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7일 인쇄
2018년 9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9월호 통권 511호 |2019년 9월 22일 일요일|
 

춤산책

 

세상을 변화시킨 배짱과 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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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李東祐)(춤평론)

흔들리는 지하철 속에서 손잡이를 잡지 않고 열심히 문자를 보내고 있는 아주머니의 액정을 우연히 보게 됐다. 그 아주머니는 왼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오른쪽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쉬지 않고 열심히 그리고 계셨다.
‘청각장애인인가?’ 그런데 알고 보니 그분은 중국 분이었다. 문자를 한 획 한 획 액정위에 쓰면 그 위에 몇 가지 문자가 나와 원하는 한자를 고르게끔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한 자 당 5초는 족히 걸리는 것이다. 그 시간은 한글로 ‘안녕하세요’ 정도의 짧은 문장 정도는 족히 완성할 수 있는 시간이다. 게다가 한글은 문장의 서두만 쳐도 다양한 문장을 고를 수 있는 선택이 나오기 때문에 이보다 시간을 좀 더 단축시킬 수 있다. 거기에 비해 중국어는 문장은 고사하고 글자 하나하나를 골라야 하는 불편함은 물론, 원하는 표현을 최대한 표현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한자를 많이 외워야 가능할 수 있어 보였다.
일본어는 그나마 알파벳으로 조합하면 일본어로 변환되지만 히라가나, 카타카나 그리고 후리가나로 구성되어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일본어는 다른 언어에 비해 발음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은 편이어서 같은 음 다른 뜻이 많기 때문에 말장난 같은 만담이 발전됐으나 예전, 그러니까 타자기를 쓰던 시절에는 활자판을 맞추듯 글자 한자 한자를 찾아가며 문장을 완성하는 원리로 한글이나 영문 타자기에 비해 그 크기가 중국의 타자기만큼이나 어마어마했다. 일본의 시대극을 보게 되면 회사에서 타이핑은 다루기가 워낙 까다로워 직원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대중화 그리고 온라인 채팅이 하나의 소통 문화로 정착되면서 어느 언어로든 이전 보다 훨씬 간편하게 문자 대화가 가능해졌지만 일부 언어는 이렇듯 한글에 비해 아직도 하나의 문장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린다. 한글을 모국어로 쓰는 우리로서는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본디 글자란 배운 사람들과 권력자들의 전유물로 일부 특권층들 간 지식과 사상을 소통하기 위해 일반 백성들은 글자를 가르치지 못하게 한 일종의 저들만의 암호였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그 문턱을 낮추어 글을 알고자 해도 배우기 힘든 한자 대신 일반 백성이 서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익히기 쉬운 글자를 발명했으니, 그 선한 동기는 세계적으로도 과학적이고도 실용적인 글이라는 결과물을 탄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쓰는 우리 역시 다른 나라사람들이 겪는 불편함을 모르고 혜택을 거저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 따뜻한 배려의 마음으로 오늘의 안락을 누릴 수 있는 것이지 당연하거나 공짜로 된 것은 없는 것이다.
뒤늦게 친일 행각이 발견된 작곡가 안익태가 쓴 「애국가」. 그의 사후 50년까지 저작권료를 보장 받아 왔음도 뒤늦게 대중에게 빈축을 샀다. 대다수의 친중 사대주의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쓴 한글 창제의 의미와 가치와는 비교할 것도 못 된다.

글자의 편의성은 소통의 속도와 직결된다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른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가끔은 조선의 건국이 없었다면 한반도가 좀 더 유교에 얽매이지 않은 진취적인 나라로 남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한글창제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얼마나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국의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민족사관고등학교 학생들의 생활을 탐방하는 방송을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의 교육방식은 수평관계로 이루어진 서구 사립고교를 표방한 듯하지만, 거기에 덧붙여 생활한복을 교복으로 삼고 예절교육 등 한국 실정에 맞게끔 맞추어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생활한복을 입은 아이들이 모든 수업을 영어로 말하고 쓰는 방식은 좀 어색해보였다. 참고로, 한창 성장할 시기에 익숙지 않은 언어를 갑자기 주입하게 되면 모국어마저 흔들려버릴 수도 있기에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실례로, 영어에 적응을 못해 중도에 이 민족사관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이 더러 있다는 이야기도 이 프로그램에 담겨져 있다. 사람에 따라 언어를 빨리 습득하는 사람도 있지만 더딘 사람도 있다. 이것은 아이큐나 학업 성적과는 무관하게 개개인의 언어에 대한 은사가 다른 것일 뿐이다. 남의 언어에 대한 적응력 유무로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을 한 사람의 인생을 졸속으로 결정지어버린다는 것은 민족사관의 기치를 내세우는 교육기관의 맹점이 아닐까 싶다.

물론 현재 영어가 세계 공용어이기 때문에 유학을 가지 않고도 영어에 익숙해지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미래의 지도자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이면 자국의 문화적 소양을 키우고 모국어의 올바른 단어와 발음을 구사, 사용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국어교육이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한글의 우수성 역시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되지 않을까. 한글을 창제 할 당시는 조선이 중국의 정치적 간섭을 받던 시절이어서 당시 독자적인 글자를 만든다는 것은 마치 미국의 허락을 받지 않고 독자적이고도 위협적인 무언가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조선만의 독자적이고도 익히기 쉬운 글을 만들겠다는 배짱과 꿈이 아쉬운 오늘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총 칼을 앞세운 식민지화를 통해 강대국들이 자국의 문화와 경제를 약소국들에게 강요했다면 지금은 문화 콘텐츠의 경쟁을 통해서다. 한때 할리우드 영화나 팝송 그리고 일본 드라마나 노래에 심취해서 영어나 일어를 배우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한류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한글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하기보다는 세계에서 없으면 안 될, 그래서 그들이 한글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그런 꿈을 꿀 수 있을 포부와 배짱을 키우기에는 현실의 교육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한국의 교육은 어쩔 수 없이 입시 그리고 영, 미 서구문화권을 쫓으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한글은 한민족의 자랑일 뿐만 아니라 인간을 널리 이롭게 만들려는 홍익인간 정신과도 연결되며 디지털문명이 발달할 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우리의 글이다.
생각 없이 매일 타는 지하철 그리고 무심히 지나치는 인파, 무심코 마주 친 한 중국 아주머니 - 매일 쓰던 한글이 오늘따라 대단하고 한글을 알고 쓸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