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7일 인쇄
2019년 12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12월호 통권 526호 |2020년 5월 26일 화요일|
 

시사살롱

 

가짜뉴스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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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일(洪承一)(언론인)

진보의 타락에 환멸을 느껴 정의당을 탈당했다는 진보 논객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지난 11월 ‘탈진실 시대의 민주주의’라는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대중은 듣기 싫은 사실보다 듣고 싶은 환상을 원한다.” 조국 사태를 겨냥한 말이었다. 사실보다 환상에 대한 수요가 압도적인 토양에서 가짜뉴스가 자란다. 조국 교수가 자신과 가족의 의혹을 파헤친 보도들을 ‘가짜뉴스’라고 단언한 이후 검찰과 법정에선 ‘팩트체크’가 진행되고 있다.
이미 70년 전에 이런 거짓 정보 시대의 도래를 예견한 듯한 미국 커뮤니케이션 학자 카츠의 선견지명은 그래서 놀랍다. 언론학 교과서에 나오는 ‘이용과 충족’ 이론이다. 사람은 제각각의 필요와 욕망에 따라 정보를 찾기 때문에 대중매체에서도 쇼핑하듯 입맛에 맞는 보도를 구해 만족을 얻는다는 것이다. 유튜브 1인 미디어와 SNS 시대 개막으로 상식처럼 들리겠지만, 1980년대만 해도 ‘신문에 났다’ ‘9시 뉴스에 나왔다’고 하면 의심하지 않았다. 대중미디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던 순진한 수용자는 많이 줄었다. 촛불 시위대는 ‘조중동’ 기사라면 덮어놓고 불신한다. 좌우할 것 없이 지상파 뉴스보다 유시민의 알릴레오, 정규재 TV,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말을 더 믿는 이들이 늘었다.
가짜와 진짜 뉴스를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 많은 연구와 시도가 있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듯하다. 구글 같은 포털들은 인공지능(AI)으로 가짜뉴스를 걸러내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가짜뉴스를 자동생성하는 AI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가 버겁다. 딥 페이크 같은 가짜영상 생성 AI는 인권침해는 물론 선거 때 악용 소지로 인해 지구촌 민주주의의 장래를 어둡게 만든다.
기술적 한계보다 더 심각한 건 인간 본성의 한계일지 모른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확증편향’이 치유되지 않는 한 아무리 뉴스 팩트체크 산업이 발달한다 해도 허사일 수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엉터리 트윗 질이 뉴욕타임스·CNN 같은 주류 매체들의 난타 대상이지만 공고한 맹렬 지지층 30%는 트럼프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는 듯하다. 조국과 지소미아 사태로 나라가 두 쪽 나버린 진영논리와 국론분열에서 우리는 ‘진실의 상대화’를 뚜렷이 목도했다.
어찌해야 하나. 정부 여당이 방침대로 가짜뉴스를 처벌한다? 진위 가리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입맛에 맞추는 자의성마저 개입할 수 있다. 진실과 허위가 동전의 양면인 포스트 모던 시대 아닌가. 그러니 전문가들도 뾰족한 방안을 내지 못한다. 정신 바짝 차리라는 말밖에 할 게 없다.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라 케일린 오코너나 제임스 웨더럴 같은 고명한 학자들의 말이다. 이들은 「가짜뉴스의 시대」라는 공동저서에서 “당신이 무엇을 믿는가는 당신이 누구와 알고 지내는가에 달려 있다”고 진단한다. 같은 내용이 진영에 따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다. 그래서 특정 분야의 전문가나 기자가 아니라면 거짓 정보를 통해 누가 이득을 보고 손해를 볼지 살피는 게 가짜뉴스 판별의 첫걸음이라고 조언한다.
오랜 기자 경험에서 나온 나만의 판별법이 있다. 너무 슬프거나 화나거나 재미있거나 충격적인 뉴스는 일단 의심해 보라는 것이다. 손님을 끌기 위한 거짓 또는 과포장 뉴스일 소지가 다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