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8일 인쇄
2019년 4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4월호 통권 518호 |2019년 7월 19일 금요일|
 

춤 스크랩북

 

믿으면 통한다
- 내 인생에 감동을 준 이 한마디




조동화(월간 춤 발행인)

‘마인드 컨트롤’이라는 낯선 이름의 정신요법을 하는 곳을 찾았던 일이 있다. 한 20년 전의 일이다. 직장을 쫓겨난 후 생긴 불면증이 고쳐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그것을 지도하는 스페인계 신부님의 말씀이다.
그의 한국말은 아주 서툴렀는데도 수준 있는 수강생들에게 많은 감명을 줄 수 있었던 것은 필경 그의 신념 있는 주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떻든 나는 그때 그 신부의 말에 많은 회의가 있었으면서도 매력(?)을 느껴 다시, 또다시 반복하여 생각하는 그런 버릇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 신부의 이야기는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 옛날 우리의 어머니들이 과거보러 서울로 올라간 아들을 위해 매일 새벽 정한수를 떠놓고 빌었는데 그것이 정말 아들에게 힘이 되었을까, 아니면 아무 소용없는 어머니의 자위행위였을까― 이렇게 신부는 자문하듯 말하고는 곧이어
“아닙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아들에게 틀림없이 힘이 되었습니다 ”라고 자답했다.
그리고 또 자문하듯 병상에 계신 아버지를 위해 멀리서 사는 자식이 한밤에 깨어나 앉아 드리는 쾌유의 기도가 아버지에게 도움이 될까요, 안 될까요. 그리고 자답했다.
“예, 틀림없이 자식의 기도는 아버지에게 전달됩니다. 우리가 지금 하려는 마인드 컨트롤도 바로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이지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소용이 되지 않습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이 말이 그때의 나에게 그렇게 충격적일 수가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기독교 신자여서 많은 ‘기도’라는 행위를 하면서도 한 번도 이런 신념으로 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당장 믿음을 시인하든지 부정하든지 간에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이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떻든 나는 왜 그랬던지 ‘믿으면 통한다―’ 는 편에서 서고 싶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그에게서 잠재력 개발과 긍정적 사고의 강의를 받게 되었고, 불면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요즘 나는 지금 나의 행복이 누군가 나를 위해 빌어주는 힘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북에서 살고 있는 동생을 위해 나는 늘 빌고 있다. 그것을 믿기 때문에.

태평양화학 사외보 香粧(향장), 1992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