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7일 인쇄
2019년 12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12월호 통권 526호 |2020년 4월 3일 금요일|
 

꽃향시향

 

목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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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영(朴濟瑩)(시인, 달아실 편집장)

공민왕 때 고려의 사신으로 원나라에 갔던 문익점(1329~1398)이 원나라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양쯔강 남쪽 지역(강남)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문익점은 목화에서 실을 뽑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컸던 그는 목숨을 걸고 목화씨를 훔쳐 귀국길에 오릅니다. 들키지 않기 위해 붓두껍 속에 감추고 말이지요.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에 목화가 재배되기 시작했다는 목화씨에 얽힌 문익점의 이야기는 이미 알고 계실 테지요. 물론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온 것은 맞더라도 그 과정에서 사실(史實)과는 상당 부분 다른 사실(事實)이 있지만, 오늘의 주제와는 달라서 더 이상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아무튼 오늘 말씀드리려 하는 것은 목화, 목화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처음 만난 곳도 목화밭이라네. 우리 처음 사랑한 곳도 목화밭이라네. 밤하늘에 별을 보며 사랑을 약속하던 너. 그 옛날 목화밭 목화밭. 우리들이 헤어진 곳도 목화밭이라네.♪”
1970~80년대 ‘하사와 병장’이 불렀던 노래 「목화밭」을 기억하며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아 참, 그 전에, 브라질의 유명한 민속 무용 삼바(Samba), 아시지요? 목화를 얘기하기 전에 삼바 얘기를 잠깐 해야겠습니다. 라틴아메리칸 댄스 하면 누구나 삼바를 떠올리고, 브라질의 삼바 축제 리우 카니발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삼바 댄스가 실은 브라질의 사탕수수 농장과 목화 농장에 끌려온 아프리카 노예들의 애환이 담긴 춤이란 건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브라질의 사탕수수와 목화 재배에 필요한 노동 인력으로 수입된 아프리카 노예들은 하루 종일 드넓은 목화밭에서 목화 재배를 하며 혹사를 당했는데요. 그런 육체적 고통을 잊기 위해 아프리카 고유의 원시적인 율동에 맞춰 춤을 추곤 했는데, 여기서 현재의 삼바라는 댄스로 발전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즐겁게 흥겹게 즐겨보는 삼바가 알고 보면 무척 슬프고 아픈 춤이지요. 목화밭과 아프리카 노예와 삼바는 그렇게 아프게 연결됩니다.
자, 그러면 본격적으로 목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먼저 시 한 편 읽고 가겠습니다. 어쩌면 목화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다 담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은규 시인의 「목화밭 이야기」입니다. 조금 길지만 전문을 옮겨 적습니다.

탄성으로 피어나는 꽃이 있다

피어날 때 하양
지기 직전 분홍을 완성한다는 목화에 대해 알고 있니
아침에 희고
저녁을 지나 붉어지는 이치
혀끝 속삭임에 물들어가는 마음과 같이

가까운 하양과 먼 분홍 사이
완성되지 못한 문장들이 피었다 지다 피었다 지다

목화의 꽃말은
여럿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는 뜻의 우수
그런데 우리는 왜
근심 쪽으로 몸이 기울었을까, 함부로
혹은 입춘과 경칩 사이 절기를 떠올렸을까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에 대해 알고 있니
목화꽃이 지고 나면 둥글게 차오른다는 다래
다래의 맛이 달아 하도 몸이 달아
몰래 숨겨놓고 먹었다는 소년의 비밀비밀

그런가 하면 다래가 터뜨린 솜꽃을 편애한 자가
어느 시험에서 두 번 꽃 피우는 나무에 대해 물었다고 해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속삭임, 귀가 멀어도 좋을

한 시인은
목화밭과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우리는 아직 지나가고 있을까
이미 돌아오고 있을까
약속을 잊어버린 약속처럼
먼 분홍과 가까운 하양 사이
안 들리는 탄성으로 피어나는 기억 한 점
― 이은규, 「목화밭 이야기」 전문

어떤가요? 목화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들어 있지 않나요? 아니 오히려 목화 그 이상의 것을 들려줍니다. 제가 더 설명할 게 있을지 모를 만큼. 그러고 보면 시는 세상의 어떤 설명보다 더 환하게 사물을 설명해주곤 하지요.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목화에 관한 그 어떤 설명보다 환하게 들어오더군요. 당신도 그럴 줄 믿습니다. 하양에서 분홍으로 물들며 생을 완성하는 목화, 그 이미지를 또 다른 시에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요? 이번에는 김귀녀 시인의 「사랑의 끝은 어디쯤일까」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 뛰어넘어
목화송이처럼
하얗게 피어나는 사람들

뼛속까지 으스러지도록
녀석을 안아본다

그 사랑의 끝은 어디쯤일까

내 나이 여든이 될 때쯤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늙은이 될 때

우리 아이들이 나를 사랑해줄까?
뼛속까지 웃게 해줄까?
― 김귀녀, 「사랑의 끝은 어디쯤일까―내리사랑」 전문

목화의 꽃말이 ‘어머니의 사랑’이지요. 내리사랑이라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한 내리사랑이 어디 있을까요. 끝이 없을 사랑을 주지만, 하양이 핏빛으로 붉어지도록 끝이 없을 사랑을 주지만, 자식들의 부모에 대한 치사랑은 어떨까요? 시인은 그렇게 묻고 있지만, 누가 과연 확실한 대답을 줄 수 있을까요? 목화의 꽃말이 시에서 느껴지시나요?
잘 모르겠다고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복효근 시인의 「지리산 운해雲海」를 한 편 더 읽어보겠습니다. 좀 더 확연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어머니는 또
햇솜을 저리 넓게 펴 놓으시고
이불을 지으려나보다

가으내 산마루 별밭에서
목화를 따시더니

묶어보낸 전답 하나 없이
닳아진 숟가락 하나 없이
제금 내보낸 첫째 둘째 셋째… 생각에

아직 새벽
서리 바람 차운데

넉넉한 아침 햇살 잘 퍼져서
세상일 따뜻해질 때까지
내 딸 내 새끼 이 세상 모든 짐승 새끼들도
새 이불 펴 덮고 꽃잠 자라고

지리산 어머니
섬처럼 홀로 서서
햇솜을 펴 널고 계신다 ― 복효근, 「지리산 운해」 전문

흰색의 꽃이 피었다 분홍으로 붉은색으로 지고 나면 꼬투리가 생기고 그것이 익어 터지면 다시 하얀 솜을 뱉어내는 목화입니다. 우리네 엄마가 우리네 딸들을 시집보낼 때 솜이불 하나 마련해주려고 손발이 다 트도록 목화를 키웠고 우리네 엄마와 목화는 그렇게 피었다 지기를 반복했더랬지요. 그렇게 목화의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이 되었겠지요.
끝으로 이은규의 시 「목화밭 이야기」에 보면 시인이 인용하고 있는 두 명의 시인이 있는데 그 얘기를 한다는 걸 깜박했습니다. 박노해 시인의 「목화는 두 번 꽃이 핀다」라는 시와 박상순 시인의 「목화밭 지나서 소년은 가고」라는 시입니다. 시 한 편 읽기 위해 때로는 여러 편의 시를 읽어야 할 때도 있지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저의 이야기는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시면 되겠습니다. 다만 오늘 소개해드린 시편들만 가슴에 담아두셔도 충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