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7일 인쇄
2019년 12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12월호 통권 526호 |2020년 10월 25일 일요일|
 

관무기

 

삶을 기리는 춤
- 김화숙




한혜리(경성대 무용학과 교수)

* 서울무용제 개막공연 ‘무념무상(無念無想)’ 김화숙의 『인생(Life)』(11월1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것이 쉬운 사람은 없다. 특히 칠순을 넘긴 나이의 사람에게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내 스승이신 김화숙 선생이 무념무상이라는 공연에 참여하기로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이미 그 나이 즈음에 춤을 춘다면, 그 춤은 인생에 대한 반추여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고착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결코 얕지도 그래서 지나기 쉽지도 않았던 굴곡진 시간들을 굳이 꺼내기가 두려웠기 때문이라 짐작했다.
작품 속의 춤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으신 김화숙. 나의 선생님이 자신의 삶을 춤으로 표현하시는 것에 난색을 보이셨다. 그 연령대의 무용인이 대부분 그렇듯이 무대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이고, 무대에서의 모습은 신비주의적이어야 한다는 시대의 무용인 중 한 분이란 걸 잠시 잊었었다. 왜냐하면 지금도 학계에서는 그리고 나에게는 대 선배로 현장에 계시기 때문이다.
변한 몸과 달라진 시대 사회의 가치관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대에 서기 위한 연습 과정에서 자기 기대에 따른 실천에 자기 확신을 갖기가 어려웠던 배경에는 춤을 위해 인생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시대의 선배 모델 분들의 작품에는 익숙하지만 인생을 춤으로 기록하는 모델은 보지 못한 무용 세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선생에게 이번 『인생』 공연은 개인적 과업으로 보다는 20세기를 무대에서 보낸 무용인으로서 시대적 책임과 의무로 생각하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인생 후배로서의 나의 의견을 내면서 선생은 숙고의 기간을 거쳐 결심을 굳히시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춤을 위해 살았던 혹,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춤이 삶의 목표여야만 한다고 자신을 시시각각 곧추 세우고 살았던 한 무용인의 삶을 춤으로 기록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김화숙 선생에게도 또 공연을 권유한 나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권유한 제자인 나는 작품의 안내자 격이라고 생각되는 작품 의도와 작품 내용을 통해 글로 작품 『인생』의 의도와 기대를 표현하고 선생은 춤으로 인생을 기록하는 방법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안무’라는 용어로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지만 예전 사회현상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생각을 춤으로 제시한 것이 무용 작품들이었다면, 『인생』은 삶에 대한 한 인간의 태도를 춤으로 기록한 것이다. 기록의 도구가 춤이었기에 춤에 필요한 요소도 김화숙의 무용관이 그대로 담겨져야 했다. 음악은 김화숙의 무용세계에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한다. 구도와 움직임이 주는 힘 즉 역동성에 감성을 입히는 음악은 언제나 김화숙 춤의 의미를 부여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음악은 ‘김은수’ 자체였다. 김화숙의 무용영역에 지나치게 기울어진 그 간의 삶을 애달파하고 또, 존경하는 김은수 교수는 자신의 가장 익숙하고 전문적인 표현도구인 음악을 어떤 한 영역이나 종류에 기우는 편견 없이 대하는 정말 좋은 음악가이다. 그리고 그런 좋은 사람이 만드는 음악이 이번 작품을 하는데 80%의 자원이 되어주었다. 에지오 보쏘(Ezio Bosso)의 음악을 소개 했고, 윤극영의 동요인 「따오기」를 선정하고 김화숙이 직접 노래하는 부분의 반주와 움직임 없이 거의 정물화 속의 한 여인처럼 서 있도록 계획된 마지막 정적인 부분을 고요함으로 느낄 수 있도록 따오기 변주를 연주해주었다. 김은수 교수가 아니면 낼 수 없는 피아노 소리를 김화숙 선생도 나 자신도 너무 좋아한다. 연습실인 달(Da.L)에서 그리고 리허설하는 극장에서도 연주 때마다 우리 셋은 서로 다른 생각과 마음의 일렁임으로 눈물 그렁했었다.
지금 이 시간 그리고 지금까지 김화숙 선생의 인생 여정이 아니었다면 결코 곁에 없었을 김은수 교수와 나 자신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자원으로 쓰여질 수 있도록 찾아온 기회의 시간과 장소. 모든 것에 감사하며, 그간 사제 간으로 인연을 맺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제자들이 무대로 던지는 장미 퍼포먼스와 기립 박수로 김화숙의 『인생』은 완성되었다. 여쭈어 보지는 않았지만 칠순 즈음에 기회가 온다면 꼭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김화숙 선생이 혼자의 의지로서가 아니라, 깊은 굴곡의 시간을 각자의 위치에서 함께 한 주변 사람들로 인해 빛난다는 것을 현장의 동참 인원으로 위로해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 현장의 사람들에게 또 다른 위로로 기억될 시간이기를 기대했다.
자신의 삶의 여정을 되돌아보는 쉽지 않은 용기를 낸 한 사람의 자전으로서의 작품이 어떤 작품들과 비교될 수 있을까?
김화숙 선생은 『인생』에서 자신만의 유일한 춤으로 결코 어디에서도 비슷하게라도 할 수 없는 내용의 솔직하고 유일한 대화를 요청했기에 먼 곳에서 평일 저녁 한 걸음에 달려와 제자들은 장미를 무대에 투척하며 마음으로 화답했다.
20세기를 여성 무용가로 21세기를 한 사람의 무용가로 살면서, 잠시 스치는 그때의 만남으로 무용수로, 안무자로, 또는 교육자로 불리어지고 기억되면서, 더 많은 가리어진 시간들로 서운하고 때론 홀로 서러웠을 삶을 마주하고 또 견뎌 낸 한 인간으로서 김화숙의 시간들을 춤으로 무대 위에서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결코, 이러한 삶의 자전적 춤 공연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닌 만큼 춤에 대해 담백하고 솔직한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한 작품이다.
김화숙 70년 삶의 기록으로서의 춤 『인생』은 선생의 작업실 Da.L 공간에서 그리고 극장의 리허설과 본 공연에 동참한 사람들의 시간과 장소별로 가슴과 머리에 달리 기억되겠지만, 그 기억이 각자 자신의 기준과 시각에서 이해되고 해석되기보다 김화숙이라는 타자의 삶으로 이해되고 해석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품 의도와 작품 내용을 서술하는 것으로 『인생』 작품 감상을 대신한다.

작품의도: 눈물 그렁해 걷던 어두운 밤길, 춤 등불 비추며 걷다 넘어져, 어둠속에서 찬연히 빛나는 별빛을 보았다. 언제부터 나를 비추고 있었는지, 남은 생을 다해도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빛, 가슴에 오랫동안 품고 온, 내 춤의 등불이 언제나 크고 깊은 것을 가리지 않고, 사랑을 기억하는 작은 등불이기를 소망한다.
작품 내용: 내 슬픔은 고요하다, 그건 자연스럽고 지당하니까, 그건 존재를 자각할 때, 영혼에 있어야 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