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7일 인쇄
2019년 12월 1일 발행
발행·편집인 / 趙楡顯
등록/1976년 1월 27일·라 2006호
2019년 12월호 통권 526호 |2020년 4월 3일 금요일|
 

춤 스크랩북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民俗舞踊
- 뉴스와 話題 <<舞踊>>




趙東華()

지난 10월 초, 세종문화회관에서 崔彰權(최창권) 씨가 주재하는 미리내에서 뮤지칼 「살짜기 옵서예」를 다시 상연하였다. 이번 것은 옛날 예그린 때의 것과는 전혀 다른 정말 구경할 만한 재미있고 세련된 것이어서 흥미있었다. 풍년엔 길가 잡초에도 쌀이 열린다더니 「살짜기…」에서도 오늘의 우리 國力(국력)을 보는 것 같아 풍부하고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우선 음악이 그 전에 비해 많이 보태지고 다듬어졌으며, 드라마가 제대로의 연기인과 연출로 흐름에 상부상조하면서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되니까 정작 뮤지칼의 기둥이 돼야 할 춤이 보잘것없이 퇴색하고 처지는 기분이었다. 그 전엔 노래나 드라마나 춤이나가 그저 비슷비슷해서 굳이 춤에만 탓할 수 없었던 「살짜기…」였는데 이번에는 모든 것이 제대로의 기능을 발휘하게 되니까 적응력을 가지지 못한 우리 춤의 醜(추)한 모습이 금방 드러나 보이게 된 것이다. 다른 장면에서는 재미있어지다가 춤 장면에 이르면 뮤지칼의 분위기가 떨어지고 말았다. 한마디로 재래의 우리 춤의 기능으로는 才氣(재기)있고 템포있는 뮤지칼에 맞춰갈 기능이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 춤이 뺑뺑 도는 기능밖에 속도 능력을 나타낼 수 없다는 무능력과 기동력, 그리고 現代劇(현대극) 흐름의 맥을 끊어버리기에 알맞은 千篇一律(천편일률)적인 단순 동작의 반복이 오늘의 우리 新民俗舞踊(신민속무용)인가 생각하니 크게 불만스러웠다. 춤에서 가장 큰 매력과 움직임을 보여야 할 가슴 밑부터의 下半身(하반신)이 아예 치마에 감춰지는 非經濟(비경제)적이고 人形(인형)적인 우리 춤의 의상, 그리고 두 팔 동작만으로 큰 무대 분위기를 떠맡으려는 그런 무모함. 말하고 싶은 것은 왜 우리 춤의 안무자는 극의 흐름이 바뀌고 정세가 바뀌는데 그저 뒤돌아서서 설득력 없는 춤밖에 추이지 않느냐 하는 문제이다.
시종 놀고 있는 그 치마 부분을 가위로 힘껏 잘라버린다든지 해서 우선 뮤지칼에 맞는 춤의 변화를 생각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특히 이번 뮤지칼의 연출은 상징적인 수법을 많이 도입했다. 그러다 보니 춤만이 고래의 법칙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이렇게 주어진 기회에서 뮤지칼을 전제로 한 우리 춤의 안무가 무대화를 시도해보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할 것인가? 우리 의상을 차려입은 춤이니까 단순한 춤사위만 구사한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를 속박하는 일밖에 안 된다. 대담하게 춤사위를 변화시켰어도 되었을 것이다.
요는 우리 춤을 다루는 사람들의 실험정신 결핍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 춤은 그저 곱고 예쁘게만 추면 된다는 식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면 다른 무대 예술과 연결될 수도 없고 그렇게 되면 마침내 모처럼 내세웠던 新舞踊(신무용) 정신도 한갓 先人(선인)들의 허망한 꿈으로밖에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사실 新舞踊이란 말이 나왔고 신무용이란 개념이 오늘의 찬란한 세계 무용 사조 앞에서는 지극히 초라하고 낡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50년 전, 그 깃발을 들고 나왔던 선배들의 기개나 앞선 생각에 그저 머리 숙여질 뿐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에게는 이런 신무용의 次元(차원)마저 없기 때문이다. 진정 한두 젊은이의 가능성을 제외하고 과연 어느 누구에게서 신무용의 그런 낡은 정신마저도 찾아볼 수 있는가?
기껏 부채를 들고 웃음이나 흘리고 돌고, 도수체조처럼 뛰고, 팔을 뻗고 하는 관광용 춤으로 몰고 가는 오늘의 현상은 한갓 新民俗舞의 次元밖에 안 되는 것이며, 그것이 固定(고정) 돼버린 新舞踊 자체의 終着驛(종착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실질적으로 우리 춤을 예술의 높이로 추구하려는 요구가 무용가들에게는 무리일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좌절감 때문이다. 도시 ‘창작’이란 뜻, ‘예술’이라는 의미를 50년 전 무용가는 알고 있었으나 오늘의 무용가는 모르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新東亞 1978년 12월호