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7일 인쇄
2019년 12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12월호 통권 526호 |2020년 5월 27일 수요일|
 

공연평

 

한혜주, 박슬기 그리고 김준수
- 조기숙·김성한·강효형




권경하(權炅河)(춤평론)

* 조기숙뉴발레단 『요지경』(11월27일 이화여대 삼성홀)
하늘아래 새 것이 없다는 말은 창작자에게 고통스러운 것이다. 새 것이 없다는데 자꾸 새로운 걸 보여달라니 어쩌란 말인가. 현대적 의미의 크리에이티비티 혹은 창작이라는 것은 한곳으로 달려나가다 과열되어 폭발, 재구성되며 생겨나는 돌연변이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맞지 않는 어떤 것이 서로 부딪치며 일어나는 스파크 같은 것일 수도, 혹은 생각지도 않은 결과가 생기는 사이드이펙트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조기숙의 『요지경』은 재미있었다.(2019년 11월27일 이화여대 삼성홀) 볼거리가 있고 좋은 춤이 있고 이야기 거리가 있다. 출발점은 어디일까. 안무자에게는 6명의 좋은 무용수가 있고 무대가 있고, 이 세상이 요지경 같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안무자는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고대중국의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오고 첨단 VR영상처리를 수용했다. 무대 위에서는 무용수들이 요지경의 선녀들처럼 춤을 추다가(1장) 현대 도시 뒷골목의 타락천사가 되기도 했다(2장). 무대 앞과 뒤에는 대형 영사막이 설치되었고 또 하나의 해상도 높은 영사막이 배치되어 VR화면을 보여주었다. 커다란 달도 내려오고 환상처럼 요지경의 모습이 연출되었다. 저렇게 아름답고 환상적인 건 실재하지 않으니 요지경이란 생각이 들지만, 배경이 도시의 불빛과 뒷골목의 어둠으로 비뀌고 VR이 재생될 때도 역시 요지경속 같은 것이어서 요지경 속에서 현실을 찾고 현실속에서 요지경을 찾고, 요지경속에서 요지경을 찾는 요지경 속에 빠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작품은 무대 위에서 신화와 춤과 영상과 VR을 효과적으로 융합시켜 새로운 인식의 경지를 열어 주았다. 무용수들은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한혜주에게는 잘 다져진 갈무리된 파워가 있었다. 무용수들의 합과 템포를 잘 이끌어내면서 자신의 움직임을 유연하게 보여주었다. 신체가 적절하게 사용되고 통제된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 세컨드네이처댄스컴퍼니 김성한 안무 『40712』(11월9~10일 강동아트센터 소극장드림)
김성한은 자신의 색깔이 있다. 약간 음습하고 음울하다고 할까.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이 보인다. 예전 강동아트센터에서 보았던 『이방인』도 그런 모습이었다. 무용수가 어둠 속에서 번쩍거리는 생선처럼 튀어오르던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뷔히너의 보이체크는 옛날 것임에도 현대인의 비극을 예감하는 예언자적인 것이다. 연극은 물론 영화 뮤지컬 등 여러 장르로 진화했고 김성한에 의해 무용 작품으로도 계속 무대에 오르고 있다. 이번 『40712』(2019년 11월9~10일 강동아트센터)는 보다 연극적인 연출이었다. 무대 위에 비계를 2층으로 가설하고 여러 장면을 무대 전환없이 보여주었다. 당연히 구조물이 설치되고 공간이 세팅된 만큼 바닥 면적은 줄어들고 움직일 공간은 줄어들었다. 당연히 춤 출 공간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 무대 배치는 이미 막장으로 몰린 인간의 상황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이 시작되어 여러 선택과 행위로 비극으로 달려가는 게 아니라 이미 비극 속에 파묻혀 있다는 것, 이미 비극 자체라는 얘기. 결국 출연진들은 모두 동물탈을 덮어쓰고 인간을 포기하게 되는 것. 안무자 김성한은 문제작들과의 접점 속에서 지속적으로 작품의 아이디어를 찾고 계속 발전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고,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인상적인 작품이다.

* 국립발레단 강효형 안무 『호이랑』(11월6~1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국립발레단의 『호이랑』은 2019년 11월6일에서 10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올라갔다. 발레작품에서는 음악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음악이 정해지고 연주된다는 것은 집 지을 때 바닥과 골조를 세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바닥 위에서만, 그 공간 아래서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안무나 연출은 그 골조를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지휘자 정치용과 코리안심포니는 국내 탑 클라스. 좋은 소리를 낸다. 즐겁고 활기찬 장면에서는 현악기 소리가 가볍게 떠다니고 고뇌의 장면에서는 관악기가 낮게 깔렸다. 세상 처음 들어 보는 것 같았지만, 또 들어본 것 같은, 이상할 정도로 장면들과 잘 어울리는 것. 댄서의 동작들이 음악에 탁 붙어 타고 넘는다, 대체 뭐란 말인가. 인터미션에 프로그램북을 뒤적였다. 찾을 수 없다.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는 두 개 면을 장식했으나 곡목은 없다. 2막이 시작되고 좀 더 음악에 신경 써 보았다. 이런, 브람스, 차이코프스키가 웅크리고 앉아 있고, 라벨이 얼굴을 내밀었다가 사라졌다. 공연장을 벗어나 밝은 곳에서 크레딧 속의 깨알같은 글씨를 찾아냈다 - ‘편곡 황호준’, 여러 곡을 섞고 편곡해 연주한 것이었다. 대단했다. 프로그램 북에 한 페이지 소개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중요한 것을 가볍게 다루지 말았으면 한다.
작품은 호이랑이라는 젊은 처자가 부친대신 남장을 하고 군대에 입문하고 우여곡절 끝에 장군과 연을 맺게 되는 전형적인 내용. 의상은 첫 눈길을 확 끌어 댕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볼수록 은근한 매력이 있는 색감과 라인을 갖고 있었다. 춤들은 재미있고 세련됐다. 마을 사람들의 군무, 군인들의 전투신, 독무와 이인무들이 잘 배치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주역의 변신에 주목하게 된다. 주역은 아빠를 걱정하는 소녀에서 출발하여 미숙한 남성훈련병을 거쳐, 전사로 거듭나고 장군과의 만남에서 성숙한 여인의 냄새를 풍겨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마을에 돌아와서는 순박한 아낙네가 되어야 하는 것. 총5회 공연에서 박슬기2회, 신승원2회, 박예은이 한 차례 주연으로 올랐다. 박슬기의 연기를 보았다. 호연이었다. 어려운 동작들을 자연스럽게 해냈다. 소녀소년의 모습, 카리스마 있는 전사의 모습, 성숙한 여인의 모습도 잘 소화해냈다. 몇 차례의 독무와 이인무에서 기량과 연기를 맘껏 발휘하며, 자신만의 매력 발산에 성공했다.
전반적으로 『호이랑』은 재미있는 춤과 장면들이 등장하는 효도와 가족사랑과 함께 국가에 대한 충성심까지 말하는 가족동반 관객용 작품이었다. 전월(2019년10월) 공연된 유니버설발레단의 『춘향』과 『심청』이 생각났다.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은 뭘까 – 국내창작물이라는 것,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것, 본인보다 신분이 높은 남자들과 로맨스가 벌어진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공통점은 세 작품 모두 밝고 화사한 해피엔딩이라는 것. 세상이 결단코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매번 곤혹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발레의 즐거움에 비하면 그 곤혹은 사소한 것이다. 어쩌다 한번 먹는 솜사탕은 행복한 것이니까.

* 국립창극단 「패왕별희」(11월9~17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제1차 세계대전이 유럽에서 벌어지자 수십 년간 비몽사몽 달짝지근한 평화에 취해있던 사람들은 환호를 질렀다는 기록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전쟁은 기대했던 것처럼 아찔한 긴박과 몇몇 비극을 남기고 영광스럽게 후딱 끝나지 않았다. 전 유럽을 시궁창으로 끌고 들어가며 전쟁의 양상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전쟁이라는 것이 몇몇 군인들끼리의 싸움에서 전 국민이 징집되고 전 자원이 투입되는 총력전 양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랜만에 창극을 보았다. 국립창극단의 「패왕별희」. 작년 국립극장에서 올랐던 작품이 이번에는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 되었다.(2019. 11월9~17일) 8회 올랐고 전석 매진. 기본적으로 일인극인 판소리가 무대로 옮아온 창극은 거듭된 발전으로 이젠 종합공연예술장르에서 선두에 선 느낌. 공연 전 작은 모임에서 만난 김성녀 전 예술감독은 처음 감독직을 맡아 새로운 작품을 도전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단원들을 설득하고 변신시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2012년 감독으로 취임하여 창작 작품에 시동을 걸고 지금까지 익숙한 노래만을 불러왔던 배우들에게 새로운 레파토리, 연기, 춤, 등 다양한 것을 요구하자 반발이 심했다는 것. 그러나 변신을 거듭하며 이젠 완전히 세련된 작품들을 선보이며 대세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출연진에게서 모든 역량을 뽑아내는 듯.
지금 국립창극단의 모든 배우들은 판소리는 물론이고 춤과 코믹연기까지 가능한 전천후 배우로 거듭났고 연출과 음악,미술 역시 항상 최고의 스태프들과 함께 하고 있다. 몇몇 창자들이 출연해서 구수하게 풀어내던 창극에서, 전 배우가 총출동하고 엄청난 물량공세를 퍼붓는 완전히 새로운, 가용한 모든 것을 무대에서 활용하는 총력전 양상으로 변해버린 것. 「패왕별희」 역시 대만의 경극 배우출신의 유명 연출자 우싱궈를 모셔왔고 미술, 의상 등도 모두 중국 전문가들. 무대와 의상은 오지지널 하면서도 세련된 것이었다.
당연히 배우들은 판소리를 하지만 경극 특유의 움직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김성녀 감독은 김준수의 칼춤에 주목해달라고 했다. 김준수는 알려진 대로 판소리계의 미남 남성 스타. 이번 작품에서는 우희 역을 맡았다. 김준수는 살을 더 빼고 꽉 쪼이는 경극 복장을 소화해냈다. 색다른 중성적 매력을 발산하며 신묘하게 ‘우희’ 역에 어울렸다. 패왕에게 호소하는 그의 약간 거친 듯한 쇳소리는 파국을, 결국 비극이 벌어질 거라는 걸 예감하게 하는 안타까운 것이었다. 게다가 우희의 칼춤은 인상적인 것이었다. 허리를 꼬며 몸을 비틀고 팔을 돌려 손가락 끝까지 탱탱하게 긴장시키는 경극 특유의 움직임을 유려하게 소화시켜냈다. 종종걸음으로 무대를 가로질러 패왕 앞에 사뿐히 내려앉는 모습은 고혹적이기도 한 것이었다. 많은 연습이 필요한 동작들이다. 쓰지 않던 근육을 단련하는 데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법. 물론 베테랑 경극 배우나 전문 무용수라면 더 잘 췄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판소리의 흉내도 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흩어지게 되었다 – 창극단에서 판소리하면서 ‘춤자랑’을 한다는 것. 노래 잘한다는 말은 기본이니 할 필요도 없다는 것. 이젠 가진 것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끌어올려 내뱉어야 하는 총력전의 시대가 되었다는 것. 춤계에 이런 총력전이란 어떤 의미일까 하는 것. 물론, 이 총력전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으면 관객은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