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문화광장

2017년 10월 「뉴욕타임스」는 할리우드 최고 권력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이 30년동안 100명에 가까운 여성에서 성법죄를 저지른 사실을 폭로했다. 이후 소셜미디어에 해시테그미투(#Me Too)를 다는 운동으로 대중화되면서 우리나라에도 직장이나 단체 내 성폭행 및 성희롱을 SNS에 입증하며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
최근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롤 「와인스타인」 속에 등장하는 피해 직원인 젤다 퍼킨스는 이렇게 말한다. “한 명만 가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계속 반복된다는 거에요!”
지난 2년 여간 문화예술계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를 이어온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또한 ‘강력한 위계가 작동하는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나라의 견고한 가부장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씨앗이 문화예술계에서 잉태됐으면 한다’고 「이데일리」와의 서면 인터뷰를 한 바 있다.
구조가 문제다. 그동안 우리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으며 어떤 변화가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을까?
한국에서 폭발적으로 발화한 ‘미투’ 이후 이끌어낸 제도적 변화는 미미하다.
그동안 기울인 노력으로는 예술인복지재단과 콘텐츠진흥원의 성평등센터 ‘보라’를 비롯 영화화성평등센터 ‘든든’ 등이 만들어져 성폭력신고 및 상담에서 심리상담, 법률적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활동을 들 수 있지만 체감도는 그리 높지 않다.
이외에도 국공립 연극기관을 비롯 예술단체를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교육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예술지원 신청 시 성폭력 예방 행동지침을 계약서에 반영하고 그 내용을 첨부하게 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문화예술계 성희롱 성폭력 피해자 지원, 사건조사, 제도개선을 위한 특별조사단’을 100일간(2018.3.2~ 6.19) 운영했다. 그러나 민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실행안이 아니라 다양한 권고안을 제안하는 데 그쳐 실행 몫은 여전히 행정으로 남아있다.
그동안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 8개 부처에 양성평등전담 부서가 생겼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 내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은 아직 공석인 상태이며 그나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내 성평등 소위원회가 생겨 성평등 관점에서 예술지원 정책을 상상하고 제안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관련 법안 역시 ‘미투’ 이후 예술계 성희롱 성폭력 행위의 금지 및 이에 대한 벌칙과 피해구제 방안을 명시한 예술인 지원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발의되었지만 국회가 정상화되지 않아 법안 통과는 지금껏 요원한 상태에 머물러있다
반면 민간의 변화는 뜨겁다. 젊은 연극인들이 모여 페미니즘 연극제를 기획하고, 작품 테마에서 여성을 넘어 퀴어, 노인, 이주민, 장애인 등 다양한 소수자에까지 확장하여 사회 내 불평등한 구조를 바꾸기 위한 작업이 각 장르에서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일 년 전에 방한한 스웨덴 공연•예술배우연맹 배우 부문 이사회 의장인 수잔나 딜버가 발표한 스웨덴의 사례 경우, 우리나라와 너무나 다른 양상으로 펼쳐져 여기에 옮겨 본다.
내가 놀랐던 것은 우리나라 경우 피해자 개개인이 실명을 걸고 자신의 신상이 드러나는 걸 감수한 채 가해자를 대상으로 고소 고발 및 소송 등 을 진행해 고립감과 두려움이 엄청난 반면 스웨덴의 ‘미투’ 고발은 대부분 피해자도 가해자도 익명인 채로 진행됐다고 한다.
처음으로 이런 방식을 택한 건 여성 배우들인데, 이들은 개인이 가해자를 공개적으로 지목하는 대신 페이스북안에서 피해자가 뭉쳐서 함께 목소리를 내는 방법으로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기로 했다. 이틀 사이에 500여 명에 이르는 인원이 모였고 그 익명의 증언이 모여 2018년 11월 배우 457명이 함께 서명한 고발 기사가 나오게 되었다.
이런 이슈화에 대해서도 수잔 딜버 의장은 “우리는 이러한 문제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개개인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구조의 문제, ‘여성에 대한 태도’의 문제로 접근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웨덴 정부와 사회가 ‘미투’에 응답하는 방식 또한 달랐다.
고발 기사가 보도된 당일, 문화•민주주의 담당 장관(The minister of Culture and Democracy)은 국립극장의 경영진들을 소집했고 노동조합인 ‘예술영화인조합’과 고용주들이 속한 ‘스웨덴 공연예술협회’는 함께 이 문제를 조사하기 위한 위원회를 즉시 구성했다.
일주일 뒤 스웨덴의 몇몇 극장에서 배우들이 익명의 증언을 낭독하는 행사를 열었을 때, 그 분야의 주요 결정권자부터 정치인을 비롯 스웨덴의 여왕과 공주도 낭독회에 함께 했다.
수잔 딜버 의장은 거듭 말했다. “우리가 초점을 둔 것은 구조의 문제였습니다. 구조는 어떤 가해자보다 큰 적입니다. 남성들에게 ‘그렇게 행동해도 된다’고 허용해오던 구조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우리 모두와 미래 세대에까지 중요한 일입니다.”
물론 스웨덴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성평등 국가로 꼽히는 나라이다. 장관의 절반과 국회의원의 40%가 여성인 ‘페미니스트 정부’를 가졌던 나라이고 성별에 근거한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 남녀의 급여 차이가 가장 적은 나라이기도 한데 그런 나라임에도 삶의 현장에서의 성폭력문제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그럼 우리는 미투 운동 이후 무엇을 해야 ‘구조’가 달라질 수 있을까?
미투운동이 시작된 지 2년차 되는 해. 이제는 자기 고백인 미투를 넘어 공동으로 개선해야 할 구조를 익명의 행정 미투 500인단이 모여 자신이 경험한 불합리한 행정 500가지를 백서가 아닌 오백서로 만들어 제안한다면 견고한 행정 구조를 조금은 흔들어 놓을 수 있지 않을까?
100일간 운영된 ‘문화예술계 성희롱 성폭력 피해자 지원, 사건조사, 제도개선’을 위한 특별 조사단의 결과도 권고안으로만 남아있다. 예술지원분야에서 수없이 진행해온 공청회나 연구보고서도 파일로만 남아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공에 집중된 권력, 비민주적인 의사소통 구조 속에서 성평등한 문화를 만들어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SNS상에서 개인이 행정 속에서 겪은 불평부당함을 토로하는 내용이 올라와 지지를 받곤 하지만 개인의 특수 상황으로 치부되어 문제해결에는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행정 속에서 겪은 불편부당함, 불합리, 몰상식한 사례를 익명으로 이야기하고 그 사례를 모아 공유하며 공감하는 스웨덴의 500인 익명 연대처럼 행정 미투 500인 익명 연대를 제안해본다.

마치, 수잔나 딜버 의장이 익명의 500인 미투 연대를 하며 “우리는 이러한 문제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개개인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구조의 문제, 태도의 문제로 접근한 것”이라고 강조했듯이 “행정 내에 얼마나 비민주적이며 위계적인 문화가 만연했는지 보여주기 위해 공무원 개개인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구조의 문제, 태도의 문제”로 접근하여 사람대신 불합리한 행정 구조를 수면 위로 올려놓을 때가 되었다. 미투도 피해자의 용기있는 고백에서 출발했듯이 차별없는 평등한 사회구조, 지원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겪은 행정 미투, 공공을 소환하는 용기있는 행정 유투가 요구된다.

소소하지만 나의 작은 변화를 남겨본다. 지난해 모 공공 공간의 대관 심의회의 안에서 일이다. 연말에 공연할 모 공간의 대관심의를 하는데 한 심사위원이 대관 신청 주체에 대한 신상 발언을 했다.
“이 가수, 이혼하고 그새 재혼을 또 했다면서요? 능력도 좋아 하하하!”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후의 상황이라 분위기가 싸해졌는데도 발언을 한 심의위원은 다른 심의위원들이 반응을 하지 않자 마치 유머라도 던졌는데 리액션이 없어 아쉽다는 듯이 의아한 표정이다.
나는 평소 같으면 무관심하게 넘어갔을 수도 있었는데 미투 운동 이후엔 달랐다. 비로소 지금껏 둔감했던 나의 젠더감수성도 작동하기 시작했다. 난 발언권을 얻어 ‘대관 심의하는 데서 부적절한 발언으로 여겨진다. 불편하게 느낀 분도 있을 수 있으니 사과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심의위원은 마침 심사위원장을 하고 있었는데 당황해하며 ‘아 다 아는 분들이라 여겨 그랬는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결국 부적절한 발언이었음에 양해를 구했다.
방관도 침묵도 끝이다. 나 스스로 윤리적 약속을 하고 가부장적 사회의 통념으로 지배되었던 의식의 변화를 가져 오는 것이 제일 먼저 내가 할 일이었다.

검찰 개혁이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검찰 개혁 못지않게 행정개혁도 중요하다. 수직적인 위계문화가 서슬 퍼렇게 살아있고, 규정 등으로 창의적 제안을 무시한다.
기획재정부는 문화체육관광부에게 얼마나 기득권이며, 서울시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얼마나 기득권이며, 지원금을 분배하는 재단들은 또 단체들에게 얼마나 기득권이며. 단체들은 창작자들에게 얼마나 기득권인가? 불공정한 행정생태계에 저항할 수 있어야 예술생태계도 되살아날 수 있다.


*참조 :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초청 “연대의 힘” 포럼 자료집(2018.10.)
한겨레, “미투에 대응하는 법, 스웨덴이 한국과 달랐던 4가지”, 박다해 기자(2018.10.8.)
이투데이,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위계구조부터 먼저 바꾸어야” 장병호 기자(2018.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