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7일 인쇄
2019년 12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12월호 통권 526호 |2020년 1월 23일 목요일|
 

동숭문화광장

 

문화도시 vs 도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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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이(吳鎭異)(서울문화재단 전문위원)

지난 일 년 전 12월 말,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법정 문화도시 조성 사업’에 신청한 19개의 도시 가운데 10곳을 예비 문화도시로 선정하였다. ‘법정 문화도시 조성 사업’이란 지역별 특색 있는 문화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문화 창조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도시를 조성하는 국책사업이다.
지난해 선정된 10개 도시로는 ‘새로운 리듬을 만드는 문화도시 대구’를 비롯하여 ‘생활문화도시 부천• 말할 수 있는 도시, 귀담아 듣는 도시’, ‘시민이 만들어가는 창의문화도시 원주’, ‘기록문화 창의도시 청주’, ‘시민의 문화자주권이 실현되는 문화독립도시 천안’,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소리문화도시 남원’, ‘시민들의 행복한 삶을 응원하는 철학문화도시 포항’, ‘오래된 미래를 꿈꾸는 역사•문화도시 김해’, ‘105개 마을이 가꾸는 노지문화 서귀포’, 그리고 ‘예술과 도시의 섬, 영도’가 꼽혔다.1)
다시 일 년이 지난 이즈음, 위의 예비문화도시로 선정된 10곳의 지자체에서는 올 한 해 추진해온 예비사업 실적을 평가받고 심의를 거쳐 12월 말에 문체부로부터 문화도시 지정을 받을 예정이다. 본 사업이 진행되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선정된 도시마다 200억이 지원되는데다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가 대상이라 각 지자체마다 경쟁이 치열할 정도이다. 당시 보도자료에 의하면 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시민들과 함께 지역별 문화도시 조성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는 과정 그 자체가 도시문화를 활성화하는 과정”이라며, “문화도시를 확산해 침체된 지역이 문화로 생기를 얻어, 한국에서도 세계적 문화도시가 탄생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해당 도시 중엔 잘 준비하고 있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지만, 많은 곳에서 ‘지역문화를 한다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볼 멘 소리와 시민 협치를 강조하여 지역 내 전문 예술가와의 소통과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런 와중에 지난 11월22일 105개 마을이 노지문화를 가꾼다는 예비문화도시 서귀포의 문화원탁에 퍼실리테이터로 참여하는 기회를 가졌다. 어린이부터 70대 어르신까지 세대별 테이블에서 문화유산, 마을문화발굴 등 전문가 테이블까지 무려 17개 의제의 논의 테이블이 진행되었다. 나는 60플러스 세대의 테이블을 거들었다. 장장 세 시간 동안 이어진 토론과정에서 합의된 서귀포 문화도시에 대한 내용은 바로 수눌음(제주도식 협업문화)과 검정 돌담으로 압축되었다. 원탁을 진행해보니 원주민과 이주민이 섞이기보다 이질적인 제주 서귀포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도시마다 살고 있는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 맺기였고, 그들 간의 신뢰와 오래 전부터 내려온 자연환경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하는 것이 관건으로 다가왔다.
최근 영국의 레가툼연구소에서 발표한 한국의 사회자본 분야 지표가 하위권이라는 소식을 들으니 문화원탁에서 느꼈던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 맺기의 중요성이 더욱 더 실감된다. 세계 여러 나라가 얼마나 잘 사는지 평가하는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교육, 보건 분야에서는 2위, 4위로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개인과 개인의 신뢰, 국가제도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뢰를 측정하는 사회자본(Social Capital) 분야에서는 167개국 중 142위에 머물렀다.
특히 레가튬연구소는 우리에게 취약한 “제도에 대한 신뢰, 개인 사이 신뢰는 세계 각국이 진정한 번영을 구축하는데 핵심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2)
이런 즈음, 시사하는 바가 큰 다큐 한편이 KBS 공중파를 타고 방송됐다. 다큐방송계의 대모, 김옥영 작가가 이끄는 스토리온이 제작한 「부드러운 혁명」이 그것이다. 치매 환자를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가진 개별적 존재로 존중할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60일간 관찰한 다큐멘터리이다. 이 작품의 시작은 스토리온 취재팀이 지난 해 다른 취재 건으로 일본에 갔다가 우연히 알게 된 한 프랑스인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는 ‘휴머니튜드’ 케어라는 새로운 케어법의 개발자인 이브 지네스트(Yves GINESTE)였다.3) 방송을 보면 그는 세상에는 공격적인 환자가 없다고 말한다. 다만 두려운 환자만 있을 뿐이라고. 환자와 병원운영진 간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을 경우엔 두려움으로 거부하지만 두 눈을 마주치고,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하면 서로 관계가 형성되어 ‘서로 보살피는 관계구나’, ‘돌봄의 관계구나~’ 인식하여 누구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이다. 우리나라 경우 요양병원에서 수요일은 목욕하는 날이라 개인의 호불호나 상태와 무관하게 목욕을 다 하도록 종용하지만 자율적으로 행할 수도 있다. 식사도 정해진 시간에 꼭 해야 하지만 배고픔도 개인마다 다 다를 수 있다. 밤에 낙상 사고를 우려해 침대에 환자를 끌어매는 조치를 취하지만 환자를 매는 조치 없이도 낙상을 줄일 수도 있다. 중증 환자에게 약을 더 처방하여 잠을 유도할 수도 있지만 중증환자일수록 사고치는 환자일수록 더 가깝게 지켜주고, 더 자주 관찰하여 원인을 찾는 데 정성을 들일 수도 있다. 현재 국내 병원에서는 운영진 중심의 편의적인 관리시스템으로 돌아가지만 환자 중심으로 새롭게 관계 맺고 환자를 한 사람의 개인으로 존중하는 태도의 변화를 보일 때 환자 또한 극적으로 변하는 사례를 보여준다. 특히 이 방송은 단순한 외국 자료의 소개 수준이 아니라 2년여간의 시간을 공들여 간호사 대상의 워크숍을 하고 그들이 환자들에게 ‘휴머니튜드’라는 케어 방식을 적용했을 때 실제로 얼마만한 변화가 일어나는지 직접 관찰을 통해 증빙하고 있어 더욱 신뢰가 간다. 창작 작업과정도 위와 다르지 않지 않을까? 왜 이 작품을 하는지, 동시대에 이 작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등등을 스태프들과 소통하고 공감을 얻을 때 그 작업은 시너지를 얻는다.
조직의 발전도 마찬가지이다. 조직의 비전에 대해 구성원들이 공감하고 함께 상상할 때 그 비전은 이뤄질 수 있고, 서로를 자신의 발전을 도와주는 파트너로 삼아 서로 돕고 격려한다. 마을, 혹은 동네, 아파트 단지 안에서의 커뮤니티 또한 그렇다. 위아래 집에서, 혹은 옆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어떤 상황인지를 알아야 배려도 하고 이해도 하고 도울 수도 있다. ‘관계’ 라는 것조차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어쩌면 우리는 문화도시를 선정하기 전에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 도시는 왜 그동안에 내가 커오면서 함께 했던 나무들을 그렇게도 쉽게 베어버리는지? 우리 도시는 왜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골목길과 키 낮은 집들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고층 아파트로 세우고야 마는지? 우리 도시는 왜 생각이 다르고, 외양이 다르고, 익숙하지 않으면 불편해 하고 혐오하는지? 우리 도시는 왜 다른 곳에서 오고 지금까지 잘 모르는 사이라고 영원히 모르는 사이로 남고 싶어 하는지? 우리 도시는 왜 함께 오랫동안 있어왔던 것들에 대해 소중함을 모르고 하찮게 여기는지? 내가 처한 도시문화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문화도시로 가는 기본적인 최전선이 아닐까?
12월 말쯤이면 법정 문화도시가 공식적으로 발표될 전망이다. 예비 문화도시 10개 도시 중 어디가 선정될지 알 수 없지만 부디, 지자체의 욕망과 압력으로 ‘좋은 게 좋은 거다’ 식의 10개 도시 모두에게 예산을 나눠주는 선심성 사업만큼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차라리 예술가들에게 우리의 도시문화를 혁신할 미션을 공유하고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 동안 그들의 작업을 믿어주고 기다려주면 개인과 개인사이, 개인과 정부제도 사이의 믿음이 회복되며 우리네 사회자본과 포용도시가 만들어지는 멋진 프로젝트가 되지 않을까? 최근에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의 ‘문화혁신포럼’에서 발제를 한 BTS제작자 방시혁도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 초연결시대에 아시아의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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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합뉴스, “한국인 상호신뢰 바닥긴다 사회자본 167개국중 142위”, 2019.11.25. 일부 인용
2) 김옥영 facebook “부드러운 혁명” 관련 포스팅 중 2019.11.20. 일부 인용
3) 문화체육관광부 예비 법정 문화도시 선정 관련 보도자료 2018.12.23. 일부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