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7일 인쇄
2018년 9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9월호 통권 511호 |2019년 9월 21일 토요일|
 

미술살롱

 

비통한 이들을 위해 부르는 분홍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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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鄭在淑)(미술기자)

최민화(64)는 강파른 얼굴에서 눈이 유독 빛나는 화가다. 현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매섭고, 세상과 불화해온 까칠한 눈빛은 뭐든 삶을 옥죄이는 것이라면 다 뭉개버릴 듯 사방을 파고든다. 캔버스를 적시며 번지는 그의 분홍 물감처럼.
색(色)은 그의 강력한 언어이자 무기다. 시대의 기미(機微)를 읽게 하는 분홍을 획득한 화가는 득의만만하다. “우리는 흰색과 붉은색만을 생각한 것에 불과하다. 나는 분홍의 그 방대한 범주를 제시하고자 한다. 내가 얻은 것은 분홍색이다.”
이 ‘분홍 선언’은 의미심장하다. 색의 정치학이다. 미술계에서 ‘최민화 표 분홍’은 ‘주관적 색채학’이란 평을 받는다. 좌파의 빨강과 우파의 하양, 그 대립을 중화시키고 무화시키는 분홍의 힘을 그는 자신의 그림 전면에 흩뿌린다. 1985년 ‘들풀’전, 1988년 ‘그대 뜬 눈으로’전에서 씨앗이 된 것은 이 시대 청춘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었다. 그는 ‘쓰린 술’을 들이부으며 “분홍은 색채의 승리를 의미 한다”고 외쳤다.
최민화 작가는 그 분홍의 정신으로 18회 ‘이인성 미술상’ 수상자가 됐다. 4일 대구미술관에서 개막하는 「최민화: 천 개의 우회(迂廻)」(12월16일까지)는 지난 40여 년 좌충우돌 부랑과 반항의 미술인으로 시대정신을 표현했던 작가의 회고전 성격을 띠고 있다. 요절한 비운의 화가 이인성(1912~1950)이 그에게 영광을 준다. 천재 화가로 불렸던 이인성, 색을 잘 쓰던 이인성, 물기 촉촉한 우수에 젖은 화폭을 보여주던 이인성은 최민화와 우회해서 만났다. ‘80년대에 우리가 미술 분야에서 제출한 것, 그 귀한 민족형식과 민중정서는 다 어디로 갔는가’라고 전시로 묻고 있다. 어느 순간 어렵게 얻은 그 소중한 가치를 폐기처분 해버리고 끼리끼리 진영을 확산하는 꼴이 된 오늘의 미술계를 그는 작품으로 한탄하고 있다. 80년대에 미술이 차지했던 시대적 가치는 빛을 잃었다. 그는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1800년 이전에 만들어졌던 시각적 이미지가 없어요. 전통이 너무 심각하게 단절됐죠. 일제강점기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의 파괴가 심했어요. 제가 ‘상고사’ 연작을 시도하는 배경입니다. 중국과 일본은 과거의 이미지를 복원했어요. 오늘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서 활용되는 민족형식의 힘이 얼마나 큰지 살펴보면 정말 아쉬워요. 회화의 힘은 전거가 있을 때 더 배가됩니다. 곰브리치가 쓴 「서양미술사」의 핵심은 하납니다. 회화는 앞 단계를 딛고 발전한다.”
최민화의 그림 표면은 이인성의 그것처럼 엷고, 대상은 색채 속에서 가볍게 부유한다. 삶을 억압하고 누르던 헛것들의 무게가 뭉개지면서 새로운 시야가 열린다. 그의 그림은 자유를 만끽하며 숨 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단순하고 선명한 부감 속에 인물들은 노닌다. 비통한 이들을 위해 부르는 그의 분홍색 노래는 우리 전신을 휘감아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