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8일 인쇄
2019년 4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4월호 통권 518호 |2019년 11월 22일 금요일|
 

관무기

 

풍선이 된 젖가슴
- 베로니크 셀 소설 「큰 가슴의 발레리나」




권경하(權炅河)(춤평론)

마이클 코넬리라는 미국의 범죄스릴러 작가가 있다. 독특한 캐릭터와 묘사, 사건 전개는 그야말로 압권. 십여 권이 번역 출판된 그의 소설들은 한때 큰 즐거움이었다. 그의 한 작품에 라스베거스의 사막에서 발견된 변사체 이야기가 있다. 사막의 버려진 집에서 발견된 시신은 이미 형체를 분간할 수 없는 것이어서 자칫 미궁에 빠질 뻔했지만, 실마리가 되어준 건 가슴 보형물. 유방확대수술을 할 때 집어넣어 놓은 보형물은 유기체가 먼지가 되어 버릴 지경에 이르렀지만 말짱하게 그대로 있었던 것. 그 비닐주머니의 제조번호를 통해 신원을 확인하고 사건을 추적하게 되는 것인데, 그 보형물은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빅 사이즈의 것이어서 오히려 쉽게 신원파악에 성공하게 된다. 이런 빅사이즈의 보형물을 사용하는 것은 극단적이지만 대개의 경우 여성이 가슴 수술을 한다고 하면 다소간 크게 만드는 수술이지, 작게 만드는 수술은 아니다.(그런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여기는 벨기에 브리셀. 한 무용수가 있다. 유치원 다니기 전부터 춤추기에 빠져버린, 너무 춤춘다고 엄마가 걱정했던 아이. 발레수업을 받으며 아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발레의 몸 전체이다, 나는 안무가이며, 의상 담당이며, 분장사이며, 무대디자이너이며, 극장 대관인이다. 나의 방은 극장이기 때문에, 나의 부모님이 그곳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그 아이는 성장하며 젖가슴의 출현이 당혹스럽다. 뛰고 돌고 달리는데 뭔가 거추장스럽다. 계속 신경이 쓰인다. 중학생이 된 아이는 해부학책을 펴놓고 유방에 대해 연구한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떻게 처리 해야 할지 고민한다. 이렇게 생각한다.

“내 가슴은 자라나고 있다. 그것은 나에게 깨어진 유리 같은 고통을 준다.”

같은 발레 클래스의 루드밀라는 - 가슴은 꽃과 같아. 마실 걸 주지 않으면 시들지. 그것들이 목이 말라서 죽어버리게 만들어버려 - 라고 충고한다. 파리의 발레단에 입단하는 루드밀라가 먹는 건 초록사과와 이뇨작용의 차 뿐. 16세인 루드밀라는 아직 생리도 하지 않는다. 발레 아카데미의 연말공연에서 아이에게 독무 하나와 파드되가 주어지지만 공연 후 어느날 지독한 두통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영양실조로 인한 부종, 근육수축증, 심장, 소화기, 신장장애 진단. 주변에서 가차없는 질책을 받는다, 가슴은 말라 죽었을까. 아니, 가슴은 이렇게 말한다.

“여주인은 우리를 굶겨 죽이고 자기가 생존할 수 있을 거라 생각 할 정도로 나이브했던 걸까? 그녀는 우리가 건포도 두 알갱이처럼 그녀의 접시 안으로 떨어지는 걸 보고 싶어 했나?”

이제 아이는 두 가슴을 가지고 다닐 수밖에 없다. 가슴을 쳐다보는 타인의 눈길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가슴은 끔찍하게 성가신 거다. 특히 춤출 때는. 아이는 젖가슴을 이렇게 정의한다.

“나는 이 물렁물렁하고 불안정한 요소를 통제할 수 없고, 이 뼈없는 기관은 나를 축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그들은 쓸데없는 곡예사이며, 무능하고 재능 없는 춤꾼이다. 춤에 대한 소질이라고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림프절과 지방질로 이루어진 두 개의 포장 팩. 내 흉곽에 달려있는 쓸모없는 두 개의 주머니.”

이 소설은 2018년 출간되어 프랑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꽤나 눈길을 사로잡은 모양이다. 특기 할 것은 두 개의 유방에 인격을 부여 하고 이름을 붙여 놓았다는 것. 챕터가 바뀌면 두 개의 젖가슴이 자신의 입장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 두 가슴은 주인의 의식과는 전혀 무관하며 혁명과 반란을 획책하곤 하는 것이다. 가슴은 자신이 부풀어 오르고 부드럽게 손이 스칠 때 즐거워하고, 아이가 식품점에서 한 사내아이와 부딪혀 당황할 때 “딱 우리 취향”이라면서 호들갑을 떨고 낮 시간의 발레수업동안 스트레스를 받다가 밤이 되면 맹렬히 작업에 몰두하여 유관을 더 깊이 파내려가고 탄력을 증가시키며 세력확장에 나서는 것이다. 주인이 가슴을 붕대로 칭칭 동여매면 감금당하고 고문당했다고 아우성을 친다. 그녀가 가슴을 내려다보며 괴로워 할 때 가슴들은 점점 커지는 자신이 자랑스러워서 서로 격려하는 것이다.
저자는 베로니크 셀. 브뤼셀에서 태어나서 달크로즈에서 공부했고 발레를 공연하고 가르쳤으며, 현대무용 작업도 하는 무용가 겸 작가. 1958년 생. 「큰 가슴의 발레리나」는 그녀의 네 번째 소설.
소설 전체에 발레, 무용계 그리고 댄서들의 이야기들이 가득. 유럽과 뉴욕의 작업환경과 생활이 잘 묘사되었다. 유명작품과 인물에 대한 설명도 흔히 접하는 교과서적이지 않고 쉽고 일상적이라는 것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 특히 저자와 활동기간이 겹치는 베자르에 대한 묘사는 재미있다. 주인공이 처음으로 베자르의 작품을 보러가는 묘사는 흥미롭다. ‘1959년까지 발레는 온전히 독립적인 예술로 여겨지지 않았다’라고 저자는 한모퉁이에 기술하고 있는 것. 이제 막 발레도 힘겹게 독립적인 예술이 되었는데 더 기기묘묘한 베자르라니 놀라웠다는 얘기. 유럽에서 베자르적인 혁신을 처음 접하는 광경이 생생하다. 고전 발레 외에는 눈길도 돌리지 않던 아이가 선생님이 죽고 처음으로 구경을 온 것이다.

“나는 용돈으로 모리스 베자르의 『봄의 대관식』 표를 한 장 샀다. 나는 첫 번째 불륜을 저지르려고 하는 사람과 같은 상태에 처해 있다. 나는 방탕한 약속에 가는 것이다. 아카데미의 소녀들은 나와 함께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생각을 바꾸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을 배신하고 있다는 느낌이 더욱 커졌다. … 『봄의 대관식』, 선생님이라면 ‘음란한 의식’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첫 번째 그림, 두 번째… 이런 젠장, 이교적인 걸 넘어서 극단적으로 폭력적이군!”

어느새 그녀의 가슴은 성숙하고 애인도 생겼다. 남자는 그녀의 젖가슴을 좋아했고 - 완벽하다며 리도(파리의 클럽)에서 춤출 수 있겠다 - 며 감탄. 그녀를 절망으로 빠뜨린다. 이어서 베자르의 오디션까지 망쳐버린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춤인생에 최대 걸림돌을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유방축소수술을 감행. 가슴을 잘라낸다. 말려 죽이려던 작전에 이어 칼로 도려내 버린 젖가슴은 시들어버렸을까. 아니다. 두 젖가슴은 수술 후 잠에서 깨어나 둘 사이가 더 멀어져 버렸다고 슬퍼하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재건의 의지를 불태우며 신호를 주고받고 끊어진 신경과 핏줄을 연결하며 밤낮없는 대공사를 시작한다.
그녀는 육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육체는 그녀의 정신을 지배할 수 있을까.
중요한 모티브는 다 제시되었고 소설적 반전이 기다린다. 혹시 있을지 모를 소설독자를 위해 스포일러를 삼가야 할까. 큰 사건이 벌어진다. 뉴욕으로 건너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던 그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긴다. 임신한 거다. 생각지 않았던 임신. 어떻게 될까. 문제는 정작 그녀는 펄펄 뛰며 어째야 좋을지 고민하지만, 젖가슴 두 개는 서로 격려하며 기쁨의 함성을 올린다는 것. 모유를 생산할 준비를 하며 행복해 하는 젖가슴. 문득 책장에 꽃혀있다가 사라져 버린 수전 손택의 책 제목이 떠오른다. 「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 이 상황에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글 제목에 왜 ‘풍선’이 등장했는지 궁금하다면 책 사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