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7일 인쇄
2019년 12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12월호 통권 526호 |2020년 10월 21일 수요일|
 

출판살롱

 

시험 없는 세상 꿈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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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석(張東碩)(출판평론·「뉴필로소퍼」 편집장)

수능은 끝났지만 수험생들은 여전히 분주하다. 홀가분한 기분도 잠시, 초조하고 조바심치는 마음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시험에 울고 우는 날들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교육학자 이경숙의 「시험 국민의 탄생」 은 시험이 “한국인의 사회적 DNA”라고 말한다. 시험에 울고 웃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수능은 대표선수일 뿐, 한국인들에게 시험은 인생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다.
고려 4대 임금인 광종이 과거제를 도입할 때만 해도, 가문의 배경 없는 신진 세력을 등용하기 위한 개혁 정책이었다. 그 전까지, 또 그 이후로부터 시험이 없지 않았지만, 광종의 과거제로부터 한국인의 시험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를 중심으로 교육 체계가 정비되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과거는 모든 답이 유교 경전으로 수렴되면서, 유학사상의 한계 속에 사회를 가두었다. 신분제 또한 공고히 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과거는 그런 점에서 인재 선발을 위한 장치이자 강력한 통치 방식이었다.
한국에서 외국어는 항상 권력과 경제력을 얻는 지름길이었다. 조선시대 역관들은 말 한마디로 정치를 좌지우지할 뿐 아니라 사(私)무역으로 재산을 쌓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어가 대세였다.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영어 만능시대이다. 해방 직후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영어는 ‘시대정신’이었다. “새롭고 개방적이고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정신”으로까지 칭송받았다. 무엇보다 “출세의 정신”이었다. 영어만 할 줄 알면 권력에 기생할 수 있었고, 비록 기생일망정 돈줄과 직접 연결되는 길이었다.
영어는 지금도 시대정신이다. 한국은 토익과 토플 등 영어 시험을 가장 많이 나라 중 하나다. 토익 점수는 직장 취업을 위한 스펙 중 가장 중요했다. 요즘은 기본 중 기본이어서 스펙으로 치지도 않는다. 영어 잘 하는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토플이나 토익 시험이 한국인의 명줄을 쥐고 있는 느낌이다. 영어 쓸 일이 그리 많지 않은 직장에서 중요한 선발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시험은 인재 선발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이다. 하지만 서열주의를 정당화하며 사회적 퇴행을 가져오기도 한다. 모든 선발의 기준이 점수다 보니, 사회적 책임감이 낮은 사람들이 관료나 법조계 등 다양한 형태로 사회구조의 높은 곳에 진입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저자는 왜 우리 사회가 시험에 이토록 집착하는지 묻는 이유 중 하나다. 「시험 국민의 탄생」이 시험의 난맥상만 들춘 딱딱한 책은 아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에도 커닝이 있었다는 사실, 그 명칭이 ‘방망이질’이라는 이야기, 1930년대부터 객관식 시험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성적표 조작이 동서고금의 흔한 일이라는 것도 알려준다. 저자는 “시험이 없는 사회를 꿈꾸어보자”는 도발적 제안을 던진다. 창조적 발상은 시험이 아닌 성찰과 제안, 토론을 통해 태어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