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7일 인쇄
2019년 12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12월호 통권 526호 |2020년 1월 23일 목요일|
 

연극살롱

 

무언가 모자란 한국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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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길(高勝吉)(연극평론)

한국은 연극이 풍요한 국가 중의 하나이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와서 세계가 깜짝 놀랄 정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K-Pop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산 유행음악이 세계 음악시장을 석권하는 중에 그 인접분야인 드라마, 영화, 뮤지컬, 연극이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총인구 5천만에 1천만 이상의 관객을 유치하는 영화가 흔하게 등장하여 할리우드 영화제작자의 군침을 흘리게 만드는가 하면 뮤지컬 입장료가 10만원을 상회하여도 관객시장의 위축이 염려되지 않기에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뮤지컬이 동시적으로 수시로 공연을 펼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아시아 국가 중에는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면 아무리 국민이 할리우드 영화와 미국과 영국의 뮤지컬을 보기 원한다고 해도 국가의 통제로 인해 불가능한 국가가 있다. 중국을 비롯한 상당수의 아시아 국가가 그러하고 대만도 통제정책을 유지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한국의 연극, 뮤지컬 등 공연예술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인가. 이것은 단순히 수치로는 평가하기 어렵다. 공연예술의 전통과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외적 성장을 중요시하고 어떤 나라에서는 내적 성장을 중요시하기도 한다. 한국은 외적 성장을 중요시하는 국가로 국민이 얼마나 공연예술을 향유하느냐 하는 보편적 목표보다 공연예술의 경제적 자립을 강조하는 중에 해외진출이라는 명목상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
매년 각국에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공연예술의 국가 경쟁력을 비교 평가하려 하지만 이것은 그렇게 유효하지 않다. 극장의 수자, 공연수입이 주요한 평가자료가 되는데 이것도 하나의 참고자료에 불과하다. 이것만으로 극장과 공연의 수준을 평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지원금도 중요한 평가자료가 된다. 특별한 국가를 제외하고 연극, 뮤지컬 등 공연예술은 모두 국가에서 경제적 지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도 어느 사회주의 국가에 못지 않게 극장수, 공연수입, 국가지원금 등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풍요한 국가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도 한국연극의 현장을 보면 무언가 모자란 것처럼 보인다. 연극과 극장은 보이는데 그 속에서 사람과 생각은 보이지 않는다. 연극은 원래 생활의 필요성에서 생겨나고 유지되어 왔는데 한국에서는 이것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 연극의 생활화라는 전통이 일천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이것을 일치시키려는 노력도 부족하다. 정부와 지방자치제의 정책과 교육의 현장에서는 연극을 실천하기 보다는 보여주는데 집중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제가 건축한 극장이 그렇게 많아도 국민이 참여하고 실천하는 연극을 공연하는 극장이 많지 많다.
이러한 환경에서 희곡과 연극서적이 연극과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것도 볼썽사납다. 희곡은 소설처럼 생활 속에서 읽혀야 하는데 연극관객조차 외면하고 있다. 희곡 읽기와 희곡 쓰기가 생활화한다면 한국에서도 언제인가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다. 인구 500만도 안 되는 아일랜드에서 버나드 쇼, 예이츠, 베케트 같은 희곡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사실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