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 춤산책

아시안 소사이어티의 초청으로 대한민국 최초로 미국 대학교 순회공연을 비롯 링컨센터 필하모닉 홀과 세계박람회 및 하와이 공연 등이 예정되어 있었던 한국전통 예술단 삼천리가무단의 공연 여정 중에 인솔단장 앨런 헤이먼은 이후의 공연 일정을 대폭 줄여야만 했던 것뿐만 아니라 엄청난 금전적 손해를 보는 뜻밖의 난관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시련은 후발로 미국 공연을 떠난 아리랑예술단 관계자들의 방해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단원으로 삼천리가무단에 합류하기로 한 사람, 재미 무용가 조원경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춤은 신무용계의 창작춤인 데다가 다른 단원들보다 더 많은 개런티를 원했기 때문에 그의 조건을 충족시켜줄 수 없었다.

“ (조원경은) 이미 미국에 1~2년 정도 있었으니까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조원경 선생의 스승들이 삼천리가무단에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했어요. 김천흥, 한영숙 선생님 모두 조 선생의 스승이었거든요. 그런데도 조 선생은 뜻을 굽히지 않아서 그분을 제외했어요…. 문제는 삼천리가무단 공연이 끝나고 난 후 알았는데 조 선생이 (삼천리) 가무단이 서커스 공연 같았다고 비판하면서 그 의견을 헤럴드트리뷴이라는 신문에까지 기고했어요.1)”

조원경은 엘런 헤이먼의 아내와 친척관계이며 한국을 방문할 때면 늘 헤이먼이 살던 계동집을 방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헤이먼은 조원경의 기고로 인해 삼천리가무단을 재정적으로 후원한 록펠러재단이 자신을 불러 사실을 추궁까지 했다고 전했다.
굳이, 흑백사진으로 기록된 삼천리가무단의 「탈춤」 의상이 양단으로 만든 듯 패턴이 낯설거나 「승무」의 북 문양 역시 우리에게 익숙한 태극문양이 아닌 정도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인간문화재급 단원들이 일개의 미국인이 지시한다고 한국전통을 중국식 내지는 서커스 형식의 공연으로 변형시켜 공연한다는 것은 만무할 것이며 상식적으로도 그렇게 변형시키는 것이 더 어렵지 않았을까.

여기서, 조원경이 미국에서 주로 공연한 레퍼토리를 보면 삼천리가무단의 레퍼토리와 다를 바 없는 「탈춤」, 「승무」, 「농악」 등 뿐 만 아니라 여성이 추는 「부채춤」도 있었는데, 실제로 그가 추는 「장구춤」의 사진을 보면 남자임에도 여성처럼 보이기 위한 진한 화장에 머리에 쪽을 지고 치마저고리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으며, 「타령」으로 보이는 듯한 사진에도 역시 치마저고리에 쪽진 머리 그리고 족두리까지 쓰고 소품인 수건을 손끝에 드리운 채 수줍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한국은 가면극 외에는 중국, 일본과는 달리 전통적으로 남자가 여장을 하고 춤을 추는 법이 없기에, 좋게 생각해서, 한국의 전통춤에 중국, 일본적인 요소를 섞은 이러한 그의 연출은 평론가 안나 키셀고프의 표현대로 “흥미로운(interesting)2)” 것이다. 그런 부분이 신무용 작품을 간간이 선보인 삼천리가무단과도 맞지 않는 결정적인 부분이었을 텐데, 한 명의 남성 무용수가 남성춤과 여성춤을 번갈아가며 추는 형식은 마치 가부키의 주역배우가 한 무대에서 남녀배역을 몇 초 만에 번갈아가며 연기를 하며 관객들의 감탄과 갈채를 한 몸에 받는 ‘히키누키’와 같은 둔갑술을 차용한 것 같아 일종의 나르시시즘도 보이는 듯하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고 마침내 삼천리가무단 일행은 4개월여 만에 귀국했다. 최초 민간 예술사절단의 금의환향이었겠지만 헤이먼 자신에게는 공연취소로 인한 빚더미 뿐이었다. 아시아 음악을 채집하기 위해 1964년 한국을 찾아온 영국의 존 레비(1910~1976)에게 국악인들을 소개시켜주어 김옥심, 박초월, 이창배, 지화자 등 기록이 많지 않은 당대의 최고의 국악인들의 연주가 「존 레비 콜렉션 한국음악선집」을 통해 남게 되었다. 또한 1960년대만 해도 서양음계로 기록하지 못했던 전통음악을 오선보에 기록하는 등 국악 발전과 세계화의 초석을 다진 장본인이었다. 이외에도 미 공보원 제작의 「황토길 (1962)」3), 「한라산 (1965)」4)의 음악제작으로 제 2회 청룡영화제 특별상을 수상하였고, 「낙동강 (1964)」5) 등의 영화 음악에도 참여했는데, 특히 신영균, 최지희, 아니타 에드버그, 존 아일랜드 주연의 한미합작 영화 「캐서린의 탈출」6)에서는 배경음악을 직접 연주하여 대부분을 가야금산조와 같은 순수 국악으로 편성하여 큰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그나마 이러한 옛 영상자료를 통해서나마 헤이먼의 수준 높은 연주를 감상할 수 있을 수 있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 와중에도 그는 1973년 미시간대학교에서 한국 전통음악과 무용 과목을 강의하던 중 강의를 그만두고 브라운대학의 강의를 준비하며 국립국악원의 유럽공연을 인솔을 돕고 있던 차, 파리의 공항에서 브라운대학으로부터 일방적으로 강의 취소 통보를 당해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 아무런 대책 없이 다시 한국으로 귀국해야만 하기도 했다. 1982년에는 아내 고정숙 여사가 암으로 별세했는데, 한국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많은 병원비를 대느라 영어를 가르쳐야 하는 등 몇 번의 금전적인 시련이 찾아왔다. 이뿐만 아니었다. 무속인 김금화와 같이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에서 개최하는 ‘아시안 민속예술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미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NBC 방송출연을 앞두고 갑자기 숙소에서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증세에 급한 김에 김금화가 가져온 웅담을 위스키에 타먹고 거짓말처럼 나았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나아진 것일 뿐, 이 일을 계기로 점차 허리가 갈수록 굽어져 말년에는 거의 90도로 숙이고 다녀야만 하는 불운을 겪기까지 했다. 독일계 유태인 미국인으로 2미터 장신이 한국에 와서 좌식생활 및 연주활동을 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동안 겪어왔던 금전적 손해 그리고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의 부작용이 뒤늦게 나타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한 시련은 결코 국악에 대한 그의 열정을 꺾을 순 없었다. 1995년 한국인으로 귀화해 1960년대부터 자신의 미국 이름을 따서 사용한 ‘해의만(海義滿)’이라는 이름이 법적인 이름이 되었으며 이로써 해(海)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렇게 누구보다도 국악과 한국인을 사랑하고 국악을 발전시키고 한국을 알리는데 앞장섰던 해의만이지만 그의 업적에 비해 단지 외국인이었다는 이유로 그의 업적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감이 있다.
그는 삼천리가무단을 소개하기 위해 쓴 「삼천리 강산의 무용(Dance Perspectives, 1964)」, 「한국 민속음악과 무용(1974)」, 「한국 전통음악과 무용(1994)」 등을 저술했으며, 성경린 저 「한국전통무용 해설」, 김천흥 저 「한국전통무용과 탈춤」, 국립국악원의 「한국전통음악과 무용」 등을 영어로 번역하는 등 국악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 춤 분야와도 꽤 깊은 연관이 있으나 우리 춤계에서 조차 잘 알려지지 못한 것 역시 아쉽기만 하다.
다행히 그의 말년에 업적을 인정받아 1982년 한국국제문화협회 문화상 수상, 1995년 「국악의해」 유공표창 국무총리 상, 2001년 대통령상 표창 그리고 2011년 대한민국 문화은관훈장을 수훈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생전 한국에 와서 평생 모은 귀한 자료들을 국립국악원 도서관에 기증했으니 여러모로 그 누구보다 더 한국인답게 살다간 귀감이 되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뉴욕에서 떠올린 예전 중국 예술단에 대한 기억에 투영된, 해외로 간 한국의 무용가들 그리고 공연단들의 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려다 해의만이라는 인물을 알게 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행간의 릴레이’는 척박했던 과거 한국의 무용계의 해외활동과 당시의 미학적 감각 등에서 더 나아가 서양인의 관점으로 느끼는 한국의 전통 예술, 그리고 우리 전통을 사랑하여 국악학자가 되신 분의 큰 업적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예술계의 단면들을 드러내 반성하고 생각해보는 기회까지 가졌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이름난 인물들이 그 업적이나 실적 위주로 뭉뚱그려 미화되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알려진 이미지와 대조되는 인물들의 적나라한 인성의 민낯을 보게 되면 적잖게 당혹스럽고 민망할 때가 많다. 춤 분야 모든 단체들이 협심하여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나가는 훈훈한 미담의 기사를 자주 접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한국의 무용계는 여느 나라에 비해 거의 모든 대학교 마다 무용과가 있을 정도로 엘리트 무용교육의 장이 마련되어 있고 매 해 수많은 무용과 졸업생들을 배출해내고 있다.
계승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제정된 인간문화재 제도가 생겨난 후로 전통예술 분야에도 관심과 과열경쟁이 생겨났다. 심지어 한 시대를 풍미하고 각광받았던 신무용계의 위상이 약화되면서 전통춤은 예술춤 분야에서 주류 중 하나가 되었다. 이렇듯 경쟁이 있는 종목은 서로 전수자가 되기 위한 부작용도 많은 반면, 지정되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는 여전히 소외와 무관심에 방치되어 있다. 예술 그리고 전통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전수하는 과정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전통춤은 기예의 일부분이 아니었던가. 정말로 전통춤이 다른 분야의 춤에 비해 깊이와 연륜을 중시한다면 당시 예인들이 받았던 교육방식 그대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될 때, 온전한 전통춤이 완성되는 것이며 인성이 중시되는 총체적 예술이 될 뿐만 아니라, 그간 일본에 의해 왜곡되어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는 조선의 예인들에 대한 인식도 선양될 것이다.
우리 것만큼은 우리가 해온 방식으로 살려 내어 더불어 이를 통해 전통의 큰 아름다움을 꽃 피워 보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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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12」 해의만 인터뷰.
2) Anna Kisselgoff, The New York Times, Nov. 11. 1979.
3) 문둥병 시인 한하운의 「나의 슬픈 반생기」를 바탕으로 그린 영화로 국악기로 새로운 음악효과를 시도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4) 1965 제 12회 아세안 영화제 비극영화 부문 출품작.
5) 1964 대종상에서 최우수 비극영화작품상, 제 2회 청룡영화제 최우수 비극영화상 수상,「멜버른」 영화제 입선, 1966「하와이」대학 주최「아시안 퍼시픽」 영화제 입선.
6) 영어제목은 「Northeast of Seoul」. 1972년 제작, 한국개봉 197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