동안 수집하여 남해군의 ‘탈박물관’에 기증한 방대한 연극자료는 무엇보다 연극교육적인 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김문환 선생은 전공이 미학이었지만 한국 연극비평의 출발과 성장에 크게 기여한 공로자이었다. 1960년대 여석기 선생이 「연극평론」이라는 한국최초의 비평전문지를 발간하였을 때 가장 어린 나이로 평문과 번역을 기고하였다. 그는 사회철학적 미학의 입장에서 연극을 관찰하였다. 그래서 좋은 연극이란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의 인식과 극복에 기여하는 연극이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서 1980년대의 연우무대 연극과 허규의 전통연극의 현대화 작업을 기록하고 관찰하였다.
심우성 선생은 단순히 민속학자의 길만을 걸어오지 않았다. 초기에는 학구적 입장에서 저서 「남사당패 연구」에서 보듯이 민속극 현장의 기록과 연구에서 업적을 내놓기도 했지만 학구적 연구를 바탕으로 민속극의 실천과 창조에서도 큰 업적을 내놓았다. 「결혼굿」 「쌍두아」 등 굿형식의 1인극을 통해서 4·3 사건을 비롯한 민족적 불행을 상기하고 위로하는 민속극을 창작하여 호평을 얻었다. 말년에는 자신이 소원한 대로 공주에 ‘민속극박물관’을 개관했는데 이것은 한국민속극 연구와 계몽을 위한 주요한 기구가 되었다.
현재의 한국연극은 갖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외적인 성장과 변화에만 골몰해 있다. 그런 중에 작고한 연극인의 희곡은 시대적 상황과 미학적 완성이 고려되지 않은 채 후배들에 의해 무대 위에서 난도질 당하기도 한다. 연극교육의 현장에서는 배우양성이 인문학적 기초가 배제된 채 모방과 기술전수의 과정으로 낙후하고 있으며 연극비평의 현장에서는 좋은 연극이란 외양이 화려한 오락적 연극이 아니라 언제나 사회적 인식의 체득이 가능한 연극이라는 영구불변의 사실을 잊은 지 오래이다. 그리고 가장 창의적인 연극은 전통연극의 정신과 표현을 담아낸 것이며 이것이 미래의 바람직한 한국연극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