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7일 인쇄
2019년 12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12월호 통권 526호 |2020년 10월 25일 일요일|
 

이달의 좌담

  2019 한국춤계 이슈와 제언
   창작과 전통, 제도


 


「가나다순」
국수호 (鞠守鎬 / 국수호디딤무용단 예술감독)
이은주 (李銀珠 / 인천대 교수·한영숙살풀이춤보존회 이사장)
정혜진 (鄭惠眞 / 서울시무용단 단장)
정기헌 (鄭基憲 / 춤평론.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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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 나이의 무용가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 『무위』
정기헌 _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을 맞아, 오늘은 올 한 해 한국무용계에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갈 길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위해 세 분을 모셨습니다. 국수호디딤무용단 예술감독, 이은주 인천대 교수와 서울시무용단 정혜진 단장이 자리를 같이 하셨습니다. 올해 한국춤계에 다양한 이슈가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올해의 변화들이 2~3년 뒤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향후 10년 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해야 합니다. 먼저 올해 주목할 만한 일은 춤 관련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9명 지정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국립무용단, 서울시무용단, 국립국악원무용단의 예술감독이 모두 교체되었습니다. 새 예술감독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같이 있습니다. 오늘 자리하신 세 분께서는 올해 활동을 많이 하셨고, 또 많은 변화를 직접 느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국수호 선생은 곧 『무위』 재공연도 하시고요. 각자의 근황부터 먼저 말씀해주시고, 좌담 주제에 관련된 내용은 하나씩 풀어나가겠습니다.
국수호 _ 작년에 제 자식들과 제자들이 저의 고희연(古稀宴)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잔치는 사양하고 칠십 나이에 무용가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을 작게라도 소신껏 하겠다고 이야기했어요. 소극장에서 ‘없음’에 대한 춤을 하려고 준비했습니다.
저는 중국을 여행하면서 인생, 인간, 현실의 무상함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는데, 십여 년 전 나이 육십이 넘으면서 그 무상함이 더 크게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지난 10년은 많은 생각과 욕심을 버리는 시간이었어요. 그 10년의 버림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무위』라는 작품을 통해 말해봐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4월부터 ‘없음’에 대한 춤을 시작했어요. 노자의 「도덕경」, 공자의 책들을 다 읽으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중국 자금성에 가면 황제가 앉아있는 단상 위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무위’라고 씌어 있거든요. 지금은 못 들어가는데 제가 갔을 때는 들어가서 볼 수 있었어요. 저는 그걸 20년 전에 처음 봤는데, 가서 볼 때마다 무소불위한 통치자인 중국황제 위에 ‘무위’라는 글자가 햇빛에 비치는 걸 보면서 대체 저게 뭘까 하고 궁금해 하면서 공부를 한 거예요. 공부를 통해서 저는 ‘무위’를 ‘없음’에 대한 통치라고 생각했어요. 중국 석학들의 생각이 저에게까지 전달이 돼서 그 작품을 하게 됐는데, 그 작품이 ‘창작산실 레퍼토리’에 선정되어 12월10~11일 세 번 공연을 하게 됐고요.
이은주 _ 저는 학교에 있으면서 창작 작품도 하고 전통 공연도 하고 있어요. 2년씩 창작과 전통을 번갈아가면서 병행했어요. 지금은 제가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되면서 창작은 학생들만 하고, 대작을 하거나 제 이름을 걸고 작품을 하는 건 의도적으로 삼가고 있어요.
제가 전통에 몰입하면서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의미를 가지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야만 전통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통춤이 보기에는 참 쉽게 보이고, 한편으로는 항상 똑같은 걸 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연습하는 과정이 힘들어요, 다만 그 과정에서 굉장한 희열을 느끼거든요. 아마 그래서 전통춤을 많이 하는 듯해요. 어쨌든 저는 근래 한 10년 동안은 전통 공연만 하고 있습니다.
정혜진 _ 저는 1월에 서울시무용단에 들어가서 정신없이 5월 창작 공연 『놋』을 마쳤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8월엔 합창단과의 협연인 『신나는 콘서트』, 9월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출연진이 300명 정도가 나오는 전체 통합 공연을 했습니다. 홍범도 장군 이야기를 가지고 만든 「극장 앞 독립군」이라는 작품인데, 그 작품에 올인하느라 또 정신이 없었어요. 그 작품이 끝남과 동시에 10월 초에 공연된 『허행초』라는 최현 선생의 춤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을 하느라 바빴고요. 무용단 생활이 어느새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무용단 생활이 무척 바쁘더라고요. 지금은 12월 5~7일에 세종 ‘S씨어터’에서 공연되는 『더 토핑』이라는 단원 창작공연을 준비 중인데, 4명의 단원이 (이선희 『봄봄봄』, 고우리 『TEARS』, 윤서희 『폼』, 오정윤 『황금비율』) 그동안 쌓아온 안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안무하는 것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허행초』에 담은 최현 선생의 인생관
정기헌 _ 올해 많은 작품들이 공연됐지만, 예전에 한창 작품이 많이 공연될 때와 비교하면 그리 많은 건 아닙니다. 경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여러 이유에서 작품을 만드는 환경이 위축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허행초』 작품은 최현 선생의 작품을 종합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인가요?
정혜진 _ 『허행초』 작품의 전신은 『신로심불로』예요. 『신로심불로』는 5분 정도의 소품인데, 그 작품을 나중에는 가면이 없어서 공연을 안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선생님이 원하시는 『신로심불로』의 가면이 없어서 그냥 가면 없이 공연하시는 걸 딱 한번 본 적이 있었는데 넋을 빼앗기면서 봤습니다. 그 이후에도 저는 그 공연을 굉장히 보고 싶었는데, 더 공연을 하지 않으시고 『허행초』로 바꾸셨어요. 어린아이 3명을 출연시켜서 인생의 무상함이라는 선생의 인생관을 담으신 작품이였는데 무척 인상적이어서 제 가슴에 아직까지 남아있습니다. 원필여 선생을 모시고 작품 선정을 하면서 선생의 삶 자체가 허행초의 삶이었다는 의견을 나누다가 전체 작품의 제목을 『허행초』라고 하자는데 다들 동의를 했지요. 그렇지만 허행초의 이미지는 약 4분 정도만 나오고 나머지는 선생의 작품 12개를 선생께서 당신의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재구성했어요.
돌아가시기 직전에 안무해주신 작품들이 있는데, 그 뒤로 몸져 누워 병원에 입원 하시는 바람에 그 공연은 못 보셨어요. 그리고 공연 비디오가 나왔을 때는 의식이 아예 없으실 때였어요. 의사 말에 의하면 의식불명인 것처럼 보이지만 청각은 다 살아계신다고 해서, 비디오에 나오는 음악을 다 틀어드렸어요. 선생님이 만드신 음악을 끝까지 감상하시면 좋겠다고 제가 말씀드리면서 하루 종일 틀어드렸던 기억이 나요. 이 『허행초』는 ‘선생님이 그 기억에, 그런 상황 속에서 이런 춤을 만드셨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만든 작품이에요. 작품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축약시킨 작품도 있고 오리지널을 제대로 표현하려고 노력한 작품들도 있습니다.

한국춤 창작이라고 일컬어서 주목받는 공연은 올해 없었다
정기헌 _ 올해 한국 춤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창작활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요즘 한국춤의 창작 경향 등을 보면서 느끼신 점이나,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국수호 _ 한국춤 창작이라고 일컬어서 주목받는 공연은 없었던 것 같아요. 지방과 서울을 비롯해서 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국립무용단, 시립무용단, 도립무용단들에서 한 창작 작품들 중에 뭔가 집약적으로 사람들한테 주목받고 각인된 작품이 없었어요. 그 원인이 뭘까 생각해봤는데, 언론에서나 홍보할 때 창작 작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작품으로 띄워주지는 않더라고요. 그게 사회 시스템의 책임인지 그 누구의 책임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창작 작품이 그냥 한 번 하고 지나가는 무의미한 공연이 되어버렸어요. 예전의 한국춤계를 보면, 작품을 통해 사회에 활력을 줄 만한 화두를 던졌어요. 그걸 우리 사회에서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만들어주신 분이 바로 「춤」지의 조동화 선생이셨죠. 그런 구점심이 되는 인물이 지금은 없어서 그런지, 요즘은 무감각한 시대가 된 듯합니다. 아무튼 올해는 작품을 그냥 소진해버리는 한해였지 않나 싶습니다.
이은주 _ 제가 볼 때는 그런 양상이 지금 극에 달한 것 같아요. 이게 비단 작년, 올해만의 일이 아니에요. 더 이전부터 출산율도 줄고, 무용인구가 줄어들면서 무용하는 사람들이 타격을 많이 받아 왔어요. 예를 들면, 1990년대 많은 대학이 설립되자 각 대학마다 무용과를 만드는 일이 생겼지만 교육정책의 변화로 포화상태의 대학이 통폐합을 하는 과정에 제일 먼저 무용과가 폐과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반면에 무용가는 비대하게 많아지는데 실속은 없는 듯해요. 정말 춤 잘 추는 사람은 춤으로 승부해야 되는데, 조금 기능이 약화된다거나 하면 갑자기 안무가가 돼요. 작품 하나 했는데 안무가라는 타이틀을 걸어요. 저는 무용계의 그런 현상들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작품을 짜보니까, 30분짜리를 잘 짜는 사람이 있고 2분, 3분 콩쿨 작품을 잘 짜는 사람이 있어요. 근데 2~3분짜리 작품을 잘 짜는 사람이 30분짜리를 만들면 보는 사람도 5분 지나면 힘들어요.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장편소설 전문, 시 전문, 수필 전문이 나뉘어 있잖아요. 그것처럼 무용에서도 모든 사람이 안무가, 무용가, 이론가를 다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무용계가 좀 더 발전하고 깊어지려면, 각자가 자기 전문 분야를 지키면서 확고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 경험에 의하면 우리가 문화재단에 신청하면 천만 원이 최고금액이에요. 물론 제가 알기로는 일반인에게 이렇게 돈을 주는 정부는 전 세계에 없을 거예요. 미국에도 유럽에도 없는 참 좋은 제도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엄밀하게 따져보면, 세상에 알려지기도 전에 작품이 끝나버리는 거예요.
연극 작품들은 한 달씩 공연을 하니까, 한두 사람이라도 보고 가서 작품이 좋다고 말하면 공연 기간이 끝날 때쯤에는 공연이 굉장히 성행하고 좋은 평을 받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 무용은 남이 알까 무섭게 그냥 끝내버리는 거죠.(웃음) 제가 뮤지컬 「모차르트」를 보러 세종문화회관에 갔는데 티켓 가격이 12만원이었어요. 그 공연을 한 달 정도 하는데 좌석이 거의 다 차요. 그런 뮤지컬에는 투자되는 비용이 거의 몇 십억 원이에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천만 원 지원해주고 사비까지 들이게 하고서는 몇 십억 원짜리 공연을 기대하면 곤란하죠.

작품을 통해 사회에 활력을 줄 ‘화두’를 던지는 것이 춤예술
정혜진 _ 창작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해왔지만 요즘은 풍토가 많이 달라지긴 했죠. 옛날에는 이런 지원제도도 많지 않아서 우리가 호주머니 털어서 하고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했거든요. 요즘은 지원금을 많이 주는데, 여기저기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으니까 지원금에 많이 의존하는 거겠죠. 그래서인지 직접 돈을 들여서 하려고 하지 않는 상황이 된 듯해요. 그리고 무용은 또 연극이나 합창 뮤지컬과 다르게 공연 내내 아주 한 순간까지 올인해서 백퍼센트의 에너지를 다 쓰잖아요. 그러니까 하나의 팀으로는 이틀에서 고작 삼일 정도의 공연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홍보면에서 다른 장르에 뒤떨어집니다. 무용이 이제는 한 팀으로 공연되는 것을 벗어나서 두 팀이나 세 팀이 공연하게 기획을 하여 공연기간을 늘리고 팬들도 확보를 하고 활성화를 시켜야 할 것으로 봅니다.
이은주 _ 정말 경제적으로 풍족해서 뮤지컬만큼 투자를 할 수 있으면, 무용도 뮤지컬처럼 몇 그룹을 만들어서 주역들을 바꿔가면서 공연할 수 있겠죠. 옛날에는 우리가 학교에서 월급을 받아서 그 수입으로 투자할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노동법에 의해서 학생들이 몇 시간 이상 공연에 참여하면 급료를 줘야 돼요. 과거에는 선생님 일이니까 배운다는 마인드로 제자들이 출연을 했어요. 지금은 선생이 제자한테 돈을 줘가면서 해야 되니까, 그렇게까지 하면서 공연을 해야 하냐는 회의감이 좀 있어요.
정혜진 _ 제자한테 다 가르쳐 주고, 출연료 주고, 의상 다 해주고 또 중간 간식이나 식사제공 당연히 해야 하고 늦게 끝나면 택시비까지 챙겨서 집에 보내야 하죠. 정말 그렇게 해주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그렇게 다하다보면 결국 안무자들한테 돌아오는 것은 빚이기 때문에 이리 저리 충족이 안 되면 서로 오해가 생기고 관계가 힘들어지는 현실이 됩니다.
국수호 _ 이제 지원제도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어요. 지원제도가 현실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소품, 중편, 대작으로 나누거나 소극장, 대극장으로 나눠서 구체화해서 지원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지원제도가 계속 무용가를 속이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면 작품도 제대로 안 나오죠. 그리고 지원제도에서는 광고비, 활동비, 안무비 같은 걸 주질 않아요.
정혜진 _ 그거 이상하지 않아요?
국수호 _ 그렇죠. 어떤 사람이 그렇게 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연습장 비용도 인정을 안 해줘요. 그러면 안무비 없고, 연습장 비용 없으면 안무하는 사람이 계속 희생만 하면서 어떻게 먹고 살아요? 그런 우스운 지원제도는 차라리 없는 게 낫죠. 옛날처럼 지원이 없으면 기대 않고 집을 팔아서라도 할 사람은 하겠죠. 근데 지금은 지나가는 사람 한 끼 식사 주듯이 건방 떨면서 ‘너 돈 천만 원 줄 테니까 해봐라’ 하는데, 무용은 그런 한 끼 식사 같은 게 아니거든요. 연극과 뮤지컬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고 공연도 한 달씩 장기공연으로 하는데, 무용도 일자만 있고 관객만 있으면 30일씩 할 수 있단 말이죠. 제작비는 똑같이 들어가요. 인건비도 똑같이 들어가고요. 그런데 지금의 지원제도는 순수예술을 살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 무용가들한테 희생만 강요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무용가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현 지원제도의 현실화가 관건
이은주 _ 각 시도에 문화재단이 많잖아요. 그런 문화재단에서 펴는 정책들 중에 예술가들을 위한 정책은 몇 퍼센트 안 돼요. 모두 ‘문화일반’을 위한 정책이에요. 지금 이게 ‘소액다건’이잖아요. 누구나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건 문화일반적인 사고방식에서 출발한 거고요. 예술가를 위하려고 한다면 안무비를 책정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우리가 논문을 써도 40퍼센트는 영수증도 없이 집필자한테 주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여기는 안무비도 없단 말이에요. 이런 제도를 보면 예술가를 너무 가볍게 보는 경향이 다분하다고 봅니다.
정기헌 _ 현 실태는 ‘소액다건주의’입니다. 특히 지자체는 그런 경우가 더 많고, 지원금이 창작을 하는 물고가 마르지 않을 정도로만 나오는 것 같습니다. 결국 개인 안무가와 개인 무용단체가 활동하기 너무 어려워졌습니다.
춤이라는 것은 분명히 에너지도 있고, 내용과 메시지도 있는데, 그게 왜 지금 이 사회에 전달되지 못하고 울림도 주지 못하는 걸까요? 굉장히 복잡한 문제인데, 요즘 사람들은 모두 바쁘고 분주하지만 자기시간이 생기면 결국 핸드폰만 보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인적구성과 힘이 있는 국시립단체가 뭔가 보여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파리에 여행가서 일주일 머물게 된다면, 파리의 오페라 극장에서 하는 공연이 뭔지 검색도 하고, 좋은 공연이 있으면 시간을 맞춰서 꼭 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런데 서울은 어떤가요? 지금 서울이라는 도시가 굉장히 커졌습니다. 그렇다면 서울에 여행 온 사람들이 광화문에서 사진만 찍고 가는 게 아니라, 그 옆의 세종문화회관에 들어가서 무용단, 교향악단이나 합창단의 공연을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지금 그것이 가능한 시대에 와있는데, 예술 단체들은 시대적 변화와는 너무 먼 곳에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이제 국시립단체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올해 예술감독들이 많이 바뀌어서 기대도 갖고 있는데, 이 자리 계신 분들은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지 듣고 싶습니다.

‘한국춤의 집’ 등 사회적인 인식의 인프라를 갖춰야
국수호 _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될지 모를 정도로 광대한 문제인데요. 춤을 보는 평가의 기준이 되는 한국춤의 집이 없어요. 춤 전용극장이 없단 말이죠. 아르코 극장도 서양식이고, 춤 전용이 아니고 다목적 홀이에요. 한국의 극장은 다 유럽과 미국에서 건너 온 초콜릿 같은 그런 극장이에요. 한국춤이 죽어가고 멸시 당하는 첫째 이유가 그거에요. 한국춤은 집이 없이 떠도는 유랑자 예술집단인 거죠. 그런데 발레나 현대춤은 거기가 자기 집이에요. 그러니까 한 무대에서 발레, 현대춤, 한국춤을 보는 거죠. 발레나 현대춤이 화려하고 육감적으로 현실을 노래하고 있는 와중에 한국춤에서 태평무를 한들, 그 태평무를 평가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요. 그러니까 우리 한국춤은 지금 걸맞지 않는 집에서 춤을 추는 게 바로 세계적으로 한국춤의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 첫 번째 이유예요. 세계적인 평가의 개념이 세워져 있지 않으니까 지원 정책에서도 적당한 수준에서 주면 되는 거예요. 그냥 어린애들 울지 않게 끼니때마다 밥 챙겨 주듯이 나눠주는 거죠.
이은주 _ 그렇죠. 민원이 안 들어오는 선에서 주는 거죠.
국수호 _ 평론가나 이론가 무용가들이 아우성을 쳐서 한국춤의 집도 만들어주고, 사회적인 인식의 인프라를 만들어줘야 돼요. 그건 춤을 만드는 무용가들만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저는 그래서 그게 사회적으로 평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20~30년 전에 조동화 선생이 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해온 것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이런 위상을 높일 생각은 않고, 다들 평론가 역할을 망각하고 본인들이 춤을 제작하거나 하면서 무용계를 위한다고 하는데요. 게다가 평론가, 이론가들을 내세워서 예산을 따다가 자기 기호에 맞게 페스티발을 하고 있어요. 무용가들이 생각이 없는 줄 알지만, 다 보고 있고 듣고 있고 주시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우리가 평론가들, 이론가들에게 기댈 수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 한국에서 춤추는 사람들은 절망하게 되고 지원제도에 못 들어가면 열등감 느끼고 그러는 거고요. 특히 젊은 친구들에게 이런 보이지 않는 상황이 있기 때문에 자기 후배들한테 너도 춤추라는 소리를 안 하고 있는 거예요. 그 결과로 무용과도 점점 없어지고요. 지금 평론가, 이론가들이 스스로는 한국 무용계, 예술계를 위해서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근본적으로는 모든 것들이 박탈감부터 시작해서 썩어 들어가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춤이 버려지고 있는 상황이에요.
춤의 집도 없고, 사회적 인지도와 믿음도 사라지고, 그러면 춤추는 사람이 어떻게 산단 말이에요? 내 나이가 칠십이 넘었으니까 원로로 들어가는데, 적어도 나처럼 열다섯부터 춤을 추면서 계속 작품을 해왔으면 그래도 검증된 사람 아니에요? 그런데 삼사십 대 안무가와 지원금을 똑같이 줘요. 그러면 작품을 할 수가 없어요. 삼사십 대들은 앞으로 대학교수라도 되려고 스펙과 이력을 쌓기 위해 자기투자를 하겠지만, 제가 하려고 하면 집 팔고 디딤무용단을 없애야 가능한 거예요. 제가 『월인』이랑 『사도세자』 작품을 할 때, 디딤무용단이 3분의 1로 줄어들더라고요. 지원금이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저는 작품다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투자를 했고, 그랬더니 제 자신도 피폐해지는 거죠. 제가 이 정도인데 다른 중견들과 의식 있는 이삼십 대 사람들은 얼마나 절망감을 느끼겠습니까.

기업의 예술인을 위한 펀드나 기부를 가로막는 규제들
정혜진 _ 해외에서는 기업에서 예술인들을 위한 펀드를 만들거나 기부를 하잖아요. 우리나라도 나라 돈만 쓸 수는 없으니까, 우리도 그렇게 정책을 만들고 권장을 했으면 좋겠는데 기업에서 지금 못 하잖아요. 개인에게 돈을 줄 수 없고, 기업에서도 꺼려하고 있거든요. 정부에서 제재를 많이 풀어주고 세금감면도 해주면서 권장 한다면 좋을 텐데, 우리나라는 그게 투명하지가 않아서 개인을 지원해주면 세금 폭탄을 받더군요. 돈이 남아서 이렇게 지원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골치 아픈 일들이 생기기도 하니까, 기업들이 돈이 남더라도 아예 지원 할 생각들을 안 해요. 요즘은 더 많이 위축됐죠.
이은주 _ 미술 분야에서는 지금 개인 지원이 가능해요. 건물앞에 뜬금없이 보이는 구조물이 있잖아요? 건축비의 일정 퍼센트를 예술작품에 투자하도록 해서 그런데, 바로 미술협회가 이뤄낸 쾌거예요. 물론 앞으로 무용협회에서도 그런 일을 해야겠지만, 무용은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미술품처럼 늘 두고 볼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어떤 극장에 가면 늘 전통춤을 볼 수 있고, 또 어떤 전용극장에 가면 이 시대의 가장 현대적인 춤을 볼 수 있도록 되면 좋겠어요. 지금 한류 물결을 타고 외국인들이 오잖아요? 그럼 공연을 본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기도 할 거고요. 공연이란 건 늘 우리 문화의 자산을 간접적으로 판매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다 멀티 극장이어서 이것저것 다 하는 거죠. 오죽하면 인천은 20년 만에 극장 이름에서 ‘종합’ 자를 뗐어요.문화 자체가 원래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음에도 ‘종합문화예술회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종합’을 떼는 데 20년이 걸렸어요.
그리고 지자체마다 무용단이 다 있잖아요. 저는 그 무용단들이 좀 자기 색깔을 가지면 좋겠어요. 물론 예술감독이 계속 임기제로 교체되니까 그 색을 지키기는 어렵지만, 국악원무용단처럼 궁중무용을 기본으로 하거나, 지역사회의 스토리를 가지고 하거나, 아니면 창작을 하거나 하는 식으로 지자체마다 색깔이 있는 게 좋다고 봐요. 그래야 문화적 다양성이 있죠. 그런데 지금은 무용단들이 거의 다 비슷한 흐름으로 가다 보니 오히려 더 주목을 받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어요.
국수호 _ 그 말씀에 덧붙이자면, 예를 들어서 경복궁 옆에 있는 기무사가 현대미술관으로 바뀌었는데 저는 그걸 반대했어요. 왜냐하면 거기에 경복궁, 북촌, 남촌, 서촌 다 있잖아요. 거기에 현대미술관이 들어갈 게 아니라, 춤 극장과 음악 극장과 창 극장이 들어가야 돼요. 지금 판소리도 흥행하고 있는데 소리, 창을 위한 극장이 없어요. 전부 다 유랑극단이에요. 집이 없이 추어지는 춤은 그냥 그 사람의 존재만 말할 뿐이에요. 객관적으로 그건 떠돌이 유랑단 사회상을 얘기하는 것이지요, 춤집이라는 예술인의 정착된 삶 속에서 결과물이 보여질 때 춤은 영원성을 지니는 거죠.
일본에는 가부키 극장, 노 극장, 분라쿠 극장이 있잖아요. 중국에는 경극 극장도 있고요. 상해의 예원에 가면 ‘희대’라는 무대가 있고, 서태후도 이화원에 경극 극장을 지었잖아요. 지금도 경극과 가부키는 그렇게 돼있는데, 세계사적으로 우리나라의 창극이 논의된 적은 없어요. 저는 제 춤극을 만들 때 그런 인프라를 생각을 하면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경복궁 옆의 기무사 터를 현대미술관으로 만든 건 환경적으로 어울리지도 않잖아요. 과천과 덕수궁석조전 두 군데나 현대미술관이 있는데 한국의 문화의 집 가무악 극장을 만들면 더 어울리고, 야외극장을 둬서 거기서 농악 공연이나 탈춤을 할 수도 있을 거고요. 그리고 아래에는 박물관을 만들고 위에는 연습실을 만들고. 그러면 문화국가로서 대단한 인프라가 생길 거예요. 캄보디아에 한번 가보세요. 공주나 왕비가 관여하는 왕립 춤 극장이 있어요. 춤 학교도 있고요. 그게 캄보디아가 자국의 전통을 지켜주는 국가사업이에요.

지자체 무용단들은 좀 더 자기 색깔을 가져야
정기헌 _ 도쿄에 가면 스모 전용극장을 아주 잘 지어놨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씨름의 인기가 대단했었죠. 대기업에서 씨름단을 운영하고, 일요일 오후2시부터 5시까지 메인시간에 생중계를 할 정도였지만 씨름을 위한 전용경기장을 지어야 한다는 안목이 없었습니다. 늘 이동하며 간이무대에서 했고, 오죽했으면 장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빨강, 파랑 천박한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올랐지요. 우리 것이 귀해서 지킨다고 했지만 그것을 위한 전용공간을 생각할 정도의 안목이 부족했던 것이지요. 국악원의 경우 그 쓰임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 당시의 설계로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고, 심지어 예술의전당을 지을 때 정부가 전통을 위해 서비스로 끼워 넣듯이 추진한 것이었습니다.
이은주 _ 우리나라가 보이지 않게 문화사대주의가 굉장히 커요. 사회 전반에서 예술을 위해 뭘 시작할 때 항상 서양예술이 우선이고 전통은 뒷전이에요.

보여주기식이 아닌 마니아층을 위한 중소극장이 많아져야
정기헌 _ 무용전용극장을 만들 때도 전통춤의 에센스를 볼 수 있는 곳과 현대춤을 볼 수 있는 곳을 구분해야죠. 지금 그나마 아르코대극장이 무용공연에 적합한 것 같아요. 그리고 중소극장 중에 제가 제일 어렵다고 생각하는 곳은 메리홀입니다. 메리홀에서는 어떤 작품을 봐도 재미가 없습니다. 또 대극장에서 제일 어려운 곳은 세종문화회관이에요. 전통과 창작, 심지어 뮤지컬도 작품이 살기 어려운 공연장입니다. 무용전용극장이 무조건 크기가 큰 것이 아니라, 중소 규모여도 무용에 적합한 극장이 필요한 거죠.
국수호 _ 예전의 박정희나 제5공화국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보여주기 위해서 대중성을 지닌 거대 극장은 필요 없어요. 오히려 마니아층을 위한 중소극장이 많아져야죠. 춤 극장을 만들 때 국립극장, 대극장은 필요 없는 거죠. 이제는 한국 것이 우선이 아니라 서양 것이 우선되는 사대주의가 더 무서워요. 그런 상황에서 무용가들은 어떤 식으로 이걸 타파하고 싸워가면서 이 사회에 정착할 것인가가 굉장한 문제에요. 대학교수들, 이론가들, 지도자들은 그런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글도 쓰고 춤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혜진 _ 저는 항상 전통이 기본이고, 전통에서부터 모든 걸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통이 중요하고, 어떻게 하면 전통의 깊이를 찾아갈 수 있을지가 우리의 숙제잖아요. 전통의 정신을 우리가 이어가야 하고요. 그게 교과서적인 거죠. 그런데 이상하게 평론가들은 전통은 낙후된 것이라고 여기고, 서양 현대춤을 좇아서 온몸을 휘두르면서 초 단위로 춤을 추면 앞서간다고 평가하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이제는 시각을 바꿔야죠. 춤의 퀄리티를 제대로 볼 줄 아는 평론가가 많이 필요해요. 새롭고 독특한 것만 추구하려고 하면 안 되죠. 물론 창작을 하고, 새로운 언어를 춤을 통해 개발하고 보여주는 게 예술의 가치지만, 그 이전의 언어들도 충분히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가 가져야 돼요. 그런데 평론가들이 예전 언어에 대해서 탐구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이은주 _ 한 평론가가 전통은 매번 똑같은 것만 하니까 새롭게 쓸 거리가 없다는 거예요. 그건 그 평론가가 연구를 안 해서 그런 거죠.
정기헌 _ 제가 변론을 하자면 첫째는 예술가가 이삼십 년 이상 갈고 닦고 훈련해온 것들에 미묘한 차이를 알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에 대한 평을 하자면 적어도 몇 해를 집중적으로 분석해야 하겠지요. 클래식음악의 경우에는 어떤 지휘가자 자기해석을 해서 바흐의 교향곡을 발표할 때, 기존의 다른 지휘자의 같은 곡을 미리 분석해 볼 수 있지만 현장예술성이 강한 춤은 그것이 불가능 합니다. 그래서 시의적, 메시지 중심의 작품에 평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전통춤의 미묘함에 접근이 안되고, 전통춤에 담긴 핵심메시지는 이미 알려진 것이죠. 클래식발레에 대한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솔리스트 누가 아주 잘해서 관객을 매료시켰다거나 외에는 비디오를 넘어서 글로 전달하는 것에 한계가 있지요. 창작 발레에 대해서 이 작품이 이 시대에 무슨 의미를 갖는지 평을 할 수 있겠지요.

예술감독 임기 1~3년인 현실, 한국춤을 극소화, 폐허화시켜
국수호 _ 전통춤, 한국춤에 밝은 평론가는 그것만 평론을 하시는 게 좋고, 발레는 발레대로 발레 전공자가 다루는 게 맞죠. 발레 전공자가 한국춤을 볼 줄은 알겠지만, 글을 쓰기는 힘들어요. 춤추는 것도 그런데, 평론은 더욱 더 전문성이 있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춤계는 인문학적 체계가 바로 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인문학적 체계가 안 서있으니까 한국춤계가 사회에서 하급 계층이 되어서 멸시 당하고, 소외당하고, 작은 것에 만족하라는 식의 대우를 받는 거예요.
그걸 누가 책임져야 되느냐, 어느 분야든 간에 지도자, 중견들이 책임져야 돼요. 그 사람들이 정말 정신을 차려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립무용단, 시립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 또 국립발레단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문제는 예술감독이 임기가 너무 짧아요. ‘천안시립무용단’ 같은 경우는 1년짜리 감독이에요. 그리고 다른 곳도 대부분 2년, 제일 긴 곳이 국립무용단으로 3년이에요. 송범 선생이 30년을 국립무용단장을 하면서 무용극이라는 체계가 섰어요. 그렇게 오래 했으니까 가능했던 것이죠. 조지 발란신도 망명 와서 30년 간 뉴욕시티발레단에서 활동하면서 뉴욕시티발레단을 세계적인 발레단으로 만들었어요. 그랬듯이, 예술감독은 감독만이 아니라 안무자란 말이죠. 아티스트에요. 그런데 1~2년 가지고 그 단체를 훈련시키고 좋은 작품을 내겠어요? 그 단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만도 1~2년이 걸릴텐데요.
제가 1998년에 국립무용단에서 『티벳의 하늘』이라는 작품을 했는데, 그 작품을 위해서 1996년부터 월, 수, 금 오전에는 발레하고, 화, 목은 현대무용을 시켜서 3년을 해서 몸을 만들어서 내보냈어요. 그 작품으로 그 당시에 평론상을 받기도 했는데요. 비교하기 쉽게 제 얘기를 했는데, 제 말은 한 작품을 제대로 하려면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지자체와 맞는 감독의 역량을 평가해서 뽑고, 5년, 10년, 20년을 계속 해야 되죠. 피나 바우쉬가 30년을 ‘부퍼탈무용단’에 있었기 때문에 세계화가 가능했던 것처럼요. 세계적으로 나아가려면 그렇게 해야 돼요. 동대문 시장에서도 빈대떡 잘하기로 소문난 집이 있을 거란 말이죠. 그것처럼 무용에서도 서울시립무용단은 이런 춤을 가장 잘 춘다는 인식이 있어야 세계 사람들이 몰려가는데, 지금은 광장시장에 빈대떡 장사보다도 짧은 기간을 가지고 좋은 작품을 낸다는 건 불가능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예술감독 연한제는 오히려 한국춤을 극소화, 폐허화시키는 데에 기여하는 일등공신이 되고 있어요.
정기헌 _ 지금 서울시무용단의 경우는 예술감독을 시장이 결정하나요, 아니면 추천을 받나요?
정혜진 _ 서울시무용단 같은 경우는 서울시에서 인사에 대해서 관여를 안 해요.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직접 다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세종문화회관이라는 재단이 생겼고, 그 안에 있는 9개 단체 중 하나가 서울시무용단이죠.
국수호 _ 그건 내규만 바꾸면 돼요. 서울시립교향악단에 정명훈 지휘자가 와서 했던 것처럼요. 물론 독립법인이라 좀 특수한 케이스이기는 하지만, 그런 식으로 가야 맞습니다. 권한도 주고요. 그래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몇 년 안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교향악단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거죠. 그런 식으로 예술감독을 초청하는 시스템이 되어야 돼요. 지금 시스템에서는 아무리 실력 있는 사람이라도 떨어지면 창피할까봐 국립무용단에 지원을 안 해요. 국가의 춤을 표방해야 되는 국시립무용단에 예술감독을 뽑는데, 응시제도로 하면 안 되죠.
그런데 지금은 작품을 잘 못하는 예술감독이 가는 경우가 다반사고, 거기 가서 작품은 안 하면서 그 감독직을 유지하려고 노조와 규합해서 2년, 2년, 1년 계속 추가해서 5년을 채우고 나오는 감독들도 부지기수고요. 그러니까 작품이 나올 수가 없어요. 사회 시스템이 그런 식이니까요. 그 문제를 말하는 평론가도 없어요.
지금 무용계에 22여 개의 단체가 있어요. 대학교수들이 하는 무슨무슨 학회 아카이브 등등 많잖아요. 지금 무용가들은 다 굶어죽고 하위 층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전부 다 옛날의 대학교수들처럼 여왕처럼 꿈만 꿔요. 연구만 하고, 무용가를 위한 실질적인 시스템, 제도, 급여 제도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요. 대학 졸업한 사람들이 받는 일반적인 급여가 3~4백만 원 정도 되는데, 무용단에 처음 가면 이백만 원이 채 안 돼요. 그런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어요. 그 의식을 발현해서 현실화시키지 못하는 사학회, 각종 학회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저는 이런 가식적인 학회나 평론은 절대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안 하는데 무용계가 무슨 존재감이 있겠어요? 정말 그분들이 잘해줬으면 좋겠어요.
정혜진 _ 저도 정말 공감해요. 무용과를 졸업해서 가장 성공하는 경우가 무용단 들어가는 건데요. 고정적인 월급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무용단 월급도 얼마 되지 않잖아요. 그래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 무용을 그만두는 케이스도 정말 많아요. 재능도 많고 춤이 좋아서 열심히 추다가도, 무용계를 보니 무용단에는 10년에 하나 들어갈 수 있을까 말까 한 상황인 거죠. 또 춤만 추다가는 일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무용을 접고 다른 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용을 하고 있는 사람이 정말 고맙고 감사한 일이죠.
국수호 _ 대체 이 모습을 왜 못 보냐고요. 변화를 시킬 수 있는 지도자 급 사람들이 이런 사회상에 대해서 문제제기 하지 않으면 누가 그걸 하겠냐는 거예요.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용계에서 떠나는 게 좋겠어요.

상설, 장기 공연에 대한 기대
정혜진 _ 특히 무용은 동작 한 번 하는데 에너지를 백퍼센트 쓰기 때문에 이틀 공연하면 방전이 돼버려요. 그 후에는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 거죠.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상설로 하거나 뮤지컬처럼 한 달씩 공연하려면 다른 예술 장르들보다도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해요. 적어도 세 팀은 돌아가면서 해야 이틀 공연하고 쉬면서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무용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지 않아요. 그런 것도 많이 고민해봐야 할 문제에요.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무용 공연이 롱런할 수 있어요. 공연을 이틀씩 2회 정도만 하면, 관객들이 보러 가려고 하면 이미 끝나 있잖아요.
무용은 지금 홍보를 통해서 관객을 끌어들일 수 없는 처지에요. 그런데 공연을 장기적으로 할 수 있게 되면 무용에서 붐이 일어날 여지가 생길 거라 봐요.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죠. 무용은 비언어적인 예술이니까 누구든 와서 감상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무용은 지금보다 훨씬 더 확대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장르인데도 이런 문제들이 해결이 안 돼서 못 하고 있는 게 굉장히 안타까워요. ‘정동극장’만 해도 상설 공연을 못 했잖아요. 무용 팀을 한 팀만 가지고 하니까 사고도 많은 거예요. 사고가 나면 공연이 중단되니까 관객들이 붙다가도 다 떨어져나가는 거죠. 한 팀이 계속 춤을 추다 보면 춤을 많이 출수록 사고도 잦아져요. 결국 유지가 잘 안 되게 되는 거예요. 상설 공연이 되려면 적어도 두 팀 하고 반 팀은 더 있어야 돼요.
국수호 _ 정동극장 얘기가 나왔는데요. 문화관광부도 정신을 차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정동극장에 예전에는 무용수가 180명 정도 있었어요. 극장장이 굉장히 능력이 있어서 무용수를 모아서 하루에 두 번씩 공연을 하고, 경주까지 가서 공연을 하기도 했어요. 무용 팀을 두 팀씩 만들어서 무용수와 악사까지 다 합쳐서 180명 정도의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시스템이 된 거예요. 그게 다 많이 사라지고 지금은 한 20~30명 정도 남았을 거예요.
정혜진 _ 20~30명까지도 안 남았어요. 14명이에요.
국수호 _ 그러니까요. 그리고 거기에 관광객도 미어 터졌는데 지금은 그 때의 3분의 1도 안 와요. 그렇게 무능해도 3년의 임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거예요. 이건 말이 안 되죠.
정혜진 _ 다른 전공자들 시각에서는 이게 굉장히 낭비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인원수가 180명이니까 인건비도 많이 들고요. ‘정동극장’이 280석 밖에 안 돼서 들어오는 수입에 비해서 돈이 너무 많이 나가니까 소모가 심하다고 생각해서 줄였을 지도 몰라요. 이전 극장장은 춤 문화에 대해 고려해서 정책을 펼쳤고, 그 다음 극장장은 수입이나 운영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두 분의 판단이 달랐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찌 되었든 제가 베트남 가서 공연하는데, 베트남 사람들이 저한테 한국에서 왔냐고 물어보면서 『미소』 공연 너무 좋았다고 얘기하는데, 정말 뿌듯하더라고요. 이전 극장장의 성과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어요. 저 역시 무용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계속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그런데 상설극장이 없어지고 기획공연으로 넘어갔고, 무용 역시 기획공연으로 한 달 공연하고 들어가서 준비하고 하다 보니 무용을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곳은 없게 된 거예요. 언제 오든 항상 그 문화를 볼 수 있는 장소, 그러니까 그런 집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나마 있던 것도 없어졌으니 많이 안타까워요. 시립무용단도 상설 공연을 계속 하면 좋잖아요. 지금 우리가 『허행초』를 3회 공연했는데, 우리는 공연을 더 할 수 있는데 계속 빌릴 수 있는 극장과 예산이 없어요. 그래서 상설 전용극장과 예산만 있으면 서울시무용단도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미래에 대한 예측없이 만들어진 무형문화재 제도 유감
정기헌 _ 오늘 이야기 중에 핵심은 순수예술에 대한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순수예술이 위축되고 사라지면 결국 국민이 정서가 함양에 커더란 구멍이 생길 것입니다. 예술을 향유하면서 나오는 사회적 힘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는데, 순수예술의 위축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발언을 하지 않는 실태입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5년, 10년 뒤에는 더 안 좋아지겠죠.
그러면 이제 문화재 지정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962년도부터 문화재라는 제도를 만들어서 지정을 했는데요. 전통무용은 한참 후에 지정이 이루어졌고, 전통 중에선 그나마 궁중음악이 먼저 지정되었습니다. 이 문화재제도는 장단점이 있지만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보완해야 할 제도임에 틀림없습니다. 올해는 그간 미루어졌던 보유자 발표가 있었습니다. 선정 중에 과정상의 문제와 인물에 대한 문제가 구설에 오르기도 했었는데요. 늘 잡음이 생기는 무형문화재 제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은주 _ 제가 무형문화재 제도를 가장 많이 연구한 것 같은데요. 무형문화재 제도가 처음 지정되고, 지금이 2세대로 넘어가는 시점이에요. 처음에는 좋은 제도라고 만들었는데, 이 제도가 미래에 대한 예측없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2세대로 넘어갈 때 문제가 발생한 거지요. 이번에도 논란이 많았어요. 특히 조교로 한번 지정되면 거의 종신으로 지속돼요. 전수교육자가 종신으로 되는 거죠. 그러니까 조교가 되면 거의 문화재급인 걸로 본인은 그렇게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정기헌 _ 그럴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또 문화재 보유자들은 연로해지기도 했고요.
이은주 _ 그래서 중간에 준 인간문화재 제도가 있었어요. 준 보유자죠. 이를테면 문화재 보유자가 돌아가시는 경우 급하게 대책을 마련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 제도가 중간에 없어졌어요. 반면 계속 이어져온 것이 전수조교 제도인데, 전수조교가 한 명이 아니고 두세 명이에요. 그런데 나이 순서대로 보유자를 지정하는 게 아니니까 인정 과정에서 65세 조교가 보유자가 되기도 합니다. 설령 전에 85세 조교가 65세 조교에게 가르침을 줬다 해도, 제도상으로 65세 조교가 보유자가 되고 나면 85세 조교는 전수조교로 남아야 하는 거죠. 왜냐하면 전수조교 해촉 제도가 없어서, 한번 위촉되면 해촉이 안 돼요. 이런 경우까지는 생각을 못 한 거죠.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예술의 본질을 떠나서 보유자를 인정할 때 객관성, 투명성이라는 이름으로 전부 수치화를 하다 보니, 예술은 일종의 모멸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유자를 선정할 때 이수자부터 일반인까지 모든 사람이 다 응시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제도가 필요가 없는 거죠. 일반인도 오는데 무슨 제도가 필요하겠어요.

문화재위원이 심사만 하지 조사, 발굴, 연구하는 학자가 없어
정기헌 _ 문화재청은 오랫동안 잡음이 있었고, 무언가를 명쾌하게 결론내린 적이 없습니다. 보유자 후보의 기술적인 역량이 문제가 아니라 해당 종목을 잘 살려서 후학들과 함께 발전하고 계승해나갈 가능성을 봐야 하는데 이 부분에 평가가 저는 늘 부진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제자들의 숫자가 많다 적다는 아니구요. 그리고 문화재 보유자가 종신으로 실력을 행사하다보니 보유자의 인격, 예술가적 삶의 자세에 따라 한 종목이 발전하느냐 후퇴하느냐 결정된다고 봅니다.
문제가 정말 많습니다. 우리가 꼭 지켜야 하는데 없어질 만한 것들을 문화재로 지정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춤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승무, 살풀이, 태평무를 잘하든 못하든 한 번씩 다 해봤을 것 아니에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고 있거나 이수자들이 많이 탄생되어서 이수자만 백 명이 넘는 종목들도 있을 거고요. 그런데 지금 보유자로 한 명, 또는 두세 명을 지정하는 이 제도의 구조 자체를 전반적으로 다시 돌아볼 시점이 된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고 비인기종목 중에 제자도 없고, 열댓 명이 모여서 보존하려고 애쓰는 경우도 있고요.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논의해야 할 때입니다.
이은주 _ 과거에 1세대 때는 문화재 위원이 조사, 발굴해서 조사 보고서를 작성해서 그 분을 모시는 식으로 정말 제대로 잘 진행됐어요. 그런데 지금은 문화재위원이 심사만 하지 조사, 발굴, 연구하는 학자가 없어요. 그리고 이게 지자체에서도 무형문화재를 지정하다 보니 문화재 위원 인력이 부족하고, 통제가 안 돼요. 중앙에서 된 걸 가지고 지방에 보유자 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잘 모르니까 그냥 해주는 경우도 있고요. 통합이 안 되어 있으니 지방문화재와 국가문화재의 중복지정 우려가 발생하고 그래서 일각에선 문화재청이 관리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문화재를 위한 인력부족으로 문화재에 대해서 연구하고 발굴하는 역할이 없습니다. 지금의 문화재 위원 제도는 그런 기능을 하지 않고 심사 기능밖에 없으며 한사람이 여러 지역의 문화재위원을 하는 등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재위원 인력 풀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죠.
또 지금은 발굴의 시대는 아닌 것 같아요. 이미 있는 것들을 전승하는데, 그걸 전승할 체계가 제대로 안 서있어요. 문화재청은 종목만 지정해 놓고 유파는 지정해놓지 않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발표된 걸 보면 유파가 아니라 종목으로 ‘살풀이춤’으로 뽑았다고 하는데, 발표는 김숙자류, 한영숙류, 이매방류 이렇게 유파로 발표를 했어요. 이것 자체가 문화재청이 주관이 없다는 것이고, 문화재청이 스스로 제도를 어겼다고 봅니다.
정혜진 _ 그럼 유파로 나누지 말고 살풀이면 그냥 ‘살풀이’ 하나로 하는 건가요?
이은주 _ 그때 지원을 할 때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이매방 선생님 승무 계열로 조교 2명이 있었어요. 그런데 먼저 무형문화재 27호로 지정된 한영숙류 승무의 조교가 없었어요. 그래서 정재만 선생과 이애주 선생이 조교를 둘 수 없었어요. 승무 전수조교라는 직책으로 이매방류 조교 두 사람이 한영숙 류 조교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류파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 제도의 문제점이 여기 있는 것이죠. 종목으로만 되어 있으니까 이미 한 종목의 조교는 포화상태인 거예요. 그래서 제가 문화재청에 살풀이춤 신청 당시 류파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제안을 했는데, 류파는 인정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어요.
정혜진 _ 그 때도 이매방 선생님 승무가 있고, 한영숙 선생님의 승무가 있잖아요? 그렇다면 같은 승무라고 해도 유파 별로 들어간 거 아닌가요?
이은주 _ 아니에요. 유파별로 지정해서 뽑은 게 아니라 그냥 이 두 분을 연차적으로 뽑은 거예요. 문화재청은 두 사람이든 한 사람이든 상관없는 거예요.
정기헌 _ 그러니까 거기는 먼저 지정된 한영숙 선생 밑으로 이매방 선생이 들어간 게 아니라, 종목 내에 하나의 유파로 들어간 거죠.
국수호 _ 문화재청의 과장, 국장이 그런 걸 어떻게 알겠어요? 문화재 위원으로 있는 무용가가 언젠가 그런 식으로 정해버린 거예요. 유파를 없애자는 건 말도 안 되는 거거든요. 그 사람은 책임감이 없는 거죠. 어느 문화재 위원 때 지정했는가는 거슬러 살펴보면 금방 알게 될 일이에요. 그의 무지에 의해서 유파를 없애고 살풀이로만 했다는 것은 족보를 없앤 격이에요. 문화재라는 건 오히려 족보가 확실한 것들을 지정하는 건데, 족보를 통합해버린 거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문화재를 개인 한 명으로 지정하는 것을 반대하는데, 그것 자체를 근본적으로 반대할 게 아니라 유파를 확실하게 인정하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학회, 세미나 등에서 논의해야죠. 애정을 가지고 논의를 하고 정해진 내용을 무용계에 건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용가 대표들, 문화재 대표들, 위원회들이 다 같이 공론화해서 지정하면 좋겠어요.
제가 소위원회에 갔었는데, 문화재 지정을 복수로 하자는 게 제 생각이었어요. 왜냐하면 문화재를 한 명으로 지정해서 지금까지의 문제를 낳은 거예요. 문화재청 전에는 문화재관리국이었는데, 여기서 문화재 관리를 잘못해서 이런 결론까지 왔다고 봐요. 문화재를 한 사람만 지정하다 보니까 대부분 사람들이 볼 때는 갑질의 성향이 짙고, 그렇지만 이걸 없앨 순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럼 세 사람을 다 문화재로 지정하는 걸로 한 거죠.
이현자 선생이 강선영 선생한테 춤 배운 지가 71년이 됐어요. 내 나이랑 같아요. 이명자 선생은 7~8세 밑이지만 마찬가지고 양성옥 씨가 지금 65세인데, 강선영 선생에게 간 게 대략 30~31세 때에요. 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안 사실인데,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신무용 60년 재현무대’를 할 때 제가 양성옥 씨에게 강선영 선생한테 가서 태평무를 배우라고 했다고 해요. 그러고 35년이 지난 거예요. 황병기 선생이 서울대 법대 나왔지만 서울대 국악과와 이화여대 국악과 교수를 지낸 이유가 뭐겠어요? ‘황병기류’로 전문성을 인정받고 칭송을 받은 이유가 뭐겠어요? 적어도 20년이 넘으면 민속학이나 관련 학회에서 민속 현상으로 보고 있잖아요. 20년이 넘으면 성년이 됐다고 보는 거죠. 그 기준으로 인간문화의 가치를 인정하는 거예요. 그래서 30년이 넘게 했기 때문에 자격이 충분하다고 본다는 거죠.

무용가 대표들, 문화재 대표들, 위원회들이 공론화해야
이은주 _ 신무용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데, 지금 이 시대에 신무용 교육 안 받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사실 1세대에는 무속 계통, 광대 집안의 사람들이 보유자가 됐어요. 그런데 2세대는 지금 거의 박사학위를 갖고 있어요. 무속을 전업으로 해도 요즘은 의무교육을 다 받았죠. 이어서 대학의 전통예술학과에서 교육을 받은 세대들입니다.
국수호 _ 나는 그런 의미에서, 최승희의 춤을 배웠다는 이유로 결격사유가 있다는 주장은 정말 모호하고 애매한 주장이라고 생각해요. 뿐만 아니라 그런 주장은 정말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거죠. 그렇게는 정말 안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문화재 제도의 더 시급한 문제가 무엇일지 지성인들과 지도자들이 생각해야 됩니다. 경복궁이 지금 큰 곤경에 빠져 있잖아요. 시대가 변했다고 경복궁을 없애는 게 가능해요? 그리고 태평무 종목에서 보유자를 세 명으로 복수 지정했다고 그게 많다고 하는데, 무용계 지도자들은 무용가가 직업을 갖는 것에 대해서 왜 부정적으로만 봅니까? 음악 분야에는 가야금 병창에서 박귀희 선생에서 안숙선으로 내려오고, 세 명이나 가야금 병창의 문화재가 있어요.
정기헌 _ 가야금 산조, 거문고 산조의 경우 다 복수를 인정하고 있고, 유파도 인정됐죠. 거기에 제가 덧붙여 말씀드리면, 박귀희 선생 밑에 수많은 제자들이 있었을 탠데 가야금병창을 가장 발전시킬 사람은 안숙선 이라고 판단하고 제자가 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보유자를 지명했었습니다. 현재 또 다른 문제는 사람의 수명이 점점 길어져서 100세 시대가 오는데, 50세에 보유자가 된 사람이 50년을 더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지방문화재나 잊혀진 춤들을 발굴, 문화재로서의 가치 인정해줘야
국수호 _ 그런데 무용계 지도자들이 무용가가 직업을 얻지 못하게 하니까 무용하는 사람은 줄고, 상황은 더 안 좋아지는 거죠. 자기들 세대에서 이제 무용계를 끝내버리려고 하는 겁니까?
이은주 _ 이게 전부 객관성, 투명성을 지키려고 하니 보유자는 권한이 없어요. 이수를 시키건 조교를 시키건 이런 심사 제도가 다 남의 손에 달린 거예요. 보유자가 할 수 있어야죠. 몇 년 전만해도 보유자가 이수증을 발급했어요. 그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국수호 _ 그게 금전 문제가 있어서, 문화재청에 항의가 들어오니까 그걸 보유자의 갑질의 문제라고 본 거죠. 그래서 보유자의 권한을 박탈한 거예요. 저는 그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투명하게 완전히 보유자가 자기가 후계자를 직접 정하게 하는 시스템이 돼야죠. 지금처럼 이수자를 뽑을 때 보유자가 관여하지 못하는 건 어불성설이에요. 평가는 보유자가 가장 잘 할 텐데요. 채점은 해놓고 평가는 다른 사람이 하는 건 말이 안 되죠. 지성인들이 전문성을 갖추려는 태도를 가지고, 무용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은주 _ 심사하는 사람 중에 보유자의 살풀이춤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도 있었어요.
정혜진 _ 저는 종목 개수가 너무 적다고 생각해요. 보존해야 될 무용들이 정말 많은데 지금은 종목이 태평무, 승무, 살풀이 외에는 없잖아요. 그것들만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국수호 _ 지방문화재나 잊혀진 춤들을 이제는 발굴하고 무형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우리나라 춤은 특히 민속에서 시작해서 무대화된 특별한 케이스예요. 포크댄스가 아니란 말이죠. 그래서 예술로서 전통춤을 유네스코에 등재하고, 후대에 유산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정적인 몇 작품으로 집약되다 보니 전통춤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있어
정기헌 _ 이제 마무리를 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주요 내용은 책임 있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책임 발언을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우리 춤의 뿌리를 제대로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문화재 보유종목의 경우 새로운 종목의 발굴이 필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무용계 내에는 늘 새로운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계속해서 문제로 남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한마디씩 하고 마치겠습니다.
이은주 _ 무형문화재 지정을 하면서 승무, 살풀이, 태평무가 깊이 있게 발전, 확산된 건 아주 좋은 일이라고 봐요. 그런데 반대로, 과거에는 선생마다 다 작품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한정적인 몇 작품으로 집약되다 보니 전통춤의 다양성이 줄어든 것 같아요. 최현 선생의 『고풍』, 『색동저고리』 이런 것들이 앞으로 2백년, 3백년의 전통이 될 거거든요. 한편으로 작품 제목을 그냥 『검무』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검무의 제목을 다양화해서 하다 보면 누구 류의 검무가 되는 거거든요. 그런 식으로 제목에서부터 전통춤이 다양화됐으면 좋겠어요.
국수호 _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춤은 다른 동물이나 AI가 아닌 바로 인간이 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부족하고 잘못된 게 있더라도 피폐하게 만들어버리면 안 돼요. 무용계에는 정말로 가난하게 민초와 같은 삶을 사는 가엾은 사람들이 많아요. 누굴 더 주고 덜 주고의 문제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전공을 인정해주고 그 사람이 춤에 바친 인생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그런 인간다운 면이 되살아나야 한국무용계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혜진 _ ‘클라우드 게이트’ 무용단 단원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프린스리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리웨이챙이라는 대만 무용가가 한국에 온 적이 있어서 같이 대화를 나눠봤는데요. 그 사람은 무용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가 있었어요. 리웨이챙이 우리 수석단원에게 “공연을 하면 당신을 보려 몇 명의 관객이 오나요?” 하고 물어봤어요. 수석이면 스타일텐데 너의 춤을 보기 위해서 몇 명이 오냐는 거죠. 그리고 네가 출연하지 않을 때는 다른 동료들을 위해 네가 뭘 해주냐고도 물어보더라고요. 그러면서 자기네들은 전혀 무용, 음악, 예술에 관계없는 일반인들을 매 공연 때마다 10명씩 꼭 데리고 온대요. 이게 서로가 도와주는 방법인 거죠. 너의 친구가 공연을 하게 되면 너의 역할은 많은 사람이 그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돕는 거라는 거예요. 다시 말해 예술계 관계자들끼리만 집안 잔치 하지 말라는 거죠. 여러 사람을 꼭 데리고 가도록 하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러면 점점 무용에 관심을 갖고 무용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질 거라는 거예요. 인상적인 얘기였어요. 이제는 우리가 행동을 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