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8일 인쇄
2019년 4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4월호 통권 518호 |2019년 7월 19일 금요일|
 

공연평

 

몽상적 상념과 기억의 현재성
- 임진호




김호연(金瑚然)(춤평론)

* 고블린파티 『소극적적극』(3월15~17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성격의 장단점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논하는 것이 소극적, 적극적이란 말이다. 흔히 이분법적 논리에 의해 어떤 것은 긍정적이고 어떤 것은 배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단어이지만 인간에게 있어 이 두 가지 요소는 자아를 이루는 이중적이지만 하나의 모습이다.

고블린파티의 『소극적적극』은 이러한 소극적이며 적극적인 인간의 내면 속 자아 분열의 여러 단상을 몽상가적 시각에서 표현하고 있다. 첫 장면은 기계적 목소리가 흐르며 팸플릿에 나온 작품의 의도가 제시되고 이에 따라 무용수의 움직임이 함께 한다. 이는 소극적이기에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다가 상상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여기엔 ‘은둔 고수를 만나기 위해 이 산, 저 산 헤집고 다니다 만신창이가 되어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진정한 은둔고수임을 깨달은 이야기’ 등등 천방지축 얼간이들의 이야기라며 화두를 던진다. 이 화두는 치기에서 비롯되지만 그 치기가 사라져 어른이 되어버린 현재 나의 모습을 반추하는 계기로 이 작품은 출발하고 있다.

무대에는 네 명의 무용수와 구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 구조물은 단순한 모형일 수 있지만 이들은 이 구조물을 조립하고 이동시키는 등 좁은 공간 속 이상향을 꿈꾸는 아지트로 의미를 둔다. 이는 오브제로는 구조이지만 형식을 드러내는 기호로 등장하며 단순하지만 새로운 담론을 담기위한 기재로 활용된다.
전체적으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유동적이면서 변화무쌍하다. 기계음과 빠른 비트 그리고 강한 리듬 탓도 있지만 이러한 확장은 입체적 공간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구성력에 기인한다. 이는 수평적인 동작과 수직적인 구조물을 통한 현실적 공간이 아닌 허공간 속에서 그들의 생각을 담아내고자 한 의지이다.
앞서 강한 비트의 음악과 변별되게 록발라드인 서태지와 아이들의 <슬픈 아픔>이 흐르면서 카타르시스를 주고자 한다. 앞서 화두로 던진 내레이션에서 ‘그 시절의 서태지도 아이의 아빠가 되어’와 같이 ‘기억의 현재성’에 대하여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동시대 이들이 진정으로 꿈꾸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옛 추억에 의탁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오르골 소리와 같은 맑은 영혼을 일깨우는 몽환적 구성을 보이다가도 바닥에 사슬 모양이 비추어지면서 헤비메탈 음악이 흐르며 네 명의 격정적 움직임이 역동성을 만든다. 그래서 무대는 갇힌 영혼으로 제한적 몸짓을 보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모반을 꿈꾸는 열린 공간을 지향하며 분출된다.
이러한 격정은 하울링이 흐르고 무용수의 리코더 연주가 시작되며 숨고르기로 들어간다. 그렇지만 이들의 연주에 대한 주변인들의 삑삑거리는 소리 그리고 스모그가 흐름에도 개의치 않고 리코더를 연주하는 모습에서 사회 속의 독립된 섬으로 존재하는 ‘소극적적극’의 상징성을 드러낸다. 이어 타자는 마스크를 쓰고 이러한 행위를 방해하고 리코더를 뺏어버리지만 인간 내면의 괴로움 속의 처절한 존재적 행위와 지침으로 종결을 맞는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소극장에 최적화되어 있다. 우선 고른 기량을 갖춘 네 명의 무용수의 움직임은 관객과 교감을 이루며 표현주의적 의식의 흐름이지만 이들이 지향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이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하고 이를 몸으로 분출한다’는 흐름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사회적 소극성보다는 자아의 적극성을 통해 담론을 풀어가고 있다. 또한 이 작품에서 음악을 이야기를 그리고자 하는 기호이면서 교차적 배열을 통해 완급조절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