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8일 인쇄
2019년 4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4월호 통권 518호 |2019년 9월 22일 일요일|
 

춤 스크랩북

 

‘申똥뗑’ 선생님
- 캬바레·보르테르




趙東華(「춤」誌 발행인)

힘겹게 살아온 젊은 시절에는 그저 스쳐가는 기억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던 하찮은 일들이었는데 요즘은 갑자기 그런 기억들이 더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필경 인생 황혼기의 감상 같은 것일까, 아니면 그 속에 진정한 나의 꿈과 눈물이 있었음일까.
중학 때, ‘申똥뗑’이라는 별명의 역사 선생님이 계셨다. 이 괴상한 별명이 아니고 ‘申用秀(신용수)’라는 함자였으면 오늘까지 우리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며 적어도 우리가 모여 同門(동문)임을 확인할 수 있는 공통의 화제가 없었을 것이다.
어떻든 그 신똥뗑은 일본말이 아주 서투셨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조선말 반이 섞인 그런 우스꽝스런 일본말로 수업을 하시는 분이었다. 허나 식민지 시대의 조선 학생들은 결코 그것으로 선생을 탓하지는 않았다.
신똥뗑은 수업 중 별것 아닌 인물이나 사건에 흥분하시는 그런 열정가였다. 예컨대 넬슨 제독― 무적함대 격파! 이렇게 되면 그의 급하고 흥분된 언어는 그만 뒤죽박죽, 부사, 형용사가 뒤엉키고 요령부득이 되어 학생들은 대체 어느 편이 지고 어느 편이 이겼는지 판단 못할 정도로 그만 혼란에 빠졌다.
설혹 그렇더라도 나는 그의 역사 시간은 재미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신 선생님이 학생들의 노트 정리에 알맞은 판서를 잘하여주셨던 것에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어떻든 나의 역사에 대한 지식의 모두는 그때 신 선생 수업에 의한 것이며 혹 내가 역사에 아주 무식하지 않은 것처럼 위장할 수 있는 것도 그의 가르침임으로 믿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신 선생의 보물(?)인 교재가 없어졌다. 실종된 것이다. 그 ‘보물’이란 판서 텍스트였던 낡은 대학노트 한 권을 말한다.
이 노트의 실종 사건은 당장 학교 내의 큰 사건으로 등장, 없어진 경위에 대한 추측이 여러 갈래로 소설화되어 떠돌았다.
도대체 그 ‘노트’는 신 선생님이 우리 학교로 오시기 전 다른 학교에 계실 때부터 사용한 것으로 너무 오래되어 헌 걸레처럼 너덜너덜한 책장, 그런데도 선생님은 원체 게으름뱅이여서 마냥 그것으로 수업하셨기 때문에 ‘낡았다’는 것이 문제라기보다 이제는 그 노트 그 자체에 저항을 느꼈었다. 심지어 학생들 사이에는 차라리 선배의 노트를 물려받는 것이 현명하다는 정도까지였으니까 그 ‘실종’을 곧 통쾌한 사건으로 받아질 수밖에 없었다.
많은 ‘실종設(설)’ 중에 가장 유력한 것은 일본서 대학 다니는 선배가 방학에 학교로 들렸다가 책상 위에 노트를 보고 훔쳐가 버렸다는 이야기였다. 그 증거로 선배는 재학 시절부터 신똥뗑이의 비토세력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가 학교에 다녀간 직후 노트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어찌 됐든 신똥뗑의 노트는 그 후 새 것으로 바뀌어져 학생들은 승리감에 젖어있었다.
헌데 장난꾸러기로 유명한 L군이 노트에 대한 놀라운 뉴스를 가지고 왔다. 없어진 줄만 알았던 노트가 신똥뗑이 집 책상 위에 건재한 것을 L군이 직접 목격했다는 것이다.
그럴 수가, 이것은 너무도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억울하고 분했다. 그러면 신똥뗑의 새 노트는 공부하면서 쓴 것이 아니고 낡은 노트를 옮겨 쓴다는 것밖에 안 된다. 학생들의 완전 패배도 모두들 침통한 표정이었다.
그러자 누군가 처음 신똥뗑의 노트가 분실됐다고 발설한 놈이 누구냐가 문제로 떠오를 수밖에.
의외로 그 말의 주인공도 바로 L군이었다.
L군의 답변은 간단했다. 신똥뗑이가 새 노트를 가져왔기 때문에 그럴 것으로 믿었다는 것이다. 모두가 마치 귀신한테 홀린 기분이었다.
이 지경에 이르면 우리는 화낼 수도 없었다. 그런데 아직도 동문 중에는 그 노트 사건과 선배 탈취 사건을 연관시켜 믿고 마는 사람이 있다.
더불어 신 선생에 대해 생각나는 일은 그는 종종 멋있는 철학적(?)인 말을 하여 철없는 우리를 감격시키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때 으레 “저 신똥뗑이 또 개똥철학을 편다―” 는 식으로 빈정대는 세력도 있었지만.
한번은 신 선생이 어떤 얘기 끝에 “생명을 가진 인간은 누구든지 죽는다. 너희들도 멀지 않은 장래에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죽어야 한다” 며 우리에게 마치 연극이나 하듯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지명하며 말하였다. 그것은 당시 우리들에게는 너무도 공포적인 것이었다. 마침내 죽는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멀리 있는 것이지 ‘곧’은 아니라고 생각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생님의 손가락으로 지명 받게 되는 형식이 되니 무서웠던 것이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그러나 죽는다고 해서 허무한 것이 아니고 뜻있게 살면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너희들이 살고 간 세월을 후세가 알 수 있게 열심히 살아라…”
대강 이런 내용의 이야긴데 나는 이때 신똥뗑이가 아주 높고 위대하게 보였던 일을 기억한다.
어떻든 그 시간 누구로부터 시작된 장난이지 몰라도 학생들이 자기 태어난 연도에 죽을 연도를 부쳐보는 일이 시작되었다.
모두가 백 살 가까운 나이를 죽는 연도로 잡고는 낄낄대고 있었다. 나도 내가 희망하는 죽을 연도를 생각하였다. 적어도 서기 2천년도까지는 살아야지 그래서 ‘조동화(1922~2000)’ 이렇게 써봤었다.
그렇게 살아보았자 겨우 78세밖에 못 사는 연도였다. 공짜로 붙이는 나이인데 욕심을 부릴 수 있었으나 그것이 좀 멋쩍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학생 詩人(시인)으로 이름 날렸던 Y군이 나의 ‘2000년’을 보더니 비웃는 말투로
“―그렇게까지 오래 살아서 뭘 할 거냐. 난 30세까지만 살 것이다. 지금 신똥뗑이 하는 말 못 들었어… 굵고 짧게 사는 거다. 예수를 봐. 33세까지만 살아도 성인이 됐잖아!”
그런데 Y군은 70세 넘게 오늘까지 머리에 검은 염색을 하고 열심히 돈 버는 데 열중하고 있고, 백 살 넘게 쓰고도 억울한 표정을 짓던 축구선수 K군은 10년 전에 죽었다.
신 선생님이 이북에 그대로 살아계시면 지금쯤 100세는 되셨을 테지. 귀가 가려우실 것이다.

2001, 1992년 겨울(창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