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7일 인쇄
2019년 12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12월호 통권 526호 |2020년 1월 23일 목요일|
 

춤 스크랩북

 

춤이 있는 舞臺祭典무대제전
- 第1回 舞踊祭(무용제)의 意義(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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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民國舞踊祭(대한민국무용제)’의 탄생은 무용사회가 形成(형성)된 이래 가장 큰 行事(행사)이고 기쁨이었다. 물론 무용계에 꼭 이런 거창한 이름의 행사가 있어야 했는가 하는 문제는 별개로 하더라도 이미 ‘대한민국음악제’니 ‘대한민국연극제’니 하는 큰 年例(연례) 행사가 있었기 때문에 무용도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고 싶었고 받는 것이면 다른 公演藝術(공연예술)과 同格(동격)인 것이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무용제’ 창설은 단순한 행사의 新設(신설)이라기보다 무용도 平等(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實證(실증), 對社會的(대사회적) 位置向上(위치향상)에 좋은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것 등을 확인하고 싶어 뜻있는 무용人士(인사)들은 公式(공식) 非公式(비공식)으로 진흥원 당국에 進言(진언), 拓得(척득)을 벌였었다. 그러나 무용제를 지속할 수 있는 底力(저력)을 과연 무용계가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에 의심받고 있기 때문에 좀처럼 진척이 되지 않던 차 “춤이 없는 무대제전이란 이상하다”는 연극분야에서의 同調發言(동조발언)이 奏效(주효), 결국 무용제가 있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무용계가 계속 良質(양질)의 祭典(제전)을 꾸려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무용계 스스로 비판의 소리가 없지 않았고 막상 무용제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에도 대다수의 무용가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우선 무용제 운영방법이 競演(경연) 형식이라는 것과 賞金(상금)이 연극에 비해 적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용계 지도급 인사들이 大乘的(대승적)으로 이것을 극복함으로써 참가신청자는 예상을 넘어 총 20개 팀이 되어 힘든 첫 고비를 넘겼다. 참가신청자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新羅佛敎(신라불교)무용단(대표 林俊東, 작품 불교무용)
李무용단(대표 이척, 작품 鷄述神母)
金眞弘무용단(대표 김진홍, 작품 海浪堂哀話)
무용단 마당(대표 千在東, 작품 神述仙人)
金福喜金和淑현대무용단(대표 김복희, 작품 창살에 비친 세 개의 그림자)
서울춤패(대표 정병호, 작품 둥, 두리둥둥)
朴錦子무용단(대표 박금자, 작품 春香傳)
全州시립무용단(대표 금파, 작품 碧骨舟若)
崔善무용단(대표 최선, 작품 가젯골의 전설)
趙興東무용단(대표 조흥동, 작품 푸른 흙의 연가)
자바무용단(대표 박금승, 작품 생명이여)
李美羅무용단(대표 이미라, 작품 三一天下 金玉均)
무용단 鶴林會(학림회)(대표 채상묵, 작품 蓮花情)
김란무용단(대표 김란, 작품 壁)
閔俊基무용단(대표 민준기, 작품 방랑자)
컨템퍼라리무용단(대표 이청자, 작품 말[言語])
黃舞峰무용단(대표 황무봉, 작품 저 구름아)
서울무용단(대표 신순심, 작품 오늘을 기다리는 영혼들)
金相圭무용단(대표 김상규, 작품 回歸)
서울무용단(대표 안정희, 작품 석굴암의 기원)

그래서 이것들 중에서 작품, 업적 등을 참작하여 김상규, 서울무용단(신순심), 조흥동, 김진홍, 최선, 컨템포라리무용단, 김복희김화숙, 학림회, 황무봉, 박금자 등 10개 무용단을 선정하였다. 그러나 황무봉무용단, 서울무용단, 박금자무용단 등은 개인 사정으로 자퇴함으로써 결국 무용제 참가팀은 한국무용 4, 현대무용 3개 등 7개 팀이었다.
여기서 최우수상은 없이 우수상 넷으로 김상규, 최선, 컨템퍼라리, 김복희김화숙 등 무용단이 되고 나머지 셋 김진홍, 학림회, 조흥동무용단은 장려상으로 결정되었다. 경연이었으나 참가팀 모두에게 상금은 분배한 격이 되어 결과적으로 괜찮았다는 인상이었다.

이번 무용제의 심사결과를 가지고 판단할 때 한국무용이 大宗(대종)을 이루고 있는 현 한국무용 풍토에서 현대무용의 이와 같은 大量(대량) 진출은 우리 무용의 未來像(미래상)을 黙示的(묵시적)으로 제시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동시에 한국무용은 예외 없이 모두 舞踊劇(무용극)을 가지고 나왔던 것인데 투표결과는 우리 춤으로 만들어지는 무용극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또 이번 무용제 관객동원에서도 한국무용 공연과 현대무용 공연에서의 입장 비례는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즉, 10월 1일부터 8일간의 무용제 기간 동안 13회의 공연을 가졌는데 총 입장 인원은 8천6백9명으로 유료 관객이 4천2백78명, 초대 관객이 4천1백31명인데 한국무용은 유료 관객이 1천7백50명인데 반해 현대무용은 2천5백28명으로 현대무용이 많고 초대 관객은 한국무용이 3천4백여 명, 현대무용이 8백50여 명으로 한국무용이 현대무용의 네 배 이상이 된다. 말하자면 일반 관객의 현대무용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해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특히 이번 첫 무용제 결과에 대해서 적지 않은 비판의 소리가 있었다. 그 첫째는 한국무용의 優位(우위)를 인정치 않음으로써 무용제의 보다 큰 뜻이 무너질 것이라는 것과 둘째 경연식의 축제 방법은 가난한 무용가에게 큰 부담을 준다는 것 셋째 시상금이 너무 적다는 것 등등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처음부터 완벽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계속 시행해 가면서 한국무용 현대무용을 分離(분리)해 보는 방법, 참가팀의 완전해방, 施賞(시상) 방법 등의 개선은 그때마다 衆議(중의)를 모아 최선으로 결정하고 개선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겨우 만든 무용제 자체에 대한 부정적 비판은 바람직한 일일 것 같지는 않다. 결과적으로 이번 무용제는 만들어진 그 자체에 의의가 있었든 것으로 그다음의 문제들은 모두 용서될 수 있는 사소한 일들이라고 말해도 무관할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만족될 수 있는 公事
(공사)란 이 세상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자작 심사 방법은 대강 다음의 방법을 기준하였다.
첫째, 심사는 심사위원이 해당 작품 공연 기간 중 개별적으로 관람하여 이루어진다.
둘째, 심사위원이 참가공연 작품을 관람치 못하였을 경우, 해당 작품에 대한 심사에는 관여치 않는다.
셋째, 수상단체의 선정은 7개 단체의 공연 종료 후 위원 개인별 심사자료를 취합하여 최종회의에서 무기명 투표로 한다. 등등이었다.
이번 심사위원은 朴聖男(박성남, 위원장), 金千興(김천흥), 金白奉(김백봉), 金文淑(김문숙), 金玉振(김옥진), 金振傑(김진걸), 宋范(송범), 姜理文(강리문), 金貞郁(김정욱), 姜善泳(강선영), 洪貞喜(홍정희), 陸完順(육완순), 朴容九(박용구), 鄭昞浩(정병호), 李盾㤠(이순열), 趙東華(조동화), 崔賢(최현), 成慶麟(성경린), 具熙書(구희서) 등 열아홉 분이었다.

月刊 文藝振興 1979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