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7일 인쇄
2018년 9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9월호 통권 511호 |2019년 1월 22일 화요일|
 

세계의 춤기행

 

가슴 속에 작은 씨앗을 품어 키우고
- 산티아고 순례 기행 (3)




박호빈(朴豪彬)(현대춤·제로포인트모션 대표)

부르고스(Burgos)의 알베르게 문을 나서는 순간, “아~!” 하는 감탄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아침부터 안개가 부르고스 전역을 덮쳤다. 짙은 안개에 파묻힌 부르고스 대성당이 어렴풋이 기억의 잔상 뒤편으로 사라지는 듯해서 가슴앓이 하듯 머리가 뜨거워졌다. 도시를 빠져나와 다음 마을로 향하는 들판이나 언덕, 강을 지날 때도 안개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순례자가 걷는 까미노(Camino)도 안개 속에 파묻혔다. 오늘만의 특별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신의 선물이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는 신성과 함께 하는 인생의 작은 축소판이다. 도시나 마을에서 살아가는 일반 사람들에겐 길은 지나가는 곳이지만, 순례자에게 있어 도시와 마을은 그저 쉬어가는 곳이며, 길 위가 그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까미노(길)는 마음의 정화를 선사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고 그들의 경험을 나누고 자연스럽게 공유한다. 순례자를 위한 숙소, 알베르게는 다양한 사람들의 집합소다. 인종, 민족, 국가, 언어, 종교, 직업, 나이, 성별과 상관없이 모여든다. 그들과의 관계는 단순한 친구로 출발해서 때로는 의형제로, 조력자로서, 그리고 연인으로도 발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초기에는 첫 인상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 혹은 열등과 우월과 같은 보이지 않는 세속적인 습성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동행한 사람과 적당히 밀고 당김의 대화가 진행되면 서로의 맘속 생각과 감정들은 지금의 안개처럼 불분명해진다. 그러다가도 어처구니없게 길을 잃고 헤매는 것처럼 돌아 돌아가다 보면 그 성향들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게 된다. 그렇지만 여행의 방법에 있어 정도(正道)가 없듯이 저마다의 성향 또한 귀천이 없다. 서로 각자의 방법으로, 성향으로 걷고 있을 뿐이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15일째 혼타나스(Hotanas)로 오던 중 분명 노란 화살표지를 따라왔는데 길을 잃었다. 외길이었기 때문에 오류를 범할 수 없었는데 귀신에 홀린 듯했다. 2~3km는 더 걸었지만 다행히 GPS가 길을 인도했다. “과학의 힘, 문명의 힘은 우연의 힘을 약화시킨다.” 그 다음날은 아침부터 주구장창 종일 비를 맞으며 걸었다. 17일째 산티아고까지 거의 400km, 절반의 위치에 까리온(Carrion)까지의 길은 고속화 도로로 앞뒤가 똑같은 일자이다. 구름이라도 있으면 덜 지루하지만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은 여정을 더욱 지루하게 만든다. 그 단조로움은 신체적으로 발목, 무릎과 허리까지 정신적으론 “내가 왜 걷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다다르게 한다. 그래서 일정을 짧게 잡은 사람들은 이곳은 버스로 패스하는 곳이다. 하지만 수행(?)을 원한다면 이 길을 강력히 추천한다. 까미노 중 가장 의미 있는 길이다. 20일째 레온(Leon)까지의 여정은 정말 고단했다. 도시도 물류수송 차량이 빈번히 노출될 정도로 큰 도시이다. 이 곳 다운타운엔 성곽 안으로 고도시가 잘 보존되어 있고 16세기 후반에 완성된 레온 대성당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설계한 카사 보티네스(Casa Botines)가 있다. 23일째 아스토르가(Astorga)에서 가우디가 주교궁(Palacio Episcopal)을 리모델링 설계한 “팔라치오 데 가우디(Palacio de Gaudi)”라는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독특한 궁전을 다시 만날 수 있다. 행복한 시간이다.

24일째 하루 종일 산을 오르고 올라 폰세바돈(Foncebadon) 산장 알베르게에서 낭만적인 하루를 보냈다. 구성원도 한몫했다. 프랑스 친구가 기타와 샹송을 부르며 분위기를 돋았고 얌전하던 스페인 친구가 클래식연주로 마무리했다. 잠시 여독이 풀리는 듯했다. 이것이 폭풍전야라는 사실은 꿈속에서 조차도 몰랐다. 25일째 눈안개로 시작한 터라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못 봤지만 신성한 기운이 느껴지는 철 십자가에서 기도와 명상을 하고, 아름다운 중세 성곽 템플라리오스성이 있는 뽄페라다(Ponferrada)에서 야밤에 베드버그한데 3방 물리고 밤샘추적 끝에 능지처참하느라 잠을 못 잤다. 그 다음날 30km 넘게 걷다가 정신적 육체적 한계를 느끼며 도착해야 할 작은 마을 트라바델로(Trabadelo)라는 표지판을 본 순간, 길 위에서 트인 말, 그래서 가슴으로 새긴 말, “감사합니다”를 흐르는 눈물과 함께 삼보일배 하듯 입 밖으로 내뱉으며 숙소까지 걸어갔다.
“하나, 둘, 셋, 감사합니다!” 한동안 삼보일배하며 걷던 중 울먹이며 고개를 땅 밑으로 숙이는 순간, 10여년 전, 내 생애 가장 미스터리했던 캄보디아에서의 통곡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정초에 스님들과 새벽탁발을 나갔다가 갑자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난 전생과 후생을 들먹이며 그 눈물에 대하여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었다. 그런데 여기 산티아고 까미노 한 가운데에서 그 의미를 찾았다. 그것은 모든 것에 대한 감사함이었다. 나와 관계한 모든 인연, 상황, 만물, 지금 느껴지는 모든 존재에 대한…. 신이 있다면 신에게 경배하게 되는 그런 자비로움에 귀의하는 100% 순도의 감사함이었다.

28일째 700km를 한 숨에 달려온 듯한 사리아(Sarria)까지가 고난의 최고 정점이었다. 물론 간밤에 알토 데 포이오(Alto de poio)에서 묵은 최악의 알베르게가 나에 대한 신의 마지막 시험이길 간절히 바랐지만 말이다. 구멍뚫인 창문으로 찬바람이 들어왔고 난방도 밤10시에 끊겼다. 홀로 그 넓은 숙소에서 담요를 3장이나 덮은 침낭 속에서 그렇게 떨어본 것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게다가 바람소리가 너무 세차서 귀신이 피리를 부는 소리 같았다. 꼭 날 잡으러 온 저승사자의 장송곡 같았다. 그래도 난 감사의 기도를 했다. “신이시여, 당신의 짓궂은 시험일지라도 행복하게 받겠나이다. 자장가치곤 선곡이 영, 거시기하네요...”
사리아에서 산티아고까지도 그리 평탄한 길은 아니지만 곧 도착한다는 희망의 끈이 맘의 짐을 덜게 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더 무서울 것도 내려놔야 하는 에고도 없었다.

31일째 아르수아(Arzua).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은 참 알 수가 없다. 사리아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브라질리언과 앞서 한국인들한테 풍문만 들었던 필리피노, 그리고 사리아가 첫 출발인 아르헨티나에서 온 농학 여인은 산티아고까지 가는 마지막 동행일 것만 같았다. 나흘만 더 가면 됐기 때문이고 우리는 서로 의형제를 맺듯이 약속을 했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사흘 만에 파기되었다. 여기 아르수아까지의 피로도를 못 이겼는지 약속한 알베르게에 도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들은 3km 전에서 주저앉았다. 우연과 필연이 다시 교차하는 시점이었다.
격심한 허기를 달래기 위해 저녁을 먹다가 어디선가 잠깐 인사를 나눴던 스페인 친구들이 레스토랑에서 내 여정의 운명을 바꿀 정보를 안겨주었다. 스페인 사람에게는 일요일 12시 정오 미사에 참석하는 것이 아주 큰 의미가 있다는, 그러기 위해서는 내일 산티아고 5km지점인 몬테 도 고조(Monte do Gozo)까지는 가야 한다는…. 잠시 고민되었다. 아르수아에서 몬테 도 고조까지는 적어도 35km을 걸어야 한다. 막판스퍼트치고는 내 두발한테 너무 잔인한 코스였다. 이미 피로가 극한으로 온 상태이다. “호기심은 어떠한 난관과 역경이라도 그 속으로 파고들 용기를 준다.”
가톨릭은 아니지만 문득, 그 미사가 궁금해졌다. 꼭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음이 움직이면 행동을 하게 되고 행동을 하게 되면 그 뜻은 이루어진다! ” 난 이미 마음이 움직였다. “그 마음이 움직여서 내가 여기 산티아고 길 위에 있지 않은가!” 800km의 도보완주만큼 그 이상의 의미를 나에게 선사할 기회라 생각했다.

33일째 산티아고로 가는 마지막 길.
3인의 동행을 잃고 다른 3인의 순례자에 의해 인도된 기쁨의 언덕(Monte do Gozo)은 짙은 안개로 드리워 있었다. 정말 너무도 가벼운 마음으로 걸었다. 가는 길은 나선형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걸어갔다. 전날 너무 많이 걸어서 인지 아침부터 허기가 몰려왔다. 잿빛 도시삽화 사이로 저만치에 노란 백열등이 켜져 있는 카페 안에서 크라와상과 커피로 조식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군침이 돌았다. 하지만 산티아고 대성당을 보기 전까지는 배를 채우기 싫었다. 빈속에 봐야 감동이 클 것 같았다. 순간 무언가가 내 왼쪽 뺨을 끌어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난 끌리는 대로 왼쪽으로 고개를 서서히 돌렸다. 건물들이 즐비한 좁다란 골목사이로 대성당의 탑신이 솟아있었다.
“아하~!” 감탄사와 함께 눈물이 맺혔다.
한동안 가만히 서서 멍하니 쳐다보았다. 순례에 들어선 첫날부터 지금까지 걸어왔던 모습들과 모든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리고 다가갔다. 다시 삼보일배하며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말,
“감사합니다!!!”
걷는 것은 단순한 반복을 통하여 일상이 되는 행복을 알려준다. 800여km의 여정을 두 발로 하나의 선을 그은 것처럼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나에게 있어 정화의 시간이었고 너무도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것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간직하게 했다. 첫날 피레네 산을 넘으면서 들었던 계곡수의 세찬 물소리는 어느 덧, 올림픽대로를 가르며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소음으로 바뀌어 있었지만, 난 내 가슴속에 작은 씨앗을 하나 품고 돌아왔음을 지금도 느껴지고 있다. 아직 뿌리도 내리지 못했고 싹도 트지 않았지만 물도 부지런히 주고 따뜻한 햇볕도 열심히 쐬어주면 언제가 작은 싹이 틀 것이다.
그 작은 씨앗을 품고 일상으로 돌아와 나는 다시 춤을 출 것이다. 신의 뜻대로 「Maktub(마크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