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8일 인쇄
2019년 4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4월호 통권 518호 |2019년 11월 16일 토요일|
 

꽃향시향

 

오얏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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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朴濟瑩)(시인, 달아실 편집장)

상명대학교 박석 교수께서 문화일보에 ‘박석 교수의 고전명구(古典名句)’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데, 다음은 2019년 1월 28일자에 실린 칼럼 「호춘소식(好春消息)」의 일부입니다.

春在水無痕 春在山無迹 李白桃紅未吐時 好個春消息
(춘재수무흔 춘재산무적 이백도홍미토시 호개춘소식)
봄이 물에 있지만 흔적이 없고 봄이 산에 있지만 자취 없구나.
흰 오얏꽃 붉은 복숭아꽃 아직 피기 전이지만 좋은 봄소식이구나.

남송의 왕신(汪莘)이 입춘을 맞아 지은 「복산자(卜算子)」라는 사(詞)에 나오는 구절이다. 왕신은 주역에 능통하고 불교·도교에도 조예가 깊었던 은자로, 주희와도 교유가 있었다. (중략) 입춘에는 차례대로 세 가지 징후가 있는데, 동풍이 얼어붙은 땅을 녹이는 동풍해동(東風解凍), 겨울잠 자는 동물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칩충시진(蟄蟲始振), 물고기들이 올라와 얼음을 지고 있는 어척부빙(魚陟負氷)이다. 얼음이 다 녹지 않은 시냇물에 물고기들이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물고기가 얼음을 지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 재미있다. 시인이 느끼기에 얼어붙은 시냇물에도, 차가운 겨울 산에도 이미 봄의 전령이 찾아와 있다. 다만, 눈에 보이는 봄의 흔적이 없을 뿐이다. 봄의 상징인 자두꽃과 복숭아꽃은 아직 저 멀리 있지만 시인은 외친다. 이 얼마나 좋은 봄소식인가!

이번에는 조선 말기 의병장 왕산 허위(許蔿, 1855~1908)가 쓴 시를 한 편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종 황제의 칙명으로 의병을 해산하면서 읊은 시라고 합니다.

湖南三月李花飛(호남삼월이화비) 호남 땅 삼월, 오얏꽃이 날리는데
保國書生解鐵衣(보국서생해철의) 나라를 구하고자 한 서생이 갑옷을 벗네
山鳥何知時事急(산조하지시사급) 산새는 어찌하여 세상일 급한 줄 모르고
終銷喚我不如歸(종소환아불여귀) 밤새도록 불여귀를 나에게 들려주는가

일제강점기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어 고문을 받다 죽거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던 곳이 서대문형무소이지요. 1908년 일제가 의병 탄압을 위해 만든 경성감옥이 원래 이름이었고요. 그 서대문형무소 1호 사형수가 바로 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입니다. 1908년 5월 일제헌병부대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고, 10월21일 일제에 의해 끝내 순국한 허위 선생. 선생의 형제와 후손들 또한 항일 무장투쟁을 하다 희생되었는데, 겨우 살아남은 일가붙이들은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중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북한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광복 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불행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지요.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될 불행한 역사입니다.

오늘은 오얏꽃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인데,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조금은 길게 늘어놓았네요. 오얏꽃은 다른 말로 자두꽃입니다. 자두의 순 우리말(옛말)이 ‘오얏’이거든요. 현재 쓰는 자두라는 말은 자도(紫桃, 붉은빛 복숭아)에서 파생된 말이라지요. 자두나무가 열매를 맺기 전에 흰 꽃을 피우는데 그 흰 꽃이 자두꽃 그러니까 오얏꽃입니다. 한자로는 이화(李花)로 쓰는데, 배꽃을 가리키는 이화(梨花)하고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이지요.
고려 충렬왕 때 이조년이 쓴 시조 「다정가(多情歌)」에 나오는 이화는 그러니까 오얏꽃이 아니라 배꽃입니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이렇게 시작되는 시조 말입니다.

그런데 허위 선생께서 의병을 해산하라는 고종의 명을 들으며 읊은 시에 왜 그 많은 봄꽃 다 놔두고 하필이면 오얏꽃이 등장하는 것일까요?
지난해였던가요? 구한말 의병을 소재로 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장안의 화제였지요. 격동의 시간과 공간을 함께한 세 남자와 한 여자의 로맨스를 씨줄로 해서 항일운동이라는 서사를 날줄로 꿰어낸 드라마였는데, 저도 무척 흥미진진하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 드라마에서 꽃잎이 흩날리는 장면이 미장센처럼 자주(?) 등장했는데, 그때 배경음악과 함께 흩날리던 흰 꽃이 바로 오얏꽃입니다. 드라마 작가는 왜 하필이면 그 많은 꽃들을 놔두고 또 오얏꽃을 흩날리게 했던 걸까요?

그건 바로 오얏꽃이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꽃이고,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꽃문양이기 때문입니다. 신라 말의 도선국사가 “5백 년 후에 오얏성씨 즉 이(李)씨 성을 가진 왕조가 들어서리라” 예언하였는데, 고려 왕조가 이를 두려워해서 한양의 오얏나무를 베어 왕기를 다스리려 했지만 결국 이성계의 조선이 들어섰고, 그 후 오얏꽃이 조선 왕실을 상징한다고 하지요.
조선 왕실에서 오얏나무를 왕실의 나무로 삼았다는 기록은 없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오얏’이라는 말이 마흔아홉 건이나 나오는데, 주로 왕실과 연관된 특별한 의미로 쓰였고, 당시 한양에 오얏나무를 많이 심었다는 기록도 여럿 있습니다.
반면 대한제국의 경우 오얏꽃이 황실의 문장으로 쓰였다는 것은 지금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대한제국 무관학교 제복과 모자에 오얏꽃 문양이 들어 있고, 대한제국 때 발행한 우표에도 오얏꽃 문양이 들어 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고종이 업무를 봤던 경운궁(현재 덕수궁) 석조전 건물에 오얏꽃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사라진 제국. 그러고 보면 우리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꽃이 오얏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허위 선생께서 오얏꽃을 소재로 한 이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오얏꽃 흩날리는 장면을 미장센으로 사용한 이유. 이제 분명해졌지요?

덕수궁 석조전
문양으로 깊이 새겨진 대한제국의 꽃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에서

피다가 만 꽃

덕혜옹주를 닮았다.
― 신경희, 「오얏꽃」 전문

대한제국의 옹주로 태어났지만 대마도에 인질로 끌려가야 했던―대마도 도주에게 시집을 간 게 아니라 인질로 끌려간 것이지요―덕혜옹주를 시인은 오얏꽃으로 표현하고 있는데요, 대한제국의 몰락과 이씨 왕조의 몰락, 그 모든 것을 한 몸에 업보처럼 안고 살아야 했던 인물이 어쩌면 덕혜옹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로서 아름답게 흩날리는 꽃을 보면서 못내 서러운 까닭은 우리의 아픈 역사 때문이겠지요.

손아귀에 힘이 차서 그 기운을 하얀 꽃으로 풀어놓은 자두나무 아래
못을 벗어나 서늘한 못을 되돌아보는 이름 모를 새의 가는 목처럼
몸을 벗어나 관으로 들어가는 몸을 들여다보는 식은 영혼처럼
자두나무의 하얀 자두꽃을 처량하게 바라보는 그 서글픈 나무 아래
곧 가고 없어 머무르는 것조차 없는 이 무정한 한낮에
나는 이 생애에서 딱 한번 굵은 손뼈마디 같은 가족과
나의 손톱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 문태준, 「흰 자두꽃」 전문

문태준 시인이 환하디환한 오얏꽃을 이리도 서럽게 그린 것은 문 시인 또한 무의식 속에 그런 아픔을 담고 있던 까닭이 아닐까요?
한편, 오얏꽃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꽃이 있습니다. 마치 바늘 가는 데 실이 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꽃일까요? 네. 바로 복사꽃(복숭아꽃)입니다. 꽃 피는 시기가 붙어 있는 까닭일 텐데요. 당나라 시인 백낙천(白樂天, 772~846)의 시 「춘풍(春風)」을 보면 봄꽃 피는 순서가 나오지요.

春風先發苑中梅(춘풍선발원중매)
櫻杏挑李次第開(앵행도리차제개)
봄바람에 정원의 매화가 가장 먼저 피어나고
앵두, 살구, 복사꽃, 오얏꽃이 차례로 피네
― 백낙천, 「춘풍」 부분

이후 사람들이 복사꽃과 오얏꽃을 하나로 묶어 ‘도리(挑李)’라 했지요. 사마천의 「사기」에도 이 ‘도리(挑李)’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이라는 문장입니다. 풀이하자면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말이 없지만, 나무 밑에 저절로 길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복사꽃과 오얏꽃이 일단 무척 이쁘지요. 봄날 복사꽃 오얏꽃 보러 몰려들고, 가을이면 그 열매 복숭아와 자두 먹으러 또 몰려드니 저절로 그 나무 밑에 길이 생길 밖에요. 사마천이 중국 전한시대 장수 이광(李廣)의 인품이 좋아 사람들이 저절로 그에게 모여든다는 것을 도리에 비유한 것이지요.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라는 말, ‘도리쟁연(桃李爭姸)’이라는 말도 흔히 쓰는 말인데요. ‘도리만천하’는 직역하자면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가 널리 퍼졌다는 건데, 뛰어난 제자들이 도처에 자리 잡았다는 뜻으로 쓰이고, ‘도리쟁연’은 복사꽃과 오얏꽃이 만발한 봄날을 뜻하지요. 고래(古來)로 복사꽃과 오얏꽃은 그렇게 한 몸을 이루었는데, 사람이 그리 붙인 까닭일 텐데, 실제로도 두 꽃은 한 뿌리에서 나온 한 식구이기도 합니다. 둘 다 장미과 벚나무속에 속하거든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조선 시대 양반들은 도리(桃李)를 일러 군자의 도리(道理)가 아니라 했다는 것을요. 매란국죽(梅蘭菊竹)과 달리 봄날 한철 피었다 지는 지조 없는 꽃이라 해서 그리 불렀다는데, 사마천의 ‘도리불언’을 생각하면 글쎄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오얏꽃 얘기하다 보니 자두 그 시큼한 과일이 문득 먹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