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7일 인쇄
2019년 12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12월호 통권 526호 |2020년 8월 5일 수요일|
 

관무기

 

관념은 유동적이어야 한다
- 카일 에이브러햄·미스티 코플랜드·트와일라 타프·조지 발란신




윤재상(尹在祥)(Art Management NYC LLC 대표)

* 에이.아이.엠무용단 카일 에이브러햄 안무 『코쿤(Cocoon)』 외(10월15~20일 The Joyce Theater)
카일 에이브러햄(Cyle Abraham)의 에이.아이.엠무용단(A.I.M-Abraham In Motion 이하 A.I.M)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신생 흑인 무용단이다. 조이스 극장에서 열린 6일간의 공연에 총 6개의 작품이 무대에 올라왔는데 이 중에는 인상적인 두 개의 솔로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는 카일 에이브러햄이 직접 춤춘 『코쿤』이고, 다른 하나는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수석무용수 미스티 코플랜드(Misty Copeland)가 카일 에이브러햄과 공동으로 안무하고 춤춘 『재(Ash)』다.
『코쿤』은 9명으로 구성된 흑인 성가대의 라이브에 맞춰 혼을 담아 춤추는 작품이다. 객석의 앞쪽 성가대를 위해 마련된 공간에서 단원들은 감미로운 비트가 담긴 비요크(Björk)의 음악을 부른다. 그 음악에 맞춰 춤추는 카일 에이브러햄은 요란한 기량이 과시되지 않은 동작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연결해 보여준다. 무대 전체를 사용하지 않고 제한된 공간에서 움직이면서 관객의 주의를 이끄는 방식으로 안무 됐다. 흑인 특유의 강렬함이 전달되며 객석을 달궜다.
작품 『재』는 10월15일 오프닝에만 공연됐다. 미스티 코플랜드가 안무하고 직접 춤춘다는 이유만으로 흥행몰이가 된 작품이다. 실제로 출연하는 당일 입장권은 판매가 시작된 후 곧 매진되는 현상을 보이며 미스티 코플랜드의 이름값을 실감하게 했다.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와 알바 노토(Alva Noto)의 단조롭지만, 정적인 음악이 사용됐다. 금빛 레오타드가 훤히 비치는 하얀색 의상은 조각된 듯한 근육 그리고 날카로운 발끝과 완벽하게 어울리며 실망스러운 순간을 단 한 차례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스타는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스타에 의해 관중은 움직인다. 하지만 자질과 능력이 없는 스타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해 보여줬다.
『코쿤』이 인간 본연의 행동에 중점을 둔 일차적 몸짓이었다면 『재』는 우아함에 가려진 관능적이고도 도발적인 몸짓이었다. 두 개의 솔로 외에 다른 작품들도 A.I.M의 대표성을 읽을 수 있도록 재기 넘치면서도 독특했다. 젊은 단체의 거칠 것 없는 시도들이 신선하게 다가온 공연이었다.

* 아메리칸발레시어터 트와일라 타프 안무 『듀스 쿠페(Deuce Coupe)』 외(10월16일~27일 David H. Koch Theater)
『듀스 쿠페』는 1973년에 트와일라 타프(Twyla Tharp)가 조프리발레단(Joffrey Ballet)과 작업한 만든 작품이다. 이를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이하 ABT)가 올봄에 처음 선보이더니 채 반년도 지나지 않은 이번 가을 시즌에도 다시 올렸다. 그만큼 호응이 좋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무용수들은 헐렁한 듯하면서도 끈적끈적한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노래에 온몸을 맡긴다. 다소 지나간 유행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음악과의 조화가 오늘날의 시선으로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여자들은 빨간 드레스를 남자들은 빨간 바지에 현란한 꽃무늬 셔츠를 입고 정말 분주히 움직인다. 그중에 새하얀 의상에 토슈즈까지 신고 묵묵하게 혼자만의 발레를 추는 발레리나가 눈에 들어온다. 발레리나는 바쁘게 춤추는 군무와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며 익숙하지 않은 안무의 패턴을 그려낸다. 로큰롤 춤과 순수한 발레가 한 무대에 혼합되며 형언하기 힘든 감동적인 이미지가 순간순간 만들어진다. 트와일라 타프만의 기발한 착상에서나 나올법한 안무이다.
최근 발표되는 트와일라 타프의 작품을 보며 종종 실망하기도 하지만, 초창기에 만들어진 작품들을 보면 그녀의 창의적 발상에 감탄하고 감명받게 된다. 거의 매년 트와일라 타프의 작품을 ABT의 단원들이 소화해내며 존재감이 녹아 들어갔는지 『듀스 쿠페』는 ‘트와일라 타프화’된 것처럼 완성도까지 아주 높다.
같은 날 공연된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의 1928년 초연작 『아폴로(Apollo)』의 관람 포인트는 단연 캐스팅이었다. 아폴로 역으로는 흑인 솔리스트 칼빈 로열 3세(Calvin Royal III)가 그리고 노래와 춤의 여신인 테르시초어 역은 서희가 맡았다. 보수적이라면 보수적인 발레계에서 흑인인 칼빈 로열이 아폴로로 캐스팅된 자체는 주요 사건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언급하기 껄끄러운 피부색의 쟁점을 뒤로할 만큼 그는 표현력 강한 몸짓과 숭고해 보이는 움직임으로 섬세하게 아폴로의 역할을 표현했다. 특히 서희와 함께한 파 드 되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듯 환상을 만들어냈다.
요즘 뮤지컬에서는 파격적인 캐스팅의 추세가 눈에 띄고 있다. 런던의 피카딜리에서 공연 중인 「레비제라블」에서는 흑인 코제트가 그리고 최근 브로드웨이에서 제일 인기가 높은 「겨울왕국」에서는 왕비, 즉 주인공 엘사와 안나의 엄마 역할은 동양인이……. 피부색을 넘어 유전자적인 상식까지 깨트리는 캐스팅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이러한 작품들은 근거 없이 만들어져있던 단단한 관념의 틀을 되짚어 보게도 한다. 어쨌거나 기존의 『아폴로』가 남성의 우월성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피부색에 고정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면, ABT의 아폴로는 캐스팅을 통해 그 편견을 깨트린다. 이러한 시도는 바람직한 시작이었으며 기회를 얻은 칼빈 로열은 본인의 발레 기량과 연기력을 맘껏 뽐내며 무대 위에서 완벽한 아폴로가 된다.
보통 ABT는 봄에는 전통적인 대작에 역량을 집중해 보여주고 가을에는 전통발레의 틀을 벗어난 소, 중작 위주로 올린다. 이를 통해 발레단은 하나의 색깔에 붙잡혀 있거나 정체된 느낌을 만들지 않는다. 매해 시즌마다 느끼지만, ABT는 꼭 살아서 움직이는 유기체와 같다. 본인들이 원하는 형태로 언제든지 쉽게 변하는 신비스러운 단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