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7일 인쇄
2018년 9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9월호 통권 511호 |2019년 3월 24일 일요일|
 

시사살롱

 

“부자의 낙원은 빈자의 지옥으로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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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일(洪承一)(언론인)

청와대는 올해 들어 통계청이 무척 야속했을 것이다. 일자리 참사에 이어 분배 참사까지, 문재인 정부의 실정(失政)을 충격적 통계치로 낱낱이 온 국민에 중계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8월 후반기 발표만 봐도, 월 20만~30만 명 하던 일자리 증가 폭이 7월에 5000명으로 말도 안 되게 쪼그라들었다. 국제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이후 최악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상위 20% 소득계층 소득이 하위 20%의 5배를 넘어서는 사상 최악의 분배 쇼크를 통계청은 곧이어 전했다.
고용과 분배는 촛불 정부의 간판, 알파와 오메가 아닌가. 대통령 취임 1호 역점사업이 일자리위원회 아니었나. “최저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 탓만은 아니다” “연말까지 기다려달라” 등등의 청와대 변명은 이제 구차해 보인다.
이전 보수 정권들 탓으로 돌리는 대목에선 국민 시선이 더욱 싸늘해진다. “소득주도성장 폐기하라”는 야당 성명이 이제 단순히 정치공세로만 들리지 않는다. 일찍이 노무현 진보정권의 노동부 장관을 2년 지낸 김대환 박사조차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소득주도성장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동어반복”이라고 혹평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과 경제 실세들은 대선 공약임을 내세워 밀고 갈 태세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휴일 기자회견까지 열어 “오히려 소득주도성장을 서두르겠다”고 맞불을 놨다. 8월 하순 차관급 인사 때 통계청장이 전격 경질된 데 대해서도 이런저런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부자 두들겨 빈자 구하겠다는 홍길동식 선의와 신념에 들뜬 386 운동권 청와대 참모들은 오히려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음을 깨닫고 있는가.
‘나만 옳다’는 진영논리와 확증편향은 더는 국리민복을 책임질 실용정부의 몫이 아니다. 정의의 사도처럼 원전 마피아, 서울 강남 부동산, 사교육과의 전쟁을 불사하느라 국론분열과 국가경쟁력 약화는 이미 임계치에 이르렀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졌다.’
얼마 전 길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본 플래카드 문구다. 손님이 많이 든다는 빅토르 위고 원작 「웃는 남자」 뮤지컬의 광고카피였다. 부자도 아닌 내가 왜 불편한 심정이 됐을까. 가진 자에 대한 증오를 부추길 이런 슬로건이 이제 공연 선전 문구에 등장할 정도로 일상화됐는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자본가와 노동자, 착취와 피착취 대립구도로 보면 명료하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노동자와 자본가 성격을 두루 지닌 ‘자가노동 영세 자영업자’라는 계층이 수백만 명에 이를 정도로 현실은 안갯속일 경우가 많다.
김대환 박사는 진보 정권 장관을 지낸 경력 때문에 한쪽으로 치부되는 것이 불만이다. 작금의 정책실패를 풀 실마리가 담긴 듯싶어 항변을 옮겨본다. “시장 이야기하면 보수이고 분배 말하면 진보인가요. 넓게 봐야지요. 가장 위대한 스승은 현실입니다. 나는 진보·보수 같은 이분법을 거북해 하는 현실주의자일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