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7일 인쇄
2018년 9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8년 9월호 통권 511호 |2019년 3월 24일 일요일|
 

영화살롱

 

서버비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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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식(朴泰植)(영화평론)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에 주로 지었던 국민주택 단지를 아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름 살기 편하게 지은 깨끗한 집에 그럴듯한 담장과 정원까지 갖춘 주택이라 서민들 사이에선 꽤나 선망의 대상이었다. 비록 우리와 사정이 달랐겠지만 미국에서도 2차 대전이 끝난 후 1940~50년대에 대규모 주택단지들이 우후죽순처럼 설립되었다고 한다. 소개하려는 영화 「서버비콘」(Suburbicon, 조지 클루니 감독, 극영화/범죄물, 미국, 2017년, 105분) 역시 미국의 고속 성장기를 배경으로 한다.
1955년, 주택단지인 ‘서버비콘’이 조성된 지 12년이 지났고 나날이 발전해 이제는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주거환경을 자랑하게 되었다. 주민들 모두 윤택하고, 인구 6만에 학교, 경찰서, 종합병원, 소방서, 은행, 깔끔한 도로망, 거기에 화창한 날씨까지 보장되니 누구라도 이사 들어오고 싶어 한다. 중산층 백인들이 모여 살기에 알맞은 곳이다. 그 중심에 가드너(멧 데이먼)의 집이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 부인 로즈는 사고로 하반신을 쓰지 못해 쌍둥이 여동생인 마가렛(줄리안 무어)이 집안일을 돌보아준다. 가드너의 아들 비키(노아 주프)는 소극적인 성격이라 반항 한번 못하고 내내 부모 말에 순종한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괴한들이 침입하면서 평온했던 가정이 망가지고 만다. 로즈가 괴한들의 손에 사망한 것이었다.
이야기의 또 한 축은 가드너의 옆집으로 이사 온 마이어스 가족이다. 그들은 흑인으로 서버비콘에 처음 입주한 처지다. 마이어스 가족 때문에 마을 회의가 열렸고 그 후로 노골적인 공격이 시작된다. 마이어스 부인은 슈퍼마켓에서 봉변을 당하고 아들 앤디는 놀림감이 되고 밤에는 불량한 백인청년들이 떼로 집 앞에 몰려와 위협을 한다. 하루빨리 여기 평화로운 백인 마을에게 사라져달라는 요구가 온 마을에서 빗발쳤다.
영화의 제작의도를 살펴보겠다. 감독은 백인사회를 고발하려는 확실한 의지를 갖고 있다. 백인들은 저속한 말이나 천한 행동과는 거리가 멀고, 언제나 깔끔한 복장에 잘 정돈된 그림 같은 집에 살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상류층이 속하는 성공회신자로 종교적 조건까지 완벽한 갖추었다. 나무랄 데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교양으로 잘 포장된 이면에는 지독한 인종차별과 추악한 속셈과 천륜을 거슬리는 욕망이 숨겨져 있다. 환한 얼굴로 사람을 현혹하며 내뱉는 ‘영혼 없는 립 서비스’가 그들의 특징이다. 흑인 추방을 결의하는 회의에서 그들은 “우리는 문명인으로서 인종통합의 시대를 지지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니그로들이 준비가 돼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그들은 우리 사회를 퇴보시키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외쳤던 자들이 마이어스 집에 몰려가 자동차를 불태우고 집을 파괴하고 말았다.
가드너는 아들 비키와 식탁에 마주앉아 온갖 이야기를 해주면서 마가렛이 준비한 샌드위치를 마지막 조각까지 알뜰하게 먹어치운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니키는 야구 글로브를 끼고 나가 마침 건너편에서 혼자 야구놀이는 하는 앤디와 담을 사이에 두고 공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영화의 지향점을 짐작케 하는 세련된 연출이었다. 흥미로운 영화감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