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8일 인쇄
2019년 4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4월호 통권 518호 |2019년 7월 19일 금요일|
 

시사살롱

 

지하철 임산부석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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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일(洪承一)(언론인)

얼마 전 저녁 귀갓길 지하철에서 목격한 볼썽사나운 장면.
한 노인과 그의 손자뻘 될 법한 젊은이 간의 세대 간 티격태격을 보면서 ‘임산부석을 둘러싼 갈등이 개선되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70대쯤 되어 보이는 이 노인은 “왜 임산부만 앉는 자리에 젊은 남자가 앉아 있느냐”고 호통을 쳤다. 젊은이는 자리에 꿋꿋이 버티면서 “임산부 없을 때 누가 앉든 무슨 상관이냐. 쓸데없는 참견 하시지 말라”고 맞받았다.
서울시 지하철에 임산부석이 등장한 건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망국적 저출산 완화에 기여해보자는 자그마한 충정은 좋았지만, 막상 시행에 들어가니 혼선이 만만찮았다. 자리 양보가 배려냐 의무냐 논란에서부터, 임산부가 아니라 일반 여성의 전용석으로 변질했다는 남자 승객들의 볼멘소리까지.
지하철 좌석에 임산부를 먼저 앉히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지하철공사의 권고대로 자리가 비어도 앉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자신이 불편을 겪는 상황이 되면 슬그머니 마음이 달라진다. 피로에 찌든 직장인이나 학생들에게 임산부석을 빈 채로 놔두라는 것이 최선인지에 대해 SNS와 유튜브 상에서 격론이 벌어지곤 한다.
뭐가 꼬였을까. 교통약자를 돕겠다는 지하철 당국의 좋은 뜻이 마침표를 제대로 찍지 못했기 때문에 세대 간, 남녀 간 갈등을 부추기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생존경쟁이 치열한 스트레스 공화국이다. 수십 년간의 압축성장으로 50-30 클럽(인구 5천만 명과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동시에 이룬 나라)의 7번째 국가에 오른 대한민국이지만, 빈부 격차 등으로 인한 갈등지수는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여 개국 가운데 최상위권이다. 아직 타인 배려보다 내 몫 챙기기에 민감하다.
서울시의 임산부석 취지는 가상하지만 “좋은 판 깔아놨으니 시민은 잘 협조해달라”고 종용한들 쉽사리 될 일이 아니다. 그런 아량이 사회 분위기로 자리 잡을 때까지 프랑스처럼 우선하여 앉힐 노약자 순위를 매겨보는 것도 다툼을 줄이는 일책이다.
누구를 돕겠다는 정책은 대개 관련 계층의 이해 상충을 낳는다. 부득이하게 손해 보는 이들이 이해해주는 일은 드물고 정부가 설득하거나, 심지어 강제에 나서야 한다.
카카오택시 같은 공유산업이 택시업계의 반발에 부닥쳤을 때 이를 마땅히 조정해야 하는 건 정부다.
신구(新舊) 산업 간의 교대가 원만하지 않아 갈등하면 이를 중재하는 것이 정부 본연의 임무다. 자영업자 피해를 예상치 못하고 최저임금을 과속 인상한 것도 선의에 눈이 먼 정부의 과실이다.
약자를 위한 정책을 만들어놨으니 시민 여러분이 좀 불편해도 따라달라는 식은 곤란하다.
지하철 임산부석이 바로 반면교사다. 정부가 혁신성장을 부르짖으려면 그에 따른 업계 갈등을 해결할 책략과 용기를 갖춰야 한다. 정부가 정작 손 놔야 할 것들은 소득주도 성장이니 탈원전이니 하는 반시장적 정책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