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8일 인쇄
2019년 4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4월호 통권 518호 |2019년 5월 23일 목요일|
 

동숭문화광장

 

당사자 vs 매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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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이(吳鎭異)(서울문화재단 전문위원)

최근, 온 사회를 들끓게 만든 클럽 버닝썬 사태는 억울하게 폭행당한 시민 김상진 씨의 고발로부터 시작되었다. 사립유치원의 에듀파인 수용 등 회계 투명성 확보를 위한 비리 척결 문제도 유치원 학부모로 구성된 ‘정치하는 엄마들’의 적극적인 참여로부터 시작되었다.
평소 청년농민·농촌청년 당사자들의 담론이 부족하다고 느낀 청년들은 지난해, 정부나 언론, 주류학자들이 맡아 온 담론이 아니라 청년농민들이 중심이 되는 ‘아무도 안 해서 우리가 한다’는 토론회를 상생상회에서 열기도 했다.
골형성부전증으로 지체장애 1등급 장애인인 변호사 김원영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란 책을 펴내고, 국가인원위원회 정신보건과 조사관의 경험을 바탕으로 차별문제나 인권문제에 집중하여 장애인과 관련된 법 제도상의 변화들을 이끌어내고 있다. 유엔장애인권리 협약에서는 “우리 없이 우리 문제를 논하지 말라”며, 장애관련 패러다임도 의료와 돌봄 모델에서 인간의 권리중심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있다. 북한의 대남선전매체인 「메아리」는 지난 3월22일 “중재자, 촉진자가 아닌 당사자 역할을 해야”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우리정부에게 중개자나 촉진자가 아니라 당사자로 나서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한편, 문화예술계에서는 매개자 바람이 거세다. 생활문화가 강조되면서 생활문화와 전문예술을 연결해주는 창작 매개자의 등장부터 기업과 예술단체를 이어주는 예술경영 매개자, 공공기관과 예술단체를 연결해주는 문화행정 매개자 등등 문화예술 영역 전방위에서 매개자란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융합과 협업, 협치가 정책 트랜드가 되면서 이 분야와 저 분야의 경계를 넘어 연결하고 매개하는 역할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문화 매개 개념은 1980년대 프랑스에서 등장한 후 문화 정책에 적극 반영되었으나 문화 매개자라는 용어 수용에는 호의적이지 않았는데 2000년대 이후 문화예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문화예술콘텐츠와 이용자 사이의 거리를 보다 가깝게 해주는 역할로 문화예술 매개자의 활동과 역할이 활발해지고 있다.

대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트랜드를 읽고 정보를 수집해 박물관, 미술관, 극장 콘텐츠 기획에 반영하기도 하고, 예술가들의 언어를 설득의 언어로 바꿔 시장을 만들기도 한다. 또 경영과 예산 관리,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통한 촉진 활동에도 개입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력들과 협업을 꾀하기도 한다.
나부터도 문화예술 전공자도, 같은 분야의 활동가 출신이 아니라 방송작가에서 국립극장 홍보팀장으로, 그리고 서울문화재단으로 전환하여 문화예술의 언어를 언론, 공공, 기업 등에 새롭게 전달하고 그 가치를 확산하는 매개 역할을 해오고 있는 셈이다.
일상에서의 매개자 역할도 증가 추세이다.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고전적 개념의 부동산 중개를 시작으로 일차 소비자가 직접 주인과 거래하지 않고 중간 매개자를 내세워 직접 대면의 피로도와 감정소모를 피하기도 한다. 운영의 효율화를 위해 집구하기, 교통이용, 대리운전 등등 온라인 플랫폼 사업이 대세일 정도이다. 과거 경우 층간 소음 및 단지 내 차량 접촉사고 등의 경우 일대일로 대면하여 해결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요즘은 관리실을 통해 간접적으로 소통하고 해결한다. 공공식당에서 소음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소음의 당사자나 원인 주체에게 직접 전달하기보다 식당 주인을 통해 개선을 요구한다. 많은 조직에서도 개개인이 직접 부딪치기보다 조합 등 중간 매개기구를 만들어 대리역할을 수행하기도 하고 문제점을 완충시키는 효과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매개 기능과 역할의 득세 속에서 개인의 당사자성이 알게 모르게 쇠퇴하고 약화되는 경향도 있다. 직장인으로 성장한 딸애가 기한이 종료된 원룸에서 나와 투룸을 장만하는 데 전세금 관련 문의를 집주인에게 직접 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 수수료를 준만큼 중개업소에서 전세금 지불 등 금전적인 문제부터 계약서 상에 있는 사항에 대해서 건조하게 점검하는 일이 그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뉴 밀레니엄 세대답다.
연애도 1:1로 당사자가 되어 연애하기보다 연애 중개소를 이용하고 개인의 메이크업, 헤어, 뷰티 관련된 것부터 취미활동에 이르기까지 요즘은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대리인이라는 이름으로 중간 역할의 등장이 흔하다. 당사자가 직접 하지 않은 만큼 추가 비용이 더 발생한다.
현대 자본사회는 소비의 중심인 경우만 사람이 환대받는 터라 이제는 소비가 아닌 생산의 주체로서 당사자가 되는 메이커스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우리 사회는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진 서비스와 상품 속에서 타자화되어 매개 역할 없이는 속수무책인 경우도 많다.

혼돈이다. 시민의식은 당사자 정신으로 진화하고, 문화 예술계 흐름은 매개가 대세론이다. 이런 와중에 당사자와 매개자는 어떤 균형을 이뤄야 하는 걸까?
최근 우리 재단의 지원사업 지연 사태로 예술계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보니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새로운 문제의식이 든다.
지원금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예술생태계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이제 끝장토론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을까?
특히나 창단 100주년을 기념해 내한공연을 했던 LA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탄탄한 재정시스템을 노승림 컬럼니스트의 글을 통해 보니 더더욱 그렇다. LA필의 상주공연장은 월트디즈니 콘서트홀로 3,000억 원의 공사비를 투입해 지어졌고, LA필의 천문학적 예산은 상당부분 기부금으로 채워진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국가가 예술계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미국 문화정책의 원칙상 정부지원을 거의 기대할 수 없고, 그만큼 민간 후원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이번 투어에도 14명의 후원자가 자비로 투어에 동행하며 악단을 응원했다고 한다.*
그 비결은 LA필과 시민, 그리고 사회의 적극적인 소통에 있다고 해석한다. 난해한 고전음악이나 현대음악뿐 아니라 존 윌리엄스의 영화음악이나 소외계층 프로젝트에도 공을 들여 LA필의 음악이 특정 기득권의 소유물이 아니라 시민 전체의 자산이라는 것을 꾸준히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례로는 국립현대무용단을 들 수 있다. 지난해 국립현대무용단은 전석매진을 넘어 조기매진 신화를 쓰고 있는데 그 배경엔 현대무용의 가치와 매력을 관객에게 직접 알리는 오픈 업 워크숍과 아카데미가 있다.
또 지난 3월 명동국립극장 무대에 올랐던 국립극단의 「자기 앞의 생」 연극에서는 ‘로자’ 역의 양희경 배우의 연기를 믿고 보는 충성스런 팬들이 개막, 막공은 물론이고 매 공연마다 30여 명이 넘는 자발적 관객들이 전국에서 찾아오고 SNS 리뷰로 「자기앞의 생」 매진 행렬에 기여를 했다

위 사례를 보며 당사자성에 지극히 충실하면 매개자는 형성된다는 것을 실감한다. 동시에 반성한다. 우리의 예술생태계는 얼마나 당사자성에 충실했는가?
시민과 사회, 그리고 예산을 배분하는 공공에게 설득할 만큼 예술의 역할, 예술가나 예술단체의 당사자성에 치열했는가? 잘잘못을 따지며 내가 아닌 이에게 손가락을 가리키기보다 반대로 나 자신에게 가리킬 일이다. 당사자성은 스스로 자각하고 스스로 문제해결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 없이 우리 문제를 논하지 말라.”
문화예술의 매개 트랜드와 함께 문화예술의 전성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예술현장에 있는 예술가, 예술단체, 예술기관의 당사자성이 먼저 작동해야 한다. 그래야 매개자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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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승림 칼럼니스트의 인사이드아웃, 국민일보 2019.3.18. 칼럼 중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